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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화 〉1부 (96/110)



〈 96화 〉1부

유례없는 대규모 유적의 발견과 동시에 인간과 외견상 차이를 전혀 찾을  없으며 무려 현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새로운 이종족의 발견.
피엠들의 의뢰를 받아 나선 탐험에서 얻은 이 놀라운 성과는 즉시 상부로 보고되었다.
여기서 상부란 물론 미 연방정부를 의미했다.
애초에 여기  것부터가 오닉스와 한국정부가 테러음모 사건에서 관리소홀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미 정부의 지명의뢰를 받아들이도록 내게 종용했기 때문이니까.
음, 생각해보니 국정원에서 약속했던 보상으론 좀 부족한  같기도 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고 훨씬  대단한 성과를 냈잖아.


“라크 씨를 비롯한 구조된 외계인들은 게이트 통과를 거부했습니다.”


연방 게이트 관리국에서 나왔다는 행정관이 골치아프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들을 지구로 데려가 정밀조사를 하고 싶었나보다.
음, 무산된거니까 굳이 따질 필요는 없지만 별로 좋은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는걸.
설마 한두명쯤 골라서 해부를 해보려고 했다거나 한건 아니겠지?

“뭔가 종교적인 이유가 섞여있는  같아서 타협점을 찾는걸 포기했죠. 모든 연구는 이곳에서 진행될겁니다. 플로리다 기지는 아무래도 보안상 제약이 많거든요.”

어제 오전부터 하루종일 공병대가 와서 길을 닦더니 오늘은 트럭들이 쉴새없이 들어온다.
이건 단순히 보이는 것보다 더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식생이 그리 풍부하지 않은 황량한 지역이라 한국이 요정의 숲에 전진기지를 세울때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이능력자들이 손을 보탤 필요는 없었겠지만 어쨌든 호위는 필요했을거 아냐?
 가지 다행이라면 가장 가까운 게이트가 플로리다 게이트였다는 것.
공교롭게도 플로리다 해상 게이트는 수익성이 별로 높지 않은 고원지대와 연결되어 있어서 민간 헌터들보다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헌터들이 주로 드나드는 게이트였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대규모 인원이 추가투입되더라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 위험이 낮았다.

“그나저나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통역이 원활한건 좋은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다들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라크 씨의 풀네임인 엘 크라인은 동양식 이름이라기엔 어색한데, 그의 외양은 동양계에 가깝고... 또 가문의 이름을 개인 이름 앞에 배치하는 것도 굳이 분류하자면 일단 동양쪽 풍습 아닙니까.”

“저희도 놀랐죠.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한국하곤 전혀 관계가 없던걸요?”


“동부어라고 했으니 단순히 몇몇 소수 부족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통용되는 언어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거 헌터 자격증 시험에 한국어 능력시험도 포함해야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런 얘기가 나와요.”


우연찮게 얻어걸린 의문의 국가브랜드 상승에 윤기정은 얼떨떨한 와중에도 좋아하는 기색이었지만 만약  과감하고 비약적인 가설이 맞다면 이 세계 자체가 한국인 개발자 혹은 스토리작가가 창조한 세계일테니 언어같은 사소한 문제는 자랑할 거리도 못 될지도 모른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통 속의  이야기에 가까운 증명불가능한 가설이니 어디 가서 떠들  있는 소리도 아니고 혼자서 더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수도 없는 문제지만, 근원을 탐구하는 것과 별개로 이 가설을 전제하여 시도해볼 일은 은근히 많다.
예컨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아이템 이름에 대해 물어보는 일처럼 말이지.

“라크 씨와 독대를 요청하셨죠?”


“아, 네. 구조했을땐 워낙 정신이 없어가지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굳이 독대를 하실 필요는 없을겁니다. 구조된 그, ‘소환사’들은 투쟁의 협곡을  상태로 복구할 사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 시설을 유지 관리하는게 그들의 종교적 사명인 것 같아요. 저희는 그들을 보호하고 협조를 구할뿐 통제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유롭게 찾아가서 만나도 상관없다는거지?
어째 너무 착하게들 구는 것 같은데.
그 소환사들한테 미국 시민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인권같은걸 철저하게 챙겨주다니.
그렇다고  발견이 널리 알려져서 기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음, 그야 함부로 굴었다가 미운털이 박히는 것보다 잘 해주고 협조를 얻는게 훨씬 낫긴 낫겠지만 솔직히 조급하게 빠른 성과를 원할지도 모른다고 여겼거든.

“뉴욕에선 투쟁의 협곡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무제한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워싱턴에서도 즉각 허가했죠. 사실 대출로 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했습니다만,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무상지원으로...”

뉴욕은 관리국, 워싱턴은 백악관인가? 아니면 의회?
내가 미국 공무원도 아니고 저렇게 은어를 섞어가면서 말하면 어쩌자는거야.
아마도 이것이 저 아저씨 공직인생에서 자기가 주관하는 가장 임팩트있고 거대한 프로젝트일테니 흥분한데다 뭐든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건 이해하지만 말이야.


“그,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도 되겠습니까? 여기, 주변 정찰활동 보고섭니다.”


“크흠. 이거 바쁘신 분들한테 제가 너무 말이 많았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정밀탐사를 해볼 가치는 충분하겠지만 일단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바위산에 황무지예요.  이런 곳에 중요 시설을 건설했는지 모르겠어요.”

“저 시설이 건설되었을 당시엔 기후와 지형이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르죠. 연대측정이 어느 정도로 정확히 가능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몇 백년 단위가 아닐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 이 토큰을 가져가세요. 기지 내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 놨습니다.”

“오,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침 복귀하자마자 우리 팀원들이 뭘 좀 사먹는다며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처음 받은 의뢰가 완수된걸 확인받고서 무려 40퍼센트에 달하는 추가비용을 받고 하루 반나절 정도 실시한 주변 정찰은 예상대로 미션이라기보다는 그냥 피크닉에 가까웠다.
연락을 받고 합류했던 강승호의 표현에 의하면, 그냥 그랜드 캐니언 관광을 한 셈 치겠단다.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장관을  받고 보는거니까.
거대한 바위산과 그 사이의 황량한 협곡, 맑은 하늘이 이루는 풍경은 꽤나 볼만했지.

담당관에게 정찰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온 나는 물어물어 식당을 찾아갔다.
그새 가건물을 올리고 그럴듯한 시설을 갖춰놓았더라.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던 윤기정과 강승호, 하비에르가 날 반긴다.


“어떻게 됐습니까? 혹시 이제 돌아가는겁니까?”

“돌아가긴. 의뢰는 끝났다고 쳐도 지구로 복귀하는건 팀장인 내 마음이지. 왜, 승호형은 빨리 집에 가고 싶어? 그럼 보내줄 수 있는데.”


“와, 우리 팀장님  진짜 치사하게 한다. 기정형님한테는 안 그러시면서.”

“큭큭큭. 인마. 거기서  또  끌어들여? 내가 언제 우리 팀장님한테 선 넘는거 본적 있냐? 지호야, 복귀를 늦춘다면 역시 투쟁의 협곡이 재건되는걸 보고 가려고 하는거지? 우리가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생각보다 진척속도가 빠른 것 같더라.”


“예, 맞아요. 한번 돌아가면 외국 팀한테는 공개 안 하고 싶어할 것 같으니까 이번 기회에 어떤건지 눈에 다 담아가야죠. 그 소환사라는 양반한테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오닉스 7팀이 단순한 외국 팀은 아니죠. 미합중국은 여러분의 공로를 잊지 않을겁니다.”


한국어로 오가는 대화를 들으면서 더듬더듬 알아듣는지 약간의 버퍼링을 겪던 하비에르가 씹던 햄버거를 꿀꺽 삼키고 어디 공익광고에나 나올법한 멘트로 끼어든다.

“식사 끝나면 차량 정비하고 탄약이랑 식량 채워놔요. 혹시 또 여기서 바로 원정을 더 나갈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하비에르는 그거  먹었으면 나랑 좀 같이 갑시다.”

소환사들은 한국어를 하니까 상관없지만 피엠들과 대화를 하려면 그의 통역이 필요했다.
내 호출에 하비에르는 반 컵 정도 남은 김 빠진 콜라를 단숨에 꿀꺽꿀꺽 넘기고 일어난다.

피엠들은 자기네 마을에 사람을 보내 소식만 전하고 거의 대부분이 그대로 여기 남았다.
그 덩치들이 소환사들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라크의 당당하고 기품있는 태도에서도 짐작했지만 소환사들이 귀족 대접을 받는 모양이지?
대부분의 피엠들에게 투쟁의 협곡이나 소환사같은 단어는 옛날 신화에나 나오는 막연한 개념이겠지만 그들 사이엔 무려 당시를 직접 살았던 고대인들이 있잖은가.
전설 속의 자기네 선조들이 말도 안 통하는 소환사들을 더없이 깍듯하게 모시니 그들도 눈치껏 숙여야지 뭐 별다른 반응이 나올 수가 없다.
역시 종교적인 권위같은게 있나보다.
게임 설정에서도 전장을 관리하는 소환사들은 선망받는 직종이라고 들었던  같아.

“라크 님은 저 안에서 쉬고 있다고 합니다.”

협곡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피엠들과  마디를 나눈 하비에르가 여러 동의 천막들 중 가장 왼쪽에 있는 큼지막한 막사를 가리키며 내게 알렸다.
막사가 화려한걸 보니 여러 소환사들 중에서도 라크의 지위가 꽤나 높은 편이었나보다.
그러고보니 본명이 엘 크라인이라고, 무슨 명가의 도련님이라고 했지?


“고마워요. 아, 가서 피엠들을 인솔해온 그 양반 불러와줄래요?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 발음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이름이었던  같은데.”

“하하하, 저도 발음이 쉽지 않습니다. 칵투스, 아니 캭소스인가. 제대로 발음을 하려면 목을 잔뜩 긁어야 해서. 현재의 피엠들은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던데, 아무래도 먼 옛날의 고대인이라서 작명 스타일도 다른거겠죠.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하비에르를 심부름보내고 혼자서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아무도 막지 않았다.
하긴, 여기 있는 피엠과 소환사들은 모두  얼굴을 알아보겠지.
천사의 손길은  사람 한 사람 수 미터 안쪽으로 접근해 개별적으로 사용해야 했으니까.


“오, 최지호 님. 반갑습니다. 정찰 임무를 맡아 자리를 비우셨다고 들었는데, 금세 돌아오셨군요. 자, 이리로 앉으시죠. 이거 죄송합니다. 마침 식사를 하던 중이라.”

라크는 꾸밈없이 밝은 미소로 나를 환대하며 안쪽으로 이끌어 자리를 권했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미군이 가져온 통조림과 레토르트 식품들을 꺼내 도자기 접시에다 격식있게 플레이팅한 것 같았다.
음, 역시 생물학적으로 소화기관도 비스무리하고 음식문화도 공유하는건가.
플레이팅한 모양새를 보니 식문화가 유럽식인 것 같은데?

“직접 차린겁니까?”


“최지호 님과 함께 온 그 미국이란 나라에서 공양해준 음식들입니다. 무척 맛있더군요. 다른 소환사 분들도 모두 만족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육류가 포함된 것을 보고 저희들끼리 논쟁이 잠깐 있었지만,  해결되었죠. 금육의 계율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말이 많았으니까요.”


공양이라는 표현에 육식을 금지하는 계율까지 있다니, 이거 완전 승려들인데?
전생의 게임 스토리 작가가 소환사 집단을 설정하면서 모티브를 어디서 얻었는지 잘 알겠네.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나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서툴게나마 한국어를 조금씩 알아듣는 하비에르가 들으면 좀 곤란할 이야기니까 칵투슨지 캭소슨지 하는 양반을 데리러 간 그가 돌아오기 전에 질문을 다 끝내야 했다.
그리고 직설적인 질문이 무색하게도 돌아온 답변은  기대와 달랐다.


“예? 음,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이군요. 투쟁의 협곡에서 벌어지는 대리전은 그런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피가 튀고 뛰어난 전사들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덧없이 죽어나가는 광기어린 검투의 제전이죠. 스포츠처럼 즐길만한게 아닙니다.”


“그렇다기엔 신성한 의식처럼 숭배를 받는 것 같던데요...?”


“피해가 나온다고 해도 아무튼 진짜로 전면전이 발발해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스러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대소환사 티르께서는 투쟁의 협곡을 필요악이라고 규정하셨죠.”


배경이며 설정이며 모든게 다 같더라도 참가하는 대전사들의 목숨이 여럿 있는게 아니고서야 인게임 플레이와는 양상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는건가.
그는 내가 기억나는대로 주워섬기는 캐릭터 이름을 거의 알아듣지 못 했다.
딱 하나, 빛의 궁수 아스라는 이름만 알아들었는데, 그건 라크 본인이 태어나기도 전인 백수십여년 전에 투쟁의 협곡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챔피언의 이름이란다.
무려 일곱 번의 경기에서 살아남은데다 그 중 다섯 경기에선 승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고.
여덟 번째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그만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한다.


“다른 이름들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물론 그동안 협곡에 뼈를 묻은 전사들이 무수히 많으니 기록판을 복구하면 한번 찾아볼수는 있을겁니다. 아, 참고로 아스의 이름은 여기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녀는 1번 전장에서 전사했고 여긴 3번 전장이거든요.”


“투쟁의 협곡이 고유명사가 아니라 여럿 있는겁니까?”


“총  세 개가 있지요. 모두 성지로서 만국의 존중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라고 표현을 해야겠네요. 이젠 전부 시간의 흐름 아래에 묻혀버린 일이니...”

씁쓸한 표정과 서글픈 눈빛을 보니 여기선 동정을 표하며 격려를 건네야겠지.

“이렇게 후예들이 남아있으니 금방 세력을 되찾을 수 있겠죠. 여러분들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 봉인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봉인... 그렇죠. 마력의 폭주가 어째서 이런 현상을 불러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도학에 밝은 여러 소환사 분들이 연구를 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원인을   있을겁니다.”


“저도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협조하죠. 그런데 라크 님, 한번만 더 기억을 되살려주시죠. 혹시  중에 들어본 이름이 있습니까? 정령의 갑옷,  아이기스의 형상, 천사의 단지, 수호자의 맹약...”


캐릭터 이름에선 성과가 없었지만 아이템 이름 중에는 알아보는게  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별다른 순서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대로 아이템 이름을 주워섬기던 나는 라크의 눈이 동그래진 것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엘 아이기스의 형상?  이름은 대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아십니까?”

“그건 엘 가문에서 대대로 가보로 여기며 보관하는 조각상입니다. 그 조각상을 품에 지니고 있으면 마력의 순환을 돕고 피로를 회복시켜준다는 전설이 있지만 확인되진 않았죠.”


어... 이것도  예상과는 약간 다르다.
 아이기스의 형상은 마나회복과 체력회복, 광역 보호막 효과가 붙어 그럭저럭 자주 쓰이는 아이템이었지만 최종아이템치고는 가격대도 별로 비싸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자랑스럽게 내세우던걸 보면 엘이라는 가문이 고대문명에선 꽤나 세력이 있는 가문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곳에서 가보로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고?
아이템은 전투를 통해 벌어들인 골드로 제단에서 자유롭게 구매하는게 아니었어?
그럼 양 진영의 수정탑 뒤쪽에 마련된 저 제단은 뭐에 쓰는 물건이야?

“...협곡을 복구하는 작업, 어떻게 이뤄지는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최지호 님께는 뭐든 말씀드리지 못 할 이유가 없죠. 저희 모두의 생명의 은인인데요. 다만  가문의 가보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혹시 지구에서 온 여러분에 의해 발굴이 되었나요?”


이걸 어떻게 둘러대면 좋을까.
윤기정에게 했던 것처럼 머릿속에 이미지가 주입되었다고 하는 것도 납득이  될테고.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낸겁니다. 저희가 요정의 숲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는데, 거기서 한국어, 그러니까 여러분이 쓰는 동부어로 제가 방금 나열한 바와 같은 이름의 아티팩트들을 내놓으라던 괴물이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사살되었죠.”

“맙소사! 괴물이라구요? 언어가 통하는데 어찌 괴물입니까?”


“다짜고짜 공격을 해와서 그만...”


“끄응. 그건 아마도 개인시설에 등록된 골렘이었을겁니다. 마력 과부하 때문에 폭주를 한 모양이군요. 골렘이 엘 가문의 가보를 요구했다니, 어떤 성질 고약한 마법사의 장난이었을까요? 아니, 당대에 전해지던 보물들을 탐색하던 용도였을지도... 코드가 꼬였다면 충분히...”


적당히 둘러댄 말을 기반으로 열심히 추리를 하고 있는걸 보자니 내가 다 미안해진다.
요정의 숲은 여기서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이미 죽여버렸다고 했으니 확인을 할 방법도 없을 것이고, 엉뚱한 억측을 한대도  문제는 없겠지.

마침 하비에르가 피엠을 데리고 돌아왔는지 막사 바깥에서 둔중한 발걸음소리가 울린다.
라크를 재촉해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시설 복구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겠다.
이들이 투쟁의 협곡을 대체 어떤 식으로 운용했는지 알고 싶어 기다리기 힘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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