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12화.
나팔 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왔지만, 대부분이 몬스터들에게 당한 상태였다.
희생을 막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급한 대로마지막 생존자에게 날아드는 도끼라도 막기 위해 나는 검을 휘둘렀다.
두꺼운 데스나이트의 검이 도끼와 부딪치자 불꽃이 튀면서 도끼가 탁구공처럼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두고 나는 도끼를 던진 놈들을 보았다.
거기엔 몬스터라 불리는 생명체들이 있었다.
2족 보행을 하고 인간과 유사한 신체구조를 지녔으나 식인을 하는 놈들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이 아닌 괴물로 취급되고 있으며 하멜 성의 소설집에서는 야생동물이나 범죄자들 못잖게 위험한 놈들로 묘사되었다.
[정말 잔혹한 세상이구나. 이런 괴물들이 존재한다.]
죽은 기사와 병사들의 갑옷을 찢어 살점을 먹는 괴물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생겼다.
적어도 지구에서는 이런 괴물들의 위협을 받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짐승에게 잡아먹힐 위험도 매우 낮다.
때문에 저런 괴물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이쪽 세상 사람들이 가여우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스켈…레톤!”
도끼를 든 몬스터가 다가왔다.
들창코에 멧돼지 같은 어금니가 자라 있는 녀석이다.
조잡하지만, 가죽으로 만든 옷도 입고 있었다.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한 것이 원시인이 만든 것 같았지만, 옷을 입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놈들에겐 약간의 지성이 있었다.
[들창코에 어금니면 오크였나? 뒤에 놈들은 트롤과 오우거고.]
망자들에게서 얻은 기억과 소설 속에 묘사된 표현들을 통해 놈의 정체를 파악했다.
1~2m 정도의 키에 우람한 근육질 몸을 지닌 녹색 괴물이 오크.
3~4미터 정도의 키에 몸 곳곳에 이끼가 잔뜩 자란 괴물이 트롤이다.
마지막 5~6미터 키에 3층 건물에 좀못 미치는 덩치를 지닌 괴물이 오우거다.
거친 가죽 피부에 드럼통 같은 몸매가 특징으로 셋 다 식인종으로 살려둘 가치가 없는 괴물이다.
[훈련의 성과를 보여야겠구만.]
나는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네빌에게 교육받은 대로 마력이라는 에너지를 흘려 검을 쭉 휘둘렀다.
까만 에너지를 머금은 검이 검보라색 빛을 뿜었다.
검기였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의 광선검처럼 한 번 휘두르면 뭐든지 벨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의 에너지였다.
이 검기를 만들면 나무를 수수깡처럼 벨 수 있고, 바위도 두부처럼 썰 수 있다.
[죽어라! 이 괴물들아!]
나는 마력을 불어넣으면서 휘둘렀다.
검을 손에 꽉 쥐고 물수제비를 던지는 이미지를 그리며 휘두르는 순간, 수평으로 휘두른 데스나이트의 검을 따라서 날카로운 검기가 날아갔다.
제비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검기였다.
검기는 질척한 숲의 바닥과 나무를 가르며 쭉 날아갔다.
땅이 일어났고,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검기에 휩쓸린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찢겼다.
범상치 않은 위력.
지구였으면 전쟁 시 떨어지는 포탄과 비견되거나 그보다 더 뛰어난 화력이었다.
날카로운 검기들이 비산하자 오크들이 사지가 잘려 사방으로 튀었다.
망가진 관절인형처럼 놈들의 신체가 매가리 없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피가 흩뿌려지고 도살장에 온 것처럼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힘껏 휘둘렀더니…. 지형이 바뀌었네.]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앞에 있던 오크들이 떼죽음을 맞았다.
오우거와 트롤들의 몸도 잘려 바닥에 피가 철철 쏟아졌다.
운이 좋아 검기에 휩쓸리지 않은 오크 몇 마리와 검기가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던 트롤, 오우거만 빼고 모두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꾸, 꾸루룩….”
거대한덩치에 바위 도끼를 든 오우거들이 무릎을 꿇었다.
검기가 닿는 거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놈들은 지금의 공격으로 온몸에 자상을입는 바람에 내장과 피를 쏟으며 죽음을 맞고 있었다.
오우거보다 조금 작은 덩치에 몸 곳곳에 이끼가 자란 트롤들은 가슴과 머리가 잘리자 온몸이 돌처럼 딱딱하게굳어버리더니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석고상처럼 몸이 깨지면서 죽었다.
“스, 스켈레톤. 강하다. 취익!”
오우거와 트롤들의 죽음을 본 오크들은 두려움에 빠져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망가진 나무를 뛰어넘으며 허겁지겁 숲 여기저기로 달아났다.
겁을 먹은 오크들과 달리 트롤과 무식하게 힘만 센 오우거들은 달아나지 않았다.
놈들은 오히려 동족의 죽음에분노하더니 힘을 과시하는 고릴라처럼 바닥을 쾅쾅 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쿠아아악!!”
“우어어억!!”
[이번엔 힘 조절을 잘해서.]
나는 다시 검을 휘둘러 검기를 쏘았다.
다시 날아간 검은색 검기가 트롤과 오우거들을 정확히 휩쓸었다.
이번에도 바닥이 부서지고, 나무가 잘려나가는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일찍이 겁을 먹고 도망치던 오크들은 검기에휘말리지 않았지만, 트롤과 오우거는 먼저 죽은 놈들과 똑같이 수평으로 날아온 검기에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기갈기 찢긴 몰골로 죽었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죽어가는 트롤들을 보았다.
긴 코와 들쭉날쭉 자란 이빨이 특징인 트롤들은 다른 몬스터들보다 신체 재생력이 우수하다고 평이 자자했다.
소설에서는 찔리거나 베이는 정도의 상처는 침만 발라도 금방 아문다고 표현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혹시 잘린 상처를 재생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소설은 소설인가 보네.]
트롤들은 상처를 재생할 틈도 없이 석고상처럼 굳은 채로 부서졌다.
애초에 몸뚱이가 퍼즐처럼 잘려나간 상태여서 재생이고 나발이고 통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사라진 오크들은 내버려두고 진흙에 이어 먼지까지뒤집어쓴 생존자를 보았다.
[괜찮습니까?]
토종 한국인이라 외국인의나이를 재는 안목은 따로 없지만, 대충 고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연예인이나 인터넷 방송을 하면 금방 셀럽이 될것 같은 미녀였다.
“히익!! 데, 데, 데, 데스나이트!?”
그녀는 내가 손을 내밀며 묻자 눈을 크게 뜨고서 뒷걸음질을 쳤다.
딱딱하게 굳은 몸과바들바들 떨리는 두 다리 그리고 스켈레톤도 아닌데도 리드미컬하게 리듬을 타는 아래턱의 움직임으로 보아 완전히 겁에 질린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실금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나는 뻗었던 손을 거두고 뒤로 조금 눌러났다.
들고 있던 검까지 바닥에박아 세운 후 강조했다.
[괜찮습니다. 물지 않아요. 해치지 않아요. 그냥 지나가던 해골일 뿐입니다. 나팔소리 듣고 당신들을 돕기 위해 왔어요.]
“지, 지나가던 해골?”
[그래요. 우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정하세요. 자, 심호흡. 심호흡합시다. 후후-하! 후후-하! 따라 하세요. 후후-하! 후후-하!]
“후, 후, 하. 후, 후, 하, 후, 하….”
[아니, 발음을 따라 하지 말고 심호흡을 하세요. 심호흡을. 자. 다시. 후후-하! 후후-!]
“후후-하! 후후-!”
[아니, 발음을 따라 하지 말고 심호흡을 하라고! 이 멍청한 아가씨야!]
“히익!”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더니, 어린 아가씨가 물에 빠진 토끼처럼 완전히 겁에 질리고 말았다.
구해주고도 이런 취급을 받는 건 매우슬프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나도 지금 내 꼴이 얼마나 흉측한지 알기 때문이다.
해골이 되기 전에도 사납게 생긴 외모 탓에 피해자를 구해주고도 오해를 받은 경험도 많아서 이 정도 오해는 익숙했다.
[이것 보세요. 아가씨. 상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당신을 구해준 겁니다. 스켈레톤이지만 당신을 구해준 착한 스켈레톤이에요. 나쁜 스켈레톤이 아니라.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 겁먹고 진정하세요. 아셨죠?]
“네….”
나는 다시 거리를 벌리고 차근차근 설명을해주었다. 그러자 뒤늦게 내 말을 이해한 듯 아가씨의 호흡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쿵! 쾅!
아직도 살아남은 오우거가 있는 것인지 숲 안쪽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검님!”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쓰러지는 나무를 본 여인이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더니, 누군가의 이름을 외쳤다.
아무래도 아직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생존자가 더 있습니까?]
“네, 안쪽에 한 분 계세요.”
[도와드릴까요?]
“도와주신다고요? 정말요?!”
도와준다는 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 두려워하며 겁에 질려 있던 여성이 반색하며 답했다.
[네. 그리고 아까 보셨다시피 오우거 정도라면, 한방으로 손쉽게 정리할 수 있거든요.]
“그럼, 부탁해도 괜찮을까요?”
[아가씨는 여기 계세요. 제가 얼른 가서 남은 사람들 구조해 드릴 테니까.]
나는 바닥에 박힌 검을 뽑은 후 어깨를 풀었다.
딱히 어깨가 결리지는 않았지만, 기분이었다.
[어디 가볼까!]
부탁도 받았겠다.
도움을 주기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땅을 박차며 달려가자 다시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나무를 부수고 하얀 것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날아온 하얀 물체를 확인해 보았다.
그것은 검을 든 사람이었다.
“일검님!!”
아가씨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사람이 뒤의 아가씨가 말한 생존자 같았다.
나는 일검이라 불린 남자를 확인해 보았다.
그는 30대 초‧중반 정도로 예상되는 남자였다.
얼굴은 미남계 영화배우처럼 매우 잘생겼다.
격한 전투를 겪은 것인지 하얀 갑옷 대부분이 망가져 겨우 숨만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몸도 훌륭했다. 다만, 상태가 조금 꼬롬했다.
약에 취한 사람처럼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몸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음에도 얼굴에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상태가 꼭 히로뽕 맞은 약쟁이 같네.]
히로뽕이라고 일본에서 들어온 마약이 있다.
코든 주사든 그것을 빤 놈들도 저런 상태가 되곤 했다.
특히나 저만한 상처를 입었는데도, 아파하지 않는 것을 보면 터미네이터거나 약쟁이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적어도 내 상식에서는.
어느 쪽이어도 구조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날 바라보는 일검의 눈빛은 묘하게 거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살기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날 노려보며 말했다.
“…져라.”
[뭐라고요?]
“사라져라!”
일겁이 날카로운 검을 바짝 곧추세우더니 갑자기 내게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그 어떤 데스나이트보다도 빠른 속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내지르는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공격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