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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1부 (11/110)



〈 11화 〉1부

S등급의 이능력자가 희귀한 것은 알았지만 국내에 겨우 오십여명이 채 안  정도라는건 몰랐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헌터들 사이에서도 이능 등급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희소가치가 있는 등급이라면  말할것도 없다.
빼곡한 안내문에 적힌 혜택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파격적인 것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원정소득에 따른 세율 상한이 십퍼센트로 고정된다는건, 무조건 십퍼센트를 낸다는건가요?"

"아니죠. 기존 원정소득세율 적용을 받되 소득이 오분위를 넘어가도 오분위로 고정되는거죠."

"오분위면 대충 오백만원 좀 안 되는 정도인데, 한번 외계원정을 나가서 그것도 못 버는 경우도 있나요? 훈련소에서 실습나갔을때도 분배는 못 받았지만 인당  넘게는 벌었다고 하던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안 남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아예 허탕을 친게 아닌 이상에야 사실상 거의 없겠죠. 그냥 세금 이십프로에서 사십프로까지 깎아주는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와, 그럼 당장 계산해봐도 절대 작은 금액이 아닌데.
물론 인당 원정소득은 소속 기업에서 정산해 인센티브 형식으로 분배하니까 세금도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이건 상당히 큰 혜택이다.
일회성도 아니잖아.
그 외에도 품위유지를 위한 각종 혜택이 주르륵 딸려있는데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데다가 전생에도 그저 그런 중소기업에서 근근히 벌어먹던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신청만 하면 전용기사와 차량을 제공한다던가 경호 서비스를 제공받을수 있다던가 형사소추시 유죄판결 확정 전까지 불구속 혜택이라던가... 뭐, 듣기만 해도 엄청 좋은건 알겠는데 말이지.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가져가서 천천히 읽어볼게요. 그럼 이만 가도 되죠?"

"아, 네. 여기요. 자격증 받아가셔야죠."

직원이 내게 건넨 자격증은 흔히 쓰는 카드와 형태 및 크기가 비슷했는데, 귀퉁이의 칩이 약간 특이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본 이능력자 신분증이나 헌터 자격증은 이런 특징이 없던데.
신기하게 바라보니 설명이 뒤따른다.
이계에서 가져온 귀한 광물로 만든 칩이라나.
물성이 좋고 변형도 잘 되지 않는 좋은 반도체용 소재지만 너무 비싸서 상용화는 멀었단다.
가격대를 들으니 외계행성이 현대산업의 엘도라도라는게 괜히 그러는게 아니구나 싶다.


센터를 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신명수 변호사의 문자를 받았다.
몇군데 추리기는 했는데, 신일그룹의 후원을 받는 팀인 오닉스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고민이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신일그룹은 손에 꼽히는 대기업인데다, 다른 기업들에 비해 이계진출이 좀 늦어서 헌팅팀의 전통이 부족한 탓에 투자를 적극적으로 한다는건 나도 뉴스에서 봤다.

-그럼 오닉스 헌터스와 협상해주세요. 전 지금 보내주신 조건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니 지나치게 더 욕심부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세한건 변호사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아저씨라고 편히 부르라니까. 어쨌든 알았다. 기본계약서가 있으니 금액은 이대로 결정된다고 보면 되겠지만 추가적인 복지혜택에서 몇가지  챙겨보마. 갔던 일은 어떻게 됐니?


-아, 방금 재검사 받았어요. S급이라네요.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즉답으로 채팅이 오가더니 이번에는 한참이나 답장이 오지 않는다.
오분 정도 지났을까, 문자 대신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신명수 변호사의 거의 고함을 지르다시피 하는 데시벨의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문자 잘못 보낸거 아니지? S급? 진짜?"

"진정해요 아저씨. S급 맞구요, 확인서랑 각종 혜택 안내까지 다 받느라 시간이 좀 걸린거예요."

"세상에나. 이게 말이 되나?"


"바로 재검사를 하라고 권한건 아저씨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마."

"아까 문자로 하던 얘기나 마저 하죠. 어느정도 금액까지 받을수 있다고 하셨죠?"


"그거 다 잊어버려라. 아무리 본업이 아니라지만 S급 헌터를 고객으로 잡고 몇 억단위 계약으로 끝내는건 직무유기에 가깝지."

아까 이능력센터에서 직원의 눈에 가득하던 선망과 부러움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동안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운으로 받는 이능등급으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게 조금 불편하지만 사실 언제는  그랬나.
전생에서도 물고 태어난 수저 색깔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건 매한가지였는데 뭐.
신명수 변호사는 잔뜩 흥분한채로  차례나 내 등급을 확인하더니 이내 전화를 끊는다.


"여보세요? 아, 네. 노원 이능센터 앞이요."

비싼 가격때문에 평소 좀처럼 쓰지 않던 콜택시를 부르고 센터 앞 벤치에 앉았다.
실실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뒤늦게 실감이 났다.
단순히 부자가  기회를 잡은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상류사회에 진입한거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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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소개받은 신명수 변호사와 대리인 계약을 맺은건 무척 시기적절하고 현명한 행동이었다.
재검사를 받은 후 며칠새 그는 대기업 신일그룹이 후원하는 오닉스 헌터스의 계약서를 가져왔다.
표면적으로는 그저 평범한 고소득인 억대 연봉, 실질적으로는 각종 수당과 보너스를 합해 약 삼십억에서 사십억대의 연수입을 보장하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계좌에 넣어줄 백오십억 가량의 사이닝 보너스는 덤.
와, 신일그룹  많다는건 익히 알았지만 통이 커도 너무 큰데?


"원래 S급이면 이 정도는 받는건가요? 아니면 아저씨가 협상을 빠듯하게 잘 하신건가요?"

"알아보니까 S급은 표준계약서라는게 없어. 국내에 딱 마흔 여섯명밖에 없는데, 헌팅 팀만 몇 개냐. 그러니 그저 달라는대로 주는수밖에. 물론 정도가 과하면 눈총을 받겠지만 개중엔 별의별 요구를 다 하는 놈들도 있거든."

오십여명이 있다고 하면 그럭저럭 숫자가 꽤 되는것 같아보이지만 게이트를 보유한 국가의 경우 이계진출 산업이 사실상 국가의 기간산업이나 다름없다는걸 감안할때 이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특히 나처럼 위력 항목에서 S급을 받은 경우에는 그 가치가 한층 더 높아지는데, 원정대가 한번 원정을 나갔을때 기대할  있는 수익규모 자체가 달라진다고.


"이 정도면 당연히 사인해야죠."

"입단식을 성대하게 치러줄거라고 하더라."

"입단식이요? 아, 이번 기수 동기들 중에 오닉스 헌터즈에 들어가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데요?"

"오닉스는 원래 생짜 신입 잘 안 받는 팀이야. 죄다 경력직이지."

아, 전통이 없고 모기업이 퍼붓는 지원으로 급하게 쌓아올린 팀이라고 했었지 참.
그럼 당연히 유스풀을 돌릴 여유는 없고 베테랑의 헤드헌팅 위주겠지.
이제 막 훈련소를 졸업하고 정식 자격증을 딴 주제에 입단한 내게 선배들의 텃세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그는 다만 크게 웃는다.
아무리 정예화된 초일류의 헌팅팀이라고 하더라도 S급 이능력자를 박대할 수 있을리가 없단다.


"내가 그때 괜히 그렇게 놀랐던게 아니란다. 원래 S급으로 승급할땐 기자들이 잔뜩 몰려와서 앞다퉈 취재하는게 정상이야. A급 이능력자가 충분한 경력을 쌓고 이능의 진화징조가 보일때쯤엔 그 사실을 숨길래야 숨길수가 없거든."


"저처럼 시작부터 S로 시작하는 경우는 없나요?"

"우리나라에선 없었어. 나도 이번에 조사해보고 알게 된건데, 독일에서 한번, 중국에서   있었다고 하더라. 신일그룹에서  배려해준다고 언론의 관심을 막아주고 있는 것 같더라. 기본 서비스라는데, 신입사원 아무나한테 이런 서비스를 해줄리는 없을테니 특별대우라고 봐야겠지. 아, 만약 네가 기자들을 크게 꺼리지 않는다면 이 참에 유명세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만두라고 할까?"

"됐어요. 괜히 얼굴 팔리면 피곤하기만 하지. 뭐 연예계 같은데로 나갈 것도 아니고."


"방송타고 싶으면 얼마든지 가능한데."

"에이, 그런 쪽엔 흥미없다니까요. 헌터가 원정을 나가야 헌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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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하게 치러진다는 입단식은,  어감과는 달리 팀원들과 만나는 인사치레에 가까웠다.
물론 여기 차려진 음식들의 퀄리티나 입단기념으로 준다는 선물의 가격대를 생각하면 성대한게 맞긴 한데, 내가 상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위력으로 S급이라니. 앞으로 우리 원정이 아주 편해지겠는걸?"

"그러게 말이야. 2팀 녀석들이 편하게 꿀 빨면서 수익은 엄청나게 당기는것 보고 배아팠는데."

"지호씨? 여기로 와봐요. 이쪽이 우리 행보관님. 앞으로 팀장인 저보다 더 잘보여야 할 분이니까 인사드려야지. 이 분이 진짜 실세야."


"아이고, 제가 실세는 무슨."


내가 배정된 3팀의 선배들은 나를 무척 반겼다.
이제 막 각성하고 훈련소 수료한 놈이 특급대우를 받으니 고깝게 보는 시선이 있으리라고 예상했는데 그런 알력은 전혀 못 느끼겠는걸.

오닉스 3팀의 강경호 팀장은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삼십대 중반쯤의 중견 헌터였다.
훈련소 기수로 따지면 까마득한 선배지만 기업문화가 그런건지 개인의 성향인지는 몰라도 평소에 팀원들에게 윗사람 행세를 하지는 않았다.
오닉스 헌터즈가 경직된 군대식 문화와 거리가 먼 회사라더니, 선택하길 잘했구나 싶다.

"지호씨가 참가하는 첫 원정은 아마 다음주 아니면 다다음주가 될겁니다. 한달정도 적응기간을 드려야할텐데, 일정이 좀 꼬였네요."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왜 일정이 꼬였는지는 짐작이 간다.
신명수 변호사에게 듣기로 오닉스 헌터즈는 원래 훈련소를 막 졸업하고 헌터 자격증에 잉크도  마른 신입은 안 받는다고 하니까.
경력직만 뽑는 곳에 특채로 들어간 셈이니 이런 사소한 불이익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리고 사실 불이익이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다.
목숨걸고 차원문을 넘어 외계 행성에 가서 괴수와 사투를 벌이는건 물론 끔찍한 일이지만...

"오늘은 마음껏 드시고 쉬시죠. 내일부터 이능을 시험하고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봅시다."


"저 사럼좋은 웃음에 속지 마세요. 우리 팀장님, 훈련할땐 진짜 가차없는 분인데..."

"인마, 너하고 같냐? 최지호씨는 원거리 화력조다 화력조. 아, 신경쓰지 마세요. 저 녀석, 자기 구른거 억울하다고 팀원들 새로 올때마다 저래요."


"아뇨, 그렇게 따지면 저도 굴려주셔야 할텐데요. 제 이능이 일단 원거리 투사형이긴 한데... 유효사거리가 겨우 15미터라서요."


"예? 아, 그러고보니 그랬죠 참. 음... 그래도 그 정도면 진형을 약간 변형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정성있는 화력조로 활약할 수 있을겁니다."

나 때문에 오래 호흡맞춰 연습한게 무위로 돌아가는  아니냐고 걱정하니 원래 팀원이 새로 들어오면 이능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전술을 다시 짜맞추는게 정상이라고 한다.
특히 S급 판정을 받은 이능은 3팀 내에  하나뿐이니 날 중심으로 맞추는게 당연하다나.

"팀장님, 우리팀도 이제 거대괴수 레이드에 도전할 수 있는겁니까? 제가 강릉 훈련소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지호씨가 글쎄 미발견 거대괴수의 실드를 단숨에 중화시켰다지 뭡니까."

"그 괴수가 특별히 방어력이 약한 놈이었을수도 있지. 그래도 뭐... 좀 익숙해지면 3팀만으로도 단독 레이드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가르쳐주세요."

입단식 겸 환영파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는동안 앞으로 함께 일할 3팀의 선배들뿐만 아니라 오닉스 헌터즈의 주요 임원들과도 안면을 익혔는데, 하나같이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누가 보면 생짜 신입이 아니라 업계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경력직으로 모셔온줄 알겠네.
S급의 이능력자 하나만 더 있어도 원정을 나갈 수 있는 범위 자체가 달라진다더니.

도수가 낮고 달콤한 샴페인, 손으로 집어먹기 편한 한 입 크기의 요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쏟아지는 기대어린 시선들까지.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한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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