〈 70화 〉69화. 고대도시 아포리오
망망대해에 솟은 작은 모래섬. 자세히 모래섬 중앙에 돌로 된 사각형의 건물이 하나 보인다. 그 안으론 바닷물이 들어차 있어서 내부를 확인할 수가 없는 곳이다.
“아이씨, 할배는 여기에 뭐가 있다고 가보라는 거야?”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린 가죽옷을 입은 여인이 그 모래섬에 내려, 툴툴거리고 있었다.
엘프와 수인들이 본 대륙을 워낙에 들추고 다녀서, 그들이 찾는 신의 파편은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대륙으로 눈을 돌렸었다. 최근엔, 교단의 적을 추적하다 5사도가 그들을 없애겠다고 나섰던 일이 있었다. 새로 들어온 타락 성기사였는데, 잔뜩 깨지고 돌아왔다고 했다.
“신도란 놈들은 그 이상한 걸 왜 찾아온 거고, 나는 왜 제비뽑기에 여길 당첨되었나 이거야! 나침반이 반응 안 하잖아!”
신도들을 풀어서, 정보를 수집했는데 딱 5개였다. 그래서 사도들끼리 제비뽑기로 골랐다. 각자 한곳씩 맡아서 조사하기로.
“모두에게 알릴 말이 있습니다. 간혹, 신의 파편이 유적 안에 있는 경우엔 기운이 차단되어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 일이 있더군요.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아도, 구석구석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1사도가 신신당부했었다.
“제길, 나침반 핑계 대고 돌아갈 수도 없잖아!”
“3사도님! 건물이 하나 있긴 한데, 안에 물이 차 있습니다.”
“으윽, 젖는 거 딱, 질색인데”
1사도가 바다로 간다고, 챙겨준 게 있었다. 유적에서 발견한, 수중호흡 아티펙트라고 했다. 금속관이 ㄴ자로 꺾여있고, 입에 무는 나무 부분이 있었다. 표면에 괴상한 마법진들이 새겨져 있었다. 수량은 5개였다. 교단의 정예 검 넷과 본인 몫까지 해서 5개였다.
3사도가 아티펙트를 입에 물자, 검들도 따라 물었다. 그리고, 그 건물 안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 후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곳에 루시안 일행이 도착했다.
“오빠, 저기 봐요. 배가 있어요!”
“저 깃발은 교단 깃발이잖아? 검은 바탕에 흰 순록!”
“그럼, 저 모래섬에 환수의 구슬이 있다는 거야? 나침반은 멀쩡한데?”
“일전처럼 차단된 상태일 수도 있어요.”
“루시안 형,예전에 그 상어아저씨 그 아저씨랑 비슷한 기운이 느껴져.”
“구리야? 그거 다시 말해볼래?”
타몬트가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채근했다.
“예전에 바닷속 들어가서요. 네오돈 아저씨, 그 상어 아저씨 만났잖아요!”
“뭐? 네오돈? 그, 아저씨가 상어였어?”
“응, 그 아저씨 상어야! 이만한 상어! 이빨 무서운 아저씨!”
“그래서, 심연의 이빨이었어?”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네오돈이란 자가 레비아탄의 자식이라며, 그때 분명히, 다른 자식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테니 주의하라고 했잖아! 기억 안 나?”
일행들의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바닷속에서 그런 자들을 만나면, 굉장히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구리야, 다시 한번 확인해볼래?”
“확실히 비슷한 기운이에요. 틀림없어요.”
구리가 확인사살을 해준다.
“나, 저기 들어가기 무섭다.”
“교단이 먼저 들어갔잖아요. 타몬트 오빠. 갈 수밖에 없어요.”
“위치로 보건대, 저희의 목적지도 여기네요. 이렇게딱 맞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일단 가보죠. 저들을 먹이로 주고, 저희는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올 수도 있잖아요?”
루시안이 배를 대고, 모래섬에 내린다. 구리가 이어 내린다. 루시안은 앞에 보이는 건물로 다가가 살피기 시작했다. 남은 일행도 내렸다. 타몬트가 가장 나중에 내렸다.
“흠, 수증호흡포션을 미리 만들어 둬서 다행이네요.”
일행들에게 2병씩 나눠주었다.
“전 먼저 내려갑니다.”
“나도 형이랑 같이 갈게요!”
건물은 2명 정도가 옆으로 서면 딱 맞는 넓이였는데, 물이 차있어서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었다. 나선계단이 아래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네빌라님, 오신느님, 인디네님, 가오느님 불카누님 세상에 모든 신님 저를 보살펴주시고…….”
갑자기, 신실한 신자가 되어버린 타몬트를 뒤로하고 발터와 루나가 루시안과 구리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내부가 어두웠기에 루나가 라이트를 띄웠다. 뒤늦게 타몬트가 합류했다.
나선의 계단을 따라 한없이 내려가다 보니, 중간중간 창이 나 있었다. 뻥 뚫린 창이었는데 밖으로 바닷속이 보였다.
바닥까지 내려가니 문이 열려 있었다. 누군가 앞서간 흔적이다. 다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공기가 남아있는 공간이 있었다.
“예전에 우리가 가려던 곳이 도시라고 했지? 아폴리오? 아프리오?”
“아포리오요.”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어쨌든, 여기가 아포리오라면 말이야, 우리가 들어온 곳은 전망대나 큰 탑이지 않을까?”
“중간에 창이 있어서요?”
“어!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고 창이 달려 있는 건물이면, 두 개가 가장 신빙성이 있지 않겠어?”
“오오! 타몬트 형!”
“그건 그렇다 치는데, 여기에서 어디로 가죠?”
“일단, 구리가 기운을 느끼는 곳은, 피해 보는 게 어때?”
“그냥 제가, 추적해볼게요.먼저 온자들이 있으니까요.”
발터가 주변의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사냥꾼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이곳이에요. 이쪽으로 향했어요.”
발터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몇몇 곳은 난장판을 쳐둔 곳이 보였다. 무너진 벽, 강제로 부수고 지나간 흔적,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보였다.
“아주, 거칠게 나아갔네?”
“그러게요. 다 부수고 다녔네요.”
신기한 건 그들이 움직인 길들 대부분이 공기가 있는 공간들이었다는 점이었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일행들도 덕분에 다니기가 매우 수월했다.
한편, 그들이 뒤를 쫓아오는 걸 전혀 모르는 3사도 벨라 마토라는, 감이 매우 좋았다. 그녀가 다니는 길엔 공기가 존재하는 길들이 많았다. 지도도 뭣도 없지만, 그냥 느낌으로 가고 있었다.
부수고 싶으면 부쉈고, 자고 싶으면 잤다. 배고프면 먹었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야! 이 비린내 나는 생선구이 좀 그만 먹었으면 좋겠네!”
검들은 말없이 그녀를 보필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의 그녀 혼자 떠드는 셈이었다. 그녀가 심심해 미쳐버리기 직전, 저 멀리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에는 밝은 빛이 하나 또 있었다. 그녀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건 그녀가 찾는, 아니 교단이 필요로 하는 신의 파편으로 보였다.
“어이, 너희들 저거 우리가 찾는 거 그거 맞지?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지?”
“확실히, 신의 파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보입니다.”
“하, 이렇게 찾는 건가! 자, 가보실까나!”
그녀는 수중호흡 아티펙트를 물고, 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까 봐둔 방향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저렇게 잘 보이는데 왜 나침반에 잡히질 않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녀의 움직임이 매우 경쾌했다. 신이 나 있다는 증거였다. 교단의 검들이 조용히 그녀를 따랐다.
잠시 후, 루시안 일행도 그녀가 신의 파편을 본 곳에 도착했다.
“오, 여기에서 생선을 구워 드셨군?”
“반쯤 먹다 버린 걸 보니 맛이 없었나 봐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게 문제인 것 같다.”
타몬트가 유리 같은 재질로 된 투명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과 거기에서 비추는 빛을 가리켰다.
“저게 뭘까? 환수의 구슬?”
“나침반으로 봐선, 구슬은 아닌 것 같아요. 자세한 건 가봐야 알겠지만요.”
“저들의 흔적이 물속으로 이어져 있어.”
“자, 다시 가볼까요?”
길은 단조로웠다. 그들이 지난 길은 흔적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길에는 해초들이 정말로 많았는데, 그걸 다 잘라서 길을 뚫어놨다. 마치, 길을 미리 닦아둔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수중이라 손짓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참을 헤엄쳐 가다가 다시 벽이 나타나, 위로 올라갔다. 그들이 쉬었던 흔적이 보인다.
“일단, 우리도 좀 쉬어야 할 것 같네요.”
“오래 쉬기는 글렀군. 저들이 뭔짓을 할 줄 알고 편히 쉬겠냐?”
“그건 그러네요.”
간단한 육포와 딱딱한 비스킷, 말린 과일 그리고 탄산음료로 끼니를 때웠다. 루시안이 가진 아공간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이거라도 있으니, 살 것 같다. 달달하니 피로도 풀리고 말이야.”
“그러게요. 여행 준비한다고 이걸 만드신다길래 의아하긴 했었는데 말이에요.”
“루시안은 다 계획이 있더라고.”
식사 후 따듯한 차로 입가심을 하고, 약간의 잠까지 청했다. 한참 단잠에 빠져든 그때, 땅이 울리는 느낌이 들어 일행 깨어났다. 진동의 방향을 가늠해보니, 일전에 본 그 거대한 건축물과 밝은 빛이 있는 방향이었다.
“하, 역시, 평화롭게 흘러가는 법이 없지, 또 뭔일이 터졌으려나?”
“어쩔 수 없죠.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발터?”
“어, 앞장설 테니 따라오라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지나간 길은 언제나 선명했다. 뒤에서 올 적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심심했는지 풀도 뜯어놓았고, 괜히 찔러서 죽여본 듯한 생선이 배를 뒤집고 돌아다녔다.
일행이 그러게 가는 동안에도 울림은 계속되었다. 무언가 대지를 강하게 충격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거대한 건축물이 바로 눈앞에 드러났다. 그건, 신전이었다. 정말 거대한 신전. 그리고 신전 안 시꺼먼 어둠 속에 그 밝은 빛이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앞서간 교단의 일원들이 그 빛에 다가가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다.
주위에 망치 머리를 한 물고기가 계속 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적들이 피하면서 저게 땅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저건 공격이 아니라 몰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의아한 생각이 들 때 즈음,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빛에 가까이 다가갔다. 정확히는 그 망치 머리 물고기를 피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때 까만 어둠 속에서 시뻘건 바탕에 검은 구멍이 있고, 날카롭고 하얀 이빨이 보이며 그 사내를 집어삼켰다.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버렸다. 적들도 당황했고, 루시안 일행도 당황했다. 구리가, 아까 그 정체불명의 물체를 가리켰다. 몸짓으로 뭔가를 표현했다.
-네오돈 아저씨와 같은 아저씨!
-레비아탄의 자식?
구리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일행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저거 아귀야! 커다란 아귀! 저 빛은 미끼야!
루시안은 말문을 잊어버렸다. 물론,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루시안은 저걸 피해가자고 했다.
-돌아가서, 신전으로 바로
-바로, 신전으로?
그들이 저 거대 아귀의 아가리를 피해, 신전 안쪽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는 동안, 교단의 인물들은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공격을 받았으니까, 돌려주는 게 맞다고여겼다.
벨라는 독 마법의 전문가였다. 독을 이용한 물뱀 떼를 만들어 풀었다. 물뱀들에게 가서 저 밝은 빛을 따오라고 시켰다. 물뱀들이 유유히 물을 가르며, 밝은 빛에 다가가자 갑자기 불이 확 꺼진다.
그리고는 아까 사라졌던 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자, 검 중 하나가 재빠르게 다가가 그를 구출하고자 했다. 원래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이상하게도 구하고 싶어졌다. 몸이 알아서 나간다고 할까? 저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다시금, 그도 사라져버렸다. 주변의 망치 머리의 물고기가 어느샌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젠 두 개의 인형이 바들바들 떨렸다. 살아있으니 살려달라는 듯이 말이다. 묘하게 구하고 싶어진다. 남은 2명의 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물뱀 떼로 막아 세운 벨라가, 물뱀을 다시 움직였다. 아까 갑자기 불이 꺼져 제자리에 멈춰선 상태였다. 한 마리를 보내, 아까 일행이 사라진 자리를 뒤져보았다. 망치 머리의 물고기가 나타나서, 박치기로 물뱀을 박살 내버린다.
두 개의 인형이 세차게 떨린다. 당장 죽어갈 듯하다. 기포까지 올라온다. 영락없는 물에 빠진 사람이었다.
한편, 루시안 일행은 길을 멀리 돌아 신전의 뒤로 움직였다. 적들의 눈에 띄지 않게 극도로 조심하면서 말이다. 신전의 뒤에서 보니, 거대한 아귀의 몸통이 보인다. 우둘투둘한 가죽과 꼬리가 살랑이고 있었다.
꼬리가 살짝 들리는 그 틈으로 아래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녀석이 먹이를 유혹할 때마다 신나서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았다.
루시안이 먼저 들어갈 순서를 짚었다. 타몬트, 루나, 발터, 구리 마지막 루시안 순이었다.
타몬트가 멈칫거렸지만 이내 꼬리가 들린 틈을 타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루시안의 손짓에 따라 한 명 한 명 틈새로 들어갔다. 루시안도 안으로 들어갔다. 길고 긴 통로를 따라가다 보니, 위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루시안! 저기 봐라! 여기, 아주 장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