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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1부 (7/110)



〈 7화 〉1부

머리에 뿔이 달린 저 사족보행의 괴수는 한국이 보유한 게이트 기지 인근에서 가장 흔한, 그래서 가장 잘 알려진 괴수였다.
침공 초기 최초 발견자의 명명에 따라 유니콘이라 부르지만 아무리 봐도 말보다는 들소에 가깝다.


"으아아!"

거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과 함께 위력은 별로 볼 것이 없지만 백여미터를 상회하는 압도적인 사정거리를 자랑하는 바람의 화살이 날아간다.
파앙하는 타격음은 워낙 멀기도 했거니와 두두두 달려오는 발굽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유니콘의 고개가 홱 젖혀지는걸 보니 용케 명중한것 같다.
타격을 받고 순간적으로 멈칫한 선두의 유니콘이 뒤이어 달려오는 무리에 휩쓸려 넘어진다.
이것도 원샷원킬로 봐야하나.

"B조는 따로 지시 기다리지 말고 사정거리에 들어오는대로 바로 화력투사하세요!"

한발 늦은 교관의 지시가 이어진다.
이렇게 먼 사정거리의 이능을 보유한 초능력자는 전국에서도 흔하지 않은만큼 그의 실수를 탓할수는 없으리라.
나는 달려오는 유니콘 떼를 보면서 방어형 능력자 등 뒤에 붙어 침을 꼴깍 삼켰다.
15미터라는 거리는 이능시험장에서는 제법 멀고 여유있게 보이더니, 막상 전투를 앞두고 가늠을 해보니 이건 그냥 코앞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달려오는 속도를 보면 불과 일,이초만에 들이닥칠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C조에 가서 목숨을 걸 수는 없지만 그걸 권한 교관의 말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간다.

"선두부터! 돌입속도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각양각색의 장거리 공격형 이능이 날아가 달려오는 수십여마리 유니콘 무리의 선두를 덮친다.
아까와 같은 행운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달려오는 기세를 조금이나마 줄이는데는 성공했다.
콰앙.
방진 최전방에서 강렬한 충돌음이 울린다.
방어형 이능을 전개했는지 푸른 빛에 휩싸인채 버티고 선 근육질의 남자는 C조의 에이스.
나와 친해진 강호찬 아저씨도 비록 눈에 띄는 화려한 이펙트는 없지만 신체강화능력과 합금방패를 기반으로 단단히 막아내며 밥값을 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전투가 아니라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쉬익.
충돌직전에 사거리에 들어선 괴수에게 에테르 칼날을 날리고, 무형무음의 칼날이 날카롭게 베고 지나간 자리에는 유니콘이 두 쪽이 나서 시퍼런 내장을 쏟으며 널부러진다.
 방에 반으로 갈라버리는 그 압도적인 절삭력과 파괴력도 인상적이지만, 정작 내게 고민거리를 안겨준 것은 동시에 몸이 가벼워지는 낯선 활력이었다.
맞아, 내가 왜 잊고 있었지?


"우와, 저거 뭐야? 유니콘도 나름대로 가죽이 단단한 축에 드는 괴수인데."

"일격에 끝장냈다고?"

"위력이 범상치 않은건 진작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놀라운데? 정말 D+급 맞아? 최소한 B급은 되어보이는 위력인데."

"아냐. 그 이상인것 같은데? 방어막에 걸리는 느낌이 전혀 없어. 말 그대로 일격에 부수는데?"

뒤에서 혹시나 전열이 뚫리지는 않을까 지켜보던 교관들이 내 이능을 보고 감탄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지금 이럴때가 아니라는걸 자각했다.
쉬익.
에테르 칼날의 발출 자체는 어떤 소리나 형태도 동반하지 않았고 다만 피륙이 갈라지며 상처가 쩍 벌어지는 소리만 들린다.
아, 이번에는 살짝 빗나갔네.
목을 날려버리려고 했는데 옆을 스치고 지나갔어.
하지만 목이 반쯤 잘려 푸른 피를 쏟아내는 목표 괴수가 그대로 고꾸라져 경련하는걸 보면 일단 공격은 성공적으로 들어간걸로 봐야겠지?
쉬익.
잠깐 사이에 삼초의 쿨타임이 지나고 다시 발출된 에테르 칼날이 이번에는 덧없이 허공을 가른다.
뭐,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아.
소모값도 없고 준비시간도 짧으니 다음번에 잘 맞추면 그만이지.
리스크없이 난사하는 스킬이니 부담도 적다.
다만 주의할건 실수로 전위 동료에게 스치기라도 하는 날엔 대참사가 난다는건데.

"호찬아재, 좀 비켜봐요. 시야가 안 돼서 쏘지를 못하겠네. 이거 잘못 맞으면 골로 가요."


"어? 어어. 아,알았어."

방패에 어깨를 받쳐대고 뿔달린 대가리를 들이미는 유니콘을 밀쳐내던 강호찬이 얌전히 몸을 틀어  사격 각도를 확보해준다.
평소 내가 알던 그의 성격이라면 너스레를 떨면서 뭐라고 농담 한마디라도 할법한데.
하지만 전투의 흥분에 취한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 정신을 집중해 장갑차와 바리케이트, 방패로 이루어진 방어벽에 들이받는 괴수에게 에테르 칼날을 쏘아내기 바빴다.

삼초 간격으로 쉴새없이 날아가는 무형의 칼날은 괴수의 두꺼운 가죽과 방어막에도 불구하고 걸리는 느낌조차 없이 두부처럼 괴수가 썰어낸다.
목이나 몸통을 맞추면 그대로 절명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궤도상에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걸쳐 있으면 그 부분이 잘려나가며 쓰러진다.
유니콘은 덩치가 작지 않은 괴수인데다 돌격대형을 갖춰 뭉쳐있었던만큼 아주 빗나가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서, 잠깐 사이에 방진 앞에는 괴수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였다.


"사격중지! 화력조는 이능 사용을 중지하세요!"

그 더미를 향해 계속해서 칼날을 날리던 나는 교관의 지시 후에야 내가 아직 살아 꿈틀거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후경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인식할  있었다.

"지호야, 네 이능 장난 아니구나?"

"휴, 나도 놀랐어요."


동기들은 물론 교관들까지 경악하는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괴수사냥이란  행성에서만 생성되는, 지구에서 기원한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괴수의 방어막을 이능으로 깎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파괴력과 연사력, 지속력 등을 측정해 등급판정에 반영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방어 능력자들이 길을 막고 버티는 사이에 원거리 공격이능을 방어막에 들이붓는 형태로 사냥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능등급에 따라 방어막을 벗겨내고 본체에 타격을 주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천차만별로 달라질지언정 이 형태는 십수년동안이나 정형화된 형태였다.

"저기... 혹시 이 유니콘들이 방어막을 갖지 않은 돌연변이 종은 아니겠죠?"


"최지호 훈련생 혼자만 공격을 한게 아니잖아. 그보다는 차라리 괴수방어막을 관통하는 새로운 타입의 초능력이라고 보는게 맞겠지."


"아, 그런가. 와,  센터에선 측정을 못했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사체를 정리하는 사이에 교관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글쎄, 이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이지만 내 생각엔 관통타입이라기보다는 그냥 위력이 초월적이라 그런것 같은데.
판단근거는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했던 게임 캐릭터의 스킬과 특성.
전생의 기억은 십수년을 살며 이젠 희미해졌지만 마지막 순간에 즐기던 게임의 기억은 예외적으로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에 따라 마법공격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마력결집 특성은 길어야 한시간 가는 일이 없는 인게임에선 후반보험 정도지만 지금 내게는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이 죽어 다른 세계에서 아기로 환생하고, 이능을 각성하는데, 전생에 하던 게임스킬이 나오는 정도가 새삼 더 이상할게 어딨겠어?

전장의 정리가 대강 끝났다.
괴수의 사체는 값나가는 부위만 도려내 장갑차의 짐칸에 싣고 피냄새가 퍼져 인근의 강력한 괴수를 끌어들이기 전에 자리를 떠야한다.
유니콘은 대가리에 달린 뿔과 심장 근처의 혈석을 제외하면 값나가는 부위가 별로 없어서 챙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아저씨, 어디 다쳤어요?"

"응? 아냐. 그냥 어깨가 좀 불편하네. 방패를 몸으로 받쳐들때 자세를 살짝 잘못 잡았나봐. 왜, 충돌각도가 어긋나면 부담이 더 실린다잖아."


"그럼 교관한테 말하고 치료를 받아야죠."

"됐어. 아무말 말어. 괜히 실습점수 깎일라."

"아저씨, 실습에서 낙제를 받는 경우는 정말 누구 하나 죽어나가지 않는 이상에야 거의 없어요."


"그래도 점수로 줄을 세우기는 하잖냐. 기업에서 스카웃할때 다른건 다 안 봐도 이능등급이랑 실습점수는 칼같이 봐. 연봉이 달라진다고."

"휴, 뭐, 알아서 하세요 그럼."


장갑차 안에서 연신 왼어깨를 오른손으로 주무르며 얼굴을 찌푸리던 강호찬은 문득 부러움에 가득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넌 아무 걱정도 없겠구나. 부럽다 정말."


"예?"


"예는 무슨. 넌 이능등급 측정에서 오류가 난게 분명해. 교관들도 놀라는거 봤잖아. 종합 D+급의 공격형 이능으로 괴수를 그렇게 두부 자르듯 마구 썰고 다니는게 가능할리가 없지."

"역시 그렇겠죠?"


"그렇고말고. 내가 볼때  최소한 B급이야. 어쩌면 그 이상으로 판정이 나올지도 모르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수십억대연봉 받는건 따놓은 당상이지."


아마 각성 직후에 센터에서 측정했던 등급은 더하고 뺄것없이 정확했을 것이다.
다만 측정기로 잡아내지 못한 특성이 에테르 칼날의 위력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뿐이다.
지금도 괴수 중에서도 제법 단단한 축에 속한다는 유니콘을 간단히 두쪽내는 위력이니 시간이 흘러 여기서  강화되면 잘라내지 못할게 없겠네.
한가지 궁금한건 이동속도 증가옵션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느냐는건데, 물리적으로 하체근력이 증가해 발이 빨라지든 아니면 몸이 가벼워져 움직임이 달라지든 어떤 경우라도 내게 나쁜건 아닐테니 천천히 두고보면 될 일이다.

"정지! 정찰대 복귀합니다."

얼마나 더 진행했을까, 다시 앞서갔던 정찰대가 돌아와 이번에는 맘모스를 관측한 사실을 알리자 책임교관이 전투준비를 지시한다.
당연히 지구에 화석으로만 있는 맘모스와는 외형이 약간 유사할뿐 전혀 다른 사나운 육식괴수다.
육체강화계열이든 방어계열이든 어지간한 고등급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에야 체고가 4,5미터에 달하는 괴수를 상대로 힘으로 버틸수 있을리가 없으니 아까와는 전술 자체가 전혀 달랐다.

"후우. 난 거대괴수 상대하는 진형은 아직도 너무 어려워서..."


"걱정마요. 위험하면 교관들이 개입하겠죠."


"교관이 무슨 신이냐? 까딱 잘못하면 어떻게  틈도 없이 골로 가는거야."


진형을 갖추는동안 긴장을 풀려는듯 계속 투덜대던 강호찬의 목소리를 쿵쿵거리는 진동음이 덮는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덩치에 꽤나 빠른 속도가 무척이나 위압적으로 보이는 괴수가 달려온다.
뭘로 유인을 했는지는 몰라도 눈이 뒤집혔는데?


"온다! 정면으로 받지 않도록 모두 조심해!"


"지나가면 C조 전원 달라붙어!"


삽시간에 가까워진 맘모스는 교관들의 고함소리에 훈련받은대로 반응한 C조의 대열 사이를 지나치고 그 직후 그대로 다리가 풀리며 무너져내린다.
달려들던 근접 헌터들은 고꾸라진 목표에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뭐야? 이거 왜 이래?"

화력조가 방어막을 전부 상쇄하면 숨통을 끊기 위해 60구경짜리 무식한 총기를 꺼내든 피니셔 당번이 조심스레 총을 겨누고 앞으로 다가간다.

"잠깐만. 어? 주,죽었는데?"

어른 허리통의 두세배는 나갈 굵기의 목이 반쯤 떨어져나간 사이로 피가 쏟아져 땅을 적신다.
아무리 봐도 절명한 것이 맞다.
 행성의 괴수들 중엔 목이 잘려나가고 심장이 뽑혀나가도  죽는 괴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적어도 맘모스는  생태가 밝혀진 괴수니까.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첫 상대라면 모를까, 아까 유니콘 무리를 사냥할때 본 바가 있으니 그러는거겠지.

"어... 운좋게 멱줄에 제대로 들어갔네요."

"아니, 진형 사이로 지나가는걸 옆에서 쳤으니까 급소에 들어갈수는 있는건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맘모스의 방어막도 일격에 뚫었다고?"

"괴수마다 방어막 강도가 다른가요?"

"당연하지! 교육시간에 졸았어? 맘모스는 프로 헌터들도 한참을 두들겨야 잡는 괴수인데..."

"그렇게 따지면 아까 유니콘들 썰던 것도 말이  되는거지. 이야, 너 진짜 대단하구나?"


경악에 가까운 반응에 얼떨떨해져서 머리를 긁는데 교관이 다가와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뒷정리를 하면서 나를 따로 불러낸다.


"최지호 훈련생! 이쪽으로 오세요. 자, 나머지는 괴수사체 수습하고 전장 정리합니다!"

"예."


바삐 움직이면서도 연신 내 쪽을 흘깃흘깃 보면서 수군거리는 동기들을 뒤로 하고 교관과 함께 약간 떨어진 곳까지 나오니 그는 가장 먼저 담배부터 권한다.

"감사합니다. 근데  담배 안 피웁니다."


"아, 네. 음... 노원 센터에서 각성을 하셨고 최초 측정도 거기서 받으셨다구요?"


"예."


"이거 저희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위로 보고를 올리면 최지호 훈련생에게도 개인적으로 공지가 가겠지만, 아마 등급 재조정이 있을겁니다."


"이런 일이 흔한가요?"


"드물죠. 측정시 오류가 났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성장속도가 어마어마한 이능이거나 둘 중 하난데, 어느 쪽도 자주 발생하는 경우는 아닙니다. 보통은 몇 년을 두고 차근차근 밟아나가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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