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47화.
상촌(象村).
동명보다도 더 큰 대도시인 상촌은 가네샤라 불리는 지성을 가진 괴이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땅이다.
해산물이 주를 이룬 동명과 반대로 다양한 육지 짐승의 고기와 뼈를 유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명물은 ‘마한하티’라는 생명체의 뼈와 고기다.
마한하티는 주둥이에는 커다란 두 개의 상아를 그리고 이마에는 악마처럼 둥글게 말린 두 개의 뿔을 가진 생명체다.
코는 길고 유연하면서도 강철처럼 단단하다.
걸음은 4족 보행을 하는데 그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새끼조차 21척(7m)을 거뜬히 넘기며 완전히 성장한 마한하티는 51척(17m)에 이른다고 한다.
근육은 바위 같고, 피부는 반들반들한것이 곱게 간 자갈 같다고 한다.
힘은 또 어찌나 강력한지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릴 정도.
그래서 지진을 불러오는 짐승이라 불리며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쉬이 잡을 수 없는 대형 몬스터로 분류되었다.
그런 특징 덕에 본래 상촌 땅에는 이 마한하티가 넘쳐났다.
헌데,몇 년 전 마한하티의 고기가 원기를 활발하게 해주고, 상아와 뿔의 뼈는 갈아서 먹으면 정력을 채워주고 젊음을 되찾아 준다는 소문이돌았다.
덕분에 마한하티의 가치가 엄청나게 치솟았고, 상촌에는 마한하티와 관련된 사업이 부흥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상촌에는 마한하티의 효험에 눈이 먼 남자들과 여자들로 넘쳐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그 많았던 마한하티의 수는 급감하게 되었다.
나는 시야를 가리는 삿갓을 살짝 들어 물결 너머로 보이는 상촌을 보았다.
[정력이라, 지금 내겐 덧없는 것이로구나.]
“그, 그렇겠지요. 히히!”
[비웃지 마라. 어차피 그것도 한철이다. 너도 곧이야. 인마.]
“한철이라니. 소승은 아직도 매일 아침 거뜬합니다!”
[새끼. 나이 들어 봐라. 마누라가 샤워라도 하면 차라리 내 몸뚱이가 언데드였으면 싶어질 거다.]
“그렇습니까?”
[그런 거다. 그러니 누릴 수 있을 때 실컷 누려라.]
“과연, ‘젊을 때 노세!’라는 말씀이시군요! 소승 역시 이 아랫도리 탓에 파계승이 되었기에 그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역시 두영 님! 소승 아픙로 두영 님의 말이라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다고 해도 믿고 따르겠습니다!”
[아부하기는.]
동명에서의 사건 이후, 아라타는 완전히 날 따르게 되었다.
동명의 백성들을 교룡으로부터 구해준 것으로 모자라,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떠난 것에 탄복했다면서 이번엔 진심으로 날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
스님이 망자의 부하가 되는 것은 그림이 영 이상하지만, 아무튼 본인이 좋아서 충성스러운 부하가 되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됐고, 이야기나 계속해라.]
“예!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따라 마한하티에 대한 정보를 다시 알려주었다.
고가로 거래되는 상아와 뿔 탓에 마한하티를 전문적으로 잡는 사냥꾼들과 역으로 그들이 잡은 마한하티를 노리는 도적들이 많아져 상촌은 하루에도 크고 작은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본래는 상촌의 왕인 가네샤가 왕으로서 치안을 유지하고,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하지만….
“괴이인 가네샤는 천성이 게으른데다가 인간 사회에 큰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무엇을 하든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런데도 왕이야?]
“예. 일단 힘과 실력으로는 당해낼 자가 없으니까요. 오죽하면 가네샤가 워낙 강해서 도전자도 몇 년 동안이나 뜸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무지 강한가 보네.]
“저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강한 힘을 지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싸우는 일도 거의 없고요.”
[가네샤에 대해서 더 설명해 봐.]
“기본적으로 가네샤의 관심은 오로지 술과 금은보화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이것들만 제대로 지급되면 다른 것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일관한다고 하지요.”
[술과 금은보화라…. 욕망이 확실한 놈이네. 만약, 술과 금은보화를 제대로 안 주면 어떻게 돼?]
“술과 세금이 하루라도 체납되면 폭풍우를 불러오고 부하들을 공격하는 등 온갖 성화를 부린다고 들었습니다. 말이 왕이지 통치나 내실을 다지지도 않아서 사실상 술과 세금만 잡아먹는 골칫덩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 탓에 상촌은 가네샤가 다스리고 있음에도 도적이 들끓는 것이지요. 실질적인 통치와 관리 역시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맡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라타의 설명에 의하면 주로 마한하티로 장사를 이어온 상인들이 상촌의 재정을 관리하고, 치안은 동서남북으로 나뉜 사천왕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가네샤가 상촌의 왕으로써 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나 해치지 않으면 다행인 주정뱅이였다.
[왕도 공무원이지?]
“공무원? 그게 무엇입니까?”
[공직자라는 말이야.]
“잘 모르겠지만, 왕 역시 공직 아니겠습니까?”
[그럼, 공무원 맞네. 망할 놈. 공무원이 직무유기라니. 민원 처맞고 시골로 좌천당해야 정신 차리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네샤가 나쁜 놈이라는 말이라면 맞습니다. 오죽하면 상촌 사람들이 가네샤의 횡포를 더 참지 못하고 합심하여 반기를 들 정도였으니까요.”
[반기? 반란 같은 거야?]
“예. 무리를 모은민중이 봉기했다고 들었습니다.”
[호오?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가네샤가 가진 힘이 너무 강력해서 그를 공격한 사람들 대부분이 죽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승려들이 방문해서 말려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상촌 전체가 삼도천에 떠내려갔을지도 모릅니다.”
승려들이 말린 덕분에 가네샤에게 반기를 든 상촌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대신 그때 겪은 쓰디쓴 패배 탓에 저항의 의지는완전히 꺾이고 말았고, 그 후로 상촌의 사람들은 가네샤의 명령에순종하게 되었다.
다시는 반역을 꿈꾸지 못할 정도로.
“덕분에 상촌의 인구 대부분은 가네샤의 입맛에 맞는 술만 제조하는 양조장에서 일하거나, 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마한하티를 잡아 파는 일을 도맡게 되었지요. 제가 알기로 수익의 7할은 가네샤의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자세히 아네.]
“예, 본래는 제가 가네샤를 설득하려고 했었거든요. 일이 잘풀리지 않아 근처에도 못 갔지만요.”
풀 죽은 목소리로 답하는 아라타, 뭔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했다.
[그래도 양조 기술이 그만큼뛰어나면 좋은 술은 많겠네.]
“확실히 상촌의양조장은 동토의 그 어느 나라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상촌에서 만든 술맛은 최악이라 불립니다.”
[왜? 그렇게나만들면 맛도 좋지않아?]
“가네샤의 입맛에 맞춘 술만 만드는데다가 질보다 양을 우선시해서 맛이 없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궁금해서 한 번 마셔본적이 있는데…, 돈 내고 마실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조장이 그렇게나 많은데 정작 술은 맛이 없다니, 슬픈 사실이네.]
“한번 마셔보시겠습니까? 제가 사겠습니다.”
[너 나 놀리냐? 내가 그걸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아…. 죄송합니다. 술을 못 드시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술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못 먹는다. 이 멍청한 놈아.]
“넵! 명심하겠습니다.”
아라타의 어리바리함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승려들에 대한 것이었다.
애초에 승려들이 가네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면, 계속 그 분노를 가라앉히거나 타협점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설령 그게 안 된다 하더라도 가네샤의 욕망만 도려낼 수는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승려들이 그때 가네샤를 없앴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같은 생각이 스쳤다.
왜 승려들은 가네샤를 살려두었던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이를 묻자, 아라타는 매우 심플하게 답해주었다.
“율법 때문이지요.”
[율법? 스님들의 율법 말이야?]
“예, 저희 스님들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생명을 해하지 않습니다.”
[……진짜? 그 어떤 생명도?]
“예.”
[그럼, 살인자를 만나도….]
“해하지 않습니다. 포승으로 묶어 관청에 넘길 뿐.”
[그럼, 들짐승이 나타나면?]
“다스리거나 피해야겠지요.
[혹시 모기도?]
“그들 역시 이 좁은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 피를 조금 빼앗긴다고 하나 함부로 목숨을 빼앗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실수로 벌레를 밟아 죽이는 일도 있지만, 고의가 아닌 실수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승려가 싸우고 해쳐도 되는존재는 망자처럼 부정한 존재들뿐이니까요.”
모기조차도 잡지 않는다니….
[염불 중에 가려움을 참는 경전이라도 있는 것인가.]
내가 충격에 빠지자 아라타가 다시 예시를 들었다.
“당연하겠지만 육류도 먹지 않습니다. 저희 승려들은 생명을 해하면 안 되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건별로 새롭지 않네.]
지구의 스님들도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이점은 특별히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아라타가 하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 동굴에선 고기 냄새 맡고 환장하지 않았냐?]
“윽! 그, 그것은….”
아라타를 처음 만났을때.
나는 녀석에게 광명 목탑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고기를 구워 냄새를 피워주었다.
항복을 선언한 아라타가 고기를 먹다 목이 막히는 것을 보고 해골물까지 친히 건네주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어이가 없었다.
묵직한 팩트에 아라타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실은 소승은 파계승이라, 정도를 걷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근데 넌 왜 파계승이 된 거냐? 혹시 절간에서 몰래 치킨이라도 시켜먹었어?]
동굴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묻자 아라타는 식은땀을 닦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건…. 비밀이외다.”
[반응을 보니 고기는 아닌 것 같네. 혹시 여자라도 만났어?]
“헉! 그걸 어떻게?!”
[…여자를 만난 게로군.]
꼬리를 잡은 나는 네빌의 말투를 흉내 냈다.
이녀석 땡중이면서 여자를 만나서 쫓겨난 것이 분명하다고.
“두영님께선 독심술이라도 하시는 것입니까?!”
[네가 거짓말을 못하는 거다. 말해 봐. 몰래 여자랑 밀회라도 가졌던 거냐?]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응. 처맞기 전에 말해.]
“그것이….”
아라타는 금수왕의 아내 사금여와 사통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젊은 승려를 좋아하는 사금여가 풍만한 가슴과 아름다운 각선미로 먼저 자신을 유혹했고, 그 유혹에 못 이겨하룻밤 사통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불륜을 저지른 바로 다음 날.
금수왕이 이 사실을 알아채고 수미산을 찾아서 따지자 사금여는 아라타가 자신을 추행했다고 거짓을 고했다.
자신은 겁탈을 당했을 뿐이라고 눈물까지 보이자 금수왕은 물론, 수미산의 승려들까지 아라타를 의심하게 되었다.
[새끼, 당해구나.]
슬퍼하는 아라타의 모습에 나는 과거 경찰서에 입건된 수많은 불륜 사건들을 떠올렸다.
사랑에 취해, 몸에 취해 그리고 술에 취해 서로 속고 속이는 못돼먹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은근히 많았다.
서로 좋아 불륜을 저지르고도 그 책임을 상대에게 덧씌우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실컷 즐기고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오해는 풀렸냐?]
“예, 다행히도 사금여의 거짓말에 중심이 없어서 사실은 금방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제가 사금여와 사통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기에…. 저는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죄로….”
[새끼….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나는 아라타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딱히 불쌍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의례 이런 사람들이 경찰서에 오면 이런 식으로 위로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은 사람들의 심정은 그 어떤 사기꾼에게 속은 것보다 가슴 아픈 법이니까.
[차라리 잘 됐어. 기분 나쁘다면 미안한데, 내 생각에 넌 아무리 봐도 스님 팔자는 아닌 것 같거든. 제비라면 모를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라타는 순순히인정했다.
본인도 자신이 스님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까 파계승이 된 것이겠지.
[차라리 머리 기르고 클럽에서 놀아 봐. 누나들이 예뻐해 줄 거야.]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 왔소이다! 나리들! 상촌이오!”
사공이 소리치자 배가 나루터에 닿았다.
봇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배에서 내렸다.
나는 아라타와 함께 그들을 따라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은 나룻배와 보부상이 가득한 것이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로 여행이라도 한 느낌이었다.
[여기서 광명 목탑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또 배를 타야 하나?]
“아뇨, 여기서부터는 육로로 갈 수 있습니다. 북문을 지나면 광명 목탑으로 가는 육로가 열립니다.”
[어렵지 않네.]
“실례가 안 된다면 길을 안내하기 전에,식량과 물을 좀 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해라.]
“알겠습니다. 두영님. 이쪽으로 가시지요.”
아라타는 노점에서 파는 경단과 물을 잔뜩 구매하더니 북문으로 향하는 행상과 짐꾼들을 따라 이동했다.
거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허! 그건 이렇게 해야지! 거 사람이 어찌 그리 우악스러운가? 그렇게 막 다루다 상품이 망가지면 책임질 텐가?! 좀 더 조심해서 일하게!”
선비 노릇을 하며 잘난 체를 하는 사람.
“동명을 건너오면서 캔 약초를 팝니다. 보고 가세요.”
“서역 르나르국에서 왔습니다. 신비한 물건 많습니다. 구경하십셔!”
보따리를 풀어 물건을 파는 사람.
“산나물 팝니다. 어렵게 캔 것입니다.”
“배 타고 오느라 지치셨을 텐데, 한잔하고 가십시오.”
돗자리를 깔아놓고 다양한 나물들을 파는 노인 외에도 유곽과 술집으로 호객하는 사람들과 무장을 하고서 물건을나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무장을 하고서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을 보았다.
잔뜩 모인 인파를 헤치며 큰 수레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호위하는 수레에는 큰 동물의 사체가 실려 있었다.
[아라타, 저게 마한하티라는 동물이냐?]
“예. 맞습니다. 두영님.”
머리통의 크기만 해도 5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생명체가 커다란 마차 위에서 죽어 있었다.
아라타의 묘사대로 큰 덩치에 딱딱해 보이는 짙은 회색 피부와 긴 코 그리고 올곧고 기다랗게 자란 두 개의 상아와 양의 뿔처럼 돌돌 말리다만 뿔을 가진 생명체였다.
귀가 나팔처럼 넓고 커다란 것이 지구의 한 생명체를 연상시켰다.
[뭐야, 코끼리네.]
그렇다, 마한하티는 그냥 코끼리였다.
차이점라고 해 봐야 마한하티가 좀 더 크고,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것 정도였다.
“코끼리가 무엇입니까? 두영님.”
[고향에 있는 저런 동물인데, 저거보다는 작아도 생긴 건 비슷해.]
“오오! 두영님의 고향에도 마한하티가 있단 말이십니까!?”
[엄밀히 따지면 내 고향은 아니지만, 대충 비슷해.]
아프리카나 태국, 인도 땅에 있다고 설명을 하려다 그냥 얼버무렸다.
아라타가 워낙 호기심이 깊어 새로운 단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귀찮게 했기 때문이다.
[쯧쯧! 여기서도 코끼리들이 가엾기는 매한가지구나.]
죽은 마한하티의 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구나 이곳이나 왜 얘들을 못 괴롭혀 안달인지, 그깟 상아가 그렇게 필요한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씁쓸한 현장을 뒤로하고 상촌의 입구를 보았다.
100걸음 정도 뗐을 무렵, 누군가가 소리쳤다.
“흑조가 황우에게 도전한다!!”
“흑조가 황우에게!?”
“그게 사실이야?”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동요했다.
마치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동요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아라타를 보았고, 아라타는 민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아마 왕위 쟁탈전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왕위 쟁탈전? 그게 뭐냐?]
“아까 말한 사천왕의 자리를 놓고 승부를 겨루는 것이지요.”
[호오? 그럼. 이긴 놈이 사천왕이 되는 거냐?]
“예. 승리한 사람이 새로운 사천왕으로 해당 구역의치안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 사천왕이라는 놈들은 강해?]
“사천왕이라 불릴 정도니 약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영님 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 강할 것입니다.”
아라타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자고로 재미난 구경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비록 싸움을 말리는 직업을 하고 있었지만, 형사 때도 이종격투기나 권투 방송은 꾸준히 봐왔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다.
[잠깐, 구경해도 괜찮겠지.]
어차피 인간으로 돌아가야 할 때면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잠깐 이쪽 세상을 체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구경하고 가시렵니까?”
[그래, 어떤 자들일지 궁금하구나. 잠깐, 보고 가자.]
“예. 소승이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아라타를 따라 대결의 준비가 한창인 무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