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6화.
하멜 성 외곽 30km 르나르국 주둔 병참.
붉은색과 백색이 잘 어우러진 도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예리한 눈으로 천막의 입구를 주시했다.
남자의 정체는 약관의 나이에 장수를 지내고 실력으로 르나르국 대신(大臣)의 자리까지 오른 파이로 오음이었다.
르나르국에서 하멜 성까지 이동하느라 까칠한 수염이 턱과 볼 곳곳에 듬성듬성 나 있었고, 걱정으로 밤잠을 설친 바람에 눈그늘이 잡히고 볼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쏙 들어가 있었다.
로나스 왕의 명령을 받아 성녀의 탈환과 하멜성 수복을 위해 출정을 준비한 지 벌써 3개월이다.
그는 그동안 전사와 군대를 모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검을 연마하여 실력을 쌓고, 전략과 전술을 점검해 하멜성을 탈환할 계획을 세웠다.
급하게 준비된 전쟁이라 희망이 없다고 여겼으나,가문의 사재까지 다 털어서 의용병을 기용하고, 검술도 열심히 연마해 성취를 거둬 승산을 높였다.
또한, 성녀를 탈환하고 악을 무찌른다는 대의명분을 널리 알려 전사들의 사기 또한 높였으니.
그가 이끄는 전사들이라면 이름을 떨치지 못한 남방의 소국 정도는 능히 정복하거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허나, 파이로 대신의 안색은 처음 로나스 왕에게 명령을 받을 때보다도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그늘진 얼굴로 병참 앞에 모인 병력을 확인했다.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불세출의 장수(將帥) 5백.
그의 가문에 속한 일반 병졸들이 5천.
검기를 다룰 수 있는 의협지사 3천.
술법을 다룰 수 있는 의용지사 5백.
의협지사와 의용지사는 돈을 주고 급하게 모았으나 그래도 많이 모여서 9천에 달하는 병력이 생겼다.
여기에 르나르국의 칠각보전 경각, 진각, 사각까지 합치면 파이로 대신 혼자서 어지간한 나라는 족히 수복하고도 남을 규모였다.
단기간에 모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군대나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실력자들을 인솔할 능력을 지닌 장군들이 모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병졸들은 자신의 훈련을 받은 최정예들인데다 인솔할 장수들이 이미 있으니 진두지휘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급하게 모은 의협지사들은 그 사정이 다르다.
좋은 뜻을 위해 뭉쳤으나 그래 봐야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이다.
떠돌이처럼 홀로 다니는 자들이니 하나로 뭉쳐 펼치는 전술이나 전투는 알지 못한다.
개인이 주도하는 저잣거리 싸움밖에 모른다. 거기다 개개인의 실력 격차도 큰 편.
통솔은 물론, 전법을 짜기도 쉽지 않았다.
“문맹도 많으니. 그들에게 기수를 보여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과 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글을 모르면 기수를 제대로 못 읽는다.
공격 진형 및 방어 방진을 구축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수조차 모르니 전략‧전술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 가르칠 수도 있지만…. 단기간에 어설프게 가르쳐봤자 개개인이 지닌 역량만 흐려지겠지.”
파이로 대신은 한숨을 쉬었다.
기수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기수를 읽고 하나처럼 움직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하는 전술에서 어설픈 이가 생기면 오히려 진형이 더 꼬일 뿐이니 안 하니만 못하다.
기수를 착각해서 혼자 따로 움직이기라도 하면 민폐만 될 뿐이다.
이러한 문제 탓에 파이로 대신은 로나스 왕에게 장군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르나르국의 훈련된 장군들이라면 글을 모르는 의협지사들이라도 짧아도 보름 안에 최소한의 명령 전달은가능케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사를 앞둔 오늘날까지 오라는 장군들은 안 오고 로나스 왕으로부터 전언만 날아온 상태였다.
그의 표정을 어둡게 만든 원인이었다.
[파이로 대신의 활약을 기다리고 있겠다. 성공하면 큰 보상을 내리리라.]
사실상 장군들은 지원해 줄 수 없다는 말이다.
르나르국은 이번 일에 영웅을 셋이나 걸었다.
그 빈자리를 장군들이 채워야 하니 차마 뺄 수 없는 것이다.
“젠장.”
두루마기에 적힌 왕의 전언을 본 파이로 대신은 손에 쥔 두루마기를 꽉 쥐고 이를 갈았다.
일을 시켰으면 돈이든, 지원이든 해줘야 하는데 하는 일에 비해 지원이 너무 미비해 화가 났다.
더구나 하멜 성의 성녀를 지키고 있는 흑마법사 네빌은 이미 수만 대군들로도 감히 넘보지 못한 강적.
만반의 태세를 갖춰도 부족할 지경인데, 어리석은 왕은 영웅 몇 명만 후원해 주고는 모든 걸 그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정녕 지금의 병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무리 칠각보전을 셋이나 붙여줬더라도 성녀를 탈환하면 다른 왕국에서 움직일지도 모르는데….”
파이로 대신은 화가 치밀었지만,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이 모든 건 우리가 충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탓이다. 전하가 두려워 충언을 고하지 않은 탓이다. 이제서야 전하를 원망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자책했다.
따지고 보면 병력이 부족한 것도, 장수가 필요한 것도 어전회의에서 미리 로나스 왕에게 고했어야 할 말이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모든 대신과 신하들은 그러지 못했다.
단순히 로나스 왕이 두렵다는 이유로 눈을 감은 것이다.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않아 놓고, 뒤늦게 로나스 왕의 얕은 생각을 나무라고 원망하기엔 그 자격이 없다.
“정의를 위해 뭉쳤다고는 하나 그래 봤자 돈을 받고 움직이는 용병. 차라리 전투는 개개인에게 맡기고 지금처럼 공격, 후퇴의 기수만 일러두는 것이 낫겠지.”
그는 기대한 장수들의 지원 소식이 없음을 확인하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책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획을 다 짠 후에는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자 두루마리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양옆을 지켜주고 있는 장수들을 보았다.
충성심 하나로 자신을 따라와 준 우장과 좌장이 보였다.
지긋한 수염에 강직한 인상을 지닌 장수들이었다.
아직 젊은 파이로 대신과 달리 나이가 50에 이르른 장수들로 파이로 대신의 뜻과 패기에 반해 충성을 맹세한 이들이었다.
“그래도 그대들이 있어서 가는 길 외롭지는 않겠구나.”
파이로 대신의 뜻을 아는 우장과 좌장은 아무런 말도 않은 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번 임무가 쉽지 않다는 것과 어쩌면 이 싸움이 마지막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파이로 대신은 가신들을 보며 숨을 깊이 내쉬더니 백자 두루마리에 출사표를 채워나가기시작했다.
[500년의 역사 속 칠각룡의 은혜가 르나르국을 일으켜 세웠으나, 사사로운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백성의 피가 마르지 않는다. 백성의 자존심을 대변해야 할 그 입에는 기름이 가득하고, 그 정신에는 음기만이 남았으니. 대를 이을후계가 없어 앞날을 기대할 수도 없노라. 선대들이 어렵게 일군 땅마저 백성이 흘린 피와 땀으로 질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이 충의를 어찌 다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이 되어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음이나 이제 그 꿈을 접어 왕의 탐욕을 위해 내 머리를 바친다. 부디 신의 마지막 충의에 조상님들을 뵐 면목이 남아 있기를….]
그의 출사표에는 나라에 대한 걱정과 왕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현명한 왕이라면 이 출사표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을지도 모르지만….
로나스 왕은 우둔한 사람이기에 파이로 대신이 출사표로 자신을 깠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파이로 대신은 다 적은 출사표를 말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병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령병에게 넘겨주었다.
이를 본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유언장이라도 쓰는 건가? 꽤 성실한 짓을 하는군.”
“파이로 대신은 잘생겼는데, 겁이 너무 많은 거 같으셔요.”
“…….”
그의 앞으로 세 사람이 다가왔다.
한 명은 백색의 눈에 우람한 덩치 그리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긴 손톱을 가진 아인족 사내였고, 또 다른 한 명은 거울을 든 백발에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공전절후의 외모이지만 그녀 역시 아름다움 속에 날카로운 송곳니와 긴 손톱을 숨기고 있었다.
파이로 대신은 이어서 두 사람의 뒤에 있는 사내를 보았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자였는데, 얼굴을 노란 두건으로 완전히 가린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였다.
“오셨습니까. 신 파이로 칠각보전을 뵙습니다.”
파이로 대신이 손을 모아 인사를 올렸다.
그의 앞에 있는 세 사람은 르나르국의 수호신이자 칠각룡의 선택을 받은 일곱 괴이 칠각보전이었다.
각각 진각(震角), 경각(景角), 사각(沙角)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우람한 남자가 우레의 힘을 품은 진각이고, 백발에 아름다운 여성이 거울의 힘을 가진 경각이다.
끝으로 두 사람의 옆에서 미라처럼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서 있는 남자가 모래의 힘을 받은 사각이었다.
오직 왕가의 핏줄만이 부릴 수 있는 로나스 왕의 충실한 부모이자, 형제이자, 연인이었다.
파이로는 고개를 들어 칠각보전의 이마를 보았다.
그들의 이마에는 칠각룡에게 하사받은 뿔들이 달려 있었다.
일곱 괴이들의 태생은 모두 인간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도깨비들이다. 그래서 칠각룡에게 뿔을 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그 모습은 인간과 유사한 도깨비의 모습이었다.
“칠각보전께서 셋이나 와주시다니. 신 파이로 이번 출정에 마음의 짐을 던 것 같아 든든합니다.”
파이로 대신은 깍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공치사를 했다.
긴 세월 르나르국을 지켜온 수호신들에게 갖추는 기본적인 예의지만 오늘은 그 의미가 평소보다 많이 퇴색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대들이 남겨준 유언에 로나스 왕이 이 지경으로 자란 것이 바로 칠각보전이 잘못을 나무라지도 않고 애지중지 키운 탓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나. 예의 바른 것 봐. 저 턱, 저 코. 역시 파이로 대신은 갈수록 소녀 취향이 되는 것 같사와요.”
예의 바른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경각이 자신의 가슴을 살짝 노출한 채 파이로 대신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남자의 양기를 먹고 살던 도깨비, 특히 미색을 겸비한 남자가 취향이었다.
파이로 대신은 나이가 조금 들었지만, 소싯적 미남 소리를 들어 온데다 문무 모두 오랜 시간 깊이 수양해 젊음을 크게 잃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관리하지 않고 듬성듬성 자라게 둔 수염조차 중후한 멋을 내주었기때문에 경각은 어린 남자들보다 파이로 대신 같은 스타일을 더 좋아했다.
파이로 대신은 경각이 자신의 팔에 가슴을 비비며 음기를 뿌려대자 평상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말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각님. 소신, 하멜 성을 차지한 네빌의 힘이 대단하다 하여 지난밤을 뜬눈으로 보냈으나 이렇게 경각님과 두 영웅께서 행차해주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모쪼록 이번 임무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가 듣기 좋다만, 이번만은 네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진각의 말에 파이로 대신이 자세를 풀고 그를 보았다.
“우리도 네빌이라는 리치의 소문을들었단 말이다. 듣기로 그자는 본래 하멜 성의 궁정 마법사였다지?”
“그, 그렇습니다.”
“내 아주 오래전에, 그자를 마주한 적이 있다. 괴이도 아닌 평범한 인간인 주제에 엄청난 힘을 쌓았더구나. 그런 놈이 리치가 되었으니, 그 힘은 훨씬 더 강력해졌을 터. 요사스러운 힘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우리 셋이 힘을 합쳐도 쉽지 않을지 모른다.”
“크흠….”
진각의 말에 파이로 대신은 말을 삼켰다.
칠각보전까지 인정했다면 네빌이 가진 강함은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내 예상대로 칠각보전 셋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괴인이란 말인가. 쯧! 내심 과장된 소문이길 바랐건만….’
“앓는 소리 하기는, 어명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달성해야 한다.”
진각의 말에 조용히 있던 사각이 대꾸했다.
“누가 어명인 거 모르나?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걱정돼서.”
“흥!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진각 네놈도 유언장이라도 남기지 그러느냐?”
얼굴을 가린 그는 평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어투로 말하기로 유명했는데, 어명이나 로나스 왕과 관계된 이야기에서는 지금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만큼 충성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깐깐한 자식 같으니. 사실을 말해도 지랄이네.”
진각은 툴툴댔다.
그들의 대화에 파이로 대신은 사각이 이번 전쟁에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과 진각은 마지못해 참전했음을 눈치챘다.
‘사태를 파악한 것은 진각뿐이로군. 아니다. 셋 다 우리보다 오랜 세월을 살고 많은 경험 많은 괴이들이다. 사태는 모두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내키느냐 내키지 않느냐. 그 차이만 있는 것이겠지.’
진각과 사각의 분위기를 빠르게 훑어본 그는 속말을 삼키고 다시 격식을 차렸다.
“저와 수하들이 세 분을 최대한 보필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소녀는 파이로 대신이 필요하와요. 출정 전에 가볍게 몸을 푸는 건 어떻겠사와요? 소녀 요즘밤이 너무 외로와요.”
경각이 음기를 뿌렸다.
마음이 동할 것 같은 음기에 파이로 대신은 정신을 가다듬고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말한 몸을 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 나라의 대신인 그가, 대사를 앞두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상스러운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계속해서 파이로 대신에게 엉겨 붙던 경각의 행동에 진각은 파이로 대신의 난감함을 느꼈는지 혀를 차며 그녀를 떼어주었다.
“다 늙어서 꼬마한테 주책 부리지 말고말에나 올라라. 하여간. 좀 반반한 인간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니. 쯧쯧쯧!”
“늙다니요? 소녀 마음은 아직 10대이와요.”
“10대? 600대를 착각한 게 아니고?”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닥쳐.”
“할망구 꼬장 부리는 것 보소.”
“뭐야! 할망구! 말 다했어!?”
진각과 경각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사각은 경각의 음기에서 벗어난 파이로 대신의 앞에 섰다.
파이로 대신보다 키가 큰 그는 대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병력을 온전할 수 있는 편이 유리할 테지. 혹시 모를 함정은 내가 먼저 가서 파훼하도록 하겠다. 하멜 성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무미건조한 음성.
흥분하지 않았을 때는 마치 동굴에서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감사합니다. 사각님.”
‘그래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구나.’
사각의 태도에 실낱같은 희망을 얻은 파이로 대신은 가루가 되어 땅속으로 사라지는 사각을 뒤로하고 아직 남아 있는 전령을 보았다.
“가거라. 가서 전하께 출병을 고하라.”
“예! 대신.”
파이로 대신은 아직 자리에 남은 전령을 보냈다. 그리고 출병 준비를 마친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좌측부터 병사들과 장수 검기를 다룰 수 있는 의협지사들과 술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차림에 통일성이 없어 얼핏 보기에 오합지졸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나라를 위해, 악에 맞서고자 뭉친 사람들이었다.
설령 그 내막이 로나스 왕의 사적 욕심을 위한 것이라 치더라도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낮잡아 볼 것이 아니었다.
파이로는 존경심을 담아 외쳤다.
“지금부터 우리는 르나르국을 위해 출병한다! 앞으로 흘릴 우리들의 피는 백성을 위한 것이며, 나라는 위한 것이다! 그러니 전하와 조상님들 보기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전투에 임하라! 전군! 진군하라!”
대신의 연설은 짧지만, 힘이 넘쳤다.
병사들의 마음을 전율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어서 우장과 좌장이 소리쳤다.
“목표는 하멜 성! 사악한 흑마법사 네빌을 처단하고 성녀를 탈환한다!”
“전군! 진군하라!”
말을 탄 자들이 먼저 움직이고, 그 뒤를 병사들과 의협, 의용지사들이 뒤쫓았다.
대열을 맞춘 그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하멜 성을 향한 진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