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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화 〉더하기 빼기 (97/101)



〈 97화 〉더하기 빼기

저녁식사시간.  늦었지만, 목사도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밥을 늦게 먹게 되었다.
마침 나도 뭘 좀 먹고 싶었고, 머리핀의 조정작업도 마쳤기에, 지하에 있는 그 휘왕찬란한 고딕풍의 교회가 아니라 표면적으로 '한샘교회'로 알려져있는 낡은 교회건물로 국밥을 좀 배달시켰다.

그런데, 여사제의 시선이 굉장히 신경쓰인다.

"왜 그래요?"
"그래,  그러나?"

"아, 아닙니다."

국밥먹는 흡혈귀 처음보나?
아, 그러네. 처음보겠구나.
근데 한국인이면 흡혈귀가 되어도 국밥은 먹겠지.

나는 벌써 세그릇째 국밥을 죽였다.
먹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죽였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그것을 죽일 기세로 먹었기 때문이었다.

 모습에 압도당한 여사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봐도 놀라워요. 당신이 흡혈귀라니...."
"사제님도 드세요. 맛있는데. 여기 국밥잘하네요."
"그래, 자네도 한 그릇 하지. 봐, 흡혈귀도 반한 맛이야."

여사제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목사님…. 원래 당신께선 항상 국밥만 드시지 않으십니까?"
"뜨끈한 국밥 한그릇은 완전식품이라네. 가성비도 훌륭하잖아."

목사님은 어쩐지 국밥충의 느낌이 났다.
다른 사제들은 매일 삼시세끼 국밥만 먹는 목사의 식성에 진저리를 치며 아예 동석을 하지 않는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오히려 부하 여사제는 곁에 있긴하지만 국밥을 안 먹겠다고 한다. 어제도 두끼나 먹었다나.

그런데 국밥이 완전식품인가?

삼시세끼  국밥만 먹으면 나트륨과다섭취가 아닌가 싶다만.
뭐, 그래도 맛있으니까 됐다.
나는 그릇째로 국물을 들어 마시면서 말했다.

"크아아, 보쌈은 아니지만 이것도 좋네."

뜨끈한 국물이 아랫배로 내려가 내장이 덥혀지면서 포만감을 더욱 그윽하게 만든다.
화상 걱정할것도 없이 뜨거운 국물을 뜨거울 때 꿀꺽꿀꺽 마실 수 있는것은 좋은걸.
그렇게 계속해서 게걸스럽게 국밥을 먹어치우자,

"역시  먹는구만, 국밥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사람  없지."
"글쎄요. 국밥 좋아하는 사람중에서도 나쁜사람 많을텐데."

한국인은 대부분 국밥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나쁜 한국인이 국밥을 좋아할 확률도 상당히 높겠지.

"그냥 해본말이다."

하지만 세찬의 태클을 들은 목사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세찬이는 틀린 정보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의 사나이다.
겉보기랑 다르게 째째하다.
사실 세찬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면도 많이 갖고 있는 편이다.
저런 덩치로 사실은 바퀴벌레를 징그러워하는 것도 귀여운 부분이고.

"흐음, 끄윽. 어우 배부르다."

식사를 마친 뒤에 내가 배를 문지르며 트림을 하자, 세찬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굳이 여기서까지 내숭 떨 필요는 없잖아.

대충 식사가 마무리되는 느낌이자, 세찬이가 깨끗히 비워진 그릇 하나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나저나, 그 정교회측 사제에 대해 할 얘기가 있습니다만."
"말해보게."

이름은 모르지만, 누군지는 금세 연상이 된다.
나는 조금 식어버린 국물을 조금씩 입으로 흘려넣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남자 이단심문관인거, 알고 계십니까?"
"그야 물론."
"그는 세례도 받지 못했는데 왜 여기 있답니까?"
"질문이 이상하군. 애초에 교회는 모든 교인의 안식처야. 그것이 이단심문관이라고해도. 막을 이유가 없으니 있는게 아니겠나."

잠깐의 침묵, 그리고 세찬이가 찔러보듯 말했다.

"감찰입니까?"
"……글쎄."
"답이 늦네요."

세찬이는 확신한듯이 팔짱을 낀다.
 소리인지 몰라서 나는 그냥 가만히 듣고있기로 했다.

"대체 당신은 교회에서  하시는거죠. 그 사제, 아무래도 뭔가를 아는것 같던데."
"허어, 날카로워. 하지만 밥먹은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렇게 사람을 압박하면 체한다. 요즘 소화도 잘 안되는데 말이야."
"그럼 국밥 말고 채소위주의 식단을 맞추시죠."

목사가 가볍게 투덜대자, 여사제가 자신이 먹는 부리또를 보여주며 말했다.
양배추랑 햄, 토마토, 그런것들이 잘 버무러진 것이 맛있어보이긴 한다.
침 나올것 같아.

"내가 그런 풀때기로 배가 찰것같나? 그리고 그거 왜 그렇게 비싸? 그런거 먹을 돈으로 뜨끈한 국밥 한그ㄹ…."
"아, 그런 소린 됐습니다. 돈도 많이 버시는 분이 왜 그러시는건지…."
"그래서 요즘 것들은. 그런 점에서 이 아이를 보라고. 국밥을 얼마나 복스럽게  먹는가. 이 아가씨가 사주는 보람이 있어."
"헤헤… 아니, 잠깐, 아가씨요?"

목사의 말에 조금 쑥쓰러워져서 뒷통수를 긁적이고 있었다가 호칭에 경악해 외쳤다.
아니 할배요, 당신 내가 남자라는거 기억은 하는거지?
하지만 그건 무시한채 세찬이가 말했다.

"그래서, 말 돌리지 마시고요. 그거 혹시 쟤랑 관련 있는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그게 뭔데요?"

나는 나랑 연관된 무언가라고 하니 조금 귀를 기울였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성경 해석을 하는 중이라네."
"예?"

나는 조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게 그렇게 큰 일인가?

"원래는 금서로 취급되는 것들도 있고, 숨겨진 경전들도 많지. 그걸 해석하고 있다."
"그래요?"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자, 세찬이가 대수라는듯이 말했다.

"그건 금지된 일이잖아요. 그럼 감찰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뭐, 상관없어.  사제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할테니."
"믿는 구석이 있나보죠?"
"애초에 그가 파견된 것 부터말이지. 그는 내 편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작은 동전같은걸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리는 목사였다.

"이건?"
"그가 내게 빚진것이지."

 동전.
이게 대체 뭐기에?

"이건…. 대체 그가 당신에게 뭘 빚진겁니까?"
"사람 목숨 하나 정도는 빚졌지. 더이상 묻는건 실례라네."

세찬이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이 오간건지  수가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고.

"그래서 어떻게 되는거에요. 사제는 우리편인건가?"
"우리편은 아니지. 아군의 아군이라고  아군이 아니야."
"그래?"

그런가.
하긴, 나는 흡혈귀잖아.
보통이라면 적대당하겠지.

"그러니 애초에 너랑은 아군이 될 수가 없겠지."
"에라이, 힘들고만."

나는 하품을 하면서 창 밖을 보았다.
별이 예쁘게 빛나는 밤, 으레 그렇듯이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네. 백화점도 가야했는데, 여기서 너무 오래 걸렸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럼."
"그래, 눈물은 고맙게 잘 쓰마. 가끔 와서 한번씩 울어주고 그래."
"그건 생각해보구요."

아참, 눈물값으로 머리핀은 완전 공짜로 받았다.
앞으로도 무상A/S를 약속받았으니 완전 최고지.
다음번엔 출장서비스로 부탁해볼까.
아니,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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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을 다시금 갈아입고선 집으로 가는 골목을 걷고 있었다.
한밤중이라 양산따윈 필요 없었다.
나는 팔에 양산을 대충걸어선 목을 한껏 젖히고 밤 하늘을 본다.

"달이 참 아름답구만."

어제가 보름달이랬나?
그래선지 지금의 달은 매우 크고 얼핏 둥그런 모습인게 거의 보름달이었다.
별도 예쁘고 말이다.
낮에는 하늘을 가려야하니 목을 뒤로 젖힐 일이 없지만 밤에는 가끔 이렇게 하늘을 보면 참 예쁘단 생각이 들었다.

월광욕은 싫지만, 하늘 보는건 좋을지도?

"세찬아. 옛날 영화같은거 보면  흡혈귀도 박쥐로 변하고 그러지 않아? 진짜야?"
"그런 녀석도 있지. 왜?"
"그래? 그럼 나도 그거 배워보고싶네. 밤하늘을 나는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기분이겠지 뭐."
"흥, 감수성 부족한 녀석 같으니라고. 재미없긴."
"감수성은 시발, 야밤에 사냥한다고 헬기 몇번 타면  뒤져."
"사냥꾼이 사람  버려놨네, 이걸 어쩌냐."
 



나는 아세톤을 이용해서 지웠지만 여전히 조금 얼룩덜룩한 것이 남은 녀석의 얼굴을  콕 찌르면서 말했다.
녀석은 인상을 쓸 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지. 교회에서 이렇게 시간을 오래 잡아먹을줄은 전혀 몰랐는데."
"그럼 이제 실버네로 갈거냐?"
"음, 아니. 우리집으로 갈래."
"왜?"
"별로 상관 없잖아? 지혜는 지금 자는 걸. 뭐, 이제 내가  집에 있는거 들켜도 별로 상관 없을 것 같고."

이제 우리집에 석주가 없는걸 알았으니 지금의 나랑 남자인 나랑 엮어서 이상한 오해를 하지는 않을거다.
그리고 지혜는 지금 숨쉬는 정도의 움직임만을 보이고 있다.
꽤나 일찍 자는구나. 일요일이라서 그런가.

"그리고 실버네로 가면 사념으로 징징대는 거가 하나 있어서 피곤해져."
"아하, 알겠군. 니 애 보기 싫다 이거지?"
"뒤진다. 걔가  내 애야."

작은 분노를 담아 녀석의 옆구리를 찔러넣자, 기겁하며 허리를 퉁기는 녀석이었다.
너무 과민한 반응이 아닌가?

"오호. 전보다 더 간지럼을  타는걸."
"뒤진다, 정말로."

나는 빠르게 녀석과 거리를 벌린다. 팔 하나정도 거리로. 세찬이가 반격할 것을 염두에 둔 회피였다.
그리고선 근엄과 권위를 실은 목소리로 지껄였다.

"후후, 어이 사냥꾼. 지금은 '밤'이다. 내가 너에게 질것같느냐?"

이번엔 확실하게 퇴로가 준비되어있다. 도망치려면 충분하고, 반격하기에도 충분하다.
그러자 세찬이가 부들부들 떨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아. 3할 정도는 릴리스 같았다. 진짜로 죽이고 싶군."
"고작 3할? 턱없이 부족하구나."
"허."
"푸하하하핫!"

나는 폭소했다.
여전히 근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받아치자 헛웃음을 흘리는 한세찬의 표정이 너무 웃겨서.

때릴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이 조금 신선해서.
 원래는 문답무용으로 쥐어박지 않았나?
고민같은걸 왜 하는거야?

익숙한 계단을 오르고, 익숙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랬으니 당연히 익숙한 광경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분명히  정리를 했었는데.
어느새 어지럽혀져있는 집구석을 보니까 무슨 강도라도 들었나 싶다. 유리창도 깨져있고.

"누나. 안에 누가 있어요."
"어?"

이라가 한껏 경계하면서 말했다.
나 역시 그 말에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아직 강도가 있단 말인가?
세찬이는 곧장 문 옆으로 다가가 붙었다.
손엔 이미 못을 든 채였고.

우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세찬이가 진입했고, 거실에 자빠져있는 인간 하나가 있었다.

"박광식기자?"

지금보니 굉장히 크게 다친 모양이다.
 계단에서 굴렀나?
아니면….

"범인은 사람이 아냐. 타락귀로군. 지능이 있어. 이녀석을 미끼로 써서 더 큰걸 낚으려 했나본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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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타락귀가 집 안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 이라고 해야하나?
그 얼굴에 바글바글하게 붙어있는 검은 점들은, 그것이 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존재가 시야에 들어온 그 순간.

"흐이익, 누,눈깔!!"
"시팔, 하필이면 벌레냐!!"

우리둘은 곧바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미! 존나 사람보다 큰 거미가 우리집 벽에 붙어있었다!
추가로 알뜰하게 존나 많은 벌레들도!

나는 눈이 무섭고, 세찬이는 벌레 전반을 싫어하는데, 두가지를 합친 마스터피스가  나오고 지랄!


문을  소리 나게 닫아버리곤 달달 떨리는 손을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킨다.

"세스코 부르자."
"세스코?"

나는 곧장 한야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안녕 한야, 나 릴리인데. 집에 존나 큰 거미가 나왔는데 좀 잡아줄래?"

집에 벌레가 나와서 잡아달라 해야한다니.
평생에 이런 부탁을 남에게 하게 될줄은 몰랐다.
그래도 존나 큰데다 눈이 8개는 훨씬 넘었는걸.
무섭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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