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흡혈귀가 되었다 (3/101)



〈 3화 〉흡혈귀가 되었다

 일련의 검사는 금방 끝났다.
뭐가 진행됐는지 잘 모를 정도로.
반응속도 테스트, 시력검사, 입도 벌려보고, 눈에 불빛도 비춰보고, 하여튼 그런 기타 자잘한 것들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건 역시 CT촬영과 피검사인 모양이다.

그후 연구자는 나를 내 병실로 휠체어를 옮겨주었다.
세찬이는 옆방이라는것 같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기를 몇시간.

너무 지루했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인터넷도 안된다.
Tv는 나오지만 wifi라던가 있지도 않고, 휴대폰은 신호이탈.


아아, 그리고말이다.

흡혈귀라서 그런가?
내 외모나 확인해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모양이다.

인식저해술이라던가? 특수한 방법이 아니면 사진에도 찍히지 않는다는 모양이다. 뭔데 그런 쓸데없는 스펙.
나는 지금 내 모습이 궁금하다고!


이왕이면 못생기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세찬이 날 볼때마다 똥씹은 표정을 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부모님의 원수같이 생겨서 그런거겠지?
이런 생각 하는거 약간 세찬이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생각만 하는건데  어때.


나는 심심하기도 하고, 할말도 있어서 세찬의 병실문을 두드렸다.

"야, 세찬아. 뭐하냐?"

"……TV본다."

"문좀열어봐."


"…"

녀석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곧 병실문이 열리고 잔뜩 찌뿌린 표정의 세찬이 나를 반긴다.


"왜."

"심심해서."

"네 상황에 지금 심심할 틈이 있냐?"

"근데 심심한걸 어떡해."


녀석은 대충 들어오란듯이 문을 활짝열고 침대로 비척비척 걸어가 몸을 뉘었고, 나는 매끄럽게 휠체어를 움직여 우아하게 병실에 들어갔다.


휠체어를 신나게 조작하면서 뱅글뱅글 돌고 있자, 한세찬이 내게 물었다.


"재밌냐?"

"엉, 카트라이더 같네."

녀석은 한숨을 쉬었다.
나를 석주로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역시 잘 안되는 모양이다.

아직도 내가 자기 부모의 원수로 보이나보다.
하지만 목걸이를 한 도중엔 어느정도 믿어주겠다고 했으니, 나는 최대한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겠지.


"맞다, 나 대학교 어떻게 하지? 휴학해야 되는데."


"그거, 너네 아빠가 신청하러가셨어. 아까전에."


아, 잠깐 내려갔다 온다는 게 내 휴학신청 이었나보다.
다행이다.

"음… 여기 원래 이렇게 할게 없냐? 너무 휑하지않아?"


"사냥꾼들은 다치기보다 죽는경우가 많으니까."

"…그렇게나 위험한거야? 사냥꾼은."

약간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부상률보다 사망률이 높다니?
약간, 익스트림 스포츠같은 감성인데, 윙슈트라는게 그렇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하늘에 떨어지듯이 날아다니는거랑 비슷한 일을 최소 8년이나 하면서 아직 멀쩡히 살아있었단 말이야?
아빠나 세찬이나, 아무래도 평범한 인간은 아닌모양이다.


"그래. 너희 아버지는 사실 엄청난 사냥꾼이라고. 무려 20년 넘게 살아있는 사냥꾼이니까."


"2,20년…"


20년이면 거의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사냥꾼이셨던거나 마찬가지네.
대체 어떻게 나만 몰랐지?

"직접 죽인 흡혈귀가 공식기록으로만 200이 넘어. 비공식까지 하면 어마어마할걸. 그중에 가주였던 흡혈귀는 2마리나 되지. 가주'급'이라면 더 많고."


"가주라고?"


뭐 흡혈귀한테 가문이라도 있는걸까?


"음, 뭐 흡혈귀들의 보스같은거지. 흡혈귀는 피가 진할수록 강해지니까. 가주라고 하면 보통은 한 가문중에는 가장 강한녀석이라고 할 수 있겠군."

"뭐, 조폭의 보스같은거?"

"흠,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겠다."

한세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표정이 풀어진게, 조폭 비유가 맘에 들었나보다.
웃기는 놈이다.


"그런놈을 인간의 몸으로 둘이나 치운거지. 가주를 하나라도 잡은 사냥꾼은 전세계에 5명도 안돼."


"그럼 릴리스는?"

이쯤되니  몸의 주인?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나랑 관련있는 흡혈귀도 궁금해졌다. 뭐하는 녀석이었을까?
릴리스얘기가 나오자, 한세찬은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아차, 실수한건가?

"그것은 가주라기보단……. 근본적으로 다르긴 한데, 비슷한 거다."

"으,응... 그랬구나…"


"……아직 릴리스의 킬카운트는 안셌다. 이유는, 너도알다시피."

녀석은 나를 흘깃 노려보았다.
흠칫.


"아니, 나는 김석주라니까 그러네."


"응, 그래. 김석주였지."

눈빛이 전혀 안바뀌잖아!
억울하다.


"…내가 지금 외모를 어떻게 해볼수는 없잖아."


"누가 뭐래냐?"

"음,음… 팔은어때?  괜찮아?"


나는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돌렸고, 한세찬도 나의 노력을 대충 받아주었다.

"팔은 일주일이면 나을거고, 얼굴, 목은 한달정도. 시발, 좀 적당히 때리지 그랬냐."

"큭, 그럼 너도  살살 박았어야지."


"웃지마, 덕분에 어금니 몇개 부러졌다."


"…그,그래?"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다. 젠장.


"나는 인간이라 밥도 먹어야되는데, 한동안 죽만 먹게 생겼다고 이 새끼야. 존나 심각해, 지금."


세찬이가 한 말은 장난같은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녀석이 날아가는 광경은 코메디였지만, 그 다음 사건은 다큐멘터리가 되는 것이다.

"진짜 미안! 나도 내가 그렇게 쎌줄 몰랐지!"

내가 다리만 멀쩡했어도 도게자를 박았을텐데.
과실치상이라고 해도 이빨을 조져놓은건 내가 생각해도 심하긴 했다.
확실히 그 장면 자체는 통쾌하긴 했는데…
하여튼 할말이 없다.


"…후우. 암튼 네가 자기를 '석주'라고 하더라도 흡혈귀 이기도 하니까, 그 부분은 앞으로도 조심해라. 믿어달라고 할거라면."


"응 그래. 암튼 미안. 나중에 밥이라도 사줄게."

"그래. 존나 비싼 밥으로."


비싼밥…. 돈 별로 없는데. 으, 국밥으로 봐줘. 특별히 고기추가는 봐줄테니까.

그나저나, 이제 내 신체스펙은 흡혈귀의 그것이라서 서로 한방씩 주고받으면 녀석이 많이 손해보는 것 같다.
나는 회복력이 인간이랑은 좀 많이 다른 모양이라.

신체능력을 감소시키는 목걸이를 끼고 있다지만 이런 기본스펙은 저해되지 않는 모양이고.


보통은 허벅지라고하면, 약점이다.
거길 지나는 핏줄이 되게 많으니까.
상처가나면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될 수도 있고, 영구적인 장애가 올수도 있는 부위다.
그런데 두번이나 뚫렸는데 멀쩡히 살아있고, 목걸이의 영향으로 조금 무기력한 것만 빼면 꽤나 쌩쌩한 편이다.

연구자에게 들어보니, 이것조차 은도금 대못으로 찔려서 회복력저해가 일어나서 그런거라고 하니, 일반 못으로 찔렸으면 지금쯤 두발로 방방 뛰어다녔을 거라고 한다.
뭐야, 들어보니 변한 몸 꽤나 좋잖아.
내 몸이지만 가슴은 작아도 몸매는 봐줄만해. 거울로 보진 못했지만.

"아, 집에서 게임기라도 가져올걸."

"그러게."


우리는 한동안 TV소리에 집중하고있었다.
몇시간이 지나자, 복도에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돌아온 모양이다.

"세찬아, 석주  방에있냐?"


"응, 아빠."

아빠는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한손에는 포장된 죽을, 다른손에는 휴대용 게임기가 들려있었다.

"와! 방금 게임기 가져올걸 하고 생각하고있었는데? 어떻게 알고 갖고왔어요?"


"세찬이먹을 죽 사러간김에, 아들은  갖다줘야할지 생각하다가 가져왔다. 여기가  심심하잖아."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그래.  나빠지니까 밤에 하지말…음, 흡혈귀였지. 알아서 조절해서 해."

"응."

나는 바로 게임기를 받아들고 버튼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세찬은 아빠가 가져온 죽을 먹으려고 낑낑대고 있었고.

음, 생각해보니 이녀석, 왼손잡이였다.
아빠는 죽이랑 게임기를 갖다주고 담배피러 간다며 잠깐 나가셨으니, 이 병실엔 게임중인 나랑 나때문에 다쳐서 밥도 제대로 못먹는 친구만이 있었다.
이렇게보니 계속 게임을 했다간 내가 쓰레기가 될것같다.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인식도  좋게할겸 해서 식사를 도와주는건 어떨까 해서 말했다.

"죽 다 흘리네, 이리 줘봐. 내가 먹여줄테니까."

그런데  말을 들은 세찬은 눈을 동그랗게뜨고 외쳤다.


"뭐야, 너 이새끼 김석주아니지? 지금 나한테 무슨 수작거는거냐?"

"뭐? 미친새끼야! 아니 도와준대도 지랄이야, 이놈은?"

"김석주가 이런 눈치가 있을리가 없잖아! 시발, 바른대로 말해!"

말하긴  말하란 거냐?
혹시, 욕해달란건가?


"시발, 뭐라고? 그럼 내가 평소에 눈치 밥말아먹은 쌍놈새끼였단 말이냐?"


"당연하지, 너 내가 발에 깁스했을때도 설거지 안도와줬잖아!"

"그땐 니가 설거지 담당이었고!"

"내가 폐렴으로 입원했을때도 너는 학교 친구들 병문안 음식까지 싹다 처먹었지!"

"그건 유통기한이 얼마 안남아서 아까워서 그랬고!"


봐! 다 이유가 있었잖아!
내가 눈치가 없는게 아니라니까?


"하필 내가 여자애한테 고백한다고 불러내서 분위기 잡는데, 바퀴벌레 잡혔다고 달려와 분위기 조져놓고!"


"그,그건…!미안하다……!"


확실히 마지막건  너무했다. 이새끼가 누구한테 고백한다는 상황을 상상을 안했다보니 그냥 평소대로 했을 뿐인데, 그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었다.


이게 옛날얘기를 시작하니까,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것 같다.

"쌍놈새끼가 맞는거같습니다."


음, 입이 열개라도  말이 없구나.  그랬을까 내가.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그 사건 이후로 그 여자는 고등학교 내내 세찬을 피해다녔다. 아마 녀석을 볼때마다 엄청큰 바퀴벌레가 붙은 찐득이를 들고 달려오는 내 모습을 떠올린게 아닐까.

"시발... 바퀴벌레 얘기하니까 밥 못먹겠잖아."


"미안, 근데  얘기는 니가했다?"

물론 그 원인이 나에게 있긴하지만.
결국 입밖으로 낸건 한세찬이라고!

 



"닥쳐……."


"…진짜 미안."

아무튼 우리는 침울해진 분위기속에서 함께 식어가는 죽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


다음날, 나는 아빠와 약품테스트를 받고있었다.

"자, 일단 실험용으로 추가로 피를 좀 뽑을게."


연구자는 나에게 헌혈할때 쓰는 주사기를 꽂고, 팩에 연결된 관을 정리했다.


피는  며칠 허벅지에서 왕창 흘렸는데, 그거쓰면 안되나. 아까운데.

쭉쭉 빨려가는 내 피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약간 상실감? 허무함? 같은 감정이 든다.

옛적에도, 헌혈을 해본적이 있었다.
그때엔 이런 느낌이 들진 않았는데.

음. 이게 흡혈귀의 심리인가?


연구자는 이렇게 몇분정도 있어야 하니 아빠랑 얘기나  하라고 말했다.
자기는 잠시 담배좀 피고 온다면서.
흡연자들은 틈이 나면 꼭 한번씩 피워줘야하는걸까.

아빠랑 단둘이 남는건 되게 오랜만이네.
대체 아빠랑 무슨 말을 해야하는걸까.

"아, 아빠. 사실 엄청 대단한 흡혈귀 사냥꾼이었다면서요."


"음? 세찬이가 말하든? 꽤나 믿어주나보네?"

"그런가? 아무튼,  흡혈귀 사냥꾼이 된거에요? 언제부터 그랬는데?"


아빠는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네 엄마가 널 낳고 죽었을때부터."

"아."

 젠장, 뭐야.  흐름.
우리집도 세찬이랑 다를바 없는 모양이다.
진짜 나만 몰랐던건가.
아빠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듯 하지만, 이제 나도 알아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말을 이었다.

"그거 흡혈귀때문?"


"뭐, 그렇지."

"나한테는 왜 숨겼는데?"

"위험하니까."

뻔한 대답이었다.
그야 위험하니까 그랬겠지.


나는 한숨을 쉬면서 아빠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끝났어?"

"뭐가?"


"그, 사냥꾼인가 뭔가. 이제  끝난거야?"


"…아직 흡혈귀가 전부 사라진건 아냐, 석주야."


"다 죽이거나, 아빠가 죽어야 끝나는거야?"


한동안 아빠는 말이 없으셨다.
이 무슨 직업의식이냐.


이런 위험한 일을 신나서 하는게 나는 이해할수가 없다.
방금도 내 전력이 아닌 펀치 한방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친구를 봤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세게, 조금만 더 빠르게 휘둘렀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그땐 정말 겨우 움직일  있게 돼서 아무렇게나 힘줘서 휘두른거니까.
이런 괴물들이랑 매번 전력으로 혈투를 벌였으면 몸뚱이가 성할날이 없을거다.

"아빠, 그냥 우리 평범하게 살면 안돼?"

"너부터가 흡혈귄데, 대체 어떻게 평범하게 살겠냐?"

아차, 그러네. 내가 제일 안평범하네.
최소한 사냥꾼은 인간이긴 하니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인생, 원래 한치 앞도 모르는거지."


아빠는 다시 가벼움을 가장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도 평범한 삶이라는 것 마냥.


"뭐, 사실 이제  가문은 대부분 몰락했으니, 앞으로 몇년은 목숨 오갈 일은 안할거야. 그냥 당분간 돈벌이만 하는거니, 사실상 은퇴지 은퇴."

뭐지, 아빠가 갑자기 단기 고위험 고수익 알바 하는 느낌으로 말하고있는데.

"대체 얼마나 버는데? 사냥꾼이란거."


"평범하게 한달에 순수익으로 1장은 벌지."

"처,천만원? 어쩐지, 아빠가 용돈을 좀 많이 주더라…"

"아니, 원화단위라면 1억이다."


"어,어어??"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뭐라구?

"뭘 그렇게 놀라냐, 흡혈귀의 몸뚱이는 상당히 돈이 된단다."

어? 그거 인간처럼 생긴걸 잡아서 판다는거지?
무슨 가축 도살하는것처럼 말하는데…….


"흡혈귀의 장기는 꽤나 튼튼해서 잘 처리하면 인간에게 이식할수도 있어. 상태에 따라, 부위에따라 값이 상당히 달라지지.  아버지는 깔끔하게 처리해서 직접 유통하거든, 중간에 떼어가는게 없으니 더욱 비싸게 팔수있고. 마리당 최대 오천까지 받을수도 있다. 물론, 장비와 인건비는 제외하고."

진짜 도축까지 하는거잖아! 장기밀매지 그거!
생각해보니까 한세찬 그새끼도 며칠전에 나한테 그러려던거 아냐?


"그거 불법이죠? 제발 불법이라고 해줘!"


생각해보니 이제 내가 그 흡혈귀란말야!
사냥꾼들 눈에띄면 나도 갈기갈기찢겨져서 여기저기 팔려나가는걸까?

"불법이긴하지만, 흡혈귀는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생물이니까 법으로 갈 일은 없다."


마, 말도안돼.
나, 나는 흡혈귀지만 대한민국 국민인데…….
나라가 무고한 시민을 보호해줘야지!

"아, 아빠, 나는 어떻게 되는거야? 나도 다른사냥꾼한테 잡히면 막, 막, 어……?"

"가주 흡혈귀의 몸은 아주아주 비싸니까, 그럴수도 있겠네. 그치만 이 '김중구'가 보호하는 흡혈귀를 건드릴 수 있는 사냥꾼은 일단은 없을거다."

"…"

우리 아빠는 그렇게나 대단한가?
모르겠다. 지금 머리가 자꾸 빙빙 돈다.
사냥꾼 그만하라고 하려고 했는데, 돈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을 못차리겠다.


뭐지,  사회는 썩었어. 아니 내가 썩은건가?
아,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싶어.
그냥 인간으로 되돌려줘, 쓸데없이 좋은 신체 필요 없으니까 도로 가져가 달라고….


나는 퍼뜩, 아빠가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대한민국, 돈 많으면 살만하잖아!
그래, 돈이 있으면 돼!

"아빠! 그럼 지금 모아둔 돈은 다 어디갔어?"

"장비사고 안전가옥관리하고, 시설 유지비내고, 이것저것 사다보니… 한 200만원정도 남았네."

"어? 돈 엄청 많이 번다며... 그거 다 어디로 갔는데?"


"석주야. 프레데터 미사일 한발쏘는게 얼마인지 아니?
전세계 대도시 50개에 총 300여개나 되는 안전가옥 유지비는?
흡혈귀한테 통하는 은제 무기의 가격은?
거기다 릴리스는 거의 정상급 개체였어. 나도 전력을 다했다."

"그, 그러니까, 릴리스인지 뭔지 잡으려고 있는 돈을 전부 써버렸다…"

아빠는 '뭐 그렇지'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아니란듯이 말하는데, 대체 얼마나 쓴건지 감도 안온다.

프레데터미사일? 그거 개인이  수 있는거야?


나는 집세하나도 알바해서 겨우 내는데, 전세계 대도시에 300개나 안전가옥을 꾸려놨다고?

거기에 요즘 은값이 어떤지 몰라도 아마 장난 아니겠지. 그리고 그, 무기란게 아무리 적어봤자 한두개도 아닐터다.

거기다, 나는 모르지만 이 몸. 그러니까 릴리스는 조금  흡혈귀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한몸 잡으려고 그 모든 돈과 장비를 총 동원 했다는거 아니야?

미, 미쳤어. 아빠도, 세찬도. 완전히 미쳤다고.

"석주야. 사실 돈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야. 돈도 그냥 도구일 뿐이지."


"그래…그렇구나…"

나는 그 도구가 없었는데….
나한테 그 돈이 있었으면, 분명 잘 써줬을텐데…….

"그리고, 돈이야 또 벌면 되지. 이제 150억 정도만 있으면 아빠도 깔끔하게 은퇴할수 있을거야."

"150억? 그게  필요한데?"


"사실, 돈을 좀 빌렸어. 미국쪽 사냥꾼한테."


"응?"

"그걸 갚지않으면 아마, 네 몸뚱이를 뜯어서라도 받아내려 할테니, 아빠는 좀 더 일을  수밖에 없구나."


"아,아아…"


여긴 무서운 세계다.
나는 소름이 돋아서 팔뚝을 문질렀다.


"얘기는 잘 끝났어요? 음. 피는  뽑힌거같네. 슬슬 약품테스트 시작할게."

연구자가 돌아왔다.
커다란 철제 가방을 들고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