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1부 (36/110)



〈 36화 〉1부

하루종일 사격장에서 권총을 쏘아대다가 점심을 먹은 배가 다 꺼질때쯤  시간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샤워장에서 나오자마자 퇴근카드를 찍는 생활이 사나흘 정도 이어졌다.
진작에  전술훈련이 재개되었어야 하지만 강경호 팀장과 최종수 보급관을 위시해 3팀의 수뇌진들이 무척 바빠서 일정이 계속 뒤로 미루어졌던 탓이다.
닷새째 되는 아침에, 강경호 팀장은 막 출근한 팀원들을 회의실에 소집했다.

“다음 원정에 대해 브리핑하겠다.”


“원정이요? 벌써 나갑니까? 게이트를 넘은지 아직 일주일도 채  됐는데... 한번도 아니고 바로 직전에도 일주일 쉬고 짧은 텀으로 연이어 원정을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 때는 페어리들의 요청이 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또 이러시는건 좀...”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이번에도 사정이 있어서 그래. 대신 이번 원정에서도 기본소득 세  보장에다 사냥으로 얻은 소득의 20퍼센트를 분배한다.”


강경호 팀장의 말에도 전에 없이 빠른 페이스로 게이트를 넘게  팀원들의 표정은 영 밝지 않은 가운데 나 혼자서 의욕에 가득 차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의 후원을 받는 소규모 헌팅팀들 중에서는 과장 좀 섞어 지구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외계행성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고 말할 정도로 짧은 텀으로 잦은 원정을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닉스 헌터즈는 최고의 자원들만 모아놓은 회사였으니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다.
일선 헌터들 중에 일부는 ‘외계행성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 비하면 대기업 소속 헌터들은 온실 속 화초들이다’라는 헛소리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지만 충분한 휴식과 재정비는 기량 유지에서 혹독한 훈련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다.
  가까이 지구에서 완벽히 재충전과 재정비를 마치고 철저한 계획 하에 원정을 나가니 비록 횟수는 적어도 일단   나간 원정에서 얻는 소득은 비교가  되는 것이다.
회사가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괜히 더 많은 연봉을 받는게 아니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입사한 직후 우리 3팀의 원정 세 번은 그 일정이 지나치게 가혹했다.
강경호 팀장은 입맛을 다시다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본 전진기지 남부 3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협곡 알지? 왜, 몇 년 전부터 협곡 안의 분지에 금광이 있을거란 소식으로 떠들썩했잖아.”


저게  소리인가 해서 고개를 갸웃하니 옆에 앉아있던 채명진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준다.
난 갓 헌터자격을 딴 신입이라 잘 모르지만, 업계에선 꽤 유명했던 이야기라고 한다.
협곡을 따라 흐르는 작은 강에서 사금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횡재를  일본헌터들의 일화.
금은 지구에서나 귀하지 우주에서는 의외로 흔한 원소라고 하지만, 외계로 진출은 했으되 게이트로 연결된 행성 하나에만 몇 군데 거점을 마련하고 힘겹게 개척해나가는 상황에서 금은 여전히 최고의 환금성을 지닌 금속이었다.
당연히 최초 발견한 헌팅 팀의 후원사에서 대대적으로 투자금을 모아 협곡을 개척하고 험준한 바위산으로 둘러쌓인 분지 안을 탐사할 계획을 세웠다.
한국에도 작게 뉴스가 났었고 일본에선 굉장한 호재라며 관련된 몇몇 회사들이 십수번 연속 상한가를 쳤을 정도로 경제신문 전면에 며칠 동안이나 대문짝만하게 났던 뉴스란다.
그러고보니 중3때인가 고1때인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얼핏 봤던  같기도 하고.
우리하곤 상관없는 옆나라 소식인데다 좋아하기 힘든 미운 놈들이 대박을 맞았다고 하니 다들 배가 아파서 투덜대는 댓글이 가득했던 것 같은데, 오래지않아 가볍게 잊어버렸었지.

“그게 벌써 3년, 아니 거의 4년 전 일이니까... 아, 혹시 금맥을 발견했답니까? 하긴, 무려 삼년이나 돈을 들이부어 탐색을 했는데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재수가 없었던걸로 봐야...”


“아니, 그 반대야. 반년 전에 협곡을 지키던 특수부 소속 공무원들이 떼죽음을 당했지.”

너무나 여상스럽게 하는 설명에 다들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강 팀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미 확보된 지역에 주둔하던 사람들이 뜬금없이 죽긴 왜 죽어?
없던 괴수가 새로이 출몰해서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작정하고 진지를 만들어 눌러앉은 헌터들을 당해내지는 못 했을텐데... 잠깐, 그보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떼죽음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한둘 죽어나간게 아닌  같은데, 왜 뉴스에는 안 나왔지?
일본 이능관리성의 특수부라고 하면 걔들 헌법 때문에 공무원이라고 표현할 뿐 사실상 우리로 치면 각성자 특수군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설명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아무리 각성자 특수군이 비밀주의로 악명이 높다고 해도 두자릿수 단위로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개개인의 신원까진 몰라도 적어도 사건 자체를 덮는건 불가능하다.


“그걸 반년이나 숨겨요? 그게 됩니까?”

“일본이잖아. 의회도 사실상 일당체제고, 언론자유도 그냥 없다고 볼 수준이고. 아무튼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이후 협곡을 재확보하는데는 성공했는데, 분지 안에 괴수 군락이 있다더군.”

금광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이젠 괴수 군락지까지 있으니, 거기가 엘도라도구만.
헌터들에게 괴수는 싸워 없애야할 적이라기보다는 사냥감에 가깝다.
대규모로 무리를 지어 사는 괴수는 경우에 따라 심각한 위협이 되지만 그건 몰랐을 때의 이야기고, 알고 있다면 충분히 준비를 해서 얼마든지 대처할  있는 것이다.
협곡에 주둔하다가 큰 피해를  그 쪽 공무원들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어쩌면 일본 정부나 관련 기업들에서는 오히려 좋아하고 있을걸?

“근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

“우리가 모레 게이트를 넘어서 원정갈 곳이 남부 협곡이니까.”


 수만 있다면 당연히 자국 내의 헌터들로만 처리하고 과실도 독점하고 싶겠지만, 헌터들을 대규모로 동원한다는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당장 한국만 해도 이번에 새로 발견한 페어리들과의 교류에 큰 기대를 걸고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확대하기로 했지만 특수군 한 개 대대를 교대로 파견하고 일선 수혜기업인 오닉스 헌터즈에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는 정도가 끝이잖아.
전진기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개척을 해놨으니 이권지역 내에서의 괴수 분포도 조절이라던가 향후 개척계획에 있어서의 기업들간 역할분배라던가, 신경쓸 일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일본도 평소 과장을 좀, 아니 많이 섞어서 십만 헌터가 어쩌고 떠들어대지만  단위는커녕 수백 단위의 각성자 병력을 한군데 모아서 투입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닐걸.


“분지 안을 마저 탐색해서 금광을 찾는게 목적이라면 사냥해서 전리품을 얻어오는게 아니라 아예 섬멸작전을 펼칠텐데... 설마 우리보고 군락지 섬멸작전에 참가하라는겁니까?”


“그럴 리가. 그런 위험한 일을 시키면 할거냐?”

“사표쓰죠 뭐. 큭큭큭, 돈도 적잖이 모아놨겠다,  놀다가 다른데 가면 그만아닙니까.”


“애초에 그런 의뢰를 어떤 회사가 미쳤다고 지원하겠냐. 그렇다고 핵심 이권을 외국 회사들한테 나눠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잡무를 맡길 수밖에.”

오닉스 헌터즈 정도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영향력을 지닌 기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할 것을 바랄수는 없다.
실력있는 헌터라면 어디서  하든 제  몸 건사하지 못하겠는가.
픽 웃은 강경호 팀장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본에선 자국 헌터들을 동원해 분지 내부 섬멸에 나서는동안 협곡을 중심으로 한 전진기지 남부에서 발생할 헌터 공백을 외국 회사들에게 의뢰하여 해결하려는 계획을 세웠단다.
협곡에 임시 거점을 만들어놓고 그를 중심으로 약 열흘간 주변 평야를 순찰하는 임무였다.

“정상적인 페이스로 사냥을 하고 사냥소득도 전부 우리가 가진다. 회사에서 따로 의뢰금과 기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지만 그런 계약까진 우리가  소관이 아니고.”


“이게 왜 이렇게 급하게 우리팀으로 넘어온겁니까? 미리 말이나 해주지.”


“회사에서 페어리 마을에 새로 세울 거점에다가 그야말로 팬티까지 벗어서 부어넣고 있거든.”


사장과 이사진이 마음을 단단히 먹은  오닉스 헌터즈의 열 한 개 팀 중에서 이미 계약이 된 지역에 교대근무하는 두 개 팀과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우리 3팀을 제외한 여덟 개 팀이 투입되어 요정의 숲을 안전지대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했다.
일선 헌터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보너스 나간 것만 합해도 웬만한 빌딩하나 세울거란다.
그 와중에 이 사태가 있기 얼마전에 계약해놓은 협곡의 건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 정부와 정식으로 체결한 계약이니 위약금 물고 빼면 회사 신용에 치명타다.
급하게 가용 현장인력을 체크하다보니 여유가 없어서 재정비중이던 3팀에 돌리게 되었던 것.


“사정이 그러니 어쩔수 없네요. 그리고 이야기 들어보니 어차피 일본애들 아니었어도 오래지 않아서 요정의 숲 쪽에 다시 투입됐겠네 뭐.”


윤기정이 입맛을 다시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
공을 세웠다고 쉬게 두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지금 간단히 이야기들은 것만으로만 판단해도  하나를 그리 오래 놀려둘 정도로 사정이 여유로운  같지는 않으니까.
음, 집에 가서 또 게이트 너머로 원정나간다고 하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데.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소계약기간이 있으니 당장 사표쓰라고는  하시겠지만 회사의 인상이 안 좋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왜 그걸 내가 걱정하고 있느냐하면, 난 오닉스 3팀이 제법 마음에 들거든.
기본적으로 신입을 받지 않고 중견 헌터들만 스카웃해서 운영하는 회사라서 그런지 자잘한 복지도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팀원들의 수준이 높아서 답답할 일이 전혀 없었다.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넉넉잡아 보름은 나가있는다고 봐야해. 다들 준비해라.”

“예. 아, 이번엔 열병기 화력을 좀 넉넉하게 챙겨가죠.”

“글쎄, 저번과 같은 일이 또 있을  같지는 않지만... 뭐, 그러자구. 지호가 있으니 전에는 우리 팀 단독으로는 손을  대던 수준의 괴수들도 노려볼  있을테니까.”

그렇게 높은 수준의 팀 안에서 신입인 내 입지가 의외로 확고하다는 것 또한 매력 포인트다.
나는 믿음직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팀장에게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역시 이 팀에서 계속 커리어를 쌓아나가는게 최고의 선택일  같다.
충분히 경력이 쌓이면 언젠가는 나만의 팀을 꾸릴수도 있겠지만, 미래는 모르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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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업계에 첫 발을 내디딘 몸이니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외국의 게이트에 와보는 것은 처음이다.
홋카이도 게이트는 울릉도의 게이트 못지않게 삼엄한 경비 속에 운영되고 있었다.
울릉도에서 게이트를 넘어 한국 전진기지로 간 후 남쪽으로 이동해도 되겠지만 시간이 촉박한 탓에 우리는 일본 정부의 허가를 얻어 홋카이도 게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다보면 일정을 늦출만한 변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일본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많네요?”

“울릉도 게이트를 드나드는건 대부분 한국 헌터들이었지? 사실 세계적으로 보면 울릉도 게이트와 연결된 지역은 이렇다할 메리트가 있는 지역이 아니야. 유니콘의 부산물이 안정적으로 돈이 된다고 하지만 가치가 크게 높다고  정도는 아니고, 또 워낙 변두리라서.”

“그럼 세금혜택같은걸로 유인을 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외계 행성으로 넘어간 후에 어디로 이동하든 그건 통제할 방법이 없을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거지. 국내 헌터들 만으로도 전진기지를 유지하고 느리게나마 주변 개척을 해나갈  있으니까. 사실 다른 나라도 정책은 비슷비슷해.”

어느 나라든 자연스럽게 자국 헌터를 위주로 정책을 결정하고 외국 헌터들을 차별한다.
 홋카이도 게이트를 외국 헌터들이 비교적 많이 이용하는건 그걸 다 감수하고서라도 이동거리를 줄이는게 이득이 될만큼 입지가 좋다는거겠지.
안 그래도 꿀이 넘치는 땅에 게이트가 연결된 놈들인데 이젠 황금까지 캐내겠네.
지구에도 금광은 많지만 일본 정도 되는 부유한 나라의 정부가 호들갑을 떨면서 대규모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걸 보니 기대감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협곡을 따라 흐르는 강에서 발견되었다는 사금이 그만큼 많고 질도 좋았나보지?


우리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안내를 받아 게이트로 향했다.


“오닉스 헌터즈에서 나온 분들이 맞습니까?”

“예. 강경호 팀장입니다. 오닉스 3팀 전원 이상없이 도착했습니다.”

한국어가 능숙하지만 억양에서 일본인 티가 나는 통역이 와서 강 팀장과 명함을 교환했다.
그는 명함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지갑에 넣었지만 별로 눈여겨보는 기색은 아니었다.
 밑에 피로가 매달린걸 보니 격무에 시달리는 흔한 행정관료의 모습이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더니 들고 온 현황판에다 무언가를 체크하고 우리를 통과시킨다.
그 모습에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의뢰를 받고 온 팀이 우리가 다가 아닌가보죠?”

“그야 당연하지.”


명확한 답변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닌데 윤기정이 킥 웃으면서 자신있게 대꾸한다.
뭐지? 따로 들은게 있나?
이번 브리핑 때는 안 졸았으니까 놓친 정보는 없을텐데...


“남부 평원은 엄청나게 광활한 지역이야. 협곡을 중심으로 순찰활동을 하려면 한 두 개 팀으로는 어림도 없어. 아직 들은건 없지만 아마 최소한 십여개 이상의 팀이 합동작전을 하게 될걸? 친구들한테 슬쩍 물어보니까 아는 놈이 없는걸로 봐선 한국에서 온건 우리가 전부인 것 같지만.”

오, 그럼 꽤나 글로벌한 구성의 합동팀이 되겠는걸.
혹시 이번 기회에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될지도 모르겠다.
임무야 뭐,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전진기지를 거점으로 삼아 사냥을 다니는건 그냥 일상적인 업무에 가깝잖아.
그걸 좀 낯선 지역에서 한다고 해서 별 문제가 생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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