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지옥 (19/101)



〈 19화 〉지옥

세찬이 애지중지하던 바이크의 성능은 상상이상이었다.
진짜, 인간일때 멋모르고 탔으면 바로 황천길 갔을게 분명하다.
흡혈귀가 되면서 강화된 동체시력과 반응속도가 아니면 바닥에 내 피로 만들어진 레드카펫을 깔았겠지.
내가 운전했는데도 속이 좋지 않다.

저런걸 어똫게 운전할 생각을 한거야?


몰려오는 토기를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욱, 여긴가…"

휴대폰으로 확인한 주소상으론 여기가 맞는것 같다.
도착한 곳은 짓다 만 것같은 공사장, 뼈대만 올라가있는 건물이었다.
척보면 그냥 양아치들이 담배피고, 술마시고 그럴것같은 분위기밖에 안 느껴진다.
나는 장소를 둘러보다가, 비정상적으로 놓여진 문을 발견했다.

그게  비정상적으로 보였냐면, 대체 어느 공사장이 다 짓지도 않은 건물에 문짝을 달겠냐.
 봐도 말이 안되잖아.
너무 수상해보여서 나는 곧장 문을 당겼다.

그러자, 너무나도 뜬금없이 호화로운 파티장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서로 잔을 나누고, 기다란 테이블에 놓여진 붉은 액체가 끝없이 나열되어있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주황색 조명, 촛대, 뭔지 모를 꽃병.
마치 사회적으로 높으신분들의 모임장같은 느낌이었다.


 쫄아서 황급히 문을 닫았다.
으악! 나 지금 트레이닝복인데, 저 사람들은 전부 드레스, 턱시도, 양복차림이야.
너무 눈에 띄는 복장이라 문제네.


다행히 내가 문을 열고 닫은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다.
혹시 인식저해 덕분인건가…?
아주 살짝 문을 열고 문틈으로 눈을 댄다.


자세히 보니, 단순한 파티장이 아니었다.
무슨 발표회나, 연회장같은 느낌, 연설을 위한 단상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단상위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단상의 소란스러움과는 대비되게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느긋해 보였다.

"오늘은 꽤나 늦는군요."
"사냥꾼이  곳을 알아챘다고 합니다. 아마 그것때문에 일정이 지연되는 모양이네요."
"이런,  장소가 바뀌는건가요? 가까워서 참 좋았는데."
"사냥조가 당한 모양이더라구요. 무능한것들."
"언제나 아랫것들이 문제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남자가 하는 말이 들린다.
가깝다고 해봤자  15~20미터정도 떨어져있는 곳에 있었지만.
귀를  기울여봐도 알수없는 이야기만 할뿐이었다.

사냥꾼은 세찬이를 말하는거겠지?
역시, 악마사냥꾼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나를 죽이고 싶은 거였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슥삭 했으면 됐다.
물리력 저해팔찌를 장착한 나는 이 몸의 겉보기랑 그다지 차이가 없는 정도의 힘밖에   없었으니까.

딱히 엄청난 노력이 아니더라도 나는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죽었겠지.

문 옆에는 경호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옷으로 당당히 들어갈  있을리도 없고, 그렇다고 몰래 들어갈 수도 없을것 같다.
다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칫, 어떡하지……."


나는 공사장을 원형으로 뱅글뱅글 돌다가 뭔가 발견했다.
검은 점? 아니다. 이건 액체가 떨어진 자국이다.
바닥에 달라붙어서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건…"

후각을 달콤하게 자극하는 냄새.
이건,  추측이 맞다면.
피다.
누가 피를 흘리면서 이동했나본데?
혹시 세찬이가?
나는 즉시 마치 빵조각을 떨어트리는 헨젤과 그레텔을 쫒는 들개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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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개처럼 냄새를 맡으면서 바닥을 네발로 기었다는 소리다.
아무한테도 보여주고싶은 모습은 아니군. 음…
긴 마리카락이 바닥을 쓸면서 먼지가 붙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음!
역시 다른 문이 있었다.
원래 이런 건물은 정문 말고도 후문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파티장이 있으면 거기 파티를 준비할 공간도 있기 마련이지.
그런 재료들을 정문으로 옮겨놓을 수도 없으니까 후문도 있을 수밖에.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

문을 열어보니 이번엔 무슨 지하실 같았다.
불은 켜져있지 않아서 어두웠지만 나한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광원이 없어도 충분히 사물을 구분할  있는 능력이 흡혈귀에겐 있었다.


바닥에 계속 코를 박고 혈흔을 따라가다가, 통로 끝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세찬이인가?

역시 그런건 아니었다.

"아, 제기랄.  한놈한테 몇명이 당한거지? 절반은 죽어나간것 같은데."
"몰라 시발. 미친놈인줄 알았네. 그새끼 어디 묶어놨냐?"


나는 급하게 기어서 옆 통로에 몸을 숨겼다.
세찬은 아니고, 사냥조? 아까 위층에서 듣기론 그런것 같은데.
계속 말소리에 집중하다가, 뭔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봤더니, 그것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흐이익…!"
"아."

왠 초4정도 되어보이는 꼬맹이가 있었다.
이런 지하실에  꼬맹이가 있는거지?
꼬마는 마치 괴물을 보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혹시 아까부터 날 봤나?
그러면 괴물은 아니더라도  변태같이 보이긴 했을것 같다.
부, 부끄러워.
하지만 부끄러운건 부끄러운거고, 나는 재빨리 꼬마의 입을 막고 몸을 붙잡았다.

 



자꾸 발버둥치며 벗어나려고하길래, 귀에 '쉿!'하고 말했다.
꼬마는 살짝 몸을 떨더니, 마찬가지로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음. 무서운가?
뭐, 이제 조용히 하겠지.
나는 다시 통로에 있는 녀석들의 말에 집중했다.

"…하여튼, 그 애 아직  찾았어? 미치겠네. 그 사냥꾼이 벌인 소란때문에 이게 뭔 꼴이야."
"아, 한번 더 찾아보고 못찾으면 잡은 사냥꾼이나 마저 패러 가야겠다. 생각할수록 빡치네."

혹시 세찬이 잡혀있는건가?
...들리는 말로는 멀쩡한 상태는 아닐것 같다.
빨리 구해줘야 하겠는데.

발소리와 말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게 들린다.
아. 제길, 여기 숨을데가 마땅치 않은데.
나는 둘러보고 살짝 열린 창고처럼 보이는 문에 꼬마를 붙잡은채로 들어갔다.
창고에는 나무상자가 좀 쌓여있을뿐, 마땅히 숨을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망했다.

"여기는 아까도 찾아봤잖아."
"씨끄러. 걔가 물건도 아니고 있던곳에 계속 있겠냐?"
"아, 뭐. 그렇긴하지."

아까 찾아봤으면 다른데로 가란말이야!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유디라에게 배운 비전의 인식저해를 내 품에 꼬마까지 포함해 두른다.
무의식적으로 펼친 인식저해와 의식적으로 펼치는 인식저해는  수준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같은 흡혈귀에겐 잘 통하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아무것도 없네."
"아 젠장. 어디로간거야. 진짜 좆됐네."

나는놈들이 사라지는걸 확인하고나서 한숨을 쉬었다.

"휴우…"
"읍,읍읍!"


내가 한숨을 쉬자, 꼬마가 난리를 펴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래!
나는 꼬마에게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소리지르지 않을거라면 풀어줄게."

끄덕끄덕.
조금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꼬마를 풀어주고 앉아서 눈높이를 맞췄다.

"너,  이런데 있어?"
"저, 저는 원래 여기서 자랐는데요…"
"뭐라고? 왜?"
"그, 그냥요. 어른들이  나가게 해서…"

아주 어릴때부터 납치감금을 당했다는건가?
대체 뭐 때문에? 아동학대? 인체실험? 아니면 그냥 취미?
생각보다 질이 나쁜 녀석들이었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쓰고 이런짓을…
심각한 생각을 좀 하고있었더니 꼬마가 나에게 물었다.


"저, 저 저도 죽는건가요…?"
"뭐? 네가 왜?"
"사람이… 엄청많은 사람이… 흑,흐끅…"
"사람이?"


꼬마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숨을 참으며 울음을 그치려 했지만 여전히 말은 잇지 못하고 있었다.


꼬마는 말을 하는것을 포기하고 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위험할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순순히 따랐다.
계단을 내려가자, 단단한 철문이 나타났다.
잠금장치는 따로 되어있지 않았는지, 손으로 밀자 끼이익 하는 경첩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밀렸다.
기름칠이 잘되었나보다 하고 태연히 생각하다가, 보이는 모습에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곳엔  여길 지옥이라고 불렀는지 알법한 풍경이 전시되어있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의 단내.
내가 쫒던 혈흔도 이곳에서 이어져있었던 것이다.


온갖 고문, 처형기구가 즐비하고. 그 모든 장비엔 빠짐없이 사람이 들어가있었다.
단두대, 십자가, 삼각목마, 원형톱날, 다양하고 빽빽히 들어찬 시체.

사람들은 모두 죽어있었다.

벽에는 인간의 거죽이 펼쳐져있었고, 단단해보이는 목제 테이블 위에는 해체하다가  여성의 몸통이 대충 널부러져 있었다
성별, 나이, 외형 그런건 상관이 없었다.
모두가  끔찍한 참상의 오브제가 되어서 한 구석씩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그래, 지옥.
이건 지옥이었다.


만찬장이라더니, 정말 흡혈귀에겐 뷔페나 마찬가지잖아.
단내가 머리를 쑤신다.
가축보다 못한 인간의 상태를 보며 나는 무려 '식욕'을 느끼고 있었다.
송곳니가 가렵다.
이런곳에 오래 있다간 미쳐버리고 말지도.
나는 꼬마의 눈을 가렸다.
아무리 그래도, 19금을 넘어서 29금, 아니 사람이면 그냥 보지 않는게 좋을 풍경을 이런 꼬맹이가 보게 둘수는 없을  같아서.

"일단 여기서 나가자. 나가서, 천천히 말해줘."
"흐으윽, 흐윽,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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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꼬마를 데리고 아까의 창고로 돌아왔다.
울음을 그칠때까지 차분히 기다린 후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쩌다가 그걸 본거야?"

"저, 저는, 아주 어릴때부터 제방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면서 저를 사람들이 방에서 데리고 나왔는데요. 그런데, 그, 갑자기 이,이상한 사람이 막 사람들을 죽이더니 저를 데리고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도망치다가…"

"이상한 사람이라니?"


"네, 키가 엄청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었어요."


"음, 혹시… 키가 이만하고, 어깨는 이만하고. 막 머리도 이렇게 아무렇게나 기른 사람이었어?"

"네,네! 맞아요. 그 사람이 절 데리고 나온 사람을 죽였어요!"


"그렇구나…"


100퍼센트 한세찬이다.
틀림없어.
여기 세찬이가 있는게 더욱 확실해졌다.

"그럼 그 사람은 지금 어디있는지 알고있어?"


도리도리.

그런가, 하긴 도망치던 꼬맹이가 그런걸 어떻게 알겠어.
나는 납득했다.

"그럼 네가 그사람을 본 건 어디였어?"

"제,제 방 앞에서요."

"거기가 어딘데?"

"으으윽…"




나와 꼬마는 아까 그곳에 다시 돌아왔다.
애 방앞에서 못하는 짓이 없었네.
미친거 아냐?
꼬마의 눈을 가린채,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는 신경쓰지 못했던 옷입은 시체도 보인다.
여기 시체 대부분은 나체였으니까, 아마 옷을 입은 녀석들이 세찬이 죽인 시체가 아닐까.
역시 세찬은 전문적인 살인꾼이었다.
눈으로 보니까 와닫는데.


아무튼 우린 지옥을 형상화한 그 통로를 지나 새로운 통로에 들어섰다.
지하감옥이라고 해야하나.
수없이 늘어선 철창엔 모두 나체의 사람이 들어가있었다.
그 사람들은 생기없이 전부 축 늘어져 있는걸로 보였지만.
흡혈귀가 사람을 뭐로 생각하는지 확실히 알겠다.
그냥 가축같은걸로 보는것 같다.


단순히 피만 조금 빨고 돌려 보내준다거나 하는 그런 신사적인 녀석은 적어도 이장소엔 없는 듯 하다.
왜 그렇게 세찬이 흡혈귀를 증오하는지 약간은  것도 같다.
흡혈귀는 이런 잔인한 짓을 당연하다는 듯이 할 수 있는 거니까.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공포심때문인가? 분노? 아니면 혼란? 나도 내 감정은  모르겠다.
단지, 복잡한 감정은 제치고 손이 떨렸다는 결과만이 존재했다.
이 떨림이 꼬맹이한테 불안함으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철창을 지나자, 다시 원형계단이 나왔다.
밖에서 볼때는 그냥 공사판이었는데 이게 다 뭐야.
대체 어떻게 이런걸 다 만든거지?
감탄스럽다. 어떻게 도시 한복판에 이런걸 만들 생각을 하는지.
나는 이제야 눈에서 손을 떼줬다.
눈물이  묻었네.
나는 슬쩍 꼬마의 어깨에 물기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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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가다보니, 타격음과 희미한 말소리가 들린다.
문에 달린 조그만 철창의 너머로 상황이 전해지고 있었다.

-퍽!


"…씨발! 애를 어디다 숨겼어! 빨리 말해!"
"큭, 크흐…"
"형님, 끝까지 이러는데, 그냥 정신 뒤져서 찾죠?"
"이새끼 정신간섭 대응이 너무 쎄서 못 건들여. 대체 뭐 숨길게 있다고 대가리에 얼마를 처부은거야?"
"크흐흐……."
"계속 쳐 웃기는!"

빠악-!


꼬마의 방에서는 세찬이 의자에 묶인채 두 남자에게 호되게 처맞고있었다.
어떻게 찾기는 찾았네. 그런데 어떻게하지.
물리저해 팔찌는 왠만한 완력이 아니면 벗을 수가 없다.
그 악마사냥꾼도 물리적인 힘이 부족해서 못 벗겼으니까.
그여자, 칭호에 비해서 너무 약한거 아니야?

아무튼 팔찌는 누가 벗겨주지 않으면 안되는데… 세찬은  모양이고.
나는 꼬마를 입을 막아 안고 방문으로 살금살금 숨죽여 다가갔다.

"형님 이새끼 그냥 죽여버려요. 몇시간째야."
"아, 씨. 죽이진 말랬어. 됐어, 시바. 어차피  농땡이 피우러 여기 있는 거니까."
"허, 그런거였습니까 형님?"
"그래. 이제 그만 기봐, 내가 알아서 감시할테니까."
"예, 그러죠 뭐."


 방문이 열리고 세찬을 때리던 남자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나는 즉시 '들키지 마'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인식저해를 풀가동하고 숨을 참았다.


만약 들키면 어쩌지? 혈류를 최대로 돌려서라도 팔찌를 떼어야 하나?
그런 다음 흡혈 충동은 어쩌고? 아마 그렇게 피를 쓰고나면 조금 이빨이 가려운 정도론 끝나지 않을텐데… 게다가 위층엔 여기저기 사람 피가 널려있어서, 내가 참을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겠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을 이런 변수가 많은 곳에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는 슥, 우리가 있는곳을 스쳐보더니 몸을 돌려 원형 계단을 올라갔다.
후우. 다행이다.
인식저해 짱이야. 진짜로.

나는 문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살짝 열었다.
세찬의 모습은 정말 말그대로 만신창이.

 




온몸이 시퍼렇게 되어있었다.
 오른쪽 어금니 새로한지 얼마 안됐는데, 또 해야되면 어떻게하지.
그런데 세찬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갑자기 표정이 썩어들어가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야, 뭘 보고있어? 설마, 이제 말할 생각이 든거냐?"
"푸으, 어. 말할게."
"…뭐? 진짜로?"
"니 뒤에 병신아."

나를 팔다니 한세찬!
 악마같은 놈, 아무리 내가 말을 안들었어도 그렇지!
자기 도와주러 온건데 뭐하는 짓이야!

"뒤? 그런 허접한 속임수에 넘어갈것 같냐?"
"하, 그래."

당연히 안믿지, 세찬아 너 바보냐?
그거 말이 완전 수상하잖아.
뒤 돌아보면 막 파박! 해서 제압하고 막. 그럴거같은 대사네.
내 어이없는 표정을  한세찬이 개빡쳤는지, 눈을 감았다.

"하 시팔."
"시팔은 이 새끼야아어어억?"

세찬은 의자에서 몸을 튕겨서 의자채로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마치 제자리에서 덤블링을 하는것 같았다.
팔다리를 다 묶어놨는데 어떻게 저런게 가능한거지?
 회전력으로 남자는 의자에 처박고 쓰러졌다.

"으아, 이 미친 새…"

콰득!

한세찬이 자신의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는걸 무시하고 몸을 돌려 의자 밑에 쓰러진 남자의 목을 물어뜯었다.
한순간이었다.
남자는 믿을  없다는 듯, 자신의 뒷목을 잡으려했지만, 거의 척추뼈까지 드러난 목의 상처에선 계속 피가 뿜어나왔다.
세찬이 묶여있는 의자등받이가 그의 등을 누르고 있어서 손이 닫지도 못했다.

그러고 세찬은 의자 등받이에 힘을 빼고 누워, 살점을 뱉어내며 말했다.

"퉷. 시발놈아. 왜 니가 여깄지?"
"아니, 악마사냥꾼이 니가 위험하대서. 내가 안가면 안된다잖아."
"다른 사냥꾼을 부르면 되잖아. 스팅레이는? 분명 탈출했을텐데."
"몰라. 병원에 있댔어. 그리고 내가 다른 사냥꾼을 어떻게 알아."
"하, 젠장. 왜 그렇게  여자는……."

세찬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근데 왜 내가 구해주러와서 욕먹어야하는 거지.
이해가 안되네.

"왜. 내가 오면 안됐어?"
"당연하지. 넌 여기 꼴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드냐? 보통 사람들은 그런걸 보면 미쳐버려, 넌 아무렇지도 않은거냐?"


뭐야, 날 걱정해준거였나.
이건 날 위한 배려였던 모양이다. 표현은 과격해도, 애가  착하긴 해.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렇네, 미칠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결국 미치진 않았고.

오히려 평소랑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가 있다.

아까 본 끔찍한 장면들도 분명 끔찍하다고, 꿈에 나올것 같고, 역겹다고…….

뭐 그순간엔 분명 그런 감정이 들기는 했지만, 거기서 눈을떼자마자 그런 감정들은 바로 사라져버렸다.
그런 감정을 느껴야해서 느끼는것마냥.
마치, 학습된  같은 공포감과 역겨움이 들었을 뿐이다.


"어? 그러네? 나  이상해. 지금 별 생각이 안드는데."
"뭐라고?"

세찬의 다그침에, 나는 곧장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아까는 분명히 역겹다, 징그럽다, 불쌍하다던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뭐지?"
"……설마, 이것도 변화의 영향인가?"
"몰라. 내가 원래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을텐데. 나도 모르겠어."

내가 당황하고있자, 세찬이 말을 이었다.

"후우……. 됐다. 나가서 이야기하지, 그냥 이것좀 풀어줘."
"아, 알았어."


지금은 내가 미치거나 패닉에 빠지지 않은게 좋은 일이니까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런건 여기서 나간 후에 천천히 생각해봐도 늦지 않을거다.
나는 세찬을 의자에서 풀어줬다.
뼈가 개박살이 난건지,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여있었다.

"아,안아파? 이건 엄청 심하잖아."
"지금은 진통제기운 남아있어서 괜찮아."
"진통제? 그런걸로 버틸수가 있어?"
"존나 센거니까."


세찬은 비틀린 팔을 억지로 끼워맞추고 의자를 들어서 내리쳤다.
나무로 된 의자는 산산조각나서 부숴졌다.
애꿎은 의자는  부수나, 생각했는데 곧 이유를 알  있었다.
녀석은 부서진 의자 다리로 다리에 부목을 대었다.


"이거, 묶어줘."
"알겠어."


아무래도 부서진팔로 묶는건 어려웠는지 나한테 부탁했다.


"더세게."
"이익, 지금은 이게 제일 쎈건데!"
"아, 물리력저해인가. 젠장, 지금 못풀어주는데. 팔에 힘이 잘  들어가서."
"그럴것 같더라. 시이발."

아까 막 내리쳐봤는데, 안 부서지더라.
뭔가, 팔찌가 무언가의 힘으로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아무렇게나 막 마음대로 떼어낼 수 있으면 그게 흡혈귀를 어떻게 구속하겠어.


나는 어떻게든 녀석의 팔과 다리에 부목을 현재  힘의 최대로 묶었다.
혈류를 돌리는건 아무래도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에.

"근데  꼬마는 왜 데리고 온거냐. 도망치게했는데."
"얘 도망 못치고 숨어있던데. 그래서 데리고 다녔어."
"아, 젠장. 스팅레이……. 마지막에 놓쳤다고 듣기는 했는데. 결국 찾지 못했나."

한세찬은 꼬마를 노려봤다.
그러자 꼬마는 내 뒤로 달려와 숨어버렸다.
세찬아, 안그래도 너 인상 더러운데 그렇게 보면 어떻게해.
완전 쫄았네.

"인상풀어. 애 울겠다."
"하, 야. 나는 널 구하러 온거야, 꼬맹이. 난 안잡아먹어."


방금 그걸 보고 어떻게 믿겠니, 저기 널부러진 목뜯긴 시체를 상기시켜줘야겠어?
물론 이 말을 직접 하지는 않고, 표정에 뉘앙스만 좀 담아보냈다.

그러니까, 자빠진 시체에 눈을  흘겨줬다는 얘기다.
세찬은 뒷머리를 긁고선 말했다.


"젠장. 일단 여기서 나가자. 나가는김에, 여기는 철거시켜야겠지."
"어떻게? 그 몸뚱이로?"
"다 방법이 있다. 일단 내 가방부터 찾아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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