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1부
옆으로 홱 던져진 나는 윤기정의 표정에 공포가 어리고 하늘에는 그림자가 어리는걸 알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에테르 쉬프트를 사용했다.
목적지는 날 던진 윤기정의 바로 위.
내가 순간이동하여 그를 내려덮치는 것과 동시에 거대괴수의 집채만한 꼬리가 우리를 덮친다.
3초간 유지되는 에테르 쉬프트의 부가기능 방어막을 믿고 벌인 짓이었다.
만약 이 방어막이 단지 내게 오는 물리적 충격만을 막아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윤기정은 내 눈앞에서 내 몸과 땅 사이에 짓눌리며 으스러져 피떡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운동에너지 자체를 고스란히 흡수하는 방식이라면, 우리는 둘 다 무사하리라.
어차피 내가 오지 않았다면 죽었을 상황이니 밑져야 본전인 도박이었다.
콰아앙, 방어막이 반응하는 소리를 주변의 땅을 내리치는 소리가 완전히 덮어버린다.
“됐다! 성공이야. 휴우.”
그리고 나는 내 아래에서 윤기정이 공포에 질린 얼굴 그대로 멀쩡히 살아있는걸 확인했다.
괴수의 겉가죽은 에테르 쉬프트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우리 두 사람의 부피만큼 쑤욱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찢어지거나 타격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비율로 따져보면 사람이 손가락으로 비비탄 총알을 누른 꼴이니까 아프진 않겠지.
어어? 잠깐.
왜 이렇게 오래 끄는거야, 얼른 다시 들지 않고서.
저 뱀가죽의 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3초가 지나버리면 압사해버릴텐데.
나는 다급하게 에테르 칼날을 위로 쏘아보냈다.
스윽, 자연스럽게 칼날이 지나간 자리가 벌어지면서 후두둑 붉은 피가 쏟아져내린다.
키이익거리는 기성과 함께 거대한 동체가 다시 하늘로 솟구치고 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으아악! 아악!”
“소리 좀 지르지 마요. 얼른 뒤로 빠지... 억!”
윤기정은 뒤늦게 상황이 실감났는지 계집애같은 비명을 질러대며 내 귀를 괴롭힌다.
그 와중에도 방어막이 사라져 위험에 노출된 날 낚아채 몸을 빼는게 프로페셔널하긴 했다.
반복된 훈련으로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게 이런건가.
그러나 윤기정의 재빠른 반응이 무색하게도 괴수는 우리를 재차 내리치지 않았다.
나와 윤기정을 내리쳤던 꼬리 부분이 거의 절반 이상 잘려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고통에 찬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거의 코앞에서부터 최대 사거리까지 칼날을 쭉 뻗었으니까 제아무리 동체가 크고 굵다고 해도 충분히 깊게 칼이 들어갔으리라.
“남김없이 퍼부어! 수호야, 관통 철갑탄으로 쏘고 있지? 얼마나 남았어?”
-예순발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저거 대체 뭡니까? 대가리에만 서른발 넘게 박았는데.
“그럼 철갑탄 아끼고 일반탄으로 바꿔서 쏴라. 내가 가만보니까 지금 겉가죽 뚫고 안에 박히는건 문제가 안 되는데, 그냥 워낙 덩치가 커서 버티는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유탄도 효과적일텐데, 조금만 더 가까이 유인 안 됩니까?
“애들 다 죽어 인마. 온다! 산개해!”
고통에 몸부림치던 괴수가 몹시 화가 났는지 이번엔 꼬리가 아니라 더 굵직한 목 아래의 상부몸통을 이용해 우리를 깔아뭉개기 위해 내리찍어온다.
공중에 몸을 일으키는 예비동작 덕분에 미리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윤기정의 손에 들려 이리저리 현란하게 기동하는 것도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단숨에 사선으로 십여미터 이상을 질주해 공격범위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다시 에테르 블레이드를 날려 이번에도 제법 깊게 상처를 낸다.
“젠장. 이거 왠지 귀찮게 알짱거리는 모기가 된 기분인데.”
“사이즈로 보면 벌레나 다름없죠. 그래도 타격은 분명 주고 있습니다. 잡을 수 있어요.”
“그나마 움직임이 단순해서 다행이야. 공격패턴이 더 있었다면 분명 희생자가 나왔을거야.”
오토 샷건으로 슬러그탄을 쏟아내며 동시에 이능까지 발현해 화염구를 던지던 박우진이 어느정도 여유를 되찾았는지 혀를 차면서 숨을 내쉰다.
물론 공격조장인 그도 탱커에게 안겨 기동하고 있었으므로 썩 모양새가 멋지진 않았다.
슬러그 탄은 가죽을 뚫기는 뚫었으되 근육 안으로 깊게 들어가진 못하고 살갗 근처에서 멈추는지 꿈틀댈때마다 후두둑 떨어졌으며 화염구는 단지 가죽을 그을리는 정도였다.
차라리 그를 한 팔로 단단히 안고 있는 탱커가 한 손으로 잘도 반동을 제어하며 쏘고 있는 자동소총의 5.56밀리 탄환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그 때 요란한 총성 사이로 퍼엉, 퍼엉하는 강렬한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높이 치솟아있던 대가리 근처에서 유탄이 터지고 있었다.
아니, 유탄발사기까지 가져왔던거야?
일반적으로 헌터들이 소지하고 다니는 화력의 범주를 한참 넘었는데?
거대괴수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는지 공격을 포기한 채 뒤로 몸을 뺀다.
“놈이 도망친다! 막아!”
“인마, 저걸 어떻게 막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한 발이라도 더 박아넣어!”
전투의 흥분에 취했는지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공격조원에게 박우진이 면박을 주며 소리친다.
그의 말대로 저 놈이 전투를 그만두고 도망가려고 하면 우리가 막을 방법이 없다.
전투가 유리하게 전개된건 어디까지나 녀석의 공격패턴이 극도로 단순하고 잘 훈련된 우리 실더들이 날랜 몸놀림으로 회피기동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속도를 따라잡을수는 없는 것이다.
뱀이 움직이는 모양새로 한번 파동을 치면 수십미터를 가볍게 움직일텐데, 아무리 신체강화이능을 가진 각성자라도 사람이 그걸 무슨 수로 따라잡겠어?
온 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방향을 백팔십도 전환하는데 성공한 거대괴수는 길쭉한 동체를 좌우로 꿈틀거리면서 뒤로 도망간다.
그 서슬에 휘말린 숲이 뭉개지면서 이리저리 부러진 나무의 잔해가 흩날린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걸 보니 멀쩡하진 않은 것 같지만 사냥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녀석이 사거리를 벗어났는지 한참 뒤쪽에서 쾅쾅 울리던 총성도 멎었다.
큼직한 권총을 쏘아대던 강경호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인원파악을 시도한다.
“후우. 다들 상태보고해. 부상자 있나?”
실더들의 훌륭한 마크 덕분에 다행히 전사자나 중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페어리 잭도 다치지 않은건 좀 놀랍네.
놈에게 직접 깔리지 않더라도 사방으로 튀던 나무와 흙더미, 바위파편 등에 얻어맞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 나올 수 있었는데 운도 적잖이 따랐던 것 같다.
전투 후 재정비를 하는동안 박우진이 강경호 팀장에게 다가가 건의한다.
“팀장님, 추적해서 숨통을 끊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겠지. 하지만 서두를건 없어. 충분히 정비하고, 여차하면 되돌아가서 화력을 증강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자고. 미발견 괴수 중에서도 저렇게 거대한 놈은 상정 외였으니까.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것만 해도 하늘이 도운거야.”
“시간을 주면 놈이 회복할뿐 아니라 방어막도 재생될텐데... 아니, 방어막이야 지호가 단숨에 깎아낼 수 있다는걸 확인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이 좋은 기회라는건 틀림없습니다.”
“음, 지금 우리가 가진 화력으로 확실히 끝낼 수 있다고 봐?”
“승산은 충분합니다. 끝까지 싸웠으면 분명 잡아낼 수 있었을겁니다.”
박우진은 ‘괴수의 덩치 대비 피를 쏟은 양을 고려했을 때 이미 탈진 직전일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곧바로 추적에 나설 경우 부상으로 지쳐 쓰러진 놈을 가볍게 잡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잠깐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동의하고 팀을 재정비한다.
무전으로 연락을 받은 한수호가 후퇴선을 거두고 장갑차와 함께 합류했다.
간단한 설명을 들은 한수호도 곧바로 박우진과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의 의견을 들은 강경호 팀장은 이젠 완전히 확신을 가진 목소리로 추적을 지시한다.
역시 늘 침착하고 냉정한 한수호에 대한 신뢰가 굳건한 것 같다.
“지금은 기도비닉을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까 최대 속도로 움직여. 공격조원들은 모두 승차한다. 조금 비좁겠지만 잠깐 참아. 실더들은 고생 좀 하자. 알겠지?”
힘든 전투를 끝내자마자 다시 추적을 한다는 말에도 다들 기운차게 대답한다.
너무 위험한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차에 올랐다.
놈을 따라잡을수는 없으니까 끊임없이 뒤쫓으며 지쳐 쓰러지거나 인내심이 다해 다시 덤벼들기를 기다렸다가 숨통을 끊는다는 계획은 알겠지만 변수가 너무 많아.
움직이는 것 자체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놈이니까 놓칠 염려는 없지만 놈에게 최소한의 지능이 있다면 자기가 유리한 지형으로 유인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움직임이 제한되는 좁은 곳에서 싸운다면 희생이 안 나오기 힘들텐데.
괴수가 제 몸뚱이로 휩쓸고 지나간 길을 따라 장갑차가 우렁찬 엔진음을 내며 달렸다.
차 안에서 불안감을 토로하니 박우진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일축한다.
“염려마. 지호 넌 앞쪽에서 싸웠으니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 힘들었지? 괴물같은 놈이지만 우리 화력이 아주 안 통한것도 아니었어.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었지. 본능적으로 도주를 하고 있을뿐 그런 생각을 할만한 여유는 없을거야.”
글쎄, 내가 보기엔 불리함을 느끼고 도망가긴 헀어도 치명상은 입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더 반박하지 않고 수긍했다.
최악의 경우에도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가슴 한 구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꼼짝없이 압사당할 위기에 처한 윤기정을 구해냈을 때부터 들었던 확신이다.
에테르 쉬프트의 방어막은 사실상 3초간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해준다.
쿨타임이 15초니까 빡빡하게 돌린다는 가정 하에 위험에 노출되는건 불과 12초 가량.
심지어 에테르 칼날로 뭔가를 베어낼때마다 쿨타임은 또 1초씩 줄어든다.
위험한 낌새를 느꼈을 때 반사적으로 에테르 쉬프트를 발동한다는 전제 하에 내 한 몸조차 건사하기 힘들 정도의 위기상황은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묵묵히 앉아서 전에 받은 자동권총을 점검하고 있는데 차가 멈추더니 하차명령이 떨어진다.
“젠장. 이건 안 좋은데. 모두 하차해. 상의가 좀 필요할 것 같다.”
무슨 일인가 해서 차에서 내리니 우리 앞에는 직경이 십수미터는 될법한 커다란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의 잔해를 보건대 의심할 여지없이 여긴 놈의 소굴이다.
강 팀장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동굴은 충분히 넓었지만 아까 봤던 괴수의 크기를 떠올려보면 이 안에서 개활지에서 했던 것만큼의 회피기동을 하는건 불가능하다.
한수호가 냉정한 어조로 딱 잘라서 말했다.
“포기합시다. 여길 기어들어가는건 자살행위예요. 안에서 공격받으면 꼼짝없이 당합니다.”
“끄응... 이럴 가능성도 염두에는 뒀지만...”
“여기까지 오는동안 흔적으로 남은 피의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니 아까처럼 위협적인 공격을 하기는 어려울겁니다. 어쩌면 이미 죽어있을수도 있고.”
“너무 희망적인 예측이잖습니까? 안전하게 갑시다. 경로는 다 기록되었으니까 복귀했다가 다시 오더라도 길을 헤맬 걱정은 없어요. 보고하고 군인들 도움도 받으면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게 맞는데 말이지...”
강 팀장이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 나는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서서 건의했다.
“팀장님, 들어갈 수 있는데까지는 들어가보죠. 저 혼자 들어가면 되잖습니까? 은신 켜고 들어가다가 들킨 것 같으면 바로 순간이동으로 빠져나오면...”
에테르 쉬프트의 최대이동거리가 무려 40미터에 달하는데다 신체강화능력자인 윤기정도 단숨에 십수미터를 달릴 수 있으니 그를 입구 근처에 대기시키고 내가 혼자서 들어간다고 하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60여미터 이상을 안전하게 들어가볼 수 있는 셈이다.
강경호 팀장도 내 계획이 그럴듯하다고 여겼는지 솔깃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위험을 즐기는 성격이 못 되었지만 실수만 없다면 충분히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까지 겁을 먹고 발을 빼기엔 오닉스 3팀에 적잖은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입사 후 아직 첫 월급도 받지 못헀지만 함께 여러 차례의 전투를 치러서 그런지 전우애라고 부를만한 감정이 움트고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자. 지호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빠져나와. 놈이 우리의 추적을 눈치채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확률도 적지 않으니까.”
“걱정마십쇼. 아, 제가 미끼가 되어 끌어낼 수 있다면 끌어낼테니 준비 단단히 해두세요.”
동굴 안은 어둑해서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부디 안전거리 안에 놈의 몸뚱이가 닿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팀원들이 입구를 부채꼴로 포위하는 진형을 완성한 것을 확인하고 에테르 폼을 활성화한채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윤기정이 야광스틱을 몇 미터마다 하나씩 떨어뜨리며 따라오다가 자기가 판단하기에 한 호흡에 달려나갈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고 여겼는지 멈춰서서 몸을 긴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