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23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특대 사이즈의 검은색 검기가 앞을 막는 모든 것을 가르며날아갔다.
“바, 방어해라!”
두껍고 거대한 검기를본 장수들이 부랴부랴 검기를 최대치로 일으키더니 각자의 검을 수평으로 세운 채 내 공격을 막았다.
스파크가 튀며 검기가 막히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곧 그들의 검기와 검은 내 검기에 밀려 완전히 잘렸다.
검과 검기가 잘리자 장수들의 몸도 흉흉한 검은색 검기에 휩쓸려 지워졌다.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장수들의 목숨이 바람을 맞은 등불처럼 힘없이 꺼졌다.
몸통이 잘린 이로 모자라 머리가 통째로 사라진 이도 발생했다.
그들의 뒤를 지키며 돌진하던 사각의 모래 사자 역시 내가 휘두른 검기에 잘려 몸통이 반으로 나뉜 채 다시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잘린 모래 사자가 뒤로 넘어지듯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모래를 뒤집어쓴 장수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악마 같은 놈! 아직도 이만한 힘이 남아 있을 줄이야!”
“전열을 가다듬어라!”
다시 모래를 모아 육체를 회복한 사각과 파이로 대신이 소리쳤다.
심각해진 그들의 분위기를 뒤로하고 나는 신체가 잘려 죽은 장수들의 시신을 보았다.
신체 곳곳이 찢어진 채 죽은 끔찍한 몰골이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저들의 말대로 악마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예전 같으면 패닉에 빠졌겠지만, 심장과 눈물샘이 없어서 그러진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었다고, 자업자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검을 들었다.
적들이 주춤하자 일검이 땅을 박차 자신의 앞을 막는 장수들의 진영을 꿰뚫었다.
검으로 장수들의 목과 사지를 베고 꿰뚫으며 돌진한 그는 파이로 대신을 노렸다.
“놈을 막아라!”
장수들이 검을 들고 나와 그를 막았다.
일검은 더 파고들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병사들의 피로 범벅이 된 일검의 모습은 흡사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살인마 같았다.
[다시 간다.]
일검의 앞으로 나서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검기를 다발로 뿌리자 장수들도 각자의 검기를 휘두르며 내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강력하고 많아진 검기에 전열을 유지하던 장수들의 사지가 잘리며 쓰러졌다.
“끄아악!”
“물러나라! 일단, 물러나!”
“태세를 갖춰야 한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안 된다! 거리를 주면 위험하다!”
“어서 접근해라! 놈이 공격할 틈을 줘선 안 된다!”
“두려워 말고계속 공격하라!”
장수들이 산발하는 검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의협지사라는 자들은 일찌감치 겁을 먹고 달아났다.
“뭣들 하느냐! 어서 엄호하지 않고!”
파이로 대신은 참지 못하고 주술사들을 닦달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주술사들은 방어를 포기하고 화염을 쏘는 등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나와 일검을 압박하기에는 그 화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도망치는 의협지사들처럼 주술사들도 겁에 질려 달아난 것이다.
“빌어먹을 겁쟁이들 같으니!”
파이로 대신은 도망가는 술사들과 그와는 대비되게 후미에서 지원을 나오는 병력을 보았다.
수는 많지 않지만, 지원 병력이 오고 있었다.
그새 언데드들을 다 처리한 부대가 지원을 오고 있는 것이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우린 여기서 다 죽을 거야.”
“놈들은 괴물이야. 인간인 우리가 이길 수 없어.”
“개죽음이다. 완전 개죽음이야.”
“지원 부대가 온다! 그들이 올 때까지 버텨라! 칠각보전이 네빌을 처치하면 승리할 수 있다!”
파이로 대신이 전의를 상실한 전사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그때.
[어딜!]
경각과 진각을 상대하던 네빌이 둘의 공격을 피하더니 손을 들었다. 그러자 엉망진창이 된 진형에서 죽은 이들이좀비와 스켈레톤이 되어 되살아났다.
이번에도 스켈레톤 나이트와메이지로 구성된 망자 부대였다.
숫자는 아까보다많거나 비슷했는데, 지원군을 끊기 위해 부대의 사이에서 나타나 길을 막았다.
“아, 안 돼!”
흐트러진 전열 사이사이에서 나타난 스켈레톤을 본 파이로대신은 절망했다.
안 그래도 네빌이 마법을 난사해서 진형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참인데, 그 사이사이에 망자들까지 생겨났으니 전열을 가다듬을 틈이 없었다.
“스켈레톤들을 막아라! 우장! 좌장! 부대를 이끌고 나를 따르라!”
파이로 대신은 명령을 내리더니 앞을 막는 언데드들을 검으로 베어버리며 일검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병사들과 달리 그는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일검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기개가 있는 자들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기초 기술이라도 되는지 다들 검에 화염을 두른 상태였다.
나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일검도 함께 검기를 쏘았다.
대다수의 전사는 우리가 쏘는 검기에 당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파이로 대신처럼 실력이 출중한 자들은 거리를 좁히는 것에 성공했다.
“목숨을 걸어라!”
파이로 대신이 소리치며 일검에게 육박했다.
그가 거리를 좁히자 검기를 총알처럼 쏘던 일검 역시 움직였다.
그는 날카로운 섬광을 쏘아 우측에 있던 적들을 단숨에 처리하더니 땅을 박찼다. 그리고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움직이며 파이로 대신을 공격했다.
머리를 노리는 검에 파이로 대신은 몸을 젖혀 간발의 차로 일검의 공격을 피했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기가 무섭게 얼른 검기를 일으켜 일검을 공격했다.
이에 우장과 좌장도 파이로를 도와 함께 일검을 공격했다.
넷은 날카로운 공방을 주고받았다.
영웅이라 불리는 일검과 대등하게 싸우는 파이로 대신과 그의 가신들.
용호상박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계속될 것만 같던 공방에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파이로 대신이 왼쪽 뺨과 귀 그리고 어깨와 옆구리를 베인 것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통증에 파이로 대신은 이를 악물고 반격에 나섰다.
“염화(炎火)!”
그의 손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방사기와도 같은 불꽃이 일검의 몸을 밀쳤다.
일검은 화염에 맞아 밀려났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닌지 검게 그을린 피부를 손으로 툭툭 털더니 다시 검을 들어 파이로 대신에게 움직였다.
좌장과 우장은 화염이 맺힌 검을 들고서 일검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쾅!!
두 사람의 검이 일검의 검을 내리쳤다.
땅이 내려앉을 정도로 강력한 일격에 일검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묵직한 패도를 익힌 두 사람의 공격에 일검도 금방 자세를 바로잡지 못했다.
“이놈! 이제 그만 안식에 들어라!”
파이로 대신은 두 사람을 이끌고 다시 일검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은 마치 합을 짠 것처럼 하나 된 움직임으로 그를 압박했다.
머리와 허리를 동시에 노리는 셋의 공격에 일검은 빠른 검술로 두 전사의 공격을 동시에 쳐내며 거친 공방을 나누었다.
그들이 일검을 몰아붙이자 겁을 먹었던 장수들도 죽음을 각오한 듯 악을 지르더니 달려들었다.
전사들은 그의 검을 막을 생각은 않은 채,오직 공격만 했다.
하나도 아니고 수십이나 되는 전사들이 그렇게 달려들자 일검의 손발도 아까 전 내가 그런 것처럼 점점 더 바빠졌다.
그는 조금씩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얼핏 보면 적들의 연속 공격에 밀려나는 것 같지만, 단순히 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드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다음 적의 공격을 막거나 방해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적들의 검이 서로 충돌하게 해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막을 시간을 벌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액션 스쿨을 다니는 배우들이 합을 맞추어 연출한 것만 같았다.
일반인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경지.
기술을 뛰어넘어 예술의 경지 오른 검무였다.
멋진 모습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나는 사각의 공격을 막으며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일검을 돕기 위해 검기를 발사했다.
사방으로 퍼진 검기가 일검을 추적하는 장수들의 발밑을 노렸다.
경계선을 긋듯 앞을 가르며 떨어진 검기가 바닥에 충돌하자 폭발을 일으켰다.
파이로 대신을 따르던 부하들은 그 폭발에 휘말려 뒤로 밀려났다.
그치지 않고 다시 마력을 실은 다리로 바닥을 밟아 충격파를 일으켰다.
이미 검기에 휩쓸려 갈라진 땅이 크게 함몰되며 땅바닥이 벽처럼 치솟았다.
앞을 막는 흙과 바위의 벽에 겁을 먹은 적들이 주춤주춤 물러나자 그들의 뒤에서 네빌의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나타나 공격을 가했다.
적잖은 수가 붙었으니 당분간 일검에게 적들이 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놈! 한눈팔지 마라!”
바위벽을 뚫고 사각이 나타났다.
피어오른 먼지를 뚫고서 나타난 그는 손을 뻗어 모래를 일으켰다.
송곳니처럼 올라온 모래가 다시 날 가두려 했다.
[끈질긴 놈.]
다시 사방에서 덮쳐오는 모래를 암흑오라를 벽처럼 일으켜 막고 밀어냈다.
공격이 실패하자 사각은 다음 수를 부렸다.
바닥에서 모래 사슬이 올라오더니 내 다리와 팔을 감았다.
다리와 팔이모래 사슬에 감기자 머리 위에서 모래로 이뤄진 거대한 낫이 떨어졌다.
목을 노리는 모래 낫.
나는 오른쪽 사슬을 당겨 모래를 부숴 버린 후 검을 위로 휘둘러 모래 낫을 쳐냈다.
모래 낫이 깨지며 흩어졌다.
흩어지는 모래 낫을 보며 확신했다.
‘지금 놈은 나보다 약하다! 이길 수 있다.’
확신이 생기자 몸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번엔 좀 더 강하게 사각을 공격했다.
치로 공격을 뿌리치고 단숨에 거리를 좁혀 팔을 베자 사각 또한 내가 달라졌음을 느꼈는지 겁을 먹고 달아났다.
늘 그렇듯이 위험하다 싶으면 땅으로 숨고, 잡았다 싶으면 모래로 변해 도망쳤다.
아무리 공격해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루와 싸우는 것 같았지만, 몸을 회복하는 것이 점점 더 느려지고 있었다.
놈도 마력이 줄어드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
나는 도망치는 사각을 쫓았다.
쫓으며 놈의 뿔을 주시했다.
녀석의 뿔은 내가 유일하게 공격에 성공하지 못한 부위였다.
심장과 얼굴도 베었지만, 뿔은 녀석이 공격을 피하면서 한 번도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다.
놈의 약점이 분명했다.
‘이번엔 뿔을 노린다!’
나는 사각의 뿔을 노리고 검기를 발사했다. 그러자 놀란 사각이 다시모래 송곳을 일으켜 막으며 반격했다.
그 반격을 피해 다시 뿔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놈이 내 공격을 뭉친 모래 방패로 막더니 다시 모래 속으로 들어가 도망쳤다.
얌체처럼 치고 빠지는 사각의 전술.
[한 대 맞아주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사각이 다시 공격하기를 기다렸다.
곧 땅속으로 숨어든 사각이 모래를 파도처럼 일으키며 바닥에서 솟구쳤다.
“잡았다! 이놈!”
솟아오른 그는 거대한 모래 파도를 조종해 날 덮쳤다.
너울거리며 퍼부은 모래파도가 몸을 휩쓸자 그 속에서뭔가 회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팔과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놈이 모래를 드릴처럼 뭉쳐서 돌리며 내 몸을 후벼 파고 있었다.
마력을 담은 공격이어서 진짜 드릴을 쑤시는 것처럼 몸이 아팠다.
통증은 점점 더 커졌지만, 나는 꾹 참고 사각을 찾았다.
사각은 모래 파도의 끄트머리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무언가로 변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모래로 된 뱀이었다.
길고 커다란 외뿔과 두 개의 독니를 가진 거대한 코브라!
사각은 그것으로 변해 공격에 나섰다.
“끝이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코브라 위에서 상반신만 내민 사각이 코브라의 주둥이를 벌리며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날아왔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한눈에 봐도 위험한 공격이었지만, 저쪽에서 먼저 와주는 편이 확실했다.
[이때를 기다렸다!]
나는 암흑오라를 일으키면서 마력을 방출했다.
충격파가 일어나면서 주위의 모래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둥글게 밀려났다.
공간이 생기면서 사각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나는 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하멜 숲에서 처치한 괴이의 촉수를 떠올렸다.
사방으로 퍼지며 공격하던 촉수!
그 능력을 연상하고 다시 마력을 일으켰다.
‘암흑오라!’
검은 아우라가 내 주위에서 일어났다.
연기처럼 일어난 아우라는 이내 촉수처럼 뻗어 나가더니 코브라로변한 사각의 몸을 휘감았다.
마치 문어나 오징어가 먹잇감을 잡아채는 모양새였다.
“이놈!”
몸을 옭아맨 아우라에 사각은 깜짝 놀랐다.
모래들이 검게 오염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 전체가 아우라에 묶이고 오염된 바람에 자랑인 ‘모래로 변해 도망치기.’도 사용할 수 없었다.
[잡았다! 요놈!]
나는 검게 물들며 굳어버린 사각의 모습을 확인하곤 검을 들었다. 그리고 사각의 뿔을 노리고서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