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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1부 (13/110)



〈 13화 〉1부

오닉스 헌터즈의 헌터들은 원정 중이 아니라 지구에서 정비를 하는 중에는 17시가 땡 치자마자 칼같이 퇴근을 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다들 자기 시간을 희생하고 나섰다.
솔직히 이능력 정밀측정하러 간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따라와서 도와줄게 있을리는 없고, 그냥  그래도 최고등급을 받은 신입이 뭔가 더 있다니까 궁금해서 따라온 것 같다.
강경호 팀장은 운전을 굉장히 거칠게 하는 편이었다.
음, 만약 내가 운전하다 길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육두문자가 나올  같긴 해.
말투부터 행동거지까지 온화하고 부드럽더니만 알고보니 안에 난폭한 괴수가 숨어있었나.


“걱정 마. 이 차는 특수제작된거라서 기름은 많이 먹어도 굉장히 튼튼하다고. 아마 덤프트럭과 정면에서 들이받아도 차는 구겨질지언정 안에 든 사람은 멀쩡할걸?”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팀장님. 그럼 이 차랑 박을 다른 차들은요?”


“박긴 뭘 박아?  운전 잘 한다고.”


확실히 운전실력이 범상치 않기는 하더라.
이리저리 묘기에 가깝게 차선을 바꿔 추월해대면서도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매끄럽게 달렸는데, 신체강화 능력자는 평소에도 이능 발현의 잔향이 남기라도 하는건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아니, 설마 운전하면서 신체를 계속 강화해놓고 있었던건 아니겠지?
속도제한을 가뿐히 무시하는 거친 운전에 힘입어 겨우 이십여분만에 도착한 신일그룹의 이능력 연구소는 꽤나 훌륭한 훈련장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땅값이 싼 교외라 그런지 오닉스 헌터즈의 사옥에 딸린 훈련장보다 면적은 오히려 넓다.


“어서오세요 팀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 분이 최지호 헌터님?”

“예 소장님. 아, 인사해 지호야. 우리 연구소 박 소장님. 앞으로 신세질 일이 많을거야.”

“신세는요 무슨. 저희가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반갑습니다, 연구소장 박지원입니다.”

연구소장이라고 하기에 흰 가운을 걸친 박사님을 생각했는데 그냥 업무에 찌든 회사원같다.
악수를 하면서도 묘하게 신뢰성이 느껴지지 않는 외양에 떨떠름한 기색을 감춘다.
원래 이런건가, 내가 전현생 통틀어 언제 대기업 연구소같은데를 와봤어야 알지.
그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우리를 시설 내부로 이끌었다.

“자, 이쪽입니다. 측정 전에 일단 시청각 자료부터 보시죠. 오늘 오전 훈련을 찍은 동영상입니다. 보시면 윈드 블레이드가 더미를 공격하는 순간 최지호 헌터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빨라지는걸 발견할 수 있을겁니다. 물론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요. 저희는...”


내게 초점을 맞추고 집중적으로 따라붙으며 찍은 동영상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아무리 등급이 다르다고 해도 나만 특별대우를 했을리는 없는데 훈련할때마다 팀원들 전원을 이렇게 찍어서 보관하려면 드는 품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팀원들과 훈련할때는 몰랐는데 나 진짜 어리버리한게 초보 티가 확 나는구나.
아니 뭐, 훈련에 합류한건 첫 날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격증 따려고 입소한 국립훈련소에서 제법 땀을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현직 헌팅팀에는 부족한 것 같다.

“소장님, 저희는 무식하게 몸으로 뛰는 놈들이라 그런거 들어도 잘 모릅니다. 하하하.”


“아이고, 제가 너무 흥분해서 쓸데없이 시간을 끌었군요.”

잔뜩 신이 나서는 극히 짧은 시간동안 반짝하고 마는 반응속도와 이동속도의 상승폭을 계산하기 위해 동영상 분석과정에서 어떤 계산식을 썼고 어떤 기술을 이용했는지 알아듣지 못할 전문적 용어를 남발해대며 설명하는 연구소장을 강 팀장이 쓰게 웃으며 제지한다.
표정에 살짝 짜증이 어려있는걸 보고 소장도 우리가 지루해하는걸 느꼈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줄이고  더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졸지에 함께 무식한 놈이 되어버린 나도 떨떠름한 뒷맛을 뒤로 하고 그 뒤를 따랐다.

“자, 이걸 손목에 끼우고, 그래요. 이 패치는 등에 붙여줄게요. 불편하진 않나요?”

“예, 별 느낌 없습니다.”

“훈련영상을 보니까 고속으로 기동하면서 이능을 발현할  있던데.”

“그건 그런데... 아직 달리면서 쏘는건 명중을 장담하기 힘들어서요. 숙련도 문제죠. 팀장님은 그냥 많이 쏴보면 의외로 금방 해결될거라고 하시던데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근육처럼 이능력도 자주 사용할수록 출력도 강해지고 같은 동작을 수행할 때 정밀도도 높아지거든요. 근육에 기억이 새겨지는 것처럼 뇌에도 담당 영역이 있을거라는 추측이 정설인데, 뇌파측정으로도 아직 발견하질 못했어요. 그런 점에서...”


“네, 잘 알겠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저걸 맞추면 된다는거죠?”


측정실에 마련된 표적은 아까 본사 훈련장에서 쓰던 더미보다 훨씬 더 크니까 격하게 움직이면서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오전 훈련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절차대로 회피기동을 하며 에테르 칼날을 뻗어 표적에 날리니 십여미터 조금 넘는 거리에 있던 더미가 말끔하게 싹둑 잘려나간다.
그리고, 아, 이번엔 나도 분명히 느꼈다.
예전과 달리 미리 말을 듣고 의식하고 있어서 체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옆으로 몸을 날리는 동작이 훨씬 더 빨라진게 확실해.

“오, 의심할 여지가 없군요. 원래의 움직임에 비하면 약 50퍼센트 정도인가. 최지호 헌터, 지금부터는 고무공을 쏠겁니다. 맞아도 아프진 않을테니 너무 겁먹지 마시구요.”

투명한 플라스틱 벽 바깥에서 연구소장이 기뻐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하체근력에 추가적인 보정이 들어간다니, 역시 이동속도 옵션이 맞았나.
50퍼센트라는 말에 어느 정도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명중시 이동속도 50퍼센트 증가, 그래, 그러고보니 스킬에 그런 옵션이 붙어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약간이나마 주변이 느리게 보이는거, 이건 반응속도 내지는 과집중의 현상인데...
그 게임에 그런 옵션도 있었나?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런 종류의 스탯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문득, 스킬 그 자체가 아닌 게임 시작 전에 선택한 특성에 생각이 미친다.
주 특성으로 든 마력결집은 위력에서 S급 판정을 받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보조특성으로는 뭘 들었더라?
주 특성과 달리 인게임에서 효과가 확 체감될 정도는 아니니까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그건 게임 얘기고, 그게 현실이 된 이상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는 와중에도 옆에서 쏘아진 고무공을 피하며 표적을 하나  베어냈다.

“오, 훌륭합니다. 오늘 낮에 한 훈련영상과는 반응자체가 다르군요. 겨우 몇 시간만에 눈에 띄게 반사신경이 발달했을리는 없으니 이것도 이능의 발현공능 중 하나일텐데...”

그 말을 듣고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보조특성 중 가장 무난한 타격시 10초간 공격속도 증가였나, 그런 특성을 선택했던 것 같다.
상승폭은 작았지만 중첩도 열 번인가 열 두 번인가 되는거라 제법 쓸만했지.
아쉽게도 에테르 칼날의 쿨타임에는 공격속도 계수가 달려있지 않았지만 꼭 풀중첩까지 쌓지 않더라도 5,6중첩만 유지하면 평타캔슬이 훨씬 수월해져서 애용하던 특성이다.
어, 그러니까 공격속도가 실제로 현실에서는 이런 식으로 구현된다는거지?

“나쁘지 않은걸.”

아주 짧은 순간이어서 크게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특성인 마력결집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걸로 미루어보아 보조특성도 처음 각성보조제를 맞고 이능력을 각성했을 때부터 이미 돌아가고 있었을텐데 말이지.
실습나가서 신나게 괴수를 썰면서도 몰랐다는건 내가 그만큼 둔하다는 뜻 밖에는 안 된다.
아마 매일 하는 훈련까지 일일이 영상자료로 저장해 연구소에서 철저히 분석하는 대기업 소속의 헌팅팀에 들어온게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모르고 있었겠지.

“소장님, 그래서 이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요? 지호 쟤가 이능의 성장성 하나는 어마어마한 녀석이거든요. 혹시 증가폭이 뛰어나다면 장차 전위로 활약할 여지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성장치라는 것도 그렇게 일괄적으로  정해지는게 아니라서요. 어쩌면 아무리 발전시켜도 지금 이 상태에서 조금도 변화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바깥에서 강경호 팀장과 연구소장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면서 내심 기겁했다.
아니, 움직임 좀 빨라진다고 전위에 서라니?
물론 말하는걸 들어보니 당장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보이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무섭다.
환영검사가 원래 주력기인 에테르 칼날 사이에 평타 섞어서 모션캔슬도 하고 스택 효율도 높이고 다른 위력적인 스킬들 쿨타임감소도 시키고 그러면서 스타일리쉬하게 싸우는 중근거리 캐릭터인건 맞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 이야기지 나보고 그걸 하라면 단연 사양이다.
퍼억, 잠시  눈을 파는 사이에 고무공이 내 몸에 틀어박힌다.
부드럽고 물렁한 재질이라 속도에 비해 별로 아프진 않았지만 맞고 나니 결심이 더 굳어진다.
만약 빠른 몸놀림을 살려 근거리에서 활약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면 바로 사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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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첫 날, 연구소에서는 정확한 증가수치를 파악하겠답시고 거의 한 시간이나 나를 붙들고 못 살게 굴었지만 하루 정도야 뭐, 충분히 참아줄 수 있었다.
몸에 이상한 패치같은거 붙이고 데이터를 잔뜩 수집했으니 당분간은 귀찮게 하지 않겠지.
팀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연구소에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분석을 하려고 나서는건 드문 일이라는데, 역시 최고등급 이능력자다보니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거 아니겠냐며 부러워하더라.
 일주일 정도 진행된 훈련에서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를 보였다.


“빠르게 배우는구만. 지호 넌 재능도 재능이지만 뭐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근성이 있어. 고위 이능력자들 중에는 이런걸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야.”

“에이,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받는 돈이 얼만데.”

“그 당연한걸 안 하는 놈들이 은근히 있거든. 예컨대 우리만 해도 1팀의...”

“기정아, 거기까지. 거  막내한테 좋은거 가르치네.”


“크흠. 말이 그렇다는거죠.”


누군지는 몰라도 1팀의 어느 고등급 이능력자 중에 불성실한 사람이 하나 있는 모양이다.
동료의 뒷이야기를 하다가 걸린 꼴이 된 윤기정이 머리를 긁으며 난처하게 웃는다.
같은 팀 소속이 아니라고 해도 오닉스 헌터즈의 동료인건 변함없으니까.
그나저나 건성인 태도로 임하는게 일선 대원들에게까지 이렇게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데도 함부로 터치를 못 하는걸 보면 1팀의  고위각성자의 이능력이 대단하긴 대단한가보지?
당장은  그렇고,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집니다.”

“어? 팀장님, 아직 15시가 채 안 됐는데요?”


“내일 게이트를 통과하잖아. 무리하면 안 되지. 다들 푹 쉬고 컨디션조절 잘 해서 만반의 태세로 내일 일공시까지 집합해 주세요. 다들 숙지하셨겠지만 이번 원정은 나리분지 게이트에 연결된 전진기지의 서문으로 나가서 요정의 숲까지 찍고 협곡 쪽으로 해서 돌아올겁니다. 일정은 3주로 잡고 있지만 혹시 모르니 한 달 정도는 비워두셔야 합니다. 아, 우진씨 아직 동의서 안 냈어요. 오늘 저녁까지 내야 하는데, 귀찮다고 작성 안 하면 진짜로 놓고 갈겁니다. 개인물품은 20킬로그램씩 허용되는데, 음, 되도록 가져가지 마세요. 쓸데없이 무겁습니다.”


어제 윤기정이 말해준 바로는 먹을거리며 옷가지며 가져갈게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하던데.
강경호 팀장은 ‘필요한건 다 충분히 마련되니까 짐을 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여기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라도 선임의 충고에 따라 다양하게 준비를 해갈 셈이었다.
실습때도 느낀거지만 전진기지의 물가는 솔직히 너무 비싸.
집에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는 ‘입사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원정을 가냐’며 기함하셨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시고는 이것저것 짐을 한보따리나 장만하시더라.

“지호야, 팀장님이 믿을 수 있는 리더인건 맞는데, 그래도 저 말은 믿지 마라. 장갑차에 실어가는건 죄다 전투식량이랑 비상식량인데, 처음에나 먹을만하지 하루이틀만 먹어도 물려서 도저히 먹을수가 없어. 너도 들어는 봤지? 요샌 헌터들 나오는 예능도 많잖아.”


“들어만 봤을까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보급이 충실하다는 강경호 팀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도 미리 공지된 보급물자 목록을 쭉 훑어봤는데, 최고급의 침구류부터 시작해서 식량과 응급의약품  대기업 소속의 헌팅팀에 걸맞는 지원이었으니까.
하지만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이건 영락없이 군 시절에 외부로 장기훈련 나가는 꼴이다.
그래, 무슨 캠핑가는 것도 아니고 보급이 아무리 충실해도 마냥 즐거울순 없겠지.

오닉스 헌터즈에 입단한지 겨우 한 주만에, 나는 생애 두 번째로 게이트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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