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블러드 카니발
나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실버, 인형탈이에요.
-인형탈이라니요?
-흡혈귀가 인형탈에 들어가있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태양을 완벽하게 가려내는 의상은 온 몸을 덮는 인형탈 같은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게다가 신체의 어느곳도 노출되지 않으니 흡혈귀로써는 완벽한 위장효과까지 노려볼 수가 있는것이다.
때로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의상을 입는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돌릴 수가 있다.
더위따위야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태양에 직접 노출되면서 목숨을 잃는것보다는 낫겠지.
뭐, 이 생각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어쩐지 자꾸 토끼 인형탈과 눈이 맞는것이 조금 이상하다.
'감'이라고 해야할까, 그런것이 느껴진다.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여자의 감'이라는건가?
내가 느끼게 될줄은 몰랐는걸.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흡혈귀가 인형탈에 숨어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애초에 이런데 숨어있는 미치광이 흡혈귀의 생각을 어찌 알겠어요?
-그건 그렇죠. 알겠습니다.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죠.
게다가 지금 날씨에 저렇게 인형탈을 쓰고 있는 사람이 인간일리가없지. 암.
"곧 도착하겠다. 수고했어, 릴리."
"네, 셔츠 감사했습니다."
나는 도민석에게 셔츠를 돌려주고 리프트에서 내렸다.
양산은 잃어버렸지만, 지상에서야 그늘을 찾아 이동하면서 버텨보면 곧 해가 질테니 괜찮을거다.
"하아…."
"누나, 괜찮아요?"
"조금 어지럽네. 계속 회복에 혈류를 돌려서 그런가."
너무 지나치게 피부에 화상이 도드라지는 부분만 수복하는데도 피를 꽤나 소모했다.
집에가서 밥좀 먹고 한숨자면 괜찮아질정도긴 한데….
"피곤하다. 이라야, 너…."
나는 이라한테 피한모금 빨아도 되냐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미쳤나, 벌써 흡혈귀화가 꽤나 진행된걸까.
아직까진 참을만 한데, 굳이 피를 빨 필요가 없잖아.
게다가 이라는 우리가 그 저택에서 빼내오기 전까지는 흡혈귀의 피를 먹었을것이다.
에이샤나 그 흡혈귀들도 이라의 격을 높이는것이 목적이었을테니.
그럼 이라 이녀석은 흡혈귀의 피로 키워진 푸아그라나 다름 없는게 아닐까.
잠깐, 그럼 '사람 피'는 아니니까 세이프 아냐?
무슨 생각하는거래, 진짜 정신차려라 석주야. 너 원래는 인간이야!
"네?"
"아냐, 아무것도."
난 어색하게 웃으며 옆으로 내려온 내 머리카락이나 만졌다.
최근들어 계속 한손에 양산을 챙기고 다녀서 한손으론 언제나 양산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한손을 내가 어떻게하고 다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탓이었다.
진짜 어떻게 했더라? 엄청 어색하네.
애초에 손이 없었을때도 있었고….
막장이군.
그나저나 그때 사냥꾼은 대체 누가 보낸걸까? 에이샤가 보냈다기엔 너무 적대적인 사냥꾼이 아니었나. 에이샤는 오히려 날 죽이려고는 안 했다, 죽이려고는….
뭔가 더 엄한 짓을 하려고 했지.
그때 그 사냥꾼은 바로 내 목부터 따려고 하던데.
나는 손을 이리저리 해보다가 그냥 대충 내리기로했다.
가끔 그늘에서 벗어나면 손으로 얼굴쪽을 가리고.
"맞다. 세찬아, 걷다가 인형탈이 보이면 말해줘."
"왜, 쓰려고?"
"… 내가 쓰려는게 아니라, 흡혈귀가 쓰고 있을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자 세찬이가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그럴수도. 어떻게 그런생각을 했지?"
"…뭐, 그냥…?"
아까 태양에 탈때 내가 쓰고싶어서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네.
세찬이는 조금 생각하다가 나에게 말했다.
"그럼 만약 보게되면 어쩔거지?"
"벗게 해야지."
"어떻게?"
"뭐, 음료수라도 하나 주면 벗지않을까?"
그렇다. 원래 이런것은 태양과 바람의 대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놓고 벗어달라고 하는것보다는 은근한 제안같이 하는것이 효과적이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꽤 사람들에게 호의를 끌어내기 쉬운 듯 하고 말이지.
하긴, 예쁜 여자애가 말걸어주는데 싫어할 사람 없을거다.
나같아도 좋을 걸.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상한 녀석이라면 뭔가 반응이 오긴 하겠군."
"그렇지?"
과연, 나 김석주가 또 한건했구만.
나 의외로 사냥꾼에 재능있나?
…별로 기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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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민, 지혜, 채연일행이 탑승한 리프트가 도착하자 걸으며 대학은 다닐만 하냐, 취업 방향은 정해졌냐, 따위의 잡담을 떨으며 걷던 중이었다.
멀리서 사자탈을 쓴 알바생을 발견했다.
사자탈이라, 저건 토끼탈보다 더 빡세 보이는데. 갈기도 나있고.
나는 세찬이한테 애들을 맡겨두고 음료수를 뽑아 사자탈 알바생에게 다가갔다.
톡톡.
"저기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혹시 길을 막았나요? 거기 있는줄 몰랐어요."
"아뇨, 이거 마시면서 하세요. 힘드시죠?"
나는 시원한 이온음료 한캔을 따서 건넸다.
크큭, 시원할때 마셔야 할걸. 게다가 캔이라서 아껴놨다가 먹는것도 못할거다.
"아, 진짜 감사합니다. 죽는줄 알았는데."
인형탈을 벗은 남자는 정말 죽기 일보직전인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건네준 음료수를 입도 떼지않고 원샷해버리는 모습을 보니, 내심 사람하나 살린것같고 그렇다.
그나저나, 인형탈을 벗은시점에서 이미 흡혈귀가 아니란것이 증명된 셈이군.
그래도 이왕 내친김에 정보를 좀 캐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이런 알바생이 많은가요?"
"예. 한 10명정도 되나?"
"아, 그렇게 많아요?"
"네, 그렇죠. 여기가 꽤나 넓잖아요. 마스코트도 많고."
그렇긴하다. 토끼도 사자도 이 놀이공원의 많은 마스코트캐릭터중에 하나일 뿐이지.
애초에 컨셉이 약간 동화같은 느낌이라서 동물 마스코트 말고도 참 많은 마스코트가 있었다.
"혹시 인형탈같은건 어디 보관하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음…. 그건 말해주기가 좀 그렇네요. 관계자가 아니면 못 들어가는 곳이거든요."
"그런가요."
하지만 다 듣는 방법이 있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최면어플을 사용했다.
끼우우우우웅-
뭔가 듣기 거북한 소리와 번쩍이는 섬광.
알바생이 멍한 표정이되자, 나는 질문했다.
"인형탈을 보관하는 곳은?"
"기념품점 근처 스태프실…."
"정확한 알바생 숫자는?"
"11명, 아니, 12명…., 아니 10명…."
"왜 제대로 대답을 못해?"
"한명이 안와서 대타를 불렀는데, 두명이 열사병으로 실려갔습니다…."
"아."
열사병, 정말 무섭지….
이런날씨에 이러고있는거 솔직히 존경스럽긴 해.
대답 들을거 다 들었으니, 그의 눈앞에 손가락을 좀 튕겨서 정신을 깨워주고는 일어나려고했다.
"아, 저기, 잠시만요!"
"네?"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최면 걸었던거 눈치챘나?
나는 흠칫 놀라며 멈춰섰다.
"혹시 전화번호…."
"… 이거 보세요."
끼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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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연스럽게 합류하자, 지혜가 알수없는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릴리 너, 방금 뭐했어?"
"그냥 인형탈 알바생한테 고생한다고 음료수좀 가져다 드린거죠."
"왜…?"
"……그냥요?"
그러네. 좀 뜬금없기는 하다.
생각해보니 얘들한테도 안 사준 음료수를 생판 남인 인형탈 알바한테 준다?
솔직히 이유가 없다.
"뭐야, 그냥 걔가 착해서 그런가보지. 그런갑다 해라."
선민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지혜가 뭐냐는 듯이 선민이에게 날카롭게 쏘았다.
"뭐?"
"아니, 그렇잖아. 너, 얘가 합류하고 나서부터 되게 날카로워진거 알아? 분위기 망칠까봐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좀 노골적이야."
"내가?"
"그 고백 솔직히 용기낸거 칭찬해. 그런데 어쩌겠어, 좋아하는 여자 있다는데."
"예?"
마지막 말은 내 말이었다.
뭐라 그랬냐, 방금.
나는 한세찬을 바라봤다.
'뭐'
그게 녀석의 대답이었다.
어…. 거절대사 디폴트이긴 한데…. 그거 왠지 날 염두에 두고 한 대답 같지않냐?
설정상 포지션이 그렇잖아?
아빠친구딸, 일시적이지만 동거, 거기다 옛 친구 포지션인걸?
이미 지혜나 다른 애들의 머릿속에선 한편의 러브스토리가 쓰여졌겠구만.
미쳐버리겠네.
게다가 본질로 따지면 석주도 나고, 릴리도 나다.
그럼 이거 자기애아니냐?
몇달전이야, 몸이 익숙치 않아서 내 몸에 조금 마음이 가고 그러긴 했는데, 미우나 고우나 이 몸땡이 달고 두세달 생활해보니 강제로 익숙해지고 그래서 별 감흥도 없다.
그러니까, 나르시시즘도 이제 어느정도라는거지.
"쟤도 거북해하는거 안보여? 얜 가뜩이나 몸도 안좋다며."
"어…. 아니, 전 괜찮아요."
"괜찮기는, 거북한티가 많이 나던데?"
내가 거북한 티를 냈다고?
몸이 안좋은건 내가 흡혈귀인데 대낮에 돌아다녀서 그랬던거고….
뭐, 대화를 안 걸기는 했는데 , 거북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안한것에 가까운데.
그렇게 분위기가 안좋았나?
원래 분위기에 민감한 성격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진짜 괜찮은데…."
"됐어, 나도 불편해. 난 집에갈래. 너희들끼리 재밌게 놀아."
지혜는 그렇게 말하곤 정말로 몸을 돌려버렸다.
잠깐만, 혼자 돌아가면 위험한데.
애초에 내가 올 필요도 없던 놀이공원에 들어온것은, 이 애들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감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진짜 흡혈귀를 찾을지도 모르는데, 혼자서 돌아가겠다니.
나는 따라가서 지혜의 팔을 잡았다.
"가지 마요."
"놔. 바보된것 같잖아. 뭔데? 아무 사이 아니라며."
"그건…."
아이씨, 뭐라고 설명해야해.
미쳐버리겠네.
"그런데 뭐야? 둘이서 나 바보 만드니까 좋아? 착한척 내숭 떨어대는 꼴도 보기 싫거든?"
"예?"
내가 뭔가 내숭을 떨었나?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사자인형탈 알바생한테 음료수를 준것밖에 모르겠는데.
"놔, 그리고 재밌게 놀다가 가."
지혜가 팔을 쳐냈다.
아, 이게 아닌데.
분명 세찬이한테 거절하라고 부탁할때 이렇게 될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던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타이밍이 나쁘달까,
땡-땡-땡-땡-땡-땡-!
"우우어어--"
"그라아그라라각…"
6번의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며, 블러드시티에서부터 좀비분장을 한 직원들이 제각기 개성넘치는 목울림을 하며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고, 또 환호했다.
어린이들은 무서웠는지 부모님한테 꼭 붙어있었고, 몇몇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거의 완벽히 혼란상태에 빠진 상황에, 나는 지혜를 놓치고 말았다.
지혜를 따라가야한다고 생각하자,
휴대폰에 메세지가 도착했다는 신호가 울렸다.
-수상한 인형탈착용자 발견, 위치는….
블러드시티가 아니었다.
-관람차 근처, 공용화장실.
메세지를 읽고나니, 한세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렀다.
"뭐야. 관람차?"
"아,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지 말아줄래?"
"흠."
실버의 자세한 보고가 이어졌다.
내가 알바생을 심문(?)한 결과를 알려준 즉시, 그들은 인형탈 준비실에 침투했었는데 비어있는 인형탈이 11개 였던것을 확인했으며, 담당자를 심문해 알바생의 모든 연락처를 확보했고,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드론과 망원경, 그리고 유디라의 시력으로 확인한결과 전화를 받지 않는 인형탈이 있었다고 한다.
와, 이런 작전을 즉석에서 구상한단 말이야?
이 짧은 시간에?
진짜 전문 사냥꾼이다….
"그럼 녀석만 잡으면 이제 끝이겠군."
"너무 순식간에 끝난것 같은데."
원래 퍼즐이라는게, 답을 깨닫고나면 뭐가 없긴하다.
그런데 뭘까, 이 찜찜한 기분은.
여전히 녀석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세찬이가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르켰다.
"그럼 이동하자. 저기 3명은 어떻게하지?"
"뭐, 일단 찾았으니 해 지기전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빨리 갔다와보자."
나와 세찬이가 지혜가 빠져 3명이 된 도민석,유선민,이채연에게 우리는 따로 가볼곳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그래. 뭐, 그럴수도 있지. 지혜랑 우리는 신경쓰지말고 커플끼리 잘 놀다와."
"그래, 릴리야, 남친이랑 좋은시간보내, 아까일은 신경쓰지 말구."
"으…. 나도 여친 만들어야 되냐…? 서럽다…."
뭐야, 이새끼들.
정신나갔나.
"……."
"왜 그런 표정이냐."
집에가서 보자 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