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50화. (51/83)



〈 51화 〉50화.

동토, 이곳은 힘만 있으면 최고가 될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


흑랑은 약자에게는 가혹하지만, 강자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이 세계의 절대적인 법칙이 마음에 들었다.

일자무식의 그라도 강한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대우를 약속받을 수 있으며, 많은 이들의 위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만 있으면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은 할 것도 없었다.


그런 계산을 잘하는 놈을 부리면 되니까.


힘만 있으면 귀찮고 번거로운 노동도 필요 없다.


머슴, 노비들을 고용해서 마음대로 부리면 되니까.

사내대장부라면 누구라도 바라는 술, 돈, 여자, 명예, 권력.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노력해서 얻든, 빼앗든 어떤 방식으로든 힘만 있으면 해결된다.

흑랑이 처음 상촌 서방의 당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천하를 가진 기분이었다.

무엇하나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으며, 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만 같은 만족감에 빠졌다.


그는 이것이 권력의 참맛이라 여기며 자리에 취하고 권력에 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촌 서방 당주의 자리가 완벽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금 걱정이나 새로운 도전자에 대한 걱정처럼 불안한부분이 아직 존재했다.

서방의 주인이지, 상촌의 주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흑랑은 서방 당주의 자리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바로 상촌의 왕, 가네샤의 자리였다.

상촌 서방 당주의 자리만으로도 술, 돈, 여자, 명예,권력은 충분히 맛볼  있지만, 더 많은 것을 얻을  있는 일인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남몰래 꾸준히 힘을 기르며 가네샤에게 도전할 기회를 엿보았다.


괴이인 가네샤에게도 분명, 어딘가 빈틈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를 꺾을 방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가네샤는 강했다.

상촌 일인자의 자리가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이따금 찾아오는 도전자들을 무참히 꺾었다.

개중에는 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자들이 많았는데,그들마저도 손쉽게해치웠다.

인간,괴이 가릴 것 없이 가네샤와 맞붙은 존재는 그 강한 힘에 맥을 추지 못하고 처참히 살해당한다.

어느새 가네샤는 그런 절대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죽어가는 도전자들의 모습에 흑랑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방법을 모색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그는 가네샤를 이길 수 없다.

인간과 괴이가 지닌 태생적 차이 탓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신으로 싸웠을 때의 이야기였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머릿수로 밀어붙인다면 결과는 달라지리라 여겼다.

늑대들이 무리를 짓고 힘을 합쳐서 사냥하듯이, 자신과 비견되는 자들을 모아 가네샤를 사냥하면 된다고 말이다.

이에 흑랑은 세력을 모았다.


자신에게 패배하거나, 다른 사천왕에게 패배한 이들을 중심으로 인재들을 모았다.

덕분에 현상금 사냥꾼들로 시작된 그의패거리는 점점 더 불어나 뛰어난 인재가 모인 군대가 되었다.

“크흐흐! 이제 한 명만 더. 우리와 비견되는 실력자 한 명만 더 모으면 가네샤를 치고 그 자리에 앉을 힘이 모이게 된다!”


흑랑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인파 속에 섞여 싸움을 구경했다.

“저 두  중에 한 놈이 내 부하가 될 것이다. 크흐흐!”

그는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았다.

바로 흑조와 황우였다.


 중 승부에 패한 자를 자신을 부하로 구출해 등용해 함께 가네샤를 치는 데에 이용할 계획이었다.

황우는 흑조의 공격에 좀처럼 지치지 않았다.

벌써 몇 방이나 공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호흡마저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내력이 중후한 탓이었다.

이는 흑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흑조는 황우의 노련한 공격을 교묘하게 피하며 끊임없이 황우의 급소를 노렸는데, 두 사람 다 실력이 보통이 아니어서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결판이 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감질나는구나. 어서 빨리 끝내고 가네샤를 치고 싶은데….아니다. 참자.  리 길도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인내도  일인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장차 상촌의 주인이 될 왕으로서 참고 기다리자.”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던 흑랑은 피가 끓고,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자신보다 약한 흑조와 황우를 두들겨   강제로 부하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땅의 주인을 정하는 신성한 대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무인의 자존심에 먹칠하는 일!

아무리 그라도 함부로 나설 순 없다.

괜히 나섰다가는 싸움을 방해한 그들이 자신의 대업을 듣고도 반감을 갖고 거부할 수도 있으니 지금은 그들을 배려해 참고 기다릴 때였다.


흑랑은 지압용 쇠구슬을 만지작거리며 혈기를 다스렸다.

결판을내려는  흑조가 기둥을 박차고 올라 자신의 갈고리에 검기를 불어넣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검기에 황우 역시 환도에 검기를 불어넣었다.


“결판을 내자!”

“역시 마음이 통하는군! 이심전심이다. 보이! 널 내 것으로 만들어주마!”

흑조는 하늘에서, 황우는 기둥의 위에서.

각자 가진 최고의 절기를 펼쳤다.


“때가 되었군. 곧 결판이 난다.”

흑랑은 싸움에 집중했다.

그렇게 검기와 검기가충돌하려는 바로 그 순간!

“꾸아아악!!”

커다란 도끼를 한 사내가 흑조와 황우, 두 사람의 사이로 날아갔다.

마치 화살처럼 두 사람의 사이를 막으며 날아간 사내로 인해 둘의 대결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관중은 당혹감에 빠졌다.

“방금 그거 뭐였지?”

“사람이지 않았어?”

“사람? 예끼  사람아! 사람이 닭도 아니고 무슨 하늘을 날아?”


“이 사람아, 닭도 하늘은 못 날아!”

“그래도방금 그건 진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사내를 본 구경꾼들이 한마디씩 했다.

갑자기 나타난 훼방꾼에 최고조로 달아올랐던황우와 흑조의 대결 분위기가 빠르게 식었다.

그들의 시선은 국밥집 마루에 떨어진 사내에게 향했다.

“흐미! 시상에! 이게 뭣이여!”


“웬 사람이 떨어져부러야?”

“대관절 이게 무슨 조화당가!”

마루에 처박혀 정신을 놓은 사내의 모습에 국밥집할머니와 이모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정말로 사람이 날아온 것이다.


그들은 당황한 채 서로를 보았다.

놀라기는 흑랑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놈이 신성한 대결에 훼방을 놓은 것이냐!”

흑조와 황우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그도 훼방을 놓은 사내를 확인하기 위해 멀리서 국밥집을 보았다.

국밥집 이모들이 마루에 처박힌 사내를 일으키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저, 저놈은!”


사내의 얼굴을 본 그는깜짝 놀랐다.

하늘을 날아온 사람이 그가 이끄는 현상금 사냥꾼들의 행동대장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자신에게 도전한 후 패배한 사내였다.

그가 모은 인재 중에서는 무려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흑랑은 몸을 가볍게 하는 경신술을 펼쳤다.

독 발린 대나무를 가볍게 밟아 날아오른 그는 기절한 사내의 앞에 섰다. 그리고 질문했다.


“이게 대체 어찌  일이냐!?”

“으으…. 당, 당주님…. 윽!”

서방 당주인 흑랑의 부름에 사내는 잠시 눈을 뜨더니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통증을 참지 못한 것이다.


흑랑은 얼른 기절한 사내의 상태를 살폈다.

강한 권법에 맞은 것인지 배가 움푹 들어가 있고, 입에서는 피가 철철 나왔다.


복근이 찢어지고 내장이 상했을 정도의 위력이 가해진 것이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상처를 모두 회복할 때까지 칼은 고사하고 밥숟갈도 제대로 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떤 놈이 감히!”


흑랑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사내가 다쳐서 분노하거나 화가  것은 아니었다.

귀중한 인재 하나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사내가 회복할 때까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테니 분노하는 것이 당연했다.

“누군지 몰라도 용서치않겠다!”

흑랑은 자신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것에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때.


“싸움이다! 싸움이 났어!”


“흑랑 패거리가 당했다!”


흑랑의 귀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뭣이?! 누가 당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소란의 근원지를찾았다.

이미 흥이 깨진 흑조와 황우도 고개를 돌려 소란이 일어난 자리를 확인했다.


“감히 신성한 대결을 방해하다니! 누군지 몰라도 가만두지 않겠다!”


“이제 보이와 맺어질 참이었는데!훼방을 놓다니! 누군지 몰라도 사내라면 내 불방망이로 혼내주마!”

그들도 자신들의 숭고한 대결을 방해받았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어떤 녀석이냐!”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셋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와 싸움이 일어난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두영과 아라타가 서 있었다.


#

무기를 들고 덤벼드는 현상금 사냥꾼들.


나는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팔을 휘둘러 공격을 걷어냈다. 그러자 이블 나이트의 압도적인 완력을 견디지 못한 현상금 사냥꾼들이 하늘을 날아 파닥파닥 거리며 떨어졌다.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어떤 특별한 기술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팔에 조금 힘을 주고 휘저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가진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현상금 사냥꾼들의 몸이 하늘을 날아 사방팔방으로 떨어졌다.

너무나 애처로운 꼬락서니에 이를 구경하고있던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때 구경꾼   명이 눈을반짝이며 소리쳤다.

“저것은 질풍광파권(疾風廣播拳)! 질풍광파권이 아니던가!”

“질풍광파권?! 그게 대체 뭔가?! 금시초문이네만?”

“질풍과도 같은 기세를 널리 퍼뜨려 상대를 날려버리는 권법이지! 한 번 주먹을 휘두르면  어떤 공격도 쳐낼 수 있고,  어떤 상대로 밀어낼  있다네! 권법과 내공이 높아야지만 쓸 수 있는 상승 무공이지!”

아닌데, 그냥 손을 휘둘렀을 뿐인데….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나 쓰는 고등 권법이라네. 저 사내는 분명 엄청난 고수가 분명해!”

“오오! 질풍광파권이라! 그런 권법이 있었구먼!”

“덕분에 오늘  새로운 권법을 배웠네!”

“오오! 그렇다면 저 삿갓에 하회탈을 쓴 사내가 절세고수라는 말이로군!”


“그래, 보통 고수가 아닌 게 분명하네!”


“저런 고수가 또 상촌에 오다니!”

“이거 피바람이 불겠구먼!”


구경꾼의 설명에 나머지 구경꾼들이 호응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라타야. 질풍광파권이 뭐냐? 여기 그런 권법이 있냐?]

“소승이 알기로 없습니다.”


[…없다고? 그럼.  사람 말은 뭐야?]

“본래 동토인들은 작은 움직임에도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니…. 힘깨나 쓰는 고수가 나타나 칼  번 휘두르면 질풍참, 흑풍참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지요.”

[…그래도 돼?]


“그냥 입소문입니다. 두영님. 소승이 예견하건대 조만간 두영님께선 질풍광파권의 절정고수라 소문이 날 것입니다.”

[정작 나는 그게 무슨 권법인지도 모르는데?]

“특별히  알고 말고 게 없습니다.애초에 동토에 붙은 이명이나 권법 이름은 모두 저잣거리의 구경꾼들이 붙여주는 것이니까요.”


권법 이름 같은 것은 모두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준다는 말.

내가 진짜 권법을 배웠건 그러지 않았건, 저잣거리 사람들이이름 붙여주면 그 이름의 무술을 배운 고수가 되는 것이다.


방금 내가 손을 휘두르지 않고 발을 썼으면 질풍광파각이라고 이름이 붙었으리라.


정말 황당한 이야기였다.

[이상한 곳이네.]

“예…. 소승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라타는 구경꾼들이 부끄럽기라도 했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인정하더니 앞으로 나갔다.

“흠! 흠! 하룻강아지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은 이럴  쓰는 것이로구나! 여기 있는 이두영님께서는 질풍광마권의 고수!”

[광마가 아니라 광파 아니냐?]

“광파권의 고수! 혹자들이 대적할 만한 그릇의 범인이 아니올시다!”


“오오! 역시 절세고수였군!”


“내가 뭐라고 했는가! 질풍광파권의 고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흠! 무릇 딱딱하게 굳은 만용과 교만은 더 강한 힘과 마주했을 때, 유연히 대처하지 못하는 법! 혹자들께서 두영님을 공격한 것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터이니! 이만 물러나시게! 부디 오늘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삼아서 세상의 넓음에 대한 교훈을 얻기를 바라오! 아미타불.”

그는 목을 풀더니 손바닥을 모은 합장 자세로 큰소리쳤다.

도저히 이 일의 원흉이라   있는 놈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른스럽게 말하는 모습만큼은 승려다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