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14화. (15/83)



〈 15화 〉14화.

왼발을 앞으로 뻗으며 땅을 박차더니 맹렬한 찌르기로 네빌의 머리를 노렸다.

비장의 수라도 되는지 지금까지 보여준 움직임보다 몇 배는 빠른 공격이었다.


평범한 상대라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머리가 꿰뚫릴 정도로 놀라운 공격이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너무 나빴다.


치치직-!

네빌의 머리를 노린 일검의 검이 무형의 장벽에 막혔다.

장벽과 일검의 검기가 닿자 보라색 스파크가 뿜어져 나왔다.

이에 일검은 양손으로 검을 쥐더니 검기를 더욱 강하게 불어넣으며 네빌의 장벽을 뚫으려 했다.

[버러지 같은 놈! 감히 다 망가진 몸으로 나 네빌에게 대적해? 주제를 알아라!]


네빌은 일검을 괘씸히 여기며 손을  번 휘저었다.

그 순간 일검의 몸이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날아가 엉망진창이 된 숲에 떨어졌다.

“일검님!”


일검이 망가진 나무 잔해에 파묻히자 아가씨가 그를 걱정하며 달려갔다.


네빌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휘저은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감히  네빌에 대항하다니, 네가 지키려한 인간까지 불태워 없애주마! 절망과 후회를 느껴라! 다운 파이어.]

 사람의 머리 위로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숲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큰 마법진에서 회전하는 화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융단폭격처럼 떨어지는 화염에 젊은 아가씨는 겁에 질렸다.

“일검님!”

“일리…나!”

일검은 자신을 감싸는 아가씨를 밀어내더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검  자루로 맹렬히 휘두르며 네빌의 마법을 쳐내기 시작했다.


[호오. 껍데기만 남은 영웅이 말을?]

네빌은 자신의 마법을 쳐내는 일검을 무위보다도 그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며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을 때 종종 보이는 반응이었다.


기회를 포착한 나는 얼른 네빌의 곁으로 향했다.


[뭔가 재밌는 구석이라도 발견한 모양이지?]


[흠. 그렇다.]


[뭔데, 뭐 대단한 거라도 있나?]


네빌은 싸가지가 없고, 남녀노소 관계없이 득이 안 되면 죽이는 냉혈한이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똑똑한 마법사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 이길  없는 강자지만, 그런 그에게도 몇 가지 약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과시욕이다.


이를 테면, 내가  모르는 글자나 언어를 물어보았을 때다.

네빌은 자신이 가진 지식이 얼마나 방대한지 뽐내기 위해 해당 글자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물론, 그것도 모르느냐며 바보 취급하고 온갖 구박을 하지만 그때만큼은 폭력을 쓰지 않았다.


수시로 잘난 척을 하는 것이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그가 가진 지식은 진짜이고  지식을 과시할 때만큼은 많이 관대한 편이다.


오늘날 내가 은근슬쩍 반말로 네빌에게 말을 걸  있는 것도 그의 과시욕을 수백 번이나 참고 들어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흠. 아너스 왕국 영웅들에 대해서 아는가?]


아니나 다를까,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네빌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 그거 대단한 거야?]

[후후! 변함없이 멍청한 녀석.  특별히 알려줄 테니. 그 멍청한 해골에  새겨 넣어라.]


[으응….]

나는 얌전히 네빌의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를 기다렸다.


네빌은 일검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다운 파이어를 방어하는 동안 아너스 왕국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아너스 왕국은 그와 그의 아내 엘리아나를 노린 증오스러운 일곱 왕국 중 하나다.


현재 그곳을 통치하는 왕의 이름은 로서.


로서 왕은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가 보유한 전력 중 가장 강력한 존재는 왕국 건립부터 대대로 내려져  인조인간 영웅 일검, 이검, 삼검 이 세 영웅이었다.

아너스 왕국의 영웅인 일검, 이검, 삼검은 탄생 순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용할  있는 검의 개수를 나타내기도 한다.

일검은 검 하나로 검술의 끝에 오른 검술사이고, 이검은 검 두 자루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검술사다. 그리고 삼검은 검  자루로 삼검술을 펼치는 영웅이다.


이들의 근간이 되는 인조인간의 개발 기술은 아너스 왕국의 300년 역사 속에서 완성된 결정체로 가장 우수한검술사를 영원불멸의 전사로 만들어 지배하는 기술이다.

[영원불멸?언데드 같은 거야?]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는 나와 일검을 번갈아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언데드는 모두 너처럼 끔찍하고 추한 외모를 가져야 정상이다. 하지만저놈은 해골이 아닌 멀쩡한 피부를 가지고 있으니 언데드가 아니지.]

[그러면 뭔데?]

[영혼이 뽑혀나간 껍데기다.]

[껍데기?]


[그래. 아너스 왕국의 영웅들은 산 자의 몸에서 영혼을 뽑아낸 후 썩지 않도록 몸뚱이를 재가공해 만든 존재다. 그들의 머리에는 국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과 전투기술 말고는 다른 명령은 입력되어 있지 않지. 오감은 느끼지만, 영혼이 없어서 그 오감 속에서 기쁨도 슬픔도 찾지도 못한다. 당연히 말도 하지 않고, 미리 체득한 전투 방법에 대한  외에는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빈 깡통 같은 존재다.]

[빈 깡통…. 기계 같은 존재란 말이구나.]

[그래. 너의 세상에 빗대서 설명하면 영혼 없는 기계 같은 존재지. 일종의 생체인형이라고 보면 된다.]


[생체인형…. 그렇게 말하니 쉽게 이해가 되네. 근데 잠깐, 저놈은 아까 말하지 않았어?]


[그래. 나도 그것이 의문이란 말이지.]


아직도 불꽃을 막느라 정신없는 일검을 보며 네빌이 다시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무래도 호기심을 넘어 관심까지 생긴 모양이다. 그리고 관심이 생겼다면 일단, 안심할 수 있다.


네빌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있던 화염이 폭죽처럼 허공에서 폭발했고, 마법진도 사라졌다.


네빌은 검고, 하얀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대지 위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일검을 보았다.


일검은 검도 갑옷도 거의 다 파괴된 상태였다.

멀쩡한 것은 그 엄청난 화염 속에서도 불타지 않은 그의 머리카락과 눈물을 흘리며 일검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는 아가씨뿐이었다.

[저들을 살리고 싶나?]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일검과 아가씨를 본 네빌은 내게 말했다.


내가 답하지 않자 네빌은 마지막 검기를 짜내는 일검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네 할 일을 해라.]


아가씨의 앞으로 당도한 네빌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내게 한 것과 같이 비밀을 풀기 위해 기억을 읽으려는 것 같았다.

이를 모르는 일검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다시 네빌에게 달려들었다.


처음보다 검기도 작고, 움직임도 엄청나게 느려졌지만, 한껏 일그러뜨린 표정만큼은 지금 당장 네빌의 머리를 박살 내고도 남을 정도였다.


나는 네빌을 노리는 일검을 막기 위해 그 뒤로 움직였다. 그리고 일검의 검이 네빌의 머리에 닿기 전에 그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내던졌다.


일검은 잿더미로 변한 숲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다시 일어나 날 노려보았다.


[저놈이 관심을 보였으니, 너도 여자도 죽이진 않을 거야. 얌전히 투항해라.]

“크아!”


경고했지만, 일검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힘까지 짜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야전히 전보다 느린 움직임.


나는 여유롭게 일검의공격을 막은 후 뒤로 쳐냈다. 그리고 내가 일검을 상대하는 사이.


네빌은 눈을 크게 뜨고 주저앉아 있는 아가씨의 기억을 빠르게 읽어가기 시작했다.

아가씨의 몸이 덜덜 떨리고 침이 흘러내렸다.


기억을 강제로 읽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도 저런 능력이 있으면  좋을  같은데.]


내가 망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억은 파편에 불과하다.


당사자의 이름이나 인생 그 전부를 알 순 없다. 하지만 네빌은 다르다.

그는 그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읽을 수 있다.


마법을 건 대상의 행복하고, 즐겁고, 부끄럽고, 쑥스럽고, 완전 쪽팔리는 이불킥 흑역사까지 모두 읽는 것이 가능하다.

단점이라고는 기억을 읽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과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뿐이다.

“비…켜라!”

발로  넘어뜨리기가 무섭게 일검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캉!


검과검이 부딪치자힘에서 밀린 일검의 몸이 마치 공처럼 바닥을 튕기며 날아갔다.

[이제 그만두지?]


일검은 경련을 일으키는 다리 근육에 힘을 주며 또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제 힘이 바닥난 것인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검기도 사라지고 없었으며 몸도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다 다시 맥없이 쓰러지는 일검을 두고 어느새 기억을 다 읽은 네빌을 보았다.

네빌은 의문이 풀렸는지 침을 흘리며 울고 있는 아가씨를 보더니 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렇게  것이로군.]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하는 네빌.

그는 쓰러진 일검을 보며 말했다.

[새로운 인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인가? 크큭! 인형에게 인격이라. 흥미롭군. 두영! 저 녀석을 생포해라. 실험실로 데려간다.]

[다행이다.]


나는 안심했다.

실험실로 데려간다는 말은 적어도 지금 당장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기에 나는 아직 쓰러지지 않은 일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려는 그의 후두부를 때려 확실히 기절시켰다.


제대로 맞은 일검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해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그런 일검을 어깨에 들쳐 메고 네빌을 보았다.

놈은 손가락을 까딱여 마법을 사용했다.

순간이동 마법이었고, 마법이 끝나자 우리는 하멜 성에 마련된 네빌의 실험실로 이동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하멜 숲에서 시약과 유리병이 가득한 실험실로 장소가 바뀌었다.

실험실은 조그만 빛의 구슬들이 둥둥 떠다니며 반딧불처럼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네빌이 직접 만든 반딧불 형광등이었다.

지구의 형광등을 보고 새로 만든 마법 생명체였다.

눈앞을 스쳐 지나는 빛의 구슬들을 뒤로하고 나는 보이지 않는 아가씨를 찾았다.


[어라? 아까 그 아가씨는?]

[두고 왔다.]

[응? 두고 왔다고?]


[그래. 필요 없으니 두고 왔다.]

[…잠깐만. 그 숲은 몬스터들이 자주 유입되는 거 같던데, 가만히 두면 위험한 거 아니야?]


[그렇겠지.]


[그럼. 왜 두고 온 거야?]

[방금 말했을텐데? 필요 없어서 두고 왔다고.]


[뭐?]

[내가 왜 아무런 이용가치도 없는 인간의 편의를 봐줘야 하지? 뼈와 살을 찢어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만 해도 나의 관대함을 칭송해야 한다.]

네빌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뒤늦게 그가 본래 이런 놈이었음을 깨달았다.


쪼잔한 새끼!


순간 좋은 놈이라고 착각한 스스로가 한심했다.

[다시 돌려보내 줄 리가 없지!]


나는 순간이동을 부탁하려다 말고 남겨진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실험실을 나섰다. 그러자 네빌이 끼어들었다.

[구하려는 것이냐?]

[그래.]


[지긋지긋한 녀석이군.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는 인간이다. 그냥 숲에서 죽도록 내버려둬라.]


[돌아갈 곳이 없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이제 그 여자가 돌아갈 곳은 없다는 뜻이다. 아너스 왕국도,  가문도 모두 무너졌다. 몸을 의탁할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게지.]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는 네빌.


[이해가  되는데?]


[답답한 놈.]


네빌은 대답을 하는 것이 귀찮아졌는지 침묵한 채 다양한 색상의 시약이 든 병들을 선반에소환하기 시작했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먼 곳에 있던 시약들 일부가 그의 곁으로 날아오고, 빛과 함께 그의 앞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실험실 바닥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도 보라색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필요한 시약을 챙긴 네빌은 대답 대신 내가 메고 있던 일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놈을 마법진의 중앙에 내려놓아라.]

거역할 수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일검을 마법진의 중앙으로 내려놓았고, 네빌은 골방에서 열심히 만들던 마법진을 허공에 그리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그의 검지가 움직일 때마다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네 도움은 필요 없다. 마음대로 해라.]


[알았어.]

네빌이 자비를 베풀었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아가씨를 구해줘도 괜찮다는  같았다.

[금방 다녀올게.]


[답답한 녀석.]

네빌은포기한 듯 실험에 집중했다.

나는 바쁜 그를 두고 실험실을 빠져나가 아가씨가 있을 하멜 숲으로 향했다.


네빌처럼 순간이동을 하는 재주가 없었기에 하멜 성의 왕성을 빠져나간 후, 땅을 박차 지붕들을 밟고 달렸다.


성벽까지 풀쩍 뛰어넘은 후 한달음에 하멜 숲까지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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