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6화.
갑작스러운 네빌의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뒤쪽에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네빌의 말이 들렸던 것인지 날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공포가 서렸다.
나는 다시 네빌을 보았다. 그러자 네빌은 손으로 뒤쪽의 애들을 직접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을 죽여 네 의지를 관철해라.]
똑같은 요구 역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놈이 재촉했다.
[망자에게도 시간은 소중하다. 서둘러 죽여라.]
[애들을 죽이라니…. 이런 미친 사이코 새끼! 너는 피도 눈물도 없는 거냐?!]
[인간을 위해 대신 흘려줄 피와 눈물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저 애들을 죽여라. 그로써 네가 쓸모 있음을 증명해라.]
[이런 미친….]
내가 망설이자 네빌이 다시 내머리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과 등에서 검은 아우라가 나오더니 뼈만 남은 내 몸과 정신을 압박했다.
몸이 저절로 떨리고 아래턱이 멋대로 움직여 윗니와 딱딱 부딪쳤다.
거부하면 내가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이성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니 반드시 따라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애들을 보았다.
두려움에 차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딸이 떠올랐다.
저 어린 애들을 죽이라니,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사람이 아닌 지금도 마찬가지다.
[…까.]
[뭐라고 했지?]
나는 떨리는 턱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딱딱 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마음이 진정되는 순간 네빌에게 소리쳤다.
[좆까! 이 시발놈아!]
미치지 않고서야 아니, 미쳐서도 절대 그런 짓만큼은 할 수 없다.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런 짓만은 절대 할 수 없다.
주먹으로 네빌의 팔을 쳐내고 저항했다.
[호오? 정신조작도 통하지 않는 것인가.]
네빌은 신기한 동물이라도 본 투로 말했다.
나는 냉정한 그 말투에 바닥에 떨어뜨렸던 검을 다시 들었다.
[웃기는 녀석이군. 어째서 거부하는 거지?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나?]
[집에야 돌아가고 싶지. 하지만 애들을 죽이고 갈 정도로 썩지는 않았다. 호로새끼야.]
망설임은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저 어린것들을 죽인다면 설사 집에 돌아가더라도 가족을 볼 낯이 없다.
스스로를 용서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결국, 해골의 몸뚱이를 얻은 것보다 더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짜 산 자를 지키는 언데드로군. 흥미롭구나. 아주 재밌어.]
네빌은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건방진 네놈에게 시련 하나를 내리지. 데스나이트!]
바닥으로 검은색과 밝은 녹색이 조합된 빛이 올라왔고, 그 속에서 검보라색 연기와 함께 2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의 망자가 나타났다.
얼굴이 해골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쓰러뜨린 해골바가지들과 같았지만, 색상이 달랐다.
지금까지 상대한 해골들이 백골이었다면, 지금 눈앞에 나타난 놈은 흑골이었다.
잿가루라도 바른 것인지 온몸이 검은색 뼈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몸에 걸친 갑옷도 후방부대에서나 받을 법한 조잡한 갑옷이 아닌 최전방 부대의 장비처럼 탄탄해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뿔이 달린 투구와 거대한 검까지 범상치 않은 괴물임이 분명했다.
데스나이트라 불린 망자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더니 네빌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심지어 말까지 한다.
내 유일한 아이덴티티까지 빼앗긴 기분이었다.
[이놈은 데스나이트라고 한다. 생전에 기사단에 속했던 놈이지. 검기를 다룰 정도로 강한 놈은 아니지만, 검술 능력은 뛰어난 놈이다. 이두영, 네가 이놈과 싸워 이기면 저 인간들을 처분에 대한 명령은 철회해주겠다. 특별히, 자비까지 베풀어주어 살려서 보내주지. 어떠냐?]
[그게 정말이냐?]
[그렇다. 단, 네가 패하면 데스나이트가 너와 꼬맹이들은 모두를 죽일것이다. 저 꼬마들을 살리고 싶다면 네 능력으로 구해라. 네 알량한 정의감이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직접 지켜봐 주겠다.]
아까 그 저승사자랑 같은 말을 하는 네빌.
나는 눈앞에 나타난 망자, 데스나이트를 보았다.
키도, 덩치도, 심지어 가진 검도 나보다 더 크다.
이길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것말고 저 애들을 구할 길도 없다.
하는 수밖에 없다.
[방금 그 말 진짜겠지?]
[망자는 산 자와 달리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나 네빌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좋아.]
나는 망가진 해골들이 쌓인 언덕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구석에 웅크린 애들을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라. 아저씨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해골 아저씨….”
애들은 당황하며 날 보았다.
나는 웃었다.
해골이라 웃을 순 없지만, 그런 심정으로 애들을 보고 데스나이트와 눈높이를 맞췄다.
데스나이트 역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적잖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제길, 크네. 그냥은 못 이기겠어.’
발에 걸리는 방패 하나를 주웠다.
[가라. 데스나이트여, 스켈레톤 나이트를 먼저 죽이고 인간들을 죽여라.]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네빌의 명령에 데스나이트가 검을 높이 들었다.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검의그림자에 난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이 빌어먹을 해골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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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영의 호기로운 외침과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백골과 흑골이 서로에게 움직이며 싸우자 네빌은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해 두영의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둘은 검과 방패를 휘두르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막고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두영을 본 네빌은 다시금 흥미가 샘솟았다.
그가 보기에 두영은 매우 진귀한 망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것도 신기했지만, 네빌은 그보다 두영이라는 존재 자체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다름 아닌 그가 산 자를 증오하지 않는 언데드인 탓이다.
언데드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망자는 산 자를 혐오한다.
이 세상에서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자법칙이었다.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이나, 삶 등 다양한 감정이 산 자를 볼 때마다 되살아나기 때문에 증오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육체에 대한 욕심과 갈망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육체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향한 분노.
그것이야말로 망자들이 죽은 후에도 이 땅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자 공격성을 유지하는 근원이다.
이 세 가지를 지니지 못한 망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창조자인 그가 직접 억누르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혹시 그런 의지력이 있다면 여기서 이렇게 싸우는 게 아니라 신의 품으로 돌아가 안식을 얻었을 터였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두영은 해골만 남은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에게서는 산 자의 육체에 대한 욕심, 갈망, 분노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산 자를 지키려는 정의감만 남아 있었다.
망자가, 그것도 세상의 환멸을 받는 언데드가!
[흥미롭다. 제대로 된 마력의 공급도 없이 저렇게 움직이는 스켈레톤은 내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대체 어떤 힘과 원리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 혹시 그 이상한 저승사자의 능력인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의 데스나이트도 뒤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다른 언데드들도 죽은 육체를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동력원이라 할 수 있는 마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마력은 모두 네빌이 주입하고 있었다.
헌데, 두영에게는 그 누구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 마력을 공급한 흔적조차 없었다.
그저 뼈만 남은 육신과 영혼에 새겨진 기억과 목표 그리고 집념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마법을 공부한 그에겐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법에 대한 상식도 없는 놈이 정신지배를 저항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날 거부하다니.]
전쟁터에서 네빌은 마력과마법을 사용해 두영과 언데드들에게 인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선택이 아닌 강제였다.
의지가 남은 언데드라도 그의 명령을 피할 수 없다.
특히나 네빌처럼 술사의 역량이 높은 흑마법사, 그것도 마인드 리치급 흑마법사라면 그 명령은 절대적으로 작용해야만 한다.
인간에게도 가능한 정신지배가 언데드라고 먹히지 않을 리 없으니까. 그러나 두영에게는 그의 정신지배가 먹히지 않았다.
두영의 기억을 통해서 본 과거가 사실이라면 두영을 이곳에 소환한 존재가 바로 네빌 그 자신일 텐데도 말이다.
자신의 소환한 개체를 자신이 지배할 수 없는 상황.
이 또한,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없는이상 현상인 셈이다.
정확한 해답은 두영을 전생시킨 저승사자가 알고 있겠지만, 그 악마 또한 그가 듣도 보도 못한 존재이기에 의문은 커져만 갔다.
[역시 죽이는 건 아깝군. 그냥 연구대상으로 삼을 걸 그랬나?]
네빌은 데스나이트에게 내린 명령이 살짝 후회되었다.
이대로 두영을 죽이기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내린 명령. 이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만한 가치가 없는 녀석이라는 뜻이겠지.]
그는 아쉬움을 억지로 삼켰다.
망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모든 망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는 다르다.
망자가 되면서 거짓을 고하지 않기로 스스로 맹세했기에 그는 결과가 어떻든, 자신의 말을 지킬 생각이었다.
다만, 자꾸만 아쉬움이 남았다.
[피와 살만 없을 뿐, 그 정신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만약, 내가 저 비밀을 밝힐 수만 있다면….]
네빌은 두영을 보며 얼음 속에 갇힌 엘리아나를 떠올렸다.
두영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면, 엘리아나의 봉인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얼음 속에 갇힌 엘리아나.
지금 그에겐 그녀의 부활과 복수 말고 다른 목적은 없다.
스스로의 영혼을 영원의 나락에 떨어뜨릴 정도로 그녀의 부활과 복수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그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더욱 더 욕심이 났다.
[역시 연구하고 싶다. 아무래도 저놈이 이기길 바라야겠군.]
네빌은 데스나이트와 접전을 벌이고있는 두영을 관찰하며 그가 이 시련을 극복하기를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