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교회
점점더워지는 와중에, 드디어 세찬이의 퇴원일이 되었다.
딱히 마중나올 필요는 없다고 해서 나는 느긋하게 햇빛을 피해서 잠을 좀 잤다.
이라는 나와는 달리 햇빛을 좋아해서 거실에서 창문열고 자던데, 조금 부럽다.
나도 일광욕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얕은 잠을 자고 있었더니, 도어락을 여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드디어 왔구나.
"컹!"
늑대로 변한 이라가 문을 향해 한번 짖었다.
아마도 인사하는거겠지.
개들은 문 밖에 사람이 있으면 짖는다더라고.
"나 왔다."
"하암, 왔어?"
하품과 기지개를 동시에 하면서 한세찬을 바라보니, 어느새 머리도 깎아왔었다.
진짜로 잘라올줄은 몰랐는걸. 근데 왜 혼자가서 자른거지? 같이가도 됐을텐데…. 내가 갔던 미용실은 못 가겠지만.
일주일만에 머리 잘라준 손님의 머리가 이렇게 자랐으면 의심스러울 테니까 말이지.
세찬의 머리는 그냥 짧은 스포츠머리였는데, 전의 더벅머리보다는 훨씬 보기 좋았다.
더욱 깡패같아지긴 했지만.
"음, 시원하게 잘 잘랐네."
"그래."
"그럼 교회는 언제 갈거야? 나 그동안 먹고싶었던거 메모해놨는데."
집에서 할것도 없겠다, 위시리스트 작성에 시간을 좀 들였다.
평생 못 먹을거라 생각했던 음식들이 아른아른거려….
일단은 마늘간장치킨부터 시작해서, 부대찌개, 양념갈비, 삼계탕…. 흐흐, 벌써 군침이 돈다.
그리고 선지국도.
이것은 순수한 궁금증이다.
흡혈귀가 되고 난 다음에 먹는건 어떨지 궁금하거든.
"초치긴 싫은데, 그거 확실히 되는지는 몰라."
"그 말로 이미 초 쳤어."
내가 투덜거리자, 거실에 누워 낮잠을 자던 한야도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오, 사형 오랜만. 오늘이 퇴원이었어?"
"그래."
실버씨는 아직 퇴원하지 못했기에, 그동안엔 하루살이의 호위를 받아야했다.
그런데 한야가 세찬이를 보면 첫대사는 언제나 '사형 오랜만'이라는 대사가 고정된 것처럼 나오는데.
컨셉인가 싶다.
"그리고, 악마사냥꾼의 의뢰가 인정이 됐다. 너도 이제 사냥꾼으로써 등록할 수있어. 오늘 교회에가서 사냥꾼의 증표도 하나 만들어야겠군."
"그 십자가 귀걸이 말이야?"
"그래. 이거."
세찬이 자신의 오른쪽 귀에 걸린 증표, 십자가 귀걸이를 톡톡 쳤다.
나는 아이기스를 증표 대신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사냥꾼이 아닌 사람이 증표를 끼는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하니까 비슷한 다른 도구를 사용한것인데, 그 비슷한 다른 도구가 더 성능이 좋아서 잊고 있었다.
"그럼 나도 이제 사냥꾼이 된건가."
"명목상으로는. 축하한다. 견습이고 수습이고 다 건너 뛰어버렸군."
"그야 뭐…."
악마사냥꾼의 의뢰가 너무 오버레벨이었던게 문제지.
글고 후반엔 내가 쫌 많이 활약했었잖아?
아닌가?
확실히 한야가 도와주긴 했지만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외출이라는건가.
전에는 이유없이 산책도 가끔 나가거나 했지만, 흡혈귀가 되고나선 이유없는 외출은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밖에서 흡혈귀나 사냥꾼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고, 애초에 내 존재자체가 그렇게 드러내놓고 다닐만 한 그런게 아니기도 하고, 외출 준비가 남자일때에 비해서 상당히 귀찮아 진 것도 있다.
전에는 대충 씻고 옷만 입으면 됐는데, 이젠 선크림에 양산에, 소이탄(결국 구매했다)에, 혹시 몰라서 생리대같은 물품까지 챙겨야했다.
아직 나도 내 주기를 모르니까.
아니 흡혈귀가 왜 달마다 자기 피를 빼야하냐고.
정신 나간것같네.
그런 잡동사니를 전부 핸드백에 챙기고, 뭘입을지 고민도 해야했다.
어차피 인식저해를 켤테지만, 그래도 아무렇게나 입는건 말이 안된다.
그건 패션에 무관심한게 아니라 나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니까!
...라는건 사실 핑계고, 옷사는데 천만원을 썼는데 안입으면 아까워서 죽는다.
원래 남자일때도 여름엔 티셔츠랑 얇은 면바지만 줄창 입고 다녔는걸.
오히려 이제와서 여성의류 잡지를 보며 패션을 공부하는 꼴이다.
근데 이렇게보니까 여성옷은 형태부터가 예쁜게 많은데 남자옷은 왜 다 그게 그거같지. 내가 원래 남자였어서 그렇게 생각이 드는걸까?
근데 그걸 내가 입는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긴 하다.
아무튼, 강매당한 의상에게도 기회를 줘야하니까.
적당히 하늘색 민소매 블라우스랑 흰색 스키니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던 중에, 엉망으로 묶인 내 포니테일을 보고 기겁하며 한야가 손을 댔다.
"너 손재주가 별로구나?"
"윽."
"아, 머릿결도 좋은걸. 이 머리길이에 이정도 머릿결이라니, 여러가지로 땋아볼 수 있겠어."
"그거 매일 하시는 말씀인데요."
"앗? 그랬나?"
일주일 내내 똑같은 대사를 들으니, 슬슬 지적하기도 귀찮다.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트윈테일을 할까 말까 고민하길래, 기겁하며 빼액 소리를 질러서 적당히 처음 하려던 것처럼 포니테일로 끝냈다.
물론 안 어울리는건 아니겠지만, 현실에서 누가 트윈테일을 하고 돌아다니냐고.
나는 본 적이 없다.
아주 어린애라면 몰라도.
외출준비가 끝나도 선크림은 항상 꼭 발라야했다.
태양에 탄 화상자국도 회복은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거에다가 혈류를 돌려 피를 쓰고싶지는 않으니까.
동물피는 딱 갈증만 해소시켜주는 정도고.
"이라야, 너도 갈까?"
"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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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에게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는데…..
"면허증이 없다구요?"
"응, 나 19살이잖아. 그리고, 차같은 비싼거 타고다니다가 부숴먹거나 어디서 죽어버리면 회수도 못할거 아니야?"
아니, 생년월일로 따지면 28살이시긴 한데요….
그래서 그랬나. 그녀는 산악용 자전거로 나를 태워줬었다.
그것도 보면 나름 비싸지 않던가…? 뭐, 세찬이 오토바이에 비할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세찬은 차가 없고, 한야는 면허도 차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중이다.
실버씨, 언제 퇴원하세요.
"뭐, 햇빛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기는 하지만…"
"오랜만이긴 하네."
"이게 지하철인가요?"
나랑 손을 잡은 이라는 신기한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그 모습이 촌구석에서 갓 상경한 꼬맹이 같아서 조금 웃겼다.
비슷한거기는 하네.
반면 한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왜 지하철 표 뽑는곳이 없어?"
아, 거의 10년전에는 아마 지하철도 표 뽑아서 다녔었지.
그때랑은 비교하면 개찰구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네.
나는 그녀를 교통카드발급기에 데려가 말했다.
"일회용 교통카드로 대체된지 꽤 됐거든요."
"그래? 몰랐어. "
그래도 사람이 늙은건 아니라서 그런가, 금세 발급기에 적응하는 모습이 보인다.
살짝 헤메긴 했지만.
아무튼 지하철엔 사람이 생각보단 적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몸이 닿았으면 인식저해고 뭐고 안 통했을텐데.
그건 조금 다행이라고 할까.
그러고보니 4명이상부터는 인식저해라고해도 조금 관찰력 좋은 인간이라면 손쉽게 발각당할 수 있다고 했었지.
그러니 옷을 제대로 입는편이 오히려 시선을 덜 끌 수 있었다.
그냥 이쁜 여자랑 이쁜데 옷을 말도 안되게 입은 여자가 둘 있으면 누구한테 더 시선이 꽂히겠어.
둘다 꽂히긴 하겠다.
그래서 혹시몰라 마스크랑 선글라스를 낀 거지만.
자의식 과잉인가 싶지만, 조심해서 나쁠건 없지.
"얼마나 가야해?"
"이제 1시간정도."
"꽤 머네."
나는 구석에 기댄채 휴대폰을 꺼냈다.
요즘은 메세지도 그다지 많이 오지 않는다.
그야, 원래 인간관계라는게 연락을 안하면 서서히 잊혀져 가는거니까 뭐.
연락을 내가 피하는것도 있었고.
-야, 다다음주면 개강인데, 요새 보기가 좀 힘들다?
-ㅇㅇ.
이렇게 민석이는 여전히 연락을 해오는 중이긴 하지만.
왜 이러냐….
매번 단답으로 끊으면서 조금 미안한 감정도 들긴 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결국 얘네들이랑 여전히 친구로 남고싶다는건 내 욕심이라는걸 알았으니까.
이제 사는 세상이 다르단걸 알아 버렸단 말이야.
나는 녀석의 메세지를 적당히 넘기며 새로 시작한 휴대폰 게임에 눈을 돌렸다.
혹자는 사이버분재, 데이터피규어 모으기라고 불리는 장르이긴 하지만, 한야가 관심갖지 않아서 마음 편히 할 수있는 게임이었다.
요 며칠 한야와 게임을 많이도 해봤지만, 결국 끝까지 하면 내가 계속 졌기 때문에, 억울해서 같이 게임을 못하겠더라.
사람이란게 간사해서, 계속 이겨도 재미없고, 계속 져도 재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결국 수집형 게임에 눈을 돌리고 말았다.
"왜 안뜨는거야…."
하지만 이것도 안뜨면 재미가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한참 재화를 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버린 우리들은 지하철 개찰구를 나왔는데, 한야는 교통카드 환급기에 서서 가만히 교통카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왜요? 얼른 환급받고 오세요."
그러자 그녀는 살짝 주저하는듯이 말했다.
"이거, 집에가져가도 되나."
"상관은 없는데...... 어디에 쓰려고요?"
"기념으로!"
한바탕 씨익 웃은 한야는 교통카드를 반납하지 않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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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교회라고?"
도착한 곳은 허름한 동네 교회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한샘교회'라고, 불빛은 나올까 싶을정도로 낡아빠진 간판을 달고, 이거 언제 한번 집수리를 하던가, 철거하고 다시 만들어야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낡아빠진 3층짜리 건물.
나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는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대강당같은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한국식 교회가 아닌가.
심지어 옥상에 십자가도 없네.
"그래. 한국에선 여기가 제일 실력이 좋지."
"그거냐? 숨겨진 맛집같은거?"
알 사람만 안다는 그런 곳이려나.
우리는 덜렁거리는 철문을 열고 지하로 나있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있고, 대낮임에도 깜깜한… 뭔가 불안한 기분이 솟는다.
여기 교회맞지?
"여길 들어가요…?"
이라가 내 손을 꾹 잡았다.
나도 양산을 부러트릴까봐 손에 힘을 주지는 않고 있지만, 비슷한 감정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여길 들어가자고?
"왜? 별로 문제될건 없어보이는데."
"여기 완전 불길해 보이잖아. 뭔데?"
"그런가?"
세찬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여기는 단골이야. 집이랑 너무 멀어서 잘 못 가지만."
"에에…."
한야도 슬쩍 거들었다.
아니, 이상하다니까. 나는 떨떠름한 감정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가, 어느 공간에서 멈춰섰다.
"아, 여기서부턴 더 못들어가겠어."
아무래도 초대받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초대장도 없고.
"들어와. 이러면?"
그동안 잘 써먹던 꼼수인, 세찬이가 초대하기를 써봤지만 별로 효과는 없는것 같았다.
하긴, 이런 대책이 없으면 흡혈귀 사냥꾼 공방같은거 못 만들겠지.
"네 초대는 별로 효과가 없는것 같은데."
"주인을 불러와야겠군.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응."
나는 이라와 같이 계단 중간에 앉아서 휴대폰을 꺼냈다.
내 품속에 이라를 안아서 머리 위에 턱을대고 휴대폰 게임을 좀 하다보니 세찬이가 무슨 상자를 가지고 돌아오는게 보였다.
"뭐래? 초대 해준대?"
"사냥꾼만. 늑대인간은 교회에 출입금지래."
"어…. 괜찮나? 혼자 냅둬도?"
"여기 있으면 되겠지. 그리고 너."
"응?"
"네가 흡혈귀라고 하니까 이거주더라. 안 쓰면 못 들어온대."
"….이거?"
내가 받은 물건은 무슨 악질적인 SM취향의 성인용품스런 도구들이었다.
안대, 수갑, 귀마개, 쇠사슬 달린 목걸이, 입마개….
이거 다 차고 걸을수는 있는거지?
도구들을 본 이라도 살짝 기겁했다.
"여기 진짜 이상한데 아니지? 나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솔직히 조금 과한것 같기는 한데, 이해는 간다."
그래, 사냥꾼이기 전에 흡혈귀니까 말이지….
저놈도 처음엔 날 못 믿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조심하는건 좋다 이거야.
"그래, 어쩔 수 없지…."
내 먹거리 위시리스트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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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어둠속에서 줄에 묶인채 끌려가는 감각에 의존하며 걷고 있었다.
이거 기분 되게 이상해.
손에는 수갑, 발에도 사슬로 연결된 족쇄, 입에는 재갈, 눈에는 안대까지 두르고, 귀마개에, 사슬 목걸이까지.
다 쓰고 걸을수나 있나 싶었는데, 가능은 하네.
아직 멀었나…
"으븝,을읏으?"
재갈때문에 이상한 발음이 됐지만, 뜻은 전해졌으리라.
그런데 귀마개 때문에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 글자를 써주는것 같아서, 집중해보니 '조금더' 라고 쓴 듯하다.
손가락의 굵기나 감촉을 봤을땐 한야가 써준것 같네.
무슨 헬렌켈러가 된 기분이다.
헬렌, 당신….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위인전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어.
그녀는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라는 듣기만해도 답답한 장애를 3개나 갖고도 전혀 불행한게 아니라는듯 그 후로도 88년을 살았다.
와, 나는 88년은 커녕 88분도 못 버티겠는데 말이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딘가에 앉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자인가? 뭔가 벨트로 딱 고정시키는것이, 정상적인 의자는 아닌것 같다.
여기 진짜 괜찮은거 맞지??
나 설마 팔린거 아니지?
무슨 10살짜리 꼬맹이가 포경수술 하는것도 아니고, 먹을거에 낚여서 이런 곳에 오게 되다니!
뭔가가 내 팔뚝을 콕 콕 찌르는 느낌이 들다가, 잠시후 뭔가에 찔렸다!
"으흐으!"
…'아따거!'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재갈과 귀마개가 치워졌다.
재갈에 침을 좀 많이 묻혀서 부끄럽네.
흐르는 침을 삼키고 있자, 누군가 입가를 닦아주는게 느껴진다.
누군진 몰라도 고맙다고 말해준 후, 도착한게 맞냐고 물었다.
"그래, 내가 이 교회의 담임목사야."
중저음의 쾌쾌한 목소리.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목소리다.
"아까 그건 뭐에요?"
"아, 잠깐 VP테스트하려고 피를 뽑았지. 미안하네."
"예? 아, 그런가요. 그런데 세찬이랑 한야는요? 어디 갔어요?"
"그들은 따로 공방에 있지. 흐음… VP 측정불가? 기계가 고장났나."
"아하하…."
이쯤되면 나도 내 VP가 궁금하다.
높기야 하겠지.
"뭐, 여기 들어온 흡혈귀도 처음인데, 측정불가급 VP도 오랜만이군."
"그런데 이거좀 풀어주심 안될까요. 등이 가려운데."
그런거 있지 않은가. 두손가득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 괜스레 코가 가려워지는거.
지금도 비슷하다.
두손이 묶이니, 등이 가렵다.
왜 사람은 자기가 못하는것에 욕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의 욕구란….
내가 등받이에 온몸을 비틀며 등을 비벼대고 있자, 효자손 같은게 내 등을 긁었다.
"휴, 좀더 오른쪽이요."
"허허. 꽤나 침착하구나."
"좀 경험이 있어서…"
놀랍게도, 흡혈귀로 변한 첫날에 이미 사지결박에 눈가리개까지는 당해봤다.
일단 가려움을 해결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온거지?"
"아, 물리저해를 제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도구랑요…"
이제 제일 중요하지.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흡혈귀도 마늘을 먹을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주세요!"
"마늘을? 어째서?"
"아 그게 말이죠…."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원래 인간이었는데,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흡혈귀가 되어버렸을뿐, 여전히 김치랑 부대찌개랑, 국밥같은게 먹고싶다고.
그런 내 슬픔을 토해내자 담임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도 오열하며 말했다.
"아아, 그런 사정이 있을줄이야. 난 드디어 그 김중구가 미쳐버렸나 했어. 사람이 흡혈귀가 되다니, 끔찍한 비극이 아닌가!"
"맞아요, 맞아요. 먹고 싶은것도 메모장에 막 써놓고 있다니까요."
"밖의 사냥꾼들. 이제 들어와도 좋다. 이 흡혈귀… 아니, 이 아이가 하는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구나."
거짓말 탐지기 같은거라도 쓰고 있었던걸까?
그러자 멀리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안대가 벗겨졌다.
갑자기 쏟아진 빛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어진 광경에 나는 살짝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와…."
지하가 아니었나?
길게 도열한 교회용 길쭉한 의자에 빼곡히 사람이 들어차 있었고, 그들은 모두 성경에 왼손을 올린채, 은색 로자리오를 오른손으로 쥐고 기도하는 중이었다.
모두가 하얀색 사제복을 입고 통일감을 내보이고, 그들의 뒷쪽 벽에는 거대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걸려져있었고, 알록달록한 빛이 그 예수상을 비춘다.
나는 그 강당의 중앙에서, 중세시대 죄인이 쓸법한 구속의자에 앉은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 스테인드글라스가 신을 의미하는 듯한 상징적 표식과, 예수가 제자들을 가르치는듯한 장면이 색유리로 구성되어있었다.
쩔잖아.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변을 마치 지하철을 처음본 이라처럼 둘러보고 있다가, 담임목사가 구속을 풀어줄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가 아까 우리가 들어온 교회가 맞나?"
"허허, 밖에 보인 그것말인가? 그건 당연히 위장이지."
"계단보고 엄청 실망했었는데요. 와…."
"입구 이야기로군. 그건 원래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겐 꺼림칙한 곳으로 보이도록 인지간섭결계를 쳤기 때문이지. 꽤나 유용해. 여름엔 모기도 안들어오고."
"아."
그래서 나랑 이라만 이상하게 본 것이었구나.
실제로 세찬이랑 한야는 뭐가 문제냐는 듯 했었고.
게다가 인지간섭 모기장이라니, 쓸데없이 거창한 모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