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1부 (69/110)



〈 69화 〉1부

거대괴수에게 접근하는데는 불과 수십여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멀었지만 어느 정도 접근하니 괴수 쪽에서도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이쪽으로 마주 달려왔기 때문에 조우하는 시간이 훨씬 더 단축된 것이다.
그런데 저 괴수, 생긴게 뭔가 익숙한데?


“쉴롭이군. 가볍게 보지 않는 것이 좋아. 최근에 새로 발견된 거대괴수인데, 게이트 전진기지 인근에서 발견되어 아주 난리가 났었다고 해. 훈련소에서 실습나온 새내기들이 습격을 당해서  일을 치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빨에 독이 있으니 조심해야 해.”


“이빨이요?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네요.”


강승호가 멘탈이 반쯤 나가버렸는지 실실 웃으면서 대꾸한다.
확실히 저 징그러운 곤충의 입에 들어가 씹히면 독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아, 어디서 봤나 싶었는데 최근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난다.
저거 내가 강릉 훈련소에서 실습나왔을 때 처음 발견해서 사냥한  괴수잖아.
 때 내가 일격에 방어막을 전부 날린 후 사방에서 총으로 화력을 퍼부어 간신히 잡았지.
아까 강승호가 피해가자고 주장했던 이유를 알겠다.
3팀 소속으로 나와 몇 번 원정을 다녔던 그도 내 공격이능의 위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익히 경험해 알고 있었겠지만 방어막을 날린다고 해서 괴수가 저절로 죽어나자빠지는건 아니니.


“좋아, 여기서 세워요. 미리 나가서 맞아야지, 잘못하면 차에 피해가 가겠네.”

“진짜 내립니까? 지금이라도 차를 돌리면 거리를 벌릴 수 있을지도...”


미련을 남기는 강승호를 일별한채 후방 도어를 열고 내리니 배기가스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솔린 엔진의 열기가 금속 차체를 뚫고 후끈하게 올라올 정도로 열심히 달린 탓이다.
전방에서는 거대거미가 여러개의 발을 바쁘게 놀리며 빠르게 기어오고 있었다.
저 녀석이 한순간만 날카로운 다리를 사방으로 휘둘러대며 난도질을 하더라도 자칫 우리 장갑차가 타격을 입고 퍼져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곧바로 환영검사의 궁극기, 에테르 필드를 펼치고 싸우기로 결심했다.
쿨다운타임이 180초로 짧지 않아 싸움마다 각을 잘 보면서 전개 타이밍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건 어디까지나 템포가 빠른 인게임에서나 그랬단 얘기고, 3분이면 뭐, 순식간이지.
아낄 필요가 전혀 없다.
다음 순간, 나는 빠르게 돌진해오는 거미 괴수를 향해 최대거리로 쉬프트했다.
나타난 곳은 녀석으로부터 약 2,30여미터 떨어진 곳.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  거리는 실시간으로 급격하게 좁혀지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생각의 속도보다 더 빠를 수는 없다.
반의 반 호흡만에 에테르 필드가 전개되었지만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한 거미괴수는 그대로 입을 벌려 촘촘하게 박힌 독니를 드러내며 내게 달려왔다.
앗 하는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고 녀석이 에테르 블레이드가 닿는 15미터 안쪽으로 들어온다.
그 속도를 생각하면  단위 안쪽으로 닿을수 있는 거리였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셀  없을만큼 많은 칼날이 거의 선이 아닌 면을 이루다시피 하면서 날아간다.
에테르 블레이드는 언제나와 같이 방어막을 마치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상쇄했다.
칼날을 수평으로 눕혀서 날리기도 하고 수직으로 세워서 날리기도 했으니 그 칼날의 벽을 향해 들이받은 거미 괴수는 작은 큐빅조각이 되어 후두둑 떨어질 수밖에.
무섭게 달려오던 관성 때문에 피와 살점이 내가 있던 자리를 덮친다.
그러나 나는 에테르 블레이드 수백, 수천여발을 날린 뒤 곧바로 에테르 필드의 쿨타임 초기화 효과를 이용해 뒤쪽으로 쉬프트했기 때문에 역겨운 체액에 몸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수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일어났다.
뒤에서 보기에는 마치 내가 앞으로 나가자마자 뒤로 돌아왔는데 잘만 달려오던 괴수가 혼자서 육편이 되어 맨 땅에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장갑차를 앞쪽으로 돌진시켜 괴수의 주의를 돌리고 나를 구출하려는 셈이었는지 엔진을 공회전시키던 강승호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쉴롭을 이렇게 간단하게... 이게 대체 무슨 이능입니까?”


“내가 말했잖냐. 순간적으로 오버드라이브를 해서 과부하를 거는 느낌이라고 하더라. 순간이동도 연이어서 하고, 공격이능같은 경우엔 아예 무한에 가깝게 난사를 해버리니 그 앞에서 무사할 괴수가 어디 있겠어. 리저드 백수십을 한꺼번에 처리했다는 말, 안 믿었지?”

“이 정도면 그냥 팀장님 혼자서 다녀도 되는거 아닙니까?”


“몰랐어? 우린 그냥 운전수 겸 짐꾼이야. 큭큭큭. 아, 지호야, 괜찮냐? 아무래도 폭주를 시키는 원리라고 하니까 몸에 부담이 많이 걸리지 않는지 걱정이 되네.”
“멀쩡해요. 바로 다시 오버 드라이브를 거는건 무리지만 조금만 쉬면 원상복구가 될겁니다. 쉴롭이라고 했죠? 이 괴수들, 처음보는게 아닙니다. 제가 강릉 훈련소 있을  실습을 나와서 처음 발견한 거대괴수가 바로  놈들이에요.”


최근에 발견되었다는건 알았지만 발견한 당사자가 나라는건 몰랐는지 둘 다 감탄한다.
역시 떡잎부터 달랐구나, 하고 중얼거리는 강승호의 얼굴에선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그나저나 쉴롭이라. 어디서 나온 이름인지는 몰라도 저 거미에겐 아까울만큼 예쁜 이름이네.
미발견 괴수의 이름은 최초 발견자가 작명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당연히 일개 훈련생도에게 그런 권한을 줄 리는 없고 아마 당시 실습조를 이끌던 교관대표나 훈련소장이 지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신규 헌터들 실습중이던 원정대에서 쉴롭을 처음 발견했다는 소리도 들었지. 그때는 어떤 헌팅팀에서 신입들 교육시키러 나왔다가 발견한줄 알았는데, 설마 진짜 훈련소 실습이었을줄은 몰랐구만. 피해자가 많지는 않았어?”


“형님,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었겠죠. 방금 보셨잖아요. 아니, 형님은 저번 휴가기간동안에 2팀하고 같이 요정의 숲에서 활동할때도 한번 봤다면서요?”

“음, 사실 이렇게 과부하를 걸어서 난사하는 활용법은 최근에 발견한거라서요. 그 때도 물론 방어막은 한 방에 날렸지만, 숨통을 끊는데 고생깨나 했죠.”

“응? 그렇게 단단한가? 내가 볼 때는 갑각이 단단하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 그 때 피니셔 역할을 맡은 훈련생이 깜빡하고 60구경을 안 챙겼어요. 그래서 소구경 개인화기로 잡는다고 생난리를 쳤는데, 운이 나빴으면 사상자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초보들이잖아요.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죠.”


“큭큭큭. 그럼 이름은 그 때 선임교관이 지은거야? 반지의 제왕 팬이었나보네. 거미 모양이니까 그럭저럭  어울리는  같기도 하고. 다만  놈들은 소설과 달리 개체수가 엄청나게 많아. 최초발견 이후로 남부초원에서 꾸준히 잡히고 있는 놈이거든.”


아, 예쁜 이름이다 싶었는데 판타지 소설에 쉴롭이란 이름의 거미가 나왔었나보다.
장갑차를 움직여 더 가까이 댄 강승호가 머리를 긁으며 쉴롭의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온전한 부분이 없어보이지만 잘 찾아보면 값어치있는 부분이 또 아주 없지는 않겠지.
그는 뭔가 바라는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장갑을 꼈다.
나는 쉴롭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으려는 윤기정의 어깨를 앞으로  밀었다.

“형, 승호형이 혼자 하면 시간 오래 걸리잖아요. 도와서 빨리 끝내고 부피대비 비싼 부분만 챙겨서 뜹시다. 아,  방금 이능 폭주시킨 것 때문에 머리가 좀 아파서 쉬고 있을게요.”


“멀쩡해 보이는데... 크흠. 알았어.”

에테르 필드 전개때문은 아니지만 머리가 지끈거린다는게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웬만하면 나도 도와주려고 했는데,  놈 저거 체액의 냄새가 여간 고약한게 아니라서.
나는 장갑차 안에 들어와서 후방 도어를 닫고 공기정화기를 켰다.
강화플라스틱으로 된 차창 밖으로 두 탱커가 부지런히 잔해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딱딱한 갑각의 파편과 끈적끈적한 체액 때문에 일하기 편한 환경은 아니겠지만 둘  신체강화능력자니까 별다른 어려움없이 정리할 수 있겠지.
그러다 파편같은거 잘못 밟아서 다치면 내가 얼마든지 치료해줄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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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 무사했던 눈알 몇 알을 포함해 갑각과 더듬이 등의 부산물과 다섯 조각으로 쪼개진 마석까지 챙겨 적재함 한켠에 넣은 두 탱커는 물을 2리터 가까이 소비했다.
나는 아무런 군소리도 하지 않았다.
생수가 중요한건 알지만 당장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싶은 저 마음도 이해가 갔으니까.
차에 타고 함께 달려야 하는데 냄새가 계속 난다면 나도  곤란하고.
식수는 아직 넉넉하니 예정대로 1팀의 베이스에 도착해서 재보급을 받는다면 문제 없겠지.
쉴롭은 무리생활을 하는 괴수가 아니라서 인근에서 다른 괴수를 마주칠 위험은 거의 없었다.
녀석의 영역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작지는 않겠지.
최근에 발견된 괴수라서 아직 생태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지만 혹시 새끼나 짝이 있고 페로몬같은걸로 죽음을 알았다고 해도 굳이 이쪽으로 복수를 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쉴롭은 지하에 살던 괴수라는게 정설이야.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괴수생태학자들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더라. 햇빛 아래에선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는거지.”

“그럼 살던대로 계속 땅 속에서 살지, 왜 기어나왔답니까? 여러모로 민폐네 정말. 남부 초원의 위험도가 전보다 훨씬 더 올라가서 원정보험료도 비싸졌어요.”


“그러게. 정직하게 말하지 말고 예정루트를 좀 허위제출할걸 그랬다. 어차피 중간에 계획이 바뀌어서 예정에 없던 루트로 돌아다니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나중에 일정 좀 틀렸다고 뭐라고 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아, 아닌가? 그래도 남쪽으로 가는건 숨기기 힘드니까...”


이번 원정 마치고 돌아가면 팀 전담 사무직을 얼른 충원해야지.
이러다가 실력있는 중견 탱커 하나가 완전히 행정보급관 마인드로 바뀌어 버리겠네.

한동안 우리는 쉴롭을 화제로 잡담을 하면서 달렸다.
괴수생태학으로 국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연구소에서 보고한 바로는 쉴롭은 지하에 살던 거미형 괴수인데, 어떤 이유에서든 서식지를 잃고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럼 저 놈들을 쫓아낼만한 다른 괴물이 땅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건가?
아니면 기후변화같은걸로 땅 속의 환경이 변해서 밀려났을지도 모르지.

“지저에 또 다른 이종족들이 살고 있는거 아냐? 페어리나 고블린, 오크들을 생각해 봐. 기술수준 자체는 원시적이지만 저마다 깜짝 놀랄만한 비수를 하나씩 감춰두고 있었잖아. 그러니 거대 거미들을 쫓아낼만한 지저인 문명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글쎄, 그건 너무 나간 이야기 아닌가요.”


“아니, 혹시 모르죠. 어쨌든 가능성은 열어둬도 나쁘지 않을 얘기잖아요. 가만있자, 그럼 쉴롭들이 출몰하는 지역을 탐사해야 하나? 놈들이 빠져나온 입구가 있을텐데.”

“어? 지호야. 난 그냥 농담으로...”


소싯적에 지구의 미스테리나 고대문명을 다룬 소설깨나 읽었는지 지저문명에 대한 상상을 신이 나서 떠들어대던 윤기정은 내가 흥미를 보이니 되려 당황한다.
하지만 아주 좋은 지적을 해줬는걸.
괴수생태를 연구하는 연구소와 달리 나는 이 세계에 대한 단서가 하나 더 있잖아.
전생에 하던 게임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수십여 종이나 되었고 그 수십여 종의 캐릭터는 저마다 배경설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지하도시에서 사는 종족 출신이  있었다.
검투사 캐릭터와 꼭 닮은 오크종족도 발견된 마당에 그 지저인들이 없으란 법도 없지.
오히려 존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아무래도 이 행성이 게임에 나온 배경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 같으니 설정처럼 수준높은 기계문명을 구가하고 있을지는 솔직히 회의적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가 이번에 도시 주변을 청소하면서 쉴롭들을 몰아냈다고 하면 대강 아귀는 맞는데...

“형이 그랬잖아, 소풍이나 다름없다고. 이번 소풍은 좀 길게 즐기는겁니다. 오케이? 승호 씨, 1팀이 사용하고 있다는 베이스까지는 얼마나 남았죠?”


“어... 아직 반나절 정도는 더 가야할겁니다. 작은 강을 끼고 있는 삼각주인데, 우리 회사만 쓰고 있는게 아니라 세 개 회사의 헌터들이 같이 쓰는 곳입니다.”

“거기 가서 재보급 마치고 하루 쉰 다음 조사해봅시다. 기정이형, 공식보고서는 몇 개월치 가져왔어요?”

“반 년치. 근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거야. 쉴롭은 어차피 최근에 처음 발견된 놈이니까. 남부초원 서식지도에 업데이트도 아직 안 된 종이잖아. 내가 지도에다 체크하고 있을게.”


논리적 비약과 터무니없는 상상이  차례나 가미된 추측이지만 나는 분명히 뭔가 있기는 있으리란 확신에 차서 즐겁게 웃었다.
크으, 내 팀을 꾸려서 나오길  했단 말이야.
3팀에 그대로 있었으면 강경호 팀장이 미쳤다고 이런 의견을 따라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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