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6화.
보주를 부수고 연기에 휩싸이자 네빌이 가지고 있던 기억과 지식 그리고 마력과 그 감정까지 정보가 되어 내 안에 들어왔다.
정보는 텅 빈 머리를 헤집고 들어오더니 하나의 온전한 기억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양이 엄청났기에 나는 두통을 느꼈다.
꽉 찬 풍선이 부풀어 터질 듯 끊임없이 밀려드는 정보의 파도에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네빌의 유년기 시절 기억부터 마법을 배우게 된 계기.
세상을 떠돌던 기억과 엘리아나를 만났을 때의 기억.
그리고 자식을 잃은 슬픔과 믿었던 성주의 배신.
아내 엘리아나의 선택과 자신을 버리고 언데드가 되기로 마음먹은 고통에 찬 결심.
심지어 날 만났을 때의 기억과 지옥문으로 떠나기 전의 최후까지 오롯이 내게 전해졌다.
그가 살아온 모든 삶의행복과 고통의 기억이 통째로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아내와 딸을 떠올렸다.
그리고 네빌의 기억을 정리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차근차근 그의 기억을 정리한 덕분에 그간 궁금해했던 네빌의 원한에 대해서도알 수 있었다.
네빌 자리를 잡은 하멜 성은 총 2명의 영웅이 지키고 있었다.
병력도 다른 왕국에 비해 무척이나 적고, 토지도 척박해 약소국에 속했다.
하지만 인자하고 성품 좋은 왕과 인심 좋은 백성 그리고 정의로운 두 영웅이 지키고 있어서 괴이들의 침공으로부터 하멜 성은 안전했다.
그래서 네빌은 엘리아나와 하멜 성에 자리를잡기로 했고, 함께 아이까지 낳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수명이 다한 하멜 성의 영웅이 안식에 든 것으로 모자라 마지막 남은 하멜 성의 영웅조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괴이와 싸우던 중 전사하고 만 것이다.
영웅들이 모두 사라진 시기는 하필 괴이들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는 수확제와 겹쳐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곡식을 거두려던 농부들이 죽어나갔고, 하멜 성은 점점 더 늘어나는 괴이에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인심 좋던 백성들도 돌변해 치안 역시 극도로 나빠졌다.
그 바람에 지친 백성이 야반도주하는 사태도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왕국이 무너질 수도 있는 망국의 위기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왕국을 떠나지도 못하고 고통받는 백성을 본 엘리아나와 네빌은 그들을 돕기로 결정을내렸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괴이들을 직접 퇴치하게 된 것이다.
불사자의 힘을 들킬 우려가 있어 직접적으로 나설 수 없는 엘리아나를 대신해 네빌이 적극 나서서 괴이들을 퇴치했다.
리치가 되기 전부터 영웅과 동격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렵지 않게 수확제 동안 하멜 성을 지켰다.
덕분에 엘리아나와 은둔생활을 하려던 네빌은 한순간에 하멜 성의 영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의 활약을 지켜본 하멜 성의 성주는 무릎까지 꿇으며 그에게 하멜을 지켜 달라며 부탁했고, 체면치레도 마다하고 백성을 위하는 성주의 태도에 탄복한 네빌은 거부하지 않고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 여긴 그는 하멜에서 자리를 잡기로 마음을먹었다.
그리고 성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성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시기.
네빌의 활약에 감탄한 백성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축제를 열었다.
엘리아나도 그를 축하해주었고, 그 시기 그는 아들까지 얻으면서 네빌은 생에 최고의 행복을 누렸다.
가장 행복한 시기, 기억을 엿보다는 내가 다 행복해질 정도로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약 10년이 지나고, 그의 나이가 50이 되었을 때.
네빌의 힘으로 하멜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의 주도하에 엘프족과 르나르국과의 동맹도 체결되었다.
괴이들의 침공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백성들 역시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방면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 자신의 뒤를 이을 영웅이 될 기량까지 보였다.
아름다운 아내와 장차 자신보다도 더 큰 사람이 될 아들까지.
이 둘을 품에 안은 네빌은 그간의 고생이 마침내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행복이 깨지지않고, 언제까지고 이어지리라 기대하며 매일 아침 신께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네빌의 보낸 기도에 답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시련과 비극만을 보답했다.
수확제가 지나고 괴이들의 침략이 뜸해질 무렵.
느닷없이 대규모의 괴이들이 쳐들어왔다.
군대처럼 조직된 괴이들이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네빌은 적국이었던 아너스 왕국을 비롯한 일곱 국가에까지 도움을요청해야만 했다.
다행이 일곱 왕국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괴이들의 군대를 물리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으나 아내와 함께 있던 아들이 괴이들의 공격을 받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현장의 생존자는 그의 아내 엘리아나 뿐이었으며, 그녀의 상태는 평소와 달랐다.
아들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엘리아나는 신성이 깃든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 괴이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끊임없이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날의 사건 이후로 엘리아나는 실의에 빠져 마음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네빌 역시 괴이들을 향한 끝없는 증오를 품게 되었다.
증오를 감추지 못한 그는 아내에게 함께 괴이들이 가득 찬 죽음의 땅으로 향하자고 했다.
죽음의 땅은 괴이 뇌조가 사라진 이후, 흩어진 괴이들이 뭉치며 만들어진 암흑의 땅이었다.
그곳은 오염된 물과 불이 가득한 곳으로 괴이들이 탄생한다고 알려진 장소였다.
타지 않는 검은 초목들이 가득한 곳이며아르카디아 대륙에 신의 은혜가 닿지 않는 유일한 땅이자 그 어떤 인간도 개척하지 못한 죽음의 영역이었다.
살아 있는 지옥의 땅이라 알려진 그곳으로 네빌은 가고자 했다.
괴이들이 탄생하는 그곳으로 직접 쳐들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피식자의 사슬을 끊자고 엘리아나에게 권했다.
그녀가 가진 영조 피닉스의 힘이라면!
불사자의 힘이라면!
그것이 가능하니까!
아들의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엘리아나는 증오에 물든, 네빌의 부탁에 감히 응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불사자의 비밀, 영조 피닉스의 힘이 세상에 알려지면 힘을 노린탐욕스러운 놈들로 인해, 예전처럼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리라 판단한 것이다.
설령 괴이를 모두 무찌르더라도 인간들이 이 힘을 욕심내서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동안의 노력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그녀는 남편인 네빌의 뜻에 동의할 수 없었다.
네빌의 끈질긴 설득에도 그녀는 불사자의 비밀은 영원히 감춰져야 할 신의 뜻이라 말하며 그의 부탁을 거부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네빌은 부모가 자식의 복수를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이상한 것이냐며 따지고 재차 엘리아나를 설득했지만, 계속된 그의 설득에도 그녀의 뜻은 완강했다.
어떻게 해서든 엘리아나의 도움을 받고 싶었던 네빌은 결국, 이 일을 자신이 믿고 따르는 성주에게 상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 성주와 나눈 대화가 화근이 되어 하멜 성에 진정한 위험이 닥쳤다.
엘리아나의 정체를 안 성주가 그녀가 가진 불사자의 비밀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엘리아나의 힘을 빼앗을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고, 불사신인 엘리아나에게서 힘을 이어받으려면 인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을 잃은 마당에 엘리아나를 협박할 수 있는 존재는 네빌 뿐!
비록 의견 충돌로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했지만, 성주는 네빌이라면 충분히 인질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에 성주는 네빌이 모르게 은밀히 일곱 국가에 거금을 약속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네빌이 흑마법사가 되어 자신과 하멜 성의 백성 모두를 어둠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으니 그를 제압할 병력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하멜 성의 성주로부터 거금을 약속받은 일곱 국가는 군대를 파견했고, 파견된 군대를 본 하멜 성의 성주는 네빌에게 하멜 성을 노리고서 일곱 국가가 침략을 해왔다며 간계를 부렸다.
막대한 규모의 병력을 본 네빌은하멜을 지키기 위해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사람을 해치는 힘이 아니라며 또다시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리고 우리가 항복해야 한다고, 함께 떠나면 된다고 그를 말렸다.
네빌은 신의를 저버리는 아내의 모습에 격분했고, 혼자서라도 하멜을 지키겠다며 나섰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성내로 들이닥친 기사들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마법사들의 지원까지 받으며 철저히 맞서는 일곱 국가의 공격에 네빌은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그리고 치열한 싸움 도중.
그는 자신을 돕기 위해 나타난 하멜의 기사들에게 불시의 공격을 받고 말았다.
네빌은 온몸에 칼이 박히고 나서야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서야 하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들려온 하멜 백성들의 목소리는 그를 악마의 하수인이라 내몰고 있었다.
믿었던 성주와 기사 그리고 병사들 모두가 그를 흑마법사라 매도하며 처단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 엘리아나가 악마의 힘을 가진 괴물이고, 괴이를 불러들이는 저주를 받았다면서….
그는 기사들의 칼에 찔린 채 괴성을 질렀고, 성주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의 원흉인 성주가 그를 도와줄 리 없었다.
그는 오히려 죽어가는 네빌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어느새 네빌을 구하러 온 엘리아나에게 요구했다.
남편을 살리고 싶다면, 불사자의 힘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네빌은 믿었던 성주가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빌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를 원망했지만, 몸 곳곳에 검이 박혀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위기에 처한 네빌의 모습에 엘리아나는 눈물을 보였고, 힘을 넘기면 네빌을 살려주겠다는 성주의 조건에 갈등에 빠졌다.
남편 네빌과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끝내 남편 네빌을 선택하려 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네빌은 스스로 심장을 터트려 죽음을 택했다.
오랜 시간 불사자의 비밀을 지켜온 아내와 그녀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서.
성주를 믿고 불사자의 비밀을 누설한 실수의 책임을 진 것이다.
아들에 이어 남편 네빌까지 죽음에 이르자 엘리아나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가진 불사자의 힘 탓이라며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나온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했다.
성주가 계속해서 그녀에게 불사자의 힘을 내놓으라며 다그쳤다.
엘리아나는 힘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을 느꼈지만, 마지막 인내심을 짜내 끝내 힘을 휘두르지 않았다.
과거 성자가 한 실수처럼 분노와 증오에 눈이 멀어많은 인명을 해하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또한, 그것이 자신이 성자를 그토록 원망한 이유였기에.
그녀는 그렇게 될 수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복수하는 대신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을 했다.
자신을 가두고 힘을 봉인하는 방법을 택했다.
[미안해요.]
의식을 잃어가던 네빌의 귀에 엘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사과에 네빌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요정의 숲에서 데리고 나온 것도.
하멜 성에 정착하기로 한 것도.
성주의 탐욕을 알아보지 못한 것도.
모두 자신이기 때문에 그는 죄책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끝없이 피어오르는 죄책감에 그는 이성을 잃었고, 완전히 미쳐 봉인한아내를 대신해 자신의 손을 피로 물들이기를 각오했다.
하여 자신의 영혼을 마(魔)에 팔아 언데드가 되었다.
그녀의 봉인이 풀릴때까지 불사자의 힘을 지켜주겠다는 맹세를 하고, 언데드가 되어 성주 하멜에 대적해 성을 피로 물들였다.
그렇게 애초에 성주가 퍼트린 소문대로 네빌은 진짜 흑마법사가 되었고, 모두가 증오하는 악귀가 되고 말았다.
리치가 되어 한층 더 강해진 그는 하멜 성주와 기사, 병사를 비롯해 일곱 군대의 병사들과 백성들까지 공격했다.
[그래. 내가 바로 흑마법사 네빌이다! 내가 바로 리치 네빌이다!]
스스로 자신을 악이라 칭하며, 기꺼이 인간을 증오하는 악마가 되었다.
악으로 부활한 그는 젊은 시절 그가 모은 용들의 사산아를 모아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과 몬스터들의 시체로 언데드 대군을 만들어 하멜 성의 모든 생명체를 없애기 시작했다.
분노로 얼룩진 네빌의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어둠과 비명만이 가득했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하는 고통만이 가득했다.
이것이 네빌이 언데드가 된 경위였다.
그 이후 그에게 남은 기억은 분노와 원망, 후회와 고통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전쟁을 벌이고, 그가 인간성을 모두 잊어갈 즈음 나타난 것이 바로 나였다.
그의 명령을 받지 않는 스켈레톤, 망자인 주제에 산 자를 구해주고 있는 황당한 녀석.
정신지배의 면역까지 지니고, 마력의 공급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모자라 다른 망자를 쓰러뜨리며 그 마력을흡수해 진화까지 한 하멜 성의 이상한 스켈레톤.
네빌의 기억을 통해서 본 내 모습은 말 그대로 ‘뭐야, 이건?’ 이었다.
고통 속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내 존재에 네빌은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내 기억과 육체를 연구하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내 기억을 읽더니 아내를 구할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힘을 이용하면 이 세상 모든 괴이를 완전히 지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야욕까지 품게 되었다.
그의 본래 목적은 망자와 괴이의 힘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내 능력을 취한 후, 내 힘과 마력까지 다 빼앗아서 토사구팽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대목에서 나는 네빌을 개새끼라고 욕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오해는 금방 풀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 눕혀놓고 연구하던 네빌은여러 가지 감정을느꼈다.
악으로 변하고 잊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내 기억을 엿보면서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닌 힘을 빼앗을 방법을 알아내고도 그는 실행하지 않았다.
내 힘을 빼앗거나날 죽이지 않았다.
더는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더는 못난 남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내와 자신의 마지막 인간성을 지키고자 내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였다.
그 까칠했던 놈이, 그 못된 놈이 인간의 마음을 되찾은 것이다.
마음을 되찾은 그는 엘리아나가 스스로에게 건 봉인을 풀고 그녀를 구했다.
그리고 아내가 다시 깨어나기 전에 모든 복수를 끝마치고 싶어 했다.
아니, 복수가 아니다.
아내가 깨어나기 전에 사라지고 싶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모르겠다.
흉측한 망자의 모습을, 사악한 언데드가 된 자신의 모습을 아내 엘리아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너스 왕국을 공격했다.
본래 계획은 로서 왕을 암살하고 떠나 하멜 성주의 계획에 가담한 다른 왕국의 원수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으나….
사검이라는 강력한 영웅의 등장으로 그의 계획은 어긋났다.
복수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게 되자 네빌은 당황했고, 설상가상으로 성기사들까지 개입하자 본래 계획한 대로 날 구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네빌. 이 새끼….]
기억 속 네빌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제 날 보고 있지 않다.
내 말대 대답하거나 머리 위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 까칠했던 놈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미안하다.]
정신을 차린 나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아록 산맥에서 무너진 아너스 왕국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날 대신해 죽은 네빌에게 사죄했다.
문득 그가 내게 산 자를 위하는 언데드는 처음이라며 이상하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뭐야, 너도 이상한 언데드였잖냐.]
아내를 소중하게 여기고, 날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 역시 이상한 언데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