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45화. (46/83)



〈 46화 〉45화.

한편, 아라타는 마귀들을 상대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마귀들을 상대하느라 힘을 많이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신성력 또한 마력, 체력과 다르지 않다.

힘을 펼치려면 줄어들고, 다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는 것이 이치이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신성력이 무한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힘을 조절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마귀들을 막아낼 수 없다. 다른 수가 필요하다.”

교룡과 마귀들을 보며 방법을 강구하던 아라타의 머리로 문득  다른 마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반적인 마괴와 달리 말이 통하는 망자 두영이었다.


그는 혹시 사람의 마음이 남은 망자 두영이라면 이 사태에 도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요청해 볼까? 아니다. 망자에게 그럴 순 없다. 이성이 남아 있더라도 결국엔 똑같은 망자! 같은 망자의 편을 들면 안 그래도 위험한 놈이 설상가상으로 교룡과 힘을 합치기라도 하면 동명이 아니라 동토 전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두영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던 아라타는 민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게다가 일이 이렇게 커졌는데도 나서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 같은 생자들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사태가 이렇게나 커졌는데도 그가 나타나지 않자 두영 역시 망자라 마괴의 편을 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 두영이 개입하면 동명에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당연히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자충수가 되리라.

“이 위기를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아라타는 고뇌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자신이 교룡을 막아야 할지 아니면 혼자라도 달아나야 할지 그도 아니면 도박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두영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거듭 고민했다.


“살려주세요!”


“려숙!”


“응?”

아라타가 고민하는 그때.

한 여인과 사내 그리고 날카로운 가시를 지닌 거대한 애벌레 같은 마귀가 나타났다.

쫓기던 젊은 여인이 돌부리에 걸려 바닥으로 쓰러지자 도끼를 든 사내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마귀의 앞으로 나섰다.


“저자는?”

사내는 아라타도 아는 인물이었다.


바로 그에게 은화 20냥을 도둑맞은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아라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현상금 사냥꾼 중 하나로 집창촌의 아가씨와 혼인해 귀향할 예정이라고 당당히 밝힌 사내였다.

“이놈!”

도끼를 든 그는 마귀가 된 애벌레를 공격했다.

애벌레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빨을 벌린 채 사냥꾼의 도끼를 받았다.


그리고 도끼를 으적으적 씹으며 사냥꾼을 끌어당겼다.

도끼를 놓지 못한 사냥꾼은 애벌레가 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안 돼!”

아라타는 서둘러 손을 뻗었다.

다시 빛이 일어나며 그의 장법이 사내를 뚫고 지나가 애벌레를 강타했다.


그의 금빛 장법은 벌레 마귀의 몸을 찌부러뜨리며 그 뒤에 있는 마귀들까지 단번에 밀어냈다.


“후우. 후우. 괘, 괜찮소?”

“다, 당신은 금화 오십냥!”


아라타가 숨을 헐떡이며 묻자 그를 알아본 현상금 사냥꾼이 외쳤다.

“오십냥이라니…. 하다못해 이름으로 불러주시오.”

“미, 미안하오.”

“됐소, 빨리 그녀와 달아나시오! 여기 계속 있으면 위험하니!”

아라타가 소리쳤다.

그의 말에 정신 차린 사냥꾼이 려숙을안고 일어났다.

“갑시다. 우리 같이. 집으로 갑시다.”

“저는 더 뛸 수 없을  같아요. 당신이라도 달아나세요.”

“무슨 소리요. 내가 어찌 당신을 두고 가겠소! 함께 갑시다!”

“저처럼 더러운여자에게 목숨을 걸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 인생을 사시란 말이에요.”

“당신이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소. 내게 이미 그대는 한 줄기 빛이니….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시오. 우리 꼭 함께하자는  약속을 지킵시다.”

감동받은 려숙이 눈물을 글썽였다.

사냥꾼도 그녀의 손을  안은 채 남자다운 얼굴을 했다.

“…이 와중에 그러고 싶소이까?”

아라타는 두 사람의 촌극이 눈꼴셨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넓은 마음으로 인내하고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직접 화엄경을 펼쳤다.

그렇게 아라타가 막아주는 사이.


“갑시다. 집으로.”

사냥꾼이 려숙을 부축하더니  사람이 다시 이동했다.


젖은 몸을 일으키고 서로 부축한  걷는  사람을  아라타는 문득 두영이  말이 떠올랐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던 말이었다.

두영이 한 말이 생각나자 아라타는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을 보았다.

‘그래.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결과는 바뀌지 않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도박이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한 손에 들고 있던 분소의와 달아나는 두 사람을 보던 아라타가 곧 결정을 내렸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도박을 해보기로.


그는 들고 있던 분소의, 삿갓, 가면을 꼭 안고  사람의 곁으로 달려갔다.

“기다리시오! 소승이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부탁? 갑자기 무,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이오?”

사냥꾼이 려숙을 부축한 채 되물었다.

“대나무숲으로 가면 교룡을 막을 대단한 고수가 있소. 그자에게 이것을 전해주고 도움을 요청해주시오.”


“…그런 고수가 있다면 우리에게 부탁할 게 아니라 직접 전해주고 도움을 청하면 되지 않겠소?”

“소승은 아직 남은 인명을 구해야 하오. 그러니 대신 좀 부탁하겠소!”


사냥꾼의 말에 아라타는 아직 남은 사람들을 가리키더니 들고 있던 삿갓과  그리고 검은 분소의를 사냥꾼의 품에떠넘겼다.

사냥꾼은 갑작스러운 부탁이 부담스러웠는지 깜짝 놀랐다.

“자, 잠깐, 이렇게 넘겨주면 어쩌란 말이오!”

“한시가 급하오! 부탁하오!”

“그, 그래도….”

“수많은 인명과 동명의 존망이 달린 일이오. 소승 혹자들을 믿고 있겠소.”


아라타는 당황하는 그를 두고 거왕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풀쩍풀쩍 건물을 뛰어오르며 달려간 그는 불경을 빠르게 외우더니 눈보라를 뿜어대고 있는 교룡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라타의 앞으로 거대한 황금의 손이 나타나 교룡의 몸과 주둥이를 덮치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펼친 장법이었다.


거대한 황금의 손이 자신의 몸을 덮치자교룡은 조금 놀라며 아라타를 찾았다.

[승려인가….]

“부디 이걸로 성불해 주시게!”

아라타가  손을 포개며 말하자 거대한 황금의 손 역시 그의 손짓을 따라 움직여 교룡을 포개기 시작했다.

짓누르는 손바닥의 힘에 교룡이 비늘을 세우더니 꼬리를 휘저으며 저항했다.

교룡의 저항이 심해질 때마다 아라타의 손이 베이며 피가 흘러나왔다.


“큭!!”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고통에 아라타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며 손에 힘을 더했다.


“큭…, 스님! 조금만 버텨주시오!  지금 교룡의 목을 치리다!!”


눈보라에서 벗어난 거왕이 외쳤다.


그는 동상에 걸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에 기운을 보내더니 억지로 힘을 주고 양손으로 대도를 쥐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땅을 힘껏 차며 솟구쳐 올랐다.

단순에 상공에 있는 교룡의 머리 위까지 솟구쳐 오른 거왕은 호신강기를 해제하고 모든 기를 대도에 불어넣어 그것을 내리쳤다.


그의 검기가 교룡의 머리로 떨어지는 순간.

아라타 역시 술법을 해제했고, 곧 거왕의 강력한 검기가 교룡의 머리를 강타했다.

충격을 버티지 못한 교룡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거왕과 아라타는 공격이 성공했음을 느꼈다.


“잡았다!”


기뻐하는 사람들.


그러나 기뻐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바닥에 떨어진 교룡의 몸이 금세 일어나 물에 떨어진 뱀처럼 하늘을 스르르 기어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뭣?!”

아라타는 깜짝 놀라며 교룡의 모습을 확인했다.

다시 확인한 교룡의 모습은 왼쪽 뿔 하나가 잘려나갔을  비늘도 몸도 멀쩡한 그대로였다.

“이럴 수가!!”

충격에 빠진 거왕이 힘없이 추락했다.

교룡은다시 입을 벌렸다.

그러자 먹구름에서 요란한 천둥이 치더니 교룡의 주둥이로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내리친 번개는 교룡의 입에서 마치 응어리처럼 뭉쳐 둥근 구체를 띠기 시작했다.

구체가 완성되자 교룡이 동그랗게 뭉친 번개를내뿜었다.


[죽어라! 더러운 인간들!]


“헉! 모, 모두 피하시오!”

아라타가 소리쳤다.


응축된 번개의 덩어리가 떨어졌다.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거센 충격파가 일어나며 성이 통째로 무너졌다.


무너진 성의 파편이 충격에 휩싸여 마구 퍼지자 전류가 마구 퍼졌다.

일대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끄으으으!”

빗물과 파편을 통해 감전된 사람들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실로 엄청난 위력이다. 한낱 마귀가 어찌 저런 강한 힘을 지녔단 말인가!”

전격에 맞아 건물 벽에 처박힌 아라타는 가공할 위력과 끔찍한 고통에 놀라 신음했다.


동명의 성이 사라졌다.


성만이 아니라 그 일대의 모든 것이 마치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통째로 지워졌다.


흔적이 지워진 자리에는 커다란 구덩이만 남아 있었다.


폐허가 된 동명 성의 모습에 아라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도 마괴가 강하다는 것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마귀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이니, 강한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동명을 공격하는 마괴의 강함은 그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정도로 강력한 마괴라면 수미산의고승들이 와서 싸워야 할 정도였다.


“동명은 이제 끝이로구나.”

아라타는 믿음을 잃고서 절망했다.

깨달음을 연달아 세 번 더 얻는다면 모를까, 지금 자신이 가진 법력으론 동명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절망한 아라타는 사라지는 믿음을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하늘을 보았다.

“부처님. 부디 보고 계신다면 이 불쌍한 중생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아라타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비록 파계승이 되었다고는 해도, 생자를 위하는 승려의 근본은 잃지 않았기에그의 마음에는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소승은 어찌 되어도 좋으니, 제발!”

간절한 기도가 폐허가 된 동명에 퍼졌다.

하지만 그가 찾는 부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교룡이 하늘에서 주둥이를 벌렸다.

교룡의 주둥이에 새로운 번개가 뭉쳤다.

[끝이다. 원수들이여! 이것이 내가 내리는 천벌이니라!]

교룡이 소리치며 증오와 울분이 뭉친 번개를 토했다.

 울분을 타고 뭉친 번개가 남은 사람들을 노리고 떨어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쿵!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한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검은 삿갓과 하회탈을 쓰고 검은 분소의를 입은 남자.

[답답한녀석.]

“두영님?”

그곳엔 이두영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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