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59화.
아래로 내려온 아라타는 손으로 복도 끝을 가리켰다.
“이제 이 복도만 통과하면 됩니다.”
그곳엔 음각 문자들이 잔뜩 적힌 작은 공동이 있었다.
천장에는 아라타가든 것과 같은 연등들이 기둥들에 맞춰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고, 공동의 중앙 끝자리에는 입구에서 본 것과 비슷한 황금 불상이 앉아 있었다.
크기는 입구에 있던 것보다 작았으며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있었다.
하나의 몸에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다른 표정을 가진 얼굴 네 개와 네 쌍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아라타가 내려오자 불상의 얼굴들이 움직였다.
마치 수도꼭지가 돌아가듯 시계방향으로 얼굴이 돌아가 바뀌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것도 그냥 불상이 아니라 금인장인 것 같았다.
[얼굴마다 표정이 다르네.]
첫 번째 얼굴은 잠을 자는 것처럼 눈을 감은 얼굴이었다.
그 다음 얼굴은 박장대소라도 하는 것 같은 밝게 웃는 얼굴.
그 다음은 아래턱을 위로 올린 채 우는 얼굴.
마지막 얼굴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열심히 바뀌는 얼굴과 달리 네 쌍의 팔은 가만히 있었는데, 어깻죽지에 있는 첫 번째 팔 한 쌍은 머리 위로 합장을 하고 있었다.
그 아래 두 번째 팔은 2시 방향과 10시 방향으로 올라가 하늘을향해 손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5시 방향과 7시 방향으로 내려간 세 번째 팔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엄지와 중지를 모은 모양을 하고 있었고.
마지막 팔은 합장을 하고 있었다.
[저것도 금인장 맞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금인장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금인장이 아닌 해인장(海人樁)입니다.”
[해인장? 그건 또 무슨 의미야?]
“소승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으로 뭐라 확실히 말씀드리기 힘드나, 침입자를 막는 금인장과는 다르다고 배웠습니다. 적어도 문지기나 수문장처럼 전투를 펼쳐서 이곳을 지키는 그런 존재는 아닙니다.”
[그 말은 싸우는 놈은 아니란 뜻이네. 그럼, 저놈의 역할은 뭐야?]
“질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
“예, 제가 배운 바로는 해인장은 바다처럼 드넓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이 없어서 어떤 질문을 해도 답한다고 합니다.”
[음. 일종의 슈퍼컴퓨터 같은건가?]
“슈퍼컴퓨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것이 있다면 해인장에게 뭐든 물어볼 수 있으니 매우 귀한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비급은?]
“비급은 해인장이 하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고 그가 낸 질문의 정답을 맞히면 해답과 함께 비급을 보여준다고 들었습니다.”
아라타의 말에 나는 다시 앞에 있는 해인장을 보았다.
확실히 지금까지 해체한 금인장들과는 조금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으며, 배가 나온 것이 움직임도 둔해 보였다.
무생물인 해인장이 배가 나온다고 움직임이 둔해지기야 하겠느냐만, 금인장과는 확실히 달랐다.
[여하튼, 답을 맞히면 비급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예.”
[그런데 어떤 질문을 하는 건데? 어려운 거냐?]
“그것은…. 찾아온 자마다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진실로 답하지 않거나, 사악한 자에게는 비급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망자라고 입구컷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해인장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어쨌든 지금은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겠네. 알았다. 아라타. 다녀올 테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라.]
“아닙니다. 이곳까지 소승이 안내하였으니, 책임지고 끝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굳이?]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했잖습니까. 곤란한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함께 하겠습니다!”
[…녀석. 그럼,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나는 하회탈을 벗고 앞장섰다.
하회탈을 벗은 것은 진실로 답하겠다는 성의 표시가 아니다.
반드시 인간이 되겠다는 각오였다.
내가 앞장서 걷자 아라타가 뒤따랐다.
그렇게 우리는 해인장의 앞에 섰다.
얼굴만 열심히 돌리고 있던 해인장이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잠든 얼굴이 눈꺼풀을 열었다.
초점 없는 눈이 우리를 보았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보는 것 같은 기묘한 눈동자였다.
[헤맴이 끝이 없는 자와 한번 굴레를 벗었던 자가 함께 이곳엔 어쩐 일로 왔느냐?]
눈을 뜬 해인장이 입을 열었다.
입을 직접 움직이지 않았는데 소리가 나왔다.
나는아라타에게 들은 대로 솔직하게 답했다.
[비급을 찾아 다시 인간이 되려고 왔다.]
[인간이 되기 위해 왔다니, 그 말은 지금의 너는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더냐?]
[장님도 아니고. 내 얼굴을 보면 잘 알 텐데?]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자 해인장의 얼굴이 바뀌었다.
녀석은 웃는 얼굴을 보이고서 말했다.
[하하하! 계란의 껍데기 색깔이 다르다 하여 그 안에서 오리가 나오지는 않는 법! 스스로를 망자라 생각하는 자야. 껍질의색이 아무리 바래도 알맹이는 변치 않는다! 그대가 인간이라 것은 변치 않으니 스스로를 잃지 말도록 하라!]
[……뭐?]
이건 대체 무슨 개소리일까?
잠시 뇌정지 상태에 빠졌다.
일단, 말을 들어보면 내가 망자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여전히 망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보처럼 해인장을 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라타에게 질문했다.
[야. 나 아직 망자 맞지?]
“예, 여전히 꿈에 나올까 봐 무서운 얼굴이십니다. 평생 하회탈을 쓰시는 게 좋지 않을는지….”
[이 새끼가? 아무튼! 네 생각에 저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 혹시 내가 망자라고 돌려까기하면서 놀리는거야? 아니면 뭔가 깊은 의미가 있는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심오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무슨 내용인데?]
“죄송합니다. 그건 소승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라타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녀석도 해인장의 말을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한편, 아라타의 목소리를 들은 해인장이 녀석을 보더니 잠자는 얼굴로 머리를 바꾼 채 말했다.
[그대는 다시 굴레 짊어진 기분은 어떠한가?]
“예?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는없도다. 언젠가 다시 굴레를 벗고,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올 것이니. 용단을 내려야 할 그때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진하라. 빛 속에서 빛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 지금처럼 어둠과 함께해야만 길을 찾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
“????”
자신을 향한 아라타의 대답에 그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보니 굴레를 벗은 자가 아라타고 헤맴에 끝이 없는 자가 바로 나인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해인장을 보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뜻 모를 소리 그만하지! 난 사람이 되어야겠으니, 좋게 말할 때 얼른 비급을 내놔라. 안 그러면 깡패 새끼들처럼 1초마다 손가락 하나씩 자르겠다. 손가락이 더럽게 많아서 오래 걸리겠지만…. 아무튼 죽고 싶지 않으면 얼른 대답해라.]
[만약, 내놓지 않겠다 말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 딸 레고 블록처럼 아주 박살 내주마.]
해인장의 말에 나는 이를 갈며 협박을 했다.
협박이 통한것일까?
해인장은 합장을 하고 있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합장을 한 마지막 팔을 움직였다.
서서히 벌리는 것이 아무래도 그곳에 비급이 있는 듯했다.
[망자의 탈을 쓴 인간이여. 혹 내게서 원하던 답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기를 거부하겠는가? 아니면, 껍질을 깨고 나와 다른 방법을 찾겠는가?]
합장한 손을 앞으로 뻗은 해인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껍질을 왜 깨? 대체 뭔 껍질을 깨라는 거야? 주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확실히 해! 어영부영 말하지 말고!]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이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그대는 자신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정진하라.]
[정진? 무슨 정진?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헛소리 말고 비급이나 내놔!]
이해하기 힘든 말에 한마디 쏘아붙이자 해인장이 붙이고 있던 손바닥을 떼고 팔을 벌렸다.
그러자….
[뭐야?]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람 한 점 흩날리지 않았고, 고요함만이 공동을 가득 메웠다.
심지어 손바닥 안에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한 비급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해인장을 보았다.
해인장은 다시 웃는 얼굴을 보이더니 팔을 벌린 자세로 멈췄다.
배터리가 다 된 장난감처럼 놈은 꿈쩍도 않았다.
[그래. 매를 벌겠다. 그거지?]
[…….]
놈이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참지 않고 검을 소환했다.
[마지막이다! 비급을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산산조각 내주겠다!]
검기를 일으키고 다시 협박했다.
그러나 해인장은 비급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지 꼼짝을 않고, 웃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무시하는 것 같은 그 모습에 더욱더 화가 치밀었다.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마지막 인내심을 짜내 다시 말했다.
[진짜 마지막으로 말한다! 지금 당장 비급을 내놔라! 그러지 않으면, 너뿐 아니라 이 산에 있는 모든 놈을 다 없애버리겠다!]
“혀, 형님?!”
협박을 동반한 내 외침에 아라타는 깜짝 놀랐지만,해인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아이를 안는 것만 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웃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가슴 깊숙이 남아 있던 한 줌 여유마저 바닥 나버렸고, 분노로 검을 쥔 손이 절로 올라갔다.
검기.
마력이 가득 담긴 검기가 해인장의 몸을 잘라냈다.
검기의 파도에 휩쓸린 해인장은 네 쌍의 팔과 머리가 잘려 조각조각 나뉜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형님!”
아라타가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나는 무시한 채 무너진 해인장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놈의 잔해를 뒤졌다.
황금 덩어리들을 집어 던지며 비급을 찾고 또 찾았다.
[어딨어? 대체 어디 있냐고!]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비급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급은커녕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숨겨진 공간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벽에 적힌 문자들을 살펴보았다.
문자들은 3악도에 대한 설명만 나와 있을 뿐.
비급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급을 찾을 수 없었다.
[시발, 씨발!]
이제까지 참아왔던 억울함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고, 절로 발이 올라갔다.
힘을 실어 벽을 찼다.
쿵!
벽이 무너지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과 탑이 울렸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찼다.
뭐라도 부수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진정될 것 같았다.
땅이 흔들리며 위에서 먼지와 나무 조각들이 떨어졌다.
[이제야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쿵!
[온갖 귀찮은 일을 다 겪으며 겨우 도착했는데!]
쿵!
[허탕이라고?! 이 모든 게 헛수고라고?!]
쿵!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커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얼굴로, 사람도 괴물도 아닌 이런 꼬라지로!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참지 않고 고함을 쳤다.
여지까지 참고 쌓아온 모든 분노가 터져 나와 천장에 달려있던 연등 일부가 찢어지고 기둥에 균열이 갔다.
빛이 줄어들면서 주위가 점점 어두워졌다.
“혀, 형님! 진정하십시오! 이러다 탑이 무너지겠습니다!”
[아라타! 비급이 이곳에 있는 게 확실하냐? 진짜 이곳에 비급이 있는 게 맞아!? 다른 곳에 있는데 착각한 거 아니야!?]
나는 그의 착각을 기대하며 말했다.
광명 목탑이 아니라, 수미산 근처의 다른 목탑에 비급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아니면 꼭대기라든가.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아라타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라타는 내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유감입니다. 형님. 저도 광명 목탑에 비급이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그 소문이 실제인지는 모릅니다. 직접 비급을 본 적은 없으니까요. 어쩌면…. 모두 거짓된 소문일지도 모릅니다”
[설마…. 설마 처음부터 비급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냐?]
기운 없는 녀석의 모습에 희망이 꺾이고, 최악의 상황만 떠올랐다.
평생 이 꼴로 가족의 앞에도 나서지 못한 멀리서 지켜봐야 할지 모른다.
가족의 앞에도 나설 수 없고, 딸과 떳떳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함께 여행을 가서 놀 수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식사를 할 수도 없다.
평생을 숨고, 가리고 살아야 하며, 들키는 날에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것이다.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커녕, 졸업식을 축하하거나 슬플 때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가족을 안아주고 위로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망자니까.
빌어먹을 해골바가지니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연등들의 희미한 빛만이 보였다.
“헛된 꿈은 다 꾸었는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굵은 목소리, 아라타의 목소리는 확실히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입구에 연등을 들고 서 있는 승려들이 보였다.
평범한 스님들과 달리 목에는 긴 108 염주를 차고 있고, 손에는 알이 굵은 염주를 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주위에는 빛이 가득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서,설마 강명 법사님이십니까? 헉! 버, 법주승들까지!”
“아라타. 임무는 어찌 되어 가느냐? 망자는 몇이나 성불시켰지?”
“그, 그것이….”
“되었다. 네게 주어진 과업을 달성하진 못했더라도, 이 정도 힘을 가진 망령을 발견해 수미산까지 끌어들였으니…. 네 소임은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회주 스님께는 내가 잘 말해 놓을 테니. 너는 이곳에서 물러나 다시 산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도록 하여라.”
[…아라타, 지금 저게 무슨 말이야? 수미산으로 끌어들였다니?]
“아, 아니, 그것이 소승은….”
“어리석은 망자야. 비급에 눈이 멀어 자신이 처한 상황도 이해하지 못하였구나. 보고도 모르겠느냐? 아라타는 네놈을 잡기 위해 덫을 놓은 것이니라. 순리에 어긋나 추악한 악(惡) 그 자체가 된네놈을 잡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것이니라.”
[뭐가 어째…?]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
“이 또한 네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이 기회를 배움의 발판으로 삼고 참회하여 올바른 존재로 윤회하도록 하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눈썹이 굵은 강명 법사의 말에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아라타 너 이 새끼. 처음부터 길 안내를 미끼로 계속 내 뒤통수를 노릴 기회만 노렸던 거냐? 여기로 날 안내하기로 한 것도 산에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날 죽이려던 계략이었고?]
“아, 아닙니다! 형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소승은 그런 생각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진짜 광명 목탑이 맞기는 한 거냐? 진짜 광명 목탑이 맞기는 하냔 말이다!]
“아닙니다! 형님! 소승 형님께 거짓말을 한 적없습니다! 이곳은 광명 목탑이 맞습니다!”
[그럼, 저 노인네가 하는 말은 대체 뭐야!]
“강명 법사님은 그저 제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어리석은 놈! 본래 아라타가 속세로 나간 것은 3천의망령을 성불시켜 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승려인 그가 진정으로 네놈을 위해 비급을 내어줄 성 싶었더냐! 어림도 없다! 지금이라도 헛된 희망은 버리고 얌전히 성불이나 하도록 해라!”
강명이 아라타의 말을 가로채며 소리쳤다.
그의 말에 나는 그간 아라타와의 기억을 되새겼다.
문득 생각났다.
교룡을 처치했을 때.
녀석이 망자인 내게서 달아나지 않고 굳이 길을 안내하겠다고 한 것이.
생각해 보면 죽일 듯이 덤비던 놈이 갑자기 그런 태세전환을 하는 것이 너무나 수상했다.
그리고 그렇게나 망자를 혐오하는 놈이 망자인 내게 형님으로 모시겠다며 형님, 형님 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곳에 비급이 없다.
이곳에 있어야 할 비급이 없다.
아라타가 무슨 수를 쓴 것이 분명했다.
저 강명이라는 놈과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동굴에서 해골물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약속을 저버리고 내 뒤통수를 치던 것처럼 다시 내 뒤통수를 친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니, 분명 그럴 것이다.
[이 양아치 새끼가!]
배신감에 다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처음부터 혼자 힘으로 날 이길 수 없어서 함정을 팠구나! 그래! 그런 거야!]
“오, 오해입니다! 형님! 소승은 함정을 파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놈들은 뭐냐?!]
“제, 제가 들어오기 전에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형님의 침입을 모두 알 게 될 거라고요!”
[그럼, 망자를 없애서 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3천이 어쩌고 하는 말은? 그것도 거짓이냐?]
“그, 그것은….”
아라타는 답하지 못했다.
눈동자를 굴린다.
사실이라는 뜻이다.
[빌어먹을 양아치 새끼! 역시 처음부터 날 없애는 게 목적이었구나! 너 같은 양아치를 믿다니!]
“형님!”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양아치 새끼!]
나는 검으로 마력을 불어넣어 검기를 일으켰다.
어둠과 동화된 검은색 검기가 피어오르자 강명 법사가 외쳤다.
“참회하지 않는다면 방도가 없지! 구제하는 수밖에!”
강명의 외침에 황금 손바닥들이 날아왔다.
법주승이라 불린 놈들이 장법을 펼치듯 손을 뻗은 것이다.
장법은 내 몸을 강타했고, 황금 손바닥에 맞은 내 몸은 뒤로 쭉 밀렸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배신으로 인한 통증이었다.
“지금이다! 기둥을 끊어라!”
강명이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방금 그 손바닥들이 이번엔 내가 아닌 기둥들을노리고 날아갔다.
손바닥이 나무 기둥을 강타해 부수자 공동 전체가 흔들리더니 머리 위로 아가마 문자가 새겨진 나무와 바위 파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흔들림이 커지고, 무너짐이 심해지자 강명이 외쳤다.
“자리를 피하라!”
“형님!”
강명은 어느새 아라타를 안고서 법주승들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쫓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빨리 기둥이 무너지면서 지지대를 잃은 지반이 내 머리 위로 통째로 쏟아졌다.
나는 그대로 잔해 속에 파묻혔다.
어둠에 빠진 기분, 처음으로 증오에 몸을 맡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