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53화. (54/83)



〈 54화 〉53화.

상촌의 중심.

그곳에는 중학교 운동장 10개는 합쳐 놓은 것 같은 거대한 면적의 궁궐이 세워져 있었다.


궁궐이 어찌나 큰지 건물의 높이만 해도 작은 산 같았다.


나는 까메라를 통해 궁궐을 확인했다.


궁궐의 8개 꼭짓점에는 각기 다른 동물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크기는 장성한 성인 남자의 덩치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조각상의 정교함 역시 실제 동물의 몸에 황금을 끼얹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척 봐도 명인을 데려와 만든 고급품 같았다.

[입구는 여기구나.]


나는 남문의 앞에 섰다.

남문은 커다란 나무 대문이었다.

옛날 성문처럼 튼튼하게 잠겨 있었으며, 아름다운 장식이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장식은 성문의 좌측과 우측에 세워진 황금 조각상이었다.

각각 거북이와 두꺼비를 조각한 황금조각상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두 조각상은 입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절 같은 곳에 가면 보이는 수호신처럼 화려온 옷에 창과  그리고 금강저와 비파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조각상 크기 봐라. 아주 목이 빠지겠다.]

어찌나 높이서 내려다보는지 대문 앞에서 조각상을 보려면 목이 빠질 정도였다.

“상촌의 명물 황금조각상입니다. 성문마다 이런 엄청난 조각상이 있어서 한때는 관광지로도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상촌 주민들의 고혈을 빨아 만든 것이겠지요.”


[그래. 돈을 얼마나 처발랐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가네샤라는 그놈 뻔뻔해도 보통 뻔뻔한 놈이 아닌  같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우리를 내려다보고있는  개의 황금조각상을 보았다.

이것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특정 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C모 국회의원의 뇌물수수혐의의 수사할 때였다.


해당 의원의집에서 저것들과 비슷한 생김새의 황금으로 만든 거북이와 두꺼비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게 하나도 아니고, 무려 수십 개나 발견됐었는데, 우리 경찰 측이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황금 거북이와 두꺼비를 지목하자, 당시 의원은 그것들이 30년 넘게 자신의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보라며 뇌물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국회의원이 일단 오리발을 내미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뇌물을  사람과 받은 사람이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그렇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은 추함의 극치여서 매스컴에도 C국회의원의 치부가 까발려졌었다.


아무튼, 황금 사랑이 남달랐던 해당 의원은 뇌물로 받은 물건들을 부정하지도 않고 꾸준히 자신의 가보라며 억지와 강짜를 부렸다.

하지만 조사 결과.

황금이라생각한 거북이와 두꺼비 대다수가 겉만 황금으로 도금된 짝퉁으로 밝혀졌다.

30년짜리 가보가 알고 보니 짝퉁 도금이었던 것이다.

짝퉁을 30년 가보라 주장하던 의원은 졸지에 바보가 되었지만,그는 자신이 바보가  것보다 받은 뇌물이 가짜였다는 사실에 더 크게 분노했다.


격분한 그는 자신에게 뇌물을 넘긴 기업의 간부를 찾아가서 직접 멱살잡이까지 했다.

자신의 죄를 숨기긴커녕 도리어 까발리는 것 같은 그의 자폭성 행태가 이상해 좀 더 깊이 파보니 뇌물을 받는 것 외에도 자신이 조성한 비자금을 감추기 위해서 기업이 추천한 알선업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황금 거북이와 두꺼비를 양산하고 있던 것이 밝혀졌다.

미술품에 가격을 매기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놈들처럼 싸구려 도금 조각품을 진짜 황금 조각품인 줄 알고, 수십억을 투자하며 비자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대선을 위한 뇌물로 쓰려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추진한 그의투자 사업자금을 해당 기업이 모두 싸구려 도금 조각품으로 만들면서 투자금 대부분을 착복해 버리고 말았다.


국회의원이 사기를 당한 초유의 사태였다.

비밀을알아챈 의원은 뇌물을 받은 것은 물론, 자신의 비자금 내역까지 실토하며 역으로 자신에게 사기  놈들을 고소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오리발이나 내밀다가 무척이나 협조적으로 변한 것이다.


덕분에 뇌물수수혐의는 물론,비자금 조성혐의에 불법으로 도금된 황금을 판매하던 사기꾼 조직까지 굴비처럼 줄줄이 엮어서 잡아들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C국회의원은 수사에 적극 협조한 덕분에 죄질에 비해 낮은 형량을 받기까지 했었다.


물론, 형량을 받아도 불체포 특권이 있어서 체포도 구금도 불가능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나쁜 놈들을 엿 먹인 통쾌한 기억이 있었다.

[그때 참 뿌듯했는데.]

범인을 검거할 때 느낀 보람을 떠올리며 대문을 보았다.


[가네샤인지 뭔지를 잡으면 그때의 뿌듯함을 다시 느낄 수 있으려나?]

“좋은 놈은 아닙니다. 엄벌을 내리면 분명 뿌듯할 것입니다. 두영님.”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시각, 청각 빼고는 다 마비된 몸이다.

남은 건 자기만족뿐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가네샤를 처치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싶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농민봉기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낮인데도 불구하고 횃불을 만든 사람들과 삼지창처럼 생긴 농기구와 곡괭이, 삽과 나무로  넉가래를  사람들이 우리들의 뒤에 있었다.

젊은 여인은 물론, 꼽추 영감에 이르기까지 다들 무기를 하나씩 들고서 일정 간격을 둔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비장한 그들의 모습에 나는아까  상황을 떠올렸다.


가네샤의 폭정에 흥분한 주민들을 위해 나는 우선 가네샤의 모습을 확인하고 가능하면 없애주겠다 선언했다.

이에 감동한사람들이 무기를 들고오더니 미약하게나마 우리를 돕겠다고 했다.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죽는 건 변함이 없다면서 애들이라도 구하겠다고 말이다.

그냥 부탁만 하고 말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무척이나 적극적인 모습이어서 보기 좋았다.

“이번 일에 사활이 달린 것이겠지요.”

[그래.]


아라타의 말대로 생사가 걸려서 절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주도적으로 참여해주는 모습은 무척이나 갸륵하고 인상적이었다.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력 0의 사람들이 따라와 줘봤자 민폐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세상의 고수들이 지닌 실력은 압도적이다.

장갑차도 맨손으로 때려 부술 정도이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인들은말 그대로 일반인이다.

기관총 앞으로 맨몸 돌격을 하는 것처럼 무모했다.

그래서 돕겠다는 그들의 마음이 기쁘면서도 검기 한 방에 학살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역시 두고 가는 게….]


“저분들도 노파심이 나서 그런  것입니다. 여태껏 많은 도전자들이 저분들에게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과는 늘 한결같았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자식이 잡혀가 마음이 아플 텐데,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데려가시지요.”

[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렇게 하자. 근데 도전했다가 도리어 당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아?]

“저도 직접 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네샤가 초기 집권했을 때는 도전자의 수가 달에만 십수 명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흠, 많네.]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으니까요.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고수들이 나섰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고수들이 이미 패배의 전철을 밟았다면, 이번에 내가 도전한다고 해서 결과가 바뀔 것 같지 않다만….]

수십 명이나 패배했다는 아라타의 말에 살짝 걱정되었다.


내 생각보다 가네샤가 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두영님이 가진 힘이라면 가네샤를 분명 쓰러뜨릴 수 있으실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리 확신해?]


“동명에서 마괴도 잡으셨지 않습니까? 장담컨대 두영님보다 강한 존재는동토에 없을 것입니다!”

아라타가 두 눈과 머리를 반짝이며 응원을 해주었다.


눈은 없지만, 눈부셨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신뢰 가득한 아라타의 눈빛에 화답하며 나는 눈앞의 거대한 대문을 보았다.

장성한 어른이 갓난아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대문.


문의 중심에는 반으로 잘린 황금으로 된 마한하티의조각상과 상아들이 박혀 있었다.

[가보자.]


“예!”


우리는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대문 앞으로 암살자 같은 복장의 사내가 수십 명이나 나타났다.

복면을 쓰고 있었으며,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었다.

눈매 역시 범상치 않은 것이 아라타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정도로 강해 보였다.

암살자들은 검을 겨누며 살기를 일으켰다.


그들의 살벌한 행동에 농기구를 들고 뒤따르던 주민들은 겁에 질렸다.

겁에 질려 떠는 주민들의 모습을  아라타는 치솟는 정의감을 참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비키시오! 여기 있는 저의 형님 이두영이 가네샤에게 도전할 것이오!”

당당한 아라타의 외침에 복면을 쓴 사내들이 아라타를 지나 날 노려보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은 무시하고 아라타에게 말했다.


[내가 언제부터 네 형님이었어?]


“두영님. 본래 부하가 이렇게 나서줘야 멋이 있는 겁니다. 그래야 상대도 저희를 함부로 여기지 못하고 손님으로 대하지요. 기다려 보십시오. 저놈들이 문을 열고 가네샤의 앞으로 안내해  것입니다.”

[글쎄다. 저놈들이 지금 취하는 태도를 봐서는 그렇게 예의 있어 보이지 않는데?]


“예?”

내 말에 아라타는 고개를 돌려 복면을 쓴 사내들을 보았다.

안내를 하리라는 아라타의 예상과 달리 복면의 사내들은 검을 내지르기 위한 출수 자세를 취한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 이상하다? 본래 이렇게 외치면 안내를 한다고 들었는데….”

당황하는 아라타의 모습에 절뚝거리며 달려온 꼽추 노인장이 말했다.

“도전자가 과하게 늘어나면서, 오래전에 도전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약자를 걸러내기 위해 관문이 설치되었습니다. 가네샤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도전자의 힘을 시험하는 것이지요. 그 시험을 통과해야만 입구를 지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이자들을 제가 모두 쓰러뜨려야 지나갈 수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지존이시여.”

내 말에 노인이 빗자루로 땅을 짚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 비겁한! 이렇게 많은 이들을 상대한다면 분명 힘이 떨어질 터인데! 어찌 이런 비겁하고 치졸한 술수를!”


노인의 말에 아라타가 격분했다.

[됐어, 쓰러뜨리면 되지.]


나는 손을 들어 마력을 집중했다.

[자, 지려라. 쓰레기들아.]

다시 암흑 오라의 촉수가 나와 복면들을 휘감았다.

무의미한 살생을 피하면서 힘도 아낄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강력한 공포심에 노출된 복면들이 몸을 떨었다.

그들의 얼굴과 하반신에서 각종 오물이 떨어졌다.

눈물과 콧물로 부족해 구토와오줌까지 지린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일부는 바지가 묵직해지는 것으로 보아 똥까지 지렸음이 틀림없었다.

심신을 극한까지 짓누르는 엄청난 공포심이 사내들의 수치심의 장벽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사내들은 들고 있던 무기를 놓고서 심신 미약으로 쓰러졌다.

“오오오! 패기만으로 복면들을 제압하다니.”


“몇 놈은 똥까지 지렸어!”


“다 큰 사내가 오줌과 똥을 지리다니! 이 얼마나 두렵고도 믿음직한 힘인가!”

“어, 어떤 의미로 정말 잔인하기까지 하군요.”


“치욕까지 안겨주는 잔인함! 역시 지존이십니다!”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지존이시여!”


[…가, 가자.]

“예, 예!”


나는 주민들과 함께 똥을 지린 사내들을 피해, 대문의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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