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49화. (50/83)



〈 50화 〉49화.

“500냥이다! 500냥!”

“술과 고기를 내와라! 크하하!”


“켁! 숨 막혀!”

검은 의복을 입은 사내들이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뻐하며 외쳤다.


그런 사내들에게 잡혀 발버둥을 치고 있는 아라타를 보고 있자니 두뇌가 없는데도 골이 아팠다.

깜빡하고 있었는데, 아라타는 수배자.

지금 이 꼴을 보니, 동명에서만 수배자가 아니라 동토 전역을 아우르는 전국구 수배자인 모양이다.


즉, 문제없이 안심하고 거리를 활보하려거든 아라타도 하회탈을 써야 하는것이다.

새삼 아라타가 내 얼굴을 가리는  좋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내 실수다.지금 보니 위장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새끼였어. 일찌감치 저놈 머리에 모내기라도 해서 위장을 해야 했는데.]

“제길! 이까짓 밧줄!”

내가 후회하는 동안 아라타는 목을 옭아맨 밧줄을 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목을 감은 밧줄에는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았고, 목과 연결된 밧줄은 손이 닿지 않아서 끊을 수 없었다.

“켁! 두, 두영님! 도, 도와주세요!”

이내 자력으로 탈출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라타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구슬픈 눈을 하고서 하염없이 날 바라보는 아라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버리지 말아 달라는 듯이간절히 날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녀석과의 추억이 떠올렸다.

[이럴 수가, 좋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함께한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떠오르는  없다.


기껏 떠오른 기억이라고 해 봐야 도와준다고 해 놓고 뒤통수를 친 괘씸한 기억과 똥물에 머리를 박던 기분 나쁜 기억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잠깐, 어차피 하회탈 썼잖아. 지금부터는 저놈 없이도 나 혼자 갈 수 있지 않나? 동토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냥 잡혀가게 두는 게 나을지도….]

하회탈을  지금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서 광명 목탑을 찾아갈 수 있다.


조금 헤매기는 하겠지만, 이제부터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광명 목탑이 어딘지만 물어보면 충분히 찾아갈자신이 있었다.

굳이 아라타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수배자인 아라타는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넘어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게 인과응보이고, 정당한 사회정의 실현일 테니까.

“어이쿠! 무슨 일인가? 누가 죄인이라도 잡았나?”


“아 글쎄! 저 스님이 금화 500냥이라지 뭔가?”

“스님이 금화 500냥? 설마아라타를 잡은 겐가?!”


“누군지 아는가?”


“왜  승려를 사칭하고, 사금여를 꼬드겼다 쫓겨난 자 있지 않은가?”

“아! 재물과 여자를 밝히는 파계승!?”


“정수산의 야왕에게서도 돈을 뜯었다지?”

“그뿐인가? 장목성에서는 여인네들을 희롱했다고 해. 사통까지 해서 그곳 남편들이 아라타의 ‘아’자만 꺼내도 요절내겠다고 했지 뭔가.”


“어이쿠! 생각한 것보다훨씬 더 몹쓸 놈이었구만!”


“여자들을 희롱하고 떠난 몹쓸 땡중이 저 핏덩이었다니! 세상 참 말세로구먼!”

“그뿐인가. 내 상행을 하면서 들은 소문에 의하면….”


주변에 몰린 장사치들이 조잘조잘 아라타에 대해서 떠들었다.


 이야기는 무척이나 다양했다.


승려를 사칭한 아라타가 술법을 사용해자신의 힘을 과시하더니 왕들의 재산을 뜯어내고, 자신을 홀리는 기생들을 마다치 않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 불심이 깊은 어느 왕은 아라타에게 금화뿐 아니라 값비싼 술과 영약 그리고 귀한 옷가지와 보석까지 뜯겼다고 한다.

그렇게 뜯어간 물건을 스님 신분을 이용해 비싸게 팔아넘겼으며, 초대받은 성의 하녀들과 정분이 난 것은 물론, 잘생긴 얼굴과 반짝이는 머리를 이용해 아직 시집도 못 간 여자들의 마음마저 훔쳐 동토의 왕국 곳곳에 풍기문란을 일으켰다.


 전적이 어찌나 화려한지 만백성이 시기하고 질투할 정도였다.


“저 죽일 놈의 파계승이 드디어 잡혔구만!”


“쌤통이다! 아랫도리를 잘라버려라!”

[녀석 얼굴만 좀 반반한제비 새끼인 줄 알았더니, 사기 전과까지 있는  새끼였구나.]


그것도 왕을 등쳐먹었다면 보통 사기꾼이 아니다.


아주 싹수가 노란 녀석이다.


[쯧쯧! 한심한 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나마 남아 있던 정나미도 뚝 떨어졌다.


녀석을 구할 마음 역시 완전히 사라졌다.

“두, 두영님…?”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아라타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나는 몸을 돌렸다.


“으앙! 두영님! 오해입니다! 소승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아라타가 절규하며 날 불렀다.

나는 계속 무시하고 걸었다.


그때였다.

무거워 보이는 나무 지게를  상인들이 말했다.


“아이고. 아라타님…. 하필이면, 서방(西方) 흑랑 당주 패거리에 잡히셔가지고!”


“부디 큰일이 없으셔야 할 텐데….”

지게꾼으로 보이는 그들은 포승줄에 잡혀가는 아라타를 보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을 등쳐먹은 천인공노할 사기꾼인 아라타를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어째서 저자의 걱정을 하십니까? 저자는 수배자가 아닙니까?]


“아이! 그거야 힘깨나 쓰는 양반들이나 하는 말입죠! 저희 같은 평민들에게는 중요하신 분입니다!”


“맞습니다! 아라타님은 예부터 왕들을 속여 얻은 쌀과 곡식을 몸이 아파 일도 못하는 천민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굶주린 여인과 아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나눠주었지요.”

“그뿐이겠습니까? 행여 귀신이라도 들었다 치면 술과 돈을 내라며 윽박지르는 다른 파계승들과 달리 아무 대가 없이 망령을 퇴치해 주셨지요.”


“환자들의 치료까지 못 하는 것이 없으셔서 많은 중생을 도우셨지요. 소문처럼 나쁘기만  분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처럼 가진 것 없는 혹자들 사이에서는 어린 성인이라 불립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겐 정말 감사한 분이시지요.”


“맞습니다. 이 넓은 동토에서 아라타님의 은덕으로 목숨 부지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아라타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형사로 오래 일해서 나는 비난보다 칭찬을 더 믿었다.


비난은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인 경우가 많지만, 칭찬은 주관적인 경우보다는 객관적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보다 남을 믿고 따르는 게 훨씬 더 어려워 그렇게 비난보다 칭찬을  높이 사는 면도 있다.

또한, 경험상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는 사람은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업적이나 선행을 행한 경우가 많다.

비난은 누군가의 오해 착각으로도 쉽게 부풀려지지만, 칭찬은 실제로 성과가 없으면부풀리고 싶어도 쉬이 부풀릴 수 없는 탓이다.


대단한 업적을 쌓고, 많은 돈을 기부한다고 해서 꼭  사람의 심성이나 본성까지 고운 것은 아니겠지만, 대개 선행을 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많은 사람에게 동정을 받거나  믿음을 잃지 않는 법이었다.

지역 유지들이 같은 동네 사람들에게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음….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그저 사기만 치고 다닌 것은 아닌 모양이네.]


아라타도 홍길동처럼 선행이라도 쌓은 것이 분명했다.

뿌리까지 썩어 빠진 완전 쓰레기는 아니란 말이다.

“여색을 조금 밝히셔서 그렇지…. 사람 자체는 좋습니다.”

“예끼!  사람아. 여색이라니!그것도 전부 뜬소문 아닌가!”


[소문?]


“아라타님과 합방을  과부가  이야기인데…. 나이도 어린데 그곳 씨알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밤일도 잘하고 보시다시피 얼굴까지 잘나지 않았습니까? 그 바람에 고을의 과부와 종갓집 따님들을 여럿 홀린 모양입니다.”


[홀렸다고요?]

“아 글쎄, 고년들이 아라타님이 못 떠나도록 잡았는데도, 아라타님이 떠나니까. 뿔이 난 게지요. 그래서 음해한 소문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녀석…. 역시 스님이 될 팔자는 아닌가 보네. 아니지. 사람들을 도왔다면 스님이 팔자에 맞는 건가?]

지게꾼의 이야기에 나는 아라타를 다시 보았다.

녀석은 팔과 다리로 모자라 목에까지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


확실히 대머리만 아니면 잘생긴 얼굴이다. 아니, 여기선 대머리가 최고의 헤어 스타일이니까 아라타의 외모는 절세미남에 가까울 것이다.

저 정도 절세미남이라면 여인들이 혼을 놓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게다가 밤일에 술법까지 뛰어나다고 하니 여자들이 끌릴 만도 했다.


[나도 소싯적에는 한 얼굴 해서, 그 심정 이해할 있지.]

“그런 분이 왜 하회탈을…?”

[그건 비밀입니다.]

“아무튼, 실해도 보통 실한 게 아니라 과부부터 아녀자들까지 괴기 엮듯이 자주 꾀었다지 뭡니까. 소문에 의하면 사금여도 그 물건을 보고 아라타님에게 반했다고 합니다.”

“사금여에게는 금수왕이 있잖나? 그런 사내대장부가 있는데, 굳이 아라타님을 꾈 이유가 있나?”


“이보게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르는 게야. 소문에 의하면 금수왕이 몸은좋은데 그곳은  그렇다고 하더구먼.”


“아니, 마한하티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것 같은 그 금수왕이 말인가?!”

“이건 비밀인데 월정에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금수왕의 그곳이 손가락만 하다고 하네.”

“어느 손가락?”


손을 보이는 남자의 말에 지게꾼이 그의 귀에 대고 조심스레 말했다.


“새끼손가락.”

“새, 새끼손가락?! 역시 하늘은 평등하구만. 껄껄!”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이 되니 여러 가지 의미로 아라타가 다시 보였다.

[그래. 이제 와서 새로운 가이드를 구하기도  그렇지.]

나는 은밀히 뾰족한 뼈다귀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말에 묶여 질질 끌려가고 있는 아라타에게 향하도록 한  발사했다.


예기를 머금은 뼈다귀 파편들은 총알처럼 날아가 아라타의 몸을 감고 있는 밧줄들을 끊었다.

두꺼운 밧줄들이 갑자기 끊어지며 풀리자 아라타는 물론, 구경하던 사람들도 놀랐다.

“어라? 설마, 두영님?”


아라타는 감동이라도 한  나를 쳐다보더니 땅을 박차며 달려왔다.


“두영님! 다시 소승을 구제해 주시다니,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소승 두영님을 큰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시끄러우니  닥쳐라!]

“예! 닥치겠습니다!”

우렁차게 소리치는 아라타.

“아! 저 녀석!”


“아라타가 풀려났다! 쫓아!”

“헉! 벌써 들키다니!”


[그러게, 조용히 하라니까.]

“죄, 죄송합니다.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아라타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은 현상금 사냥꾼들이 다시 쫓아왔다.


무기까지 꺼내  번거로운 상황에 나는 아라타를 쏘아보았다.


겁에 질린 아라타는 내 뒤에 숨었다.


“이 녀석! 설마 네놈이 풀어준 것이냐!?”


[…그래, 내가 풀어줬다.]


이제와 둘러대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내가 한 짓을 인정했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소란에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옆에 있던 아라타는 감동이라도 받은 것인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음을 떨었다.


“두영님, 역시 소승을 위해서….”

[감동하지 마. 지금도 못난 대굴빡을 못난이 감자로 만들어 버리고 싶으니까.]

“옙!”

“네 이놈! 우리가 잡은 사냥감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냐?”


“그래, 이놈은 내 길잡이거든.”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아. 다만, 이놈을 잡아가게 두진 않겠다.”


“감히 우리 흑랑의 사냥감을 훔치려 들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아니요! 훔친 것이 아니요!”


“뭣이?!”

“소승은 이미 두영님께서 잡힌 몸이었소! 이미 소승의 몸과 마음은 두영님의 것이었다는 말이오! 훔친 것은 도리어 그대들이오!”


“뭐라?”

아라타의 말에 흑랑 소속의 사냥꾼들이 당황했다.

나도 아라타의 말투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들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아라타는 내가 자신을 이미 붙잡았던 것이라고 둘러댈 속셈인 듯했다.


애초에 함께 행동하고 있었고, 내가 잡은 것이라면 저들도 함부로 손을  없을 테니,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너는 애초에 저 사내에게 포박되어 있지도 않았지 않느냐!”

“멀쩡히 옆에 서서 혈투를 구경하는 것을 보았거늘! 어디서 뻔한 거짓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누가 네놈들이 한 패인 것을 모를  알고!”


상대도 바보는 아니었다.


애초에 아라타에게 밧줄을 던져 기습한 이유는 그가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묶이지 않은 상태였고, 일행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잡은 것이었다.

너무 뻔한 거짓말이었다.


아라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꾹 닫았다.


[믿고  믿고는 그쪽 자유다. 어쨌든, 이놈은 내가 데려갈 테니. 관여하지 마라.]

“흥! 역시 힘으로 빼앗겠다는 것이군. 이 좀도둑 같은 놈!”


[좀도둑?!]

좀도둑이라니?!

형사에게 이런 모욕이 또 있을 수 없었다.


살짝 화가 나자 옆에 있던 아라타가 노파심을 숨기지 못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저…, 두영님. 아무리 화가 나셔도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주의 부탁합니다.”


[…….]


기껏 도와줬더니 이 얼치기는 또 상대방 목숨을 걱정하고있었다.


아라타의 말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갈걸, 뭐가 아쉬워서 이런 민머리를 도와준 걸까.


“뭐 좋다! 네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힘으로 빼앗으면 그만! 사냥감을 빼앗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얘들아!”

“예! 형님!”

그 말에 현상금 사냥꾼들이 무기를 뽑았다.


[말이 안 통하니까. 칼을 드네. 무슨 양아치도 아니고. 뭐가 저리 무식해?]


당장에라도 공격할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쉬자 불똥을 튈 것을 걱정한 사람들은 멀리 물러났다.

다들 싸울 공간을 내어주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싸움이다! 싸움이야!”

“흑랑 당주 패거리와 싸움이 났다!”

“오늘은 재미난 일이 많구먼!”

흥미진진해하는 사람들의반응, 하지만 아라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히익! 흑랑 당주 패거리!? 저놈들이흑랑 패거리였단 말인가!?”

[그게 뭔데 그리 호들갑이냐?]


“상촌 일대 현상금 사냥꾼들을 부려 먹는 패거리인데, 집요하기로 유명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한 명이 당하면, 늑대무리처럼 떼로 덤벼들기로 유명하지요. 추적 역시 끈질겨 잘못 걸리면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거 귀찮겠네.]

“내 오늘 너의 손목을 잘라 두 번 다신 도둑질을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얘들아! 쳐라!”


현상금사냥꾼들은 각자의 무기에 검기를 일으키며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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