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25화. (26/83)



〈 26화 〉25화.

칠각보전 3명이 소멸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이국과 괴이의 침략을 우려한 르나르 국의 백성은 동요했다.


이에 로나스 왕은 직접 근위대를 풀어 매로 두려움에 떠는 백성을 다잡았다.

“파이로 대신 그 한심한 놈이 결국 실패했구나! 들어라! 무능한 대신의 실수로 르나르국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오늘부로 파이로 일가의 이름은 르나르국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파이로 일가를 모조리 불살라라!”


힘으로 백성을 다잡은 로나스 왕은 진각, 경각, 사각의 죽음을 파이로 대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리고 모든 죄를 그 가문에 물었다.


파이로 대신의 죽음으로 비통함에 잠겨 있던 파이로 일가는 그날  모두 불타 없어졌다.

하룻밤 사이에 수백에 달하는 파이로 일가의 식솔들이 모두 사망하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핏줄만이 르나르국을 도망쳐 망명했다.


파이로 대신의 결백을 아는 대신들과 백성은 죽은 파이로 대신의 명예를 욕보이는 것으로 모자라 내실마저 어지럽히는 로나스 왕의 폭정에 분노했지만, 누구도 이를 겉으로 표현할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나스 왕에게는 아직도 4명의칠각보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칠각보전의 힘과 명성만으로도 르나르국은 여전히 이국과 괴이들로부터 안전하며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도 유지할 수 있다.

때문에 누구도 로나스 왕의 폭정을 거역할 수 없었다.

로나스 왕은 모든 책임을 파이로 대신에게 돌린 후, 치안을 위해서 이국과 광명 목탑을 조사하러 간 정각과 희각을 불러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분란과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새로운 충신 자리에앉히고 내정을 다스리는 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의 분노를부추기는 소식이 도착했다.


“빌어먹을 놈!”

파이로 대신이남긴 출사표였다.

그 내용을 읽은 로나스 왕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배은망덕한 놈! 사지를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 감히 왕을 능멸해!? 감히! 감히!!”

로나스 왕은 크게 흥분하며 두루마리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곳엔 왕이 계몽하기를 바라는 파이로 대신의 일침이 적혀 있었다.

로나스 왕이 자신의 죽음과 두 번째 원정군의 패퇴로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의도로 쓴 글이었으나….

그가 남긴 출사표는 로나스 왕의 노여움만 부추겼다.


“파이로 대신  망할 놈이!”


로나스 왕은 이를 갈았다.


그도 파이로 대신이 현존하는 르나르국의 신하 중 뛰어난 빼어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무 모두 출중하며 정사에도 사리가 밝은 것은 물론, 현명하고 충성심까지 깊은 인물이었다.

하여 로나스 왕은 그 어떤 신하보다 뛰어난 파이로 대신을 총애했고, 그래서 하나도 아닌 무려 셋이나 되는 칠각보전을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였기에, 로나스 왕은 파이로 대신이 성녀를 탈환하는 것에 성공해 자신에게 영생을 안겨다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파이로 대신은 늘 그렇게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 준 믿음직한 신하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임무에 실패한 것으로 모자라 출사표로 자신의 뒤통수를 치다니?!

“은혜도 모르는 오랑캐 같은 놈!”


로나스 왕은 자신의 행동은 생각도 못하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며 배신감과 모멸감만을 느꼈다.


파이로 일가를 불태웠음에도 왕은 심란한 심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에는 소용돌이가 쳤다.

장수들을 요청하던 파이로 대신의 메시지에 무시하지 않고 응해줬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모든 것이 파이로 대신의 탓이며 그의 무능이 초래한 결과라는 원망과 무책임이 한데 뒤섞인 소용돌이였다.

“그래. 모든 건 그놈이 무능한 탓이다. 내 탓이 아니다. 다 그놈이 무능한 탓이야! 모두 그놈이 부족하고 멍청해서 이렇게 된 것이야!”

로나스 왕은 결국 파이로 대신을 향한 원망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계속해서 죽은 파이로 대신을 탓하며 사라진 진각, 경각, 사각을 떠올렸다.


“경각, 진각, 사각…. 그들까지 잃다니. 무능한 놈!”


로나스 왕은 자신을 아껴주던  영웅의 죽음에 슬픔을 느꼈으나, 그 슬픔은 길지 않았다.

“헌데 성녀는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의 실패를 발판 삼아 다른 놈들이 성녀의 탈환을 시도하기라도 하면…. 제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녀를 다른 왕국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영생에 대한 욕심을 떠올린 그는 어떻게 해야 성녀를 빼앗아 올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4명의 칠각보전이 남아 있었지만, 귀중한 재산인 칠각보전을 이 이상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일국의 왕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성녀를 포기할 수도 없을 노릇.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물어야겠지. 여봐라!”


“부르셨습니까. 전하!”

“대신들에게 알려 비밀리에 장수들을 양성하고 군대를 모아라! 오늘부로 군의 규모를 2배 아니 3배로 늘릴 것이다! 세수를 늘리고, 실력 있는 용병들을 등용해라!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예, 명령을 받들겠사옵니다! 전하!”


병력을 모으라는 로나스 왕의 명령.

대기하고 있던 부관은 갑자기 세수를 늘리면 백성이 겨울을 나기 힘들어할 것을 알면서도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는 노여움이 풀리지 않은 왕의 화가 행여 자신에게 튈까 싶어 얼른 왕실을 나섰고, 로나스 왕은 성녀와 불사의 힘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초조함에 다리를떨었다.

그의 눈에 바닥에 내쳐진 파이로 대신의 출사표가 보였다.


“다 네가 못난 탓이다.  네가 못난 탓이다.”

왕은 마치주문을외우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


르나르국과의 전투가 끝나고, 네빌은 방해하면 죽이겠다는 엄포를 놓은  다시 실험실에 틀어박혔다.


얼음 속에 갇힌 성녀를 꺼낼 마법을 완성하고 위함이었다.

그렇게 네빌이 실험실에 틀어박힌 사이.

하멜 성의 생활도 조금은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일검과 일리나였다.


일검은 일리나의 행복을 원했고, 일리나는 일검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본래는 일리나를 인간 마을로 데려다 줄 예정이었지만, 일리나가 강력하게 거부했고 일검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에 이제는 내쫓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네빌의 입장에서도 일리나가 함께 있는 편이 일검을 부려 먹기가  편한지라 그녀가 성을 활보해도 아무런 태클도 걸지 않았다.

사실상 하멜성에서의 동거를 허락한 것이다.


그렇게 입주신청이 완료되자 나와 일검은 일리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궁리를 하게 되었다.


일검은 일종의 사이보그고, 나는 언데드다.

당연히 우리는 식사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리나는 먹고, 자고, 싸고   가지가필수불가결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녀가  척박한 하멜 성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량이 필요했다.

다행인 점은 주식이라 할 수 있는 밀과 쌀, 감자, 고구마 등이 보존 마법이 걸린 하멜 성의 중앙창고에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어설프지만, 밥과 빵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간혹 일검이 토끼와 사슴까지 잡아왔기 때문에 당분간은 일리나가 끼니를 거를 걱정은 없었다.


거기다 언데드들이 점령한 땅이라고는 해도 지구처럼 방사능에 오염되거나 땅에 소금과 기름을 뿌리고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을 뿐, 기본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가능했다.

일리나는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서 먹기도 하고, 농작물도 기르면서 언데드가 점령한 하멜 성을 자기 집 안방처럼 돌아다녔다.

식수와 땔감은 일검이 해결했고, 옷은 내가 정리한 가게들에 가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느리고, 단답형이지만 멀쩡한 인간의 모습으로 말상대를 해주는 일검과 겉모습은 인간 실격이지만 속은 온정으로 가득 찬 따뜻하고 멋지고 잘난 내가 있어서 일리나가 외로워서 미치거나 우울증에 걸릴 염려도 없다.


평범하게 작물을 재배하기도 하고, 언데드만 남은 마을의 매장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기도 했다.

또 때로는 직접 음식을 요리하고, 바깥에서 사냥과 독서를 즐기는 등 일리나는 하멜 성에서의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덕분에 하멜 성에서의 생활은 트러블 없이 무난하게 흘렀다.

어찌나  적응을 했는지 이제는 자다 깨어 곧바로  얼굴을 봐도 “아. 왔어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할 정도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데, 데, 데, 데스나이트!!”라고 하면서 경기를 일으킬 텐데 실로 놀라운발전이 아닐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일리나가 적응한 언데드는 나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언데드들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적극적으로 스켈레톤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관찰했다.

스켈레톤의 관찰이 끝나면 망자로 부활한 좀비, 구울, 트롤, 오우거 심지어는 본드래곤까지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썼다.


손재주와 글재주가 있어서 그림과 일기도 수준급이었다.


때로는 스켈레톤들의 이마에 낙서도 하고, 또 때로는 본드래곤의 목에 올라가 “이랴!” 하며 미친 짓을 저질러서 저게 뭘 잘못 먹었나 싶었지만….


머지않아 그것이 일리나가 나름대로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나도 그녀를 따라 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산 자와 망자의 구별이 없는 이 작은 성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귀신과 인간이 함께 사는 별난 세상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조금  흘러서 겨울이 찾아왔다.


눈이 쌓기 전에 우리는 르나르국 병사들을 위한 무덤을 모두 만들었다.


그리고 무덤을 만드는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네빌이 몰두하던 마법연구도 끝이 났다.

연구가 끝난 네빌은 자신의 위대함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후 우리를 억지로 끌고 와서 엘리아나를 감싼 얼음이 녹는 것을 지켜보도록 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뼛가루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린 네빌은 관객석에 우리를 앉혀두고서 양손의 마력을 마법진으로 쏟아 부으며 외쳤다.

[디테치.]


그의 손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자 마법진이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 빛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엘리아나를 감싸고 있던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얼음은 물이아닌 증기가 되어 흩어졌고, 얼음이 사라질수록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엘리아나도 점점 더 가까워졌다.

마침내 모든 얼음이 녹고 엘리아나가 바닥으로 쓰러지려고 하자 네빌이 그녀를 잡았다.


자신의 딱딱한 몸에 행여 엘리아나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싶어서 그는 부드러운 모포를 미리 준비해서 그녀를 감싸안아주었다.


[오오…! 엘리아나. 이제야 다시 그대를 안아보는구려. 이제야….]


비록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라 괴기스러웠지만, 네빌은 얼음에서 나온 엘리아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평소의 괴팍하고 과격한 모습이아닌 인간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진짜 그의 모습 같았다.


네빌이 가진 의외의 일면에 놀란 우리는 눈치 없는 일검을 이끌고서 네빌이 엘리아나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네빌은 잠든 엘리아나를 안은 채 하멜 성을 나왔다.

처음 모습 그대로 엘리아나는 잠들어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얼음을 녹였다 뿐, 잠에서 깬 것은 아닌 모양이다.


스스로 깨어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리라.

[인간 여자. 앞으로 네게  아내를 부탁해도 되겠는가?]


“네? 아, 알겠어요! 노력할게요!”

일리나가 승낙하자 네빌은 고개를끄덕이더니 팬텀스피드와 뼈 마차를 소환했다.

팬텀스피드는 말의 형상을 한 유령, 유령마였다.


몸 전체가 귀신처럼 불투명했으며 눈과 입 그리고 네 다리에는 파란색을 띤 도깨비불이 달려 있었다.

그가 소환한 열 마리의 팬텀스피드  두 마리는 나와 일검의 앞에 있었고, 나머지 여덟 마리는 그가 소환한 뼈 마차에 묶여 있었다.

마차의 주위를 언데드 대군으로 둘러싼 네빌은 마법으로 일리나와 엘리아나를 마차에 태웠다.

마차에 오른 일리나와 엘리아나를 본 그는 엘리아나의 뺨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더니 일리나에게 말했다.


[인간 여자여, 지금부터 하멜 성을 떠나 요정의 숲으로 가도록 해라.]


“요정의 숲!? 설마 엘프들을 만나러 가는 건가요?”

[그렇다. 그곳에 엘리아나의 보호를 부탁할 것이다.]


“하지만 엘프들은망자를 증오하지 않나요?”


[맞다. 내 몰골을 보면 필시 공격할 테지. 하지만 인간인 너라면 괜찮다. 받아라. 증표를 가지고 요정의 숲으로 향해라. 증표를 보여주면 숲의 엘프들이 너를 분명히 도와줄 것이다.]


네빌은 허공에서 작은 목걸이를 꺼내 일리나에게 내밀었다.

“잠깐만요. 이걸 왜? 설마, 저 혼자? 저 혼자 가는 건가요?”

[가라. 가서 나 네빌이 엘리아나를 부탁했다고 전해라.]

네빌은 되묻는 일리나의 말을 무시한 채 마차를 출발시켰다.

“잠깐만요!일검님!!”


그렇게 마차는 언데드 대군의 호위를 받으며 요정의 숲으로 향했고, 일리나는멀어지는 일검을 애타게 불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


멀어지는 일리나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아쉬워졌다.

이제야 겨우 하멜 성의 생활에 적응하고, 즐거워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이별을 해야 하다니?

[정말로  둘만 보내도 괜찮은 거야? 그냥 같이 있는 게 낫지 않아?]


[요정의 숲은 생명체에게 있어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망자는 발을 디딜 수조차 없는 곳이지. 지금은 인간 여자에게 아내를 부탁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일리나에게 맡길 것 없이, 그냥 같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면 안 되는 거야?]

[내게는 아직 복수가 남아있다. 그 복수가 끝나기 전까지, 나는 그녀를 볼 수 없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언데드 대군의 호위를 받으며 일리나와 엘리아나는 점점 더 멀어졌다.

멀어지는 아내의 모습에 네빌은 침묵하며 손짓으로 남은 언데드 대군들을 불렀다.


다섯 마리의 본드래곤들과 데스나이트들을 비롯한 상급 망자들이 다가오자 네빌이 다시 아래턱을 움직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일곱 국가에 향한다. 그들의 피로 땅이 붉게 물들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말이야?]

[그렇다.]


[또?!]

[왜? 무서운가?]


[그야 당연히….]

[미리 말하지만 거절은 거부한다. 네게 거부권은 없다. 그러니 움직여라. 두영.]

[젠장….]

답정너인 네빌은나와 일검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본드래곤의 머리에 올라타 언데드 대군을 이끌었다.

그가 올라탄 본드래곤의 이마에는 ‘두영님, 바보.’라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