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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1부 (3/110)



〈 3화 〉1부

집으로 돌아와 이능각성 사실을 알렸을때 부모님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잘 됐구나. 그런데 혹시 바로 헌터 자격증을 신청하거나 하지는 않았지?"


"당연하죠. 그거 신청하면 십주 훈련 받으러 가야 하는거 뻔히 아는데 미쳤다고 했겠어요?"


"그래, 잘 했다. 누가 감언이설로 꾀더라도 절대 넘어가면 안 돼. 요즘 애들은 헌터가 멋있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인줄로만 알고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걸 항상 명심해야 한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저도 다 알아요."

초능력을 각성했다고 갑자기 민간인을 강제로 게이트에 집어넣어 헌터로 활용할 정도로 나라가 맛이 가진 않았다.
솔직히 각성자가 한둘도 아니고, 약 5퍼센트라고 쳐도 한국에만 이백 오십만에 달하는 초능력자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모두가 전투에 적합한 종류의 이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은 생활 속에서 약간 편리하게 활용하거나 혹은 아예 없는거나 다름없는 능력을 각성하지만, 어쨌든 이백오십만을 넘기는 머릿수는 각성자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살상력이 있는 위험한 전투형 능력에 대해 등록을 강제하는 정도의 법안은 공감대를 얻지만 그 이상으로 병기를 다루듯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 내가 우리 아들 믿지. 각성 축하할 겸 오늘은 외식할까? 뭐 먹고 싶니?"

"당연히 고기죠. 삼겹살 구우러 가요."

"얘는. 뭘 사먹니. 정육점에서 끊어오면 훨씬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는데."

"그것도 좋죠."

수능을 일주일 앞뒀으니 한창 바쁠 시기지만 그래도 이런 날에는 쉬어줘야지.
방으로 들어와서 책을 펼치려다 말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천장의 격자무늬가 눈을 파고든다.

스킬이란 말이지, 내가 했던 게임에서 나오는.
한번 죽은 후에 전생한, 그것도 차원게이트를 통해 외계행성에 진출하는 세상에 환생한 입장에서 이제와 비현실적이라고 못 믿을건   있겠냐만 그래도 영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전생의 상식은 물론이고 현생의 상식에 비추어 보아서도 평범한 일이 아니니까.

"위력이 C급에 종합 D+급이라... 지속력 D급을 받은건 내가 적당히 힘든척 연기를 해서 그렇게 나온거라고 치면, 더 상급이라고 봐도 되겠지?"

사정거리 15미터도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애매하게 짧은 편이지만 어쨌든 아쉬우나마 원거리 공격으로 쳐줄 정도는 되는  같고, 무엇보다도 분당 스무발, 삼초에 한 발씩 나가는 연사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리라.
에테르 칼날이 그렇게 깡딜이 좋은 스킬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네.
물론 게임스킬이 이능으로 개화하는 것부터가 누구에게도 말 못할 초유의 사태니까 상식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긴 하지.
하물며 툴팁에 적힌 스펙과 비슷한 능력이니까 게임스킬이 아닐까 추측하는거지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가만, 내가 그때 아마 특성을 잘못 들었었지?
시간이 지날수록 주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마력결집을 들었던 기억이...


"어? 설마?"


혹시 특성도 적용이 되는걸까?
게임 상의 주문력 수치가 실제로 이능 위력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마력결집 특성은 산술급수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불어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전생에 유튜브에서 재미로 게임 실험영상같은걸  때 두세시간만 지나도 적 캐릭터는 물론 버프 몬스터나 심지어 에픽 몬스터까지 죄다 한 방으로 때려잡는걸 본 기억이 나.
물론 인게임에서 한시간 넘게 게임이 질질 끌리는 일은 거의 없으니 실용적인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 특성이 실제 스킬 각성 후를 기점으로 내게 적용되고 있다면...


테스트를 받을때 합금강판을 잘라낸 것이 촉진제 맞고 각성한지 얼마나 지난 시점이었더라.
심리테스트 비스무리한 설문조사를 받고 테스트룸에 들어가서도 처음 스킬을 쓰는 감각을 익히느라 시간이 좀 걸렸으니 대충 삼사십분은 되었나?
그러고서 위력등급은 C급을 받았지.
잠깐만 검색 좀 해보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책상 앞에 앉았다.

"어디보자, C급이면... 대략 상위 40퍼센트?"

와,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네.
측정할때 직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한 어조로 말해서 별것 아닌줄 알았는데.
어쩐지 헌터자격도 같이 따는걸 생각해보라고 들러붙는 기세가 심상치 않더라.
나는 한참동안이나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내가 상당히 강한 이능을 각성한 것 같은데,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을까?
한번 모험을 걸어봐도 될 것 같은데.
아냐, 그러다가 까딱 잘못하면 가는거야.
뭐가 아쉬워서 목숨걸고 외계 원정을 나가겠어.
음, 그래도 아깝잖아.
특성대로라면 갈수록 강해질텐데.
그걸 누가 보장하는데?
공교롭게 전생의 게임스킬과 비슷한 초능력을 각성했을 뿐인지도 모르잖아.
그게 말이 되냐, 당연히 서로 연관이 있는거지.
백번 양보해서 게임스킬을 각성한거라고 쳐도 그 특성까지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확신은 없어.
아냐, 그래도 당장 드러난 것만 보아도 직원이 종합 B급은 충분하다고 했잖아.
방금 검색해본 바로는 그 정도면 상위 8퍼센트야.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억대연봉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쫄아서 날리겠다고?
돈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그건 이유가 못 돼.
설마 아들이 목숨걸고 싸워서 돈 많이 벌어왔다고 좋아하실리가 없잖아.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떠돌며 명멸한다.
마치 전생에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때의 심정과 비슷한  같다.
사실 다를 것도 없지.
헌터도 결국은 외계 나가서 싸우는 용병 아냐?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게이트 너머의 외계행성은 전생의 한국군이 파병나가던 중동같은 곳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평범하게 입대해서 군생활하면 전쟁터에 갈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래,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
그냥 혹시 수능 망치고 스펙도 못 쌓는 경우에도 믿을만한 고소득 직업의 선택지가 늘어났다고 치자.


잠이 들기 전에, 그런 결론을 내렸던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깨어났을때는 더이상 고민이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삼겹살은 맛있었고 부모님께서는 연신  접시에 고기를 덜어주는 동안 내 각성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런 결론을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정은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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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적성검사 날이 지나고 나서도 수능을 앞둔 고3의 일상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돌아와 집에서도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하는 나날이다.
졸업  진학이 아니라 바로 취업해서 사회에 뛰어들 계획인 아이들도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인지 놀자판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피하는듯 했다.

"야, 지호 너 각성했다며. 공부 안 해도 상관없는거 아냐?"

"헌터 안 할 거거든?"

"인마, 헌터 아니면 우리가 어디가서 억대연봉을 받아보겠냐. 남자가 패기가 있어야지."

"이 새끼, 자기 목숨 아니라고 막말하네. 큭큭큭."

나까지 포함해서 학교에 여섯명 나온 각성자들은 종종 이런 농담의 대상이 되곤 했다.
물론  중에서 헌터교육을 신청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지만 나중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나도 내가 이런 결심을 하게  줄은 몰랐거든.


"최지호,  수시원서 어디어디 쓸거야?"


"안 써. 수시는 전액장학금 안 되잖아."

"뭐? 네가 언제부터 장학금 노렸다고?"

얼마 안 됐지.
나는 전액 장학금이 아니면 연고대에서 받아준대도 안  작정이다.
서울대는 국립이라 등록금이 싸니까 고민해보고.
구월 모의고사에서 컨디션이  좋았다고는 하지만 인서울도 장담치못할 성적표를 받아놓고 할 소리는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마음을 정해놓았다.
우연히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은게 발단이었다.

"집안 사정이 많이 안 좋아서, 등록금 같은걸로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

"효자 났네, 효자 났어. 인마, 그래도 일단 조금이라도 높은데 붙고 봐야지. 학자금 대출을 하든 부모님께 손을 벌리든."


"내가 알아서 해 새끼야."


별로 친하지도 않은 녀석이 내 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사뭇 어른스러운 어조로 훈계를 해댄다.
그저 가계가 좀 빡빡한 정도였으면  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 집에 닥친 불행은 그 정도가 아니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일을 하시다 무슨 실수를 하셨는지 몰라도 해고되셨을뿐만 아니라 수억원짜리의 구상권 청구서까지 날아왔다고 한다.
외계괴수의 부산물을 가공, 처리하는 회사에 다니신다고 했는데 거래승인에 뭔가 착오가 있었단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조심  하시지.


"돈 문제면 벌기 딱 좋은데 있잖아. 초봉으로 억대연봉 주는 직장 놔두고."

"그만 하랬지? 헌터 안 한다고."

하지만  목소리에 얼마전까지 가득했던 자신감이 없는걸 스스로도 느낄  있었다.
확실히 헌터로 나가서 몇년만 바짝 고생하면 내가 대학 나와서 취직해도 평생 벌기 힘든 돈을 버는데...


아냐, 공부하자, 수능 대박나야지.
그래야 장학금 받고 인서울 대학 갈거 아니냐.
일분일초가 아쉬워.
나는 시답잖은 충고를 이어나가려는 오지랖 넓은 급우를 무시하고 참고서를 펼쳤다.
단과학원에서 속성코스 한두개만 들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금전적 여건이 안 되겠지.
내가 해달라면 부모님이야 기꺼이 해주시겠지만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서도 학원이니 과외니 부담을 더 얹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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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우리 아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시험장으로 지정된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의 중학교 교문은 막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을 데려가려는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아리까리하게 머릿속에 남던 몇 문제의 키워드를 돌려받은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느라 시험이 모두 끝나고도 좀 늦게 나온 참이었다.
제길, 하필 찍어도 그렇게 찍냐.
검색해본 결과가 영 좋지 않아 어두운 낯빛을 한 나를 아버지가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신다.


"괜찮아. 안 그래도 이번 수능이 어려웠다고 뉴스에서 그러더구나. 그리고 정 만족스럽지 않다 싶으면 재수를 하면 그만 아니냐."


"여보,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요?"

그러게.
날 걱정해서 해주신 말씀인건 알겠는데 막 시험치고 나온 아들에게 대뜸 재수 이야기라니.
아버지도 참 긴장하셨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걱정 마세요. 헷갈리는거  개가 있어서 그렇지 전반적으로  본 것 같아요."

사실 보면서 어렵다 싶었는데 아버지 말씀대로 올해가 불수능인걸 감안하면 충분히 선방했지.
이능력연구나 괴수생태학같은 유망하고 입결 컷도 높은 과라면 모를까, 눈을 낮추어 적당한 인서울 하위권 비인기과에 들어가면 통학하면서 장학금도 받을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지방 사립대로 돌리면 장학금이야 거의 확실하게 받겠다만 기숙사나 자취 생활비가 드니까.
너무 민감하게 따지는거 아닌가싶은 생각이 아주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나도 도리가 없는걸.
진지하게 가계에 대해 이야기해본적이 없으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건지  도리가 없다.
아버지가 재취업을 언제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 가족이 아버지 다니시던 회사에서 청구한 빚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것이다.
애써 감추시긴 하지만 어머니 얼굴에 수심이 짙게 드리운 것은 어렵잖게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  했구나. 잘 했어."

"수험지에  적어왔으니까 집에 가서 가채점해볼게요."

흡족해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수능을 앞둔 아들에게 해고를 숨기느라 아침마다 여느때와 같이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볼때마다  착잡했는데 말이야.
전생에서 부모님과 관계가 그리 살가운 편이 아니었기에 이번 생의 가정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음, 생각해보니 수능 잘 봐서 대학을 장학금 받고 간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건 아니지.
조만간 두 분의 대화를 엿들은 것을 밝히고 상의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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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능이 역대급 물수능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선에서는 변별력이 부족해 실력보다는 운으로 등급이 나뉠거라는 불만이 터져나옵니다. 평가원에서는...


다음날 아침.
친구들과 함께 놀고 온다고 집을 나선 나는 만화방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았다.

"그러고보니 저거 말 많았지. 가채점하고 카페에 올리는 애들 보니까 만점자도 열 몇명이나 있고, 언외 일등급 컷이 막 구십점대 나오겠더라."


"하, 나 지금 생각하니까 마킹실수 두갠가 한거 같은데 야단났네. 한두점으로 갈릴텐데."

지나가는 재수생이나 삼수생으로 보이는 형들의 대화소리도 귀에 들어왔다.
망연한 가운데 나는 그제야 어제 아버지가 짓던 애매한 미소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다.
시험보고 나온 아들놈 안색이 죽을상이니까 그저 위로하려고 하신 말씀이었구나.
어젯밤 가채점을 하면서 '그래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네, 불수능이었다는데.'하고 만족하던 내 모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야 최지호. 뭐해? 라면 시키러 간다는 놈이 함흥차사야. 네가 끓이냐?"


"애들한테 나 먼저 간다고 좀 전해줘."


"어? 갑자기 어딜?"

"쇠뿔도 단김에 빼랬는데, 마음먹은 김에  일이 있어."


되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만화방을 나와 가까운 길에서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는다.
눈물이 나올것 같아서 괜히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삼십여분 후, 나는 얼마전 적성검사를 받았던 노원센터의 정문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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