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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1부 (76/110)



〈 76화 〉1부

이걸 수리라고 불러도 될지조차 애매한 임시조치를 마치고 호수 밖으로 나온 우리는 즉시 기지로 돌아가 게이트 기지로의 복귀를 서두르기로 했다.
중간에 쉴롭을 찾아서 한번쯤 실험해 보기는 해야겠지만 방어막은 정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게임에서처럼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은 없을지 몰라도 빠르게 정상화가 되겠지.
두어번의 전투를 치르고 부산물도 내버려둔채 달린 우리는 이내 전진기지에 도착했다.
김영찬 소령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부사관을 지목해 전달을 지시한다.

“박 상사님, 지금 즉시 인원들 집합시켜주세요. 바로 복귀할겁니다.”

“예? 아, 예, 알겠습니다.”

급히 담배를 눌러 끄고 달려들어간지 불과 십여분만에 출발준비가 끝났다.
와, 이 아저씨들 정예는 정예구나.
그저께 밤부터 해서 무력한 모습만 봐서 미처 몰랐는데 그리 허술한 사람들이 아니야.
기지에 있는 물자로 연료를 보충하면서 강승호가 마지막으로 김영찬 소령에게 소리쳐 묻는다.

“김 소령님, 진짜 안 탈겁니까?”


“걸어서 가겠습니다. 저희 인원이 다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좁게 붙어앉으면   가까이 탈  있을텐데... 뭐, 좋을대로 하시죠.”

부상자들만이라도 태워야 하는게 정상이겠지만 다행히 그들의 상태는 모두 멀쩡했다.
좀 크게 다쳤다 싶은 사람은 전부 천사의 손길을 받아 더할나위 없이 건강해졌고, 나머지도 만으로 이틀 가까이를 경계와 잡무만 하면서 잘 먹고  쉬었으니까.
계급순으로 잘라서 몇 명만 편하게 앉아서 가기도 좀 어색하겠지.

행군은 순조로웠고, 예상 외로 상당히 빨랐다.
그야 차량만으로 마음껏 가속페달을 밟으며 기동할때와 비교할 정도는 당연히 못 되었지만 어림잡아 시속 십 킬로미터 가까이는 충분히 나오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짐을 최대한 가볍게 꾸렸다고 해도 도보행군으로 이런 속도가 나올 수 있나?
운전을 하는 강승호도 혀를 내두르면서 감탄했다.
민간 헌터들 같으면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걸어서  정도 속도로 급속행군을 하라고 하면 우선 욕부터 나올텐데, 군말없이 묵묵히 걷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해치를 열고 경계석에 올라앉아있던 윤기정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정지를 외친다.


“쉴롭이다. 거리는  사백? 아니, 사백 오십 정도. 아직 이쪽을 눈치는 못 챘고, 한 마리야. 아무래도 식사 중인 것 같은데? 왜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는건지 모르겠네.”


“형, 저 놈들 거대괴수예요. 무리를 짓는게 이상한거죠.”

“아, 그런가? 음, 잠깐만. 잘못 봤다. 식사 중이 아니라 포장 중이었네. 고치로 둘둘 말...”

그는 갑자기 말을 뚝 끊고 쌍안경의 배율을 재조정하며 고개를 길게 쭉 뺐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도 차 밖으로 나가서 그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저 멀리서 쉴롭이 흰 거미줄을 뿜어 먹이를 칭칭 감고 있는게 보였다.
주변에는 포장이 완료된 비슷한 크기의 고치가 대여섯개나 보인다.
허, 거미처럼 생겼다 했더니 생태마저도 그냥 거민데?
저 녀석들은 첫 발견 이래 여러번 헌터들과 조우해서 전투를 벌이긴 했지만 아직 사는 소굴이 발견된 적은 없었기에 생태에 대한 연구는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저렇게 거미처럼 먹이를 고치로 만들어 저장하거나 운반하는 모습은 적어도 공식적으로 보고되기로는 아직까지 발견된 일이 없었다.


“진짜 거미였네. 이거 장갑차 블랙박스에 찍혔겠죠? 괴수 생태학자들이 좋아하겠네.”

“저거 사람이다.”


“응?”


“넌 못 봤나본데, 마지막으로 작업하고 있는 저거, 거미줄이 감기기 전에 분명 사람이었어. 살아있는  같지는 않은데, 저 놈들이 사람을 먹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본능적인 혐오감이 확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작에 짐작하고 있던 사실을 갖고 이제 와서 화날 이유는 없지.
저 놈들이 그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습격했던게 잡아먹으려고 그런게 아니면 뭐였겠어.
하지만 막상 눈 앞에서 목격하니 막연히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나는 당장 차에서 내려 달려가려다가 멈칫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침 억제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실험을 해볼 좋은 기회라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김 소령님,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쉴롭의 방어막은 예전의 정상적인 수치대로 약화되어 있을겁니다. 그런데 제 공격이능은 위력이 너무 강해서 차이점을 비교하기 어렵거든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저희 팀만으로 사냥해 보겠습니다.”

“사상자가 나올  같으면 곧바로 신호 주십시오. 즉시 개입해서 끝내겠습니다.”

안 그래도 오는 길에  많이 죽어나갔다는데, 여기서 더 인명피해가 나와선 곤란하겠지.
김영찬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휘하 팀원들의 진형을 전진배치했다.
일단 신분은 군인이지만 특수군이 사용하는 전술도 민간 헌터들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방어계열이나 신체강화 능력을 각성한 탱커들이 방패로 괴수의 공격을 막아내며 밀어붙여 행동을 제한하고 그 사이에 공격조가 이능을 쏟아부어 방어막을 깎아나간다.
완전히 상쇄되면 피니셔가 최소 60구경 이상의 대구경 총으로 마무리.
즉, 실더가 괴수의 공격을 전혀 제어할 수 없거나 딜러가 적당한 시간 내에 방어막을 상쇄할 수 없다면 숙련도와는 무관하게 사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영찬 소령이 이끄는 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높은 훈련도를 짐작케 했지만 세자릿수의 헌터들이 희생된 참사의 주역인 쉴롭을 상대하면서 무척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탱커들이 성공적으로 타격을 분산하여 받으며 별로 영리한 축은 못 되는 쉴롭을 거의 제자리에 묶어두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쉽게 낙관하지 못했다.


“아직인가? 혹시 아직도 단단해서 못 뚫는거면...”


“화력 투사한지 뭐 얼마나 됐다고 그래? 조급하게 굴지 말고 인내심을 가져. 이상현상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저건 거대괴수야. 원래 단단한 놈이라고.”

“저 놈 뒷다리 조심해! 방패로 흘려받아야지, 아차하는 사이에 당한다!”


공격조가 쉴새없이 화력을 투사하는걸 지켜보면서 나는 여차하면 튀어나가 전투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전투 개시 후 십여분만에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날아간 화염이 쉴롭의 몸통에 부딪혀 퍼지고 녀석이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던 것이다.
방어막이 전부 상쇄된 것을 눈치챈 김영찬 소령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피니셔는 큼지막한 총기를 겨누고 실더들은 재빨리 진형을 좌우로 벌리며 사로를 비운다.
일련의 흐름이 무척 자연스럽고 능숙했다.
곧 크고 웅장한 총성이 울린다.
총성이라기보다는 거의 포성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탄환이 거미의 외피를 헤집는다.
방어막이 상쇄된 후 단 몇 초만에 쉴롭은 곤죽이 되어 체액을 사방으로 뿌리며 주저앉았다.

“성능 확실하구만. 역시 60구경이야. 좀 많이 쏜 감은 있지만.”


“그러게요. 두어발째에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아무리 확실하게 하는게 좋다지만 5초 가까이 풀오토로 쭉 당길 정도는 아니었죠, 솔직히.”

“놔둬요. 저 놈의 거미괴수 때문에 그동안 다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 혹시 부산물이 상하는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러고보니 쉴롭의 외피와 갑각이 꽤 비싸다고...”


“어차피 챙길 공간도 없는데요 뭘. 적재함에 실린 짐, 다 메고 행군하실겁니까?”


“아이고, 그건 무리죠. 하하하.”

굳이 하려면   것도 없겠지만 그 원망을 들을 자신이 없는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탄띠를 어깨에 비스듬히 둘러메고 빈 총 무게만 무려 10킬로그램이나 되는 대구경 기관총을 한바탕 신나게 긁어댄 피니셔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총을 내려놓았다.
김영찬 소령의 말마따나 그동안 쌓인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확 풀린 듯 개운한 표정이었다.
차에서 훌쩍 뛰어내린 윤기정이 다가가서 부서진 시체를 뒤적이더니 마석을 꺼내 챙긴다.
아무도 그를 제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사냥은 군인 아저씨들이 한거니까 나중에 적당히 얼마쯤 찔러줘야겠네.
마석값이야 꾸준히 떨어지고 있지만 그럭저럭 짭짤한 가외소득은 되겠지.


 후로도 우리는 두 번의 전투를  거치며 확신을 굳힐  있었다.
쉴롭의 방어막은 강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원래도 거대괴수였던만큼 그리 만만한 상대라고는 할  없었지만 숙련된 헌터들이라면 고생은 좀 할지언정 피해없이 잡아낼  있는 평범한 괴수가 된 것이다.
놈들은 자신의 방어막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증언에 의하면 방어막이 강화되어 도저히 잡기 힘든 괴물이었을때와 비교해서 공격성이나 행동양상이 전혀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고 했으니까.
애초에 자기네 방어막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겠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자연스럽게 영역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먹잇감을 찾아 영역을 넓혔다면 북쪽에 위치한 게이트 기지에도 참사가 닥쳤을지도 모른다.


“다 왔습니다. 저 언덕만 넘으면 게이트 기지가 보일겁니다.”


“휴우, 제대로 된 잠자리에서 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노곤하군.”

“인마, 마음 편히 쉬려면 아직 일이 한참 남았지. 작전보고서 쓰고 불려가서 면담도 해야할텐데,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질문이 한두가지가 아닐거다. 벌써 고생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

“창민이 그 녀석, 이번 작전 끝나고 결혼한다고 했는데.”


“우울한 얘기 꺼내지 마라. 특수군이 목숨 내놓고 일하는거 하루이틀이냐, 새삼스레.”


열어놓은  바깥으로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야기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깼다.
아니, 유서쓰고 오는 작전 직전에 결혼약속을 하고 온 친구가 있어?
축의금 굳었다며 씁쓸하게 웃는걸 보니 오는 길에 쉴롭에게 당한 모양인데,  안타깝네.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어 살피니 저 멀리 여느때와 같은 모습의 게이트 기지가 보인다.
운전을 하던 강승호는 그새 무전기의 주파수를 맞추고 통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정을 대폭 앞당겨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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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군 아저씨들이 복귀신고 및 임무보고를 하러 들어간 사이에 우리 오닉스 7팀은 기지관리관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아 게이트 통과 전 행정절차를 빠르게 마쳤다.
그리고 게이트를 통과해 지구로 돌아가자마자 울릉도까지 나와있던 오닉스 헌터즈의 전택영 사장과 회사 임원진들이 연락을 받고 달려나와 우리를 맞는다.
그 사이에는 반가운 얼굴, 3팀의 강경호 팀장도 보인다.
1팀이 전멸하는 대형사고가 터진데다 7팀도 사실상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을테니 대책강구를 위해 여기까지 나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태에 대해 저 사람들이 현장에 나온다고 해서 딱히  할 수 있었던건 아니지만 원래 조직의 일이라는게 그렇게 돌아가는 법이 아니겠는가.
일 터지면 높은 사람들 와서 뭐라도 하는 척을 하고 그래야지.


“무사생환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혹시 괜찮다면 피로를 풀기 전에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지만 보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요.”


전택영 사장의 얼굴은 완전히 검은 빛으로 죽어있었다.
회사의 최정예 1팀이 통째로 증발했으니 아무리 천재지변에 가까운 불가항력적 사고였다고 해도 장기 원정을 결정 혹은 허가했던 사장의 책임론이 불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 있는 임원들 중 상당수가 계약해지되거나 다른 계열사로 전출될지도 모르겠다.
이만한 참사는 게이트 개척 초창기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한 손에 꼽거든.
치하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장 다음으로 입단식때 한번 보고 좀처럼 얼굴보기 힘들던 무슨 본부장인가 하는 머리 벗겨진 임원이 나서서 내 의견을 물었다.


“지금 게이트 안으로 원정을 나가있던 모든 팀을 긴급복귀시켰습니다. 3팀과 2팀의 다음 원정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구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사태가 얼마나 가겠습니까?”

“아, 그러고보니 아직 못 들으셨겠군요. 이미 해결됐습니다.”

“예? 어, 잠시만요. 지금 말하는 ‘사태’라는건...”


“특정 괴수의 방어막이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강화되어 사실상 사냥이 불가능해진 일을 말씀하시는거 아닙니까?”


그들이 내 의견을 구하면서도 정작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은 명백했다.
아직 원인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날 바라보는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하지.
옆에서 빙글거리던 윤기정이 둑을 터뜨리듯 참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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