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54화. (55/83)



〈 55화 〉54화.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대문에는 큼지막한 음각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벽과 기둥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새겨진 문양들은 마치 예술가가 평생에 걸쳐 작업한 것처럼 그 크기와 간격마저도 모두 일정했다.

[와. 엄청나네.]

예술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모르는 내가 봐도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

아름답다 멋지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기에 나는 문을 부수지않고 힘으로 열었다.

“저, 거대한문을 힘으로….”

“역시! 이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지존 두영님 뿐이시다!”

“자! 우리도 갑시다!”

문이 열리고, 궁궐의 내부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궁궐 내부는 녹색과 갈색 그리고 적색과 노란색으로 이뤄진 패턴 문양이 황금 조각들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

바닥은 비단길 같았고, 벽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휘황찬란했다.

또한, 실내 역시 넓고 거대하며 웅장했다.

마치 사람이 지내는 궁궐이 아닌 위대한 신을 영접하는 신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실내도 으리으리하구나. 가자. 아라타.]

“예! 두영님!”

앞으로 걸어가며 감탄하자 궁궐의 웅장함에 넋이 나간아라타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내 뒤를 뒤따랐다.

조금 더 걸어가자 내시가 입는 관복 같은 것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궁궐 안에서 나란히 줄을  채 이동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모두 어린아이들이었다.

이제 막 10살을 조금 넘겼을 법한 상촌의 어린이들이었다.

애들은 항아리를 어깨에 이고서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남녀 관계없이 아이들의 머리는 모두 아라타와 같은 대머리였고, 애들이 이동할 때마다 수십 개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볕이 그들을 비추었다.

[많네.]

당장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숫자만 해도 백이 넘었다.

띄엄띄엄 이어진 줄을 생각하면 1,000명도  듯했다.

줄을 지어 항아리를 나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뒤따라 궁궐로 들어온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인들은 들고 있던 농기구를 바닥에 놓은 채 달려가 자신의 아이를 찾았다.

“울동아!”

“봉석아!”

곳곳에서 자신의 아이를 찾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를 발견한 부모들의 얼굴에 기쁨이 돌아왔다.

“아이고! 울동아!! 엄마가 미안해! 못 지켜줘서 미안해!”

“미안하다.봉석아! 미안하다! 내 새끼!”

항아리를이고 있는 자식을 발견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눈물을 쏟으며 소중하게 아들을 끌어안는 그녀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무척이나 감동적인 이산가족 상봉의 순간이었다.

헌데,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부모를 다시 만났는데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뜬 눈을 잘 감지도 않았으며, 오직 앞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자신을 안고 있는 부모를  생각도 않은 채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항아리를 들고 줄을 따라 걸어가려고만 했다.

“울동아,  그러니? 정신 차리렴!”

“봉석아! 왜 그러냐 봉석아! 대답 좀 해보거라!”

부모가 막았지만, 말을 듣지도 대꾸를 하지도 않았다.

마치 기계처럼 아이들은 술이  항아리를 들고서 뚜벅뚜벅 앞으로 걷기만 했다.

숨을 쉬는 것 외에는  어떤 반응도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아라타를 지나 노인을 보았고, 노인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조종을 당하는 것입니다. 입구에 있던 무인들처럼….”

[조종? 그런 힘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예. 약자에게 절대 풀 수 없는 최면술을 부린다고 들었습니다. 최면술이 풀려 탈출한 한 무인의 말로는 어지간한 정신력을 지니지 가네샤와 마주친 순간  압도적인 힘에 굴복당하고 복종하게 된다고 합니다.”

“복종이라니…. 그런 힘까지고 지니고 있을 줄이야.”

“입구를 지키던 무인들처럼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면 최면술에 걸려서 가네샤의 부하가  정도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승려도 가네샤의 조종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승려도 말입니까? 아! 혹시 먼저 방문한 승려들이 가네샤와 담판을 짓지 않고 쉬이 포기하던 것도 그 최면술 때문에…?”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매달 방문하는 수미산의 승려들께서도 우리를 가엾게 여기어 찾아오셨는데, 돌아갈 때는 인사도 없이 항상 빈손으로 가시니까요.”

노인의 말에 파계승인 아라타가 충격을 받았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승려들이 있다.

그들이 가네샤를 말리지 못하고 떠나는것이 가네샤의 최면술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최면술의 범위나 효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껄끄러운 기술임은 분명했다.

[최면술이라. 그럼, 저것들도 최면술에 걸린 거겠지요?]

노인의 말에 나는 정면을 보았다.

그곳엔 얼굴이 짐승의 형상을 한 괴이들이 있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사람처럼 무기를 들고 있었으며, 옷도 입고 있었지만, 머리가 동물이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등등 십이간지에나 나올 법한 동물들이 주를 이뤘는데, 아무래도 도깨비처럼 지성을 지닌 괴이인 것 같았다.

“괴, 괴이마저 갸네샤의 최면에 걸리다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군요. 정말로 승려들도 놈의 최면에 빠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암흑 오라.]

그들의 등장에 나는 다시 손을 들고 암흑 오라를 사용했다.

암흑 오라를 사용하자 입구에서 일어난 것처럼 마찬가지의 사태가 벌어졌다.

무기를 들고 접근하던 쥐, 닭, 소, 돼지 머리의 괴이들이 암흑 오라의 촉수에 팔다리가 얽매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곧 극도의 공포가 그들의 몸을 엄습했고, 괴이들은 두려움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게거품을 물고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져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괴이들.

그들의 바지가 묵직하게 부푼 것을 본 아라타는 숙연해졌다.

“괴이마저 지리다니…. 인외라하여도 두영님의 패기에는 당할 수 없나 봅니다.”

반복된 똥퍼먼스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아라타가 숙연한 태도로 말했다.

“역시 지존이십니다.”

“괴이마저 굴복시키다니. 탄복하였나이다.”

“부디 가네샤도 똥을 지르게 해주시옵소서.”

주민들도 처음처럼 환호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궁궐 밖도 아니고 안이라서 조심하는 것 같았다.

[최면술을 풀려면 일단, 이걸 건 놈을 조져서 푸는 게 좋겠지?]

“소승이 설법을 펼치는 방법도 있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가네샤를 먼저 제압하고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설법으로 푸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계속 가자.]

“예! 두영님.”

나는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괴이들을 두고 앞으로 향했다.

비단길 같은 복도를 걸으며 술 단지를  아이들을 따라가자 기사처럼 갑옷을 입은 적들이 나타났다.

동토의 패션과는 다소 거리가 먼 패션의 기사단은 검을 뽑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3번째 관문이자 문지기들이었다.

“예전에 방문한 기사단이로군요.”

기사단을 본 노인이 설명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선교 목적으로 상촌을 찾은 알고르 기사단과 선교사들이 상촌의 주민들이 받는 고통을 보고 그들을 돕기 위해 가네샤에게 도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전하러 간 그들은 가네샤의 최면술을 버티지 못하고 되레 놈의 부하가 되었다고 한다.

리더인 기사단장은 최상급 데스나이트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부하들은 중급부터 하급 데스나이트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숫자는 30명 정도.

실력만 따지면 흑랑 이상이었다.

내가 불러내는 데스나이트 부대보다 숫자는 훨씬 적지만, 개별적으로 싸우면 적지만 실력이 좋아서 막상막하일 것 같았다.

[데스나이트를 소환해 싸움을 붙이는 것도 재밌을지도.]

“두영님. 마귀를 소환하면 상촌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래? 그럼, 이번에도 암흑 오라로.]

아라타의 조언에 나는 다시 암흑 오라를 사용해서 3번째 문지기들을 제압했다.

게거품을  알고르 기사단은 똑같이 바지가 질펀해진 채로 쓰러졌다.

지금까지 만난 이들 중에서는 제일 강하지만, 그래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기에 다들 똥싸개가 되었다.

“또다시 희생자가…. 큭! 이번엔 냄새도 지독합니다. 두영님  조절을 해주실 수는 없는지요?”

[힘 조절?]

“아까 흑랑 패거리들을 상대할때처럼 지리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가능은 하지.]

“그럼, 그렇게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만나는 문지기마다 똥을 지리니 냄새도 심하고, 상촌을구하러 온 영웅들인데 똥이나 지려서야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가엾습니다.”

[까다로운 놈. 알았다.]

아라타의 요청을 받아들여 4번째, 5번째, 6번째 문지기는 암흑 오라에 손속을 두기로 하고 이동했다.

4, 5, 6번째 문지기들은 3번째 기사단보다 훨씬 약했다.

강함으로 순서를 결정한  아니라 도전한 순서대로 최면을 걸고 문지기를 세운 탓이다.

그래서 3번째 이후로는 암흑 오라의 촉수를 작게 만들어서 옭아매는 것만으로도 제압할 수 있었다.

아라타의 요청대로 4, 5, 6번째는힘 조절을 해서 게거품을 무는 정도만 했다.

심해도 실금을 하는 정도만 자극하고, 똥싸개로 만들진 않았다.

한  기절한 사람들은 금세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문지기들을 지나쳐 7번째 관문 앞까지 당도했다.

7번째 관문도 칼부림 없이 암흑 오라로 통과하면 좋았을 테지만, 마지막 7번째 문지기들은 암흑 오라가 통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암흑 오라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황금 조각상이 움직이네.]

그들이 생명체가 없는 황금 조각상이었기 때문이다.

온몸이 금을 칠한 것인지, 애초에 금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구별이   만큼 정교하고 휘황찬란한 조각상들이었다.

“금인장(金人樁)이라고 합니다. 절과 탑 등 역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곳을 보호하는 수문장입니다. 술법에 따라 움직이고, 생명체가 아니므로 감정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금으로 만들어서 녹이 슬지도 않지요. 안에 깃든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임무를 다하는 고가의 문지기입니다.”

아라타가 설명했다.

요컨대 금인장들은 일종의 골렘이었다.

마법사들처럼 술법을 펼치는 동토의 주술사들이 인공적으로 만든 존재로.

골렘이나 가디언과 비슷한 존재이며 주로 무언가를 지키는 명령을 받지만, 때에 따라 특정 대상이나 사물을 공격해 부수거나 파괴하는 임무를 맡기도 한다.

금인장들의 몸을 구성한 황금에는 검기와 마력에 대항하는 기운과 주술이 걸려 실려 있다.

그래서 금인장본인의 힘은 증폭시키고, 자신을 향한 침입자와 상대의 검기와 마력은 다 튕겨내는 것이 가능했다.

금인장 외에도 목인장, 석인장, 동인장 같은 골렘도 존재하는데, 금을 사용한 금인장이 가장 비싸고 강했다.

그 힘이 엄청나 웬만큼 강력한 고수도 일대일로는 금인장을 이기기 힘들다고 한다.

특히나 순금으로 완벽하게 제작된 금인장의 경우 한 지역의 왕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무위를 자랑한다고 한다.

“금은 내공이 아주 잘 흐릅니다. 그래서 순도가 높을수록 강한 것이지요. 이는 술법의 상호작용과도 관계가 있는데, 제가 기예천님에게 배운 바로는….”

아라타는 금의 순도와 술법 사이의 관계가 어쩌고저쩌고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금의 제련 방식과 조각 방식 등 온갖 지식까지 끌고 와 설명했다.

나는 길어지는 아라타의 말을 자르고 일축했다.

[쉽게 말해서 게임 캐릭터처럼 돈 지랄을 하면 할수록 강하다는 거잖아. 뭘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해?]

순금에 이어 보석까지 비싸면 비쌀수록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완성체 같은 놈들이었다.

“게임 캐릭터라니? 그게 대체 무엇인지요?”

[답답하긴. 게임 캐릭터가 뭐냐면….]

나는 설명을 해주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게임을 잘하지 않아서 설명이 어려운데다, 아라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있어. 다음에 피시방 가면 알려줄게.]

“피시방? 피시방은  무엇….”

[귀찮게 뭘 자꾸 물어봐! 그냥 그런 게 있어!]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두영님. 소승이 무지한 탓에 그만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니, 안 죄송해도 돼. 그보다 이 녀석들이나 처치하자.  고약한 코끼리를 잡아야지.]

나는 금인장들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괴물을 보았다.

5미터 크기의 금인장들보다 커다란 코끼리 괴물이 금은보화의 산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 코끼리가 상촌의 지배자인 가네샤지?]

“그렇습니다.”

나는 가네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게으름뱅이처럼 드러누운  거대한 항아리에 길쭉한 코만 박고 있었는데, 코끼리의 두상에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이었다.

머리에는 황금으로  거대한 왕관이 씌워져 있었고, 몸에는 황금과 값비싼 보석으로 이뤄진 장신구가 채워져 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갑옷도 입고 있었는데, 팔이 한 쌍이 아니라 무려 세 쌍이나 되었다.

 한 쌍은 황금으로 장식된 검을 들고 있었고, 다른 두 쌍은 고기와 황금을만지작거리고있었다.

머리만 정감 있는 코끼리이고, 나머지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놈의 외견보다도 흉측한 것은 거대한 황금 항아리였다.

아직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양쪽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가네샤의 술독을 채우고 있었는데, 가네샤는 술이 가득 차 있는데도 항아리를 흔들며 어린 애들을 독촉했다.

마치 술을 빨리 채우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최면에 걸린 애들이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면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때리며 학대했다.

[팔도 많은 놈이, 게으르기 짝이 없구나.]

나는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우기 바쁜 가네샤를 뒤로하고 우선 눈앞의 금인장들을 보았다.

금인장들은 황금으로 된 창과 봉, 거대한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생김새도 다양했다.

인간의 얼굴이 조각된 것도 있었으며 동물이나, 괴이의 얼굴이 조각된 것도 있었다.

개중에는 가네샤처럼 팔이 여섯 개가 달린 것도 있었고, 여덟 개가 달린 것도 있었다.

어느 것은 표정이 다른 머리 세 개가 붙어 있었고, 또 어느 것은 거북이처럼 등껍질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독창적인 디자인의 금인장들은 총 여덟 기.

 금인장들은 2열로 늘어서 부외자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는데, 무기를 아래로 겨눈 채 황금 눈동자만 돌려 우리를 관찰했다.

오직 술 단지를 든 아이들만이 금인장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간격 사이로 무사히 지나갔다.

반면, 우리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딛으면 황금으로 된 무기를 높이 치켜들고 공격을 할 태세를 갖추었다.

아무래도 일정구간을 넘어오면 자동으로 공격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입력된 모양이다.

[챙겨가서 팔면 돈 좀 될지도.]

나는 금인장을 금은방에 파는 상상을 하며 술 단지를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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