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60화. (61/83)



〈 61화 〉60화.

강명은 법주승들과 함께 지상으로 올라갔다.

지상으로 간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흔들리는 탑을 보았다.

기둥이 무너진 지하 회당의 붕괴는 가속화되었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지상과 연결된 목탑에도 영향이 생겨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인 광명 목탑 역시 천천히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목탑이 기울면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마루가 삐꺽거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마치 하늘과 땅이 함께 우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소리가 커질 때마다 광명 목탑의 붕괴는 더 빨라졌다.

이윽고 10층이 꺾이고, 광명 목탑의 아래는  부러진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지축이 흔들리며 먼지가 파도처럼 일어나 주변에 퍼졌다.

“강명 법사님, 탑이…, 광명 목탑이.”

“수백 년을 이어온 광명 목탑이 무너지다니. 아미타불.”

무너지는 탑을 보며 법주승들은 탄식했다.

광명 목탑은 수미산에 있는 몇 안 되는 보물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주 먼 고대, 하늘에 부처가 있다고 믿은 승려들이 직접 목탑을 쌓았다.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사람이닿을 수 있는 최고의 높이까지 탑을 쌓았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랐을 때 무수히 많은 하늘의 별과 둥근 세상을 보며 부처님은 높은 하늘이 아닌 그들의 믿음과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승려가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오른 첫 번째 계기가 된 곳이기 때문에 수미산에서 수련하는 모든 스님에게 있어 가장 뜻 깊은 건축물이었다.

“아미타불….”

강명은 탄식하는 법주승들 사이에서 숨을 깊이 내쉬었다.

주위가 고요해지자 무너진 광명 목탑의 잔해를 지켜보던 법주승들이 눈을 가렸다.

탑이 무너지면서 생긴 먼지가 폭풍처럼 몰아친 탓이다.

이에 강명이 직접 앞으로 나가 손을 휘저었다.

뿌연 먼지가 그의 손에서 나온 빛 무리를 따라서 이동했다.

하늘 저편으로 흩어지는 먼지를 두고 그와 법주승들은 완전히 무너진 광명 목탑의 잔해를 보았다.

남은 먼지도 다 가라앉을 즈음에서야 입을 다물고 있던 법주승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잔해만해도 엄청나군요.”

“꼭 무너뜨려야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세울수 있을는지….”

광명 목탑처럼 튼튼한 목탑을 다시 짓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므로 벌써부터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법주승들의 우려를 들은 강명 법사가 혀를 찼다.

“쯧쯧! 광명 목탑은 그저 기념을 위한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깨달음은 하늘이 아닌 그대들 마음에 있는 법. 탑이 무너졌다고 다시 세워야할 필요가 있겠는가?”

“다시 세우지 않는 것입니까?”

“깨달음은 너희 안에 있을진대, 어째서 다시 세워야 할 필요가있겠는가.”

강명의 말에 거대한 광명 목탑을 다시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법주승들은 안심했다.

한 법주승이 말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법사님. 하지만그래도 역시 광명 목탑을 꼭 이렇게 무너뜨려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요?”

“방법이 있었다면,  이랬을까.”

강명은 한 법주승의 말에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게 무슨?”

“그대들은 마귀의 힘을 느끼지 못하였는가?”

“힘은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위협적이었던 것인지는….”

“저희도 그렇게 강한 마귀 같지는 않았습니다.”

“허허! 어찌 산에서 그렇게 심상을 갈고 닦았으면서도 마귀가 지닌 진짜 힘조차 간파하지 못한 것인가? 새겨들으시게! 그 마귀와 그대로 싸웠으면, 우리의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 그 정도로 위험한 망자였단 말씀입니까!?”

“내가 허언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법사님. 법사님의 말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법사님께서 그렇게 말할 정도로 강력한 마귀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죄송합니다.”

“소승들이 법사님의 깊은 마음을 읽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마 그 마귀가 그렇게까지 강한 망자였을 줄이야….”

“됐다, 그보다….”

강명은 잔뜩 쌓인 광명 목탑의 잔해를 보았다.

‘놈은 정말로 죽은 것이 맞겠지?’

그는두영의 죽음을 의심했다.

그가 정말로 죽지 않았을까 봐서 불안해진 것이다.

다른 때라면 이런 의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 회당과 광명 목탑 사이의 높이만 해도 무려 10장(30m), 쌓여 있던 지반만 해도 5장(15m)은 족히 된다.

게다가 100장(300m)도 더 되는 광명 목탑의 높이와 무게까지 있다.

 합치면 115장, 345m나 된다.

그 무게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물론, 전부 다 같은 자리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무게만큼의 충격을 다 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평범한 존재가 버틸 수 없는 무게임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도 다른 법주승들처럼 두영의성불을 속단했어야 정상이다..

제아무리 강한 망자라도 저만한 무게와 충격을 버틸 수 없을 테니까.

‘그래. 분명, 뼈마디가 분쇄되어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강명은 다시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자꾸만 치솟는 불길한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불안 탓일까?

손아귀에 있던 염주의 알이 점점 더 빠르게 굴러갔다.

염주 알을 세던 그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금 기둥이 솟구친 것과 광명 목탑이 무너지는 소리에 놀란 법주승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수미산에 마귀가 침입하면 법사인 그와 그를 따르는 휘하 법주승들이 출동하여 처리하는 것이 규율이니 법주승이 모이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방신들께서 신수까지 이끌고 오고 계신 것인가?!”

남쪽과 동쪽 하늘에서 증장천왕과 지국천왕을 따르는 주작과 청룡이 의태를 풀고서 비상했다.

두 사방신들의 뒤에는 불의 구름과 천둥‧번개를 일으키는 화조와 비룡의 무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산의 서쪽에서도 광목천왕의 명령으로 수정 동굴을 지키던 백호가 범들을 이끌고서 땅을 흔들며 달려오고 중이었다.

다문천왕에게 황금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현무와 해룡들까지 수미산을 둘러싼 바다 곳곳에서 등껍질을 드러낸  용오름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토록 많은 신수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강명은 평생토록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망자에게 지배당했다던 그 옛날 같구나!’

강명은 가만히 있는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불안을 느꼈다.

“두영님. 죄송합니다. 소승이 다 부덕한 탓입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형님!”

그때 그의 품에서 벗어난 아라타가 무너진 광명 목탑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보였다.

수심이 가득한 아라타의 얼굴과 망자를 기리는 그의 목소리에 강명은 어이가 없었다.

아라타는 수미산의 신동.

그 어떤 이보다도 어린 나이에 승려의 자리에 올랐던 아이이자 귀재였다.

아직은 강명이 지닌 힘에  미치고 있으나, 아라타의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장차 그보다  배는  크게 성장할 재목임은 틀림없었다.

비록 불미스런 사건으로 산에서 쫓겨났다지만,아직도 뛰어난 인재이자 앞으로가 기대되는 신동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그는 아라타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산에 돌아온 것을 보고는 내심 안도했다.

뛰어난 승려를 잃지 않은 것이 기뻤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꼴은 대체 뭐란 말이냐? 생자가 그것도 승려가 망자를 걱정하고 있다니?! 설마 아라타가 놈을 유인한 것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는 아라타가 두영을 이곳으로 유인했다고 생각했다.

스님이 망자를 광명 목탑까지 직접 안내할 리는 없을 테니까,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아라타가 보이는 기이한 반응은 그가 유인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망자와 협력해 그를 위해서 직접 여기까지 안내한 것 같았다.

‘혹 그것이 사실이라면….’

강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썹이 들썩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라타는 광명 목탑의 비급이 있는 장소까지 마귀를 안내한 하수인의 노릇을  것이다.

이것은 수미산을 향한 배신이자 불가 전체를 모욕하는 일!

동토 전역의 승려와 스님들의 위신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그렇기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두둔할 것이 아니라 크게 나무라야 했다. 아니,  정도로는 부족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배까지 해야 할 것이다.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수미산의 승려가 그런 짓을 벌일 리 없다.  영특하던 놈이 제아무리 파계승이 되어 삐뚤어졌어도 생자와 망자의 호형호제 같은 바보짓을 했을 리 없다. 그래.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강명은 수미산의 승려가 그런 악한 짓을 저지를 리 없다고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승려가 마(魔)에 가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아는 탓이다.

자칫하면 승려의 고결함과 명예가 실추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토에서 승려가 지니는 상징성까지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에 그런 불온한 생각은 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고쳐먹은 그는 아라타를 보았다.

그가 이토록 슬퍼하는 진의 또한 궁금했기에 진위를 확인하려고 수심에 잠긴 아라타를 불렀다.

“아라타.”

“형님….”

“아라타?”

날카로운 그의 눈총과 근엄한 부름에도 아라타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라타는 두영과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비록 그다지 달가운 만남은 아니었지만….

아라타는 두영을 만나면서 수미산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두영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간단히 해내는 것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힘에 휘둘리고, 추악한 증오에 사로잡히는 다른 망령들과 다르게 두영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그 힘을 마구 휘두르지도, 타인을 억압하지도, 고통에 내몰지도 않았다.

오히려 탐욕에 눈이 먼 동토의 인간, 괴이들보다도 더 정의롭고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흉악한 겉모습과 다르게 그 속은 오직 가족을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마음만 가득했던 것이다.

자신을 박해하는 세상을 앞에 두고도 고결함을 유지하는 그의 성심에 탄복한 아라타는 진심으로 그를 믿었다.

그래서 여행의 말미에는 그가 바람대로 인간이 될 수 있기를 진정으로 기원하고  응원했다.

강명의 말로 그가 자신을 오해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

아라타는 생각했다.

어쩌면, 두영을 이곳으로 데려온  자체가 그를 사지로 내몬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것을 알면서도 그를 말리지 못한 자신이 죄인일지도 모른다고.

‘말렸어야 했다. 어떻게든 두영님이 이곳에 오지 않도록 말렸어야 했어….’

머리통이 못난이 감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고 말려 새로운 길을 제시해줬어야 한다고 자책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소승이 조금만 더 영리했더라면….”

강명은 아라타가 직접 두영을 안내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한심한 녀석 같으니! 승려라는 녀석이 지금 망령을 동정하는 것이냐!?”

그는 더 참지 못하고 크게 호통쳤다.

망령을 잡아 성불시키고 세상을 구원할 막중한 사명을 지닌 승려가 오히려 망령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니?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승려의 의의를 부정하는 아라타의 행동에강명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진정 정신 차리지 못하겠느냐!”

다시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두영을 걱정하는 아라타의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는 염주를 들고 외쳤다.

“쯔쯔쯧! 혹시 모른다! 마귀가 살아나오지 못하도록 진을 쳐라!”

“예!”

강명의 외침에 법주승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무너진 자리를 포위하더니 강명이 든 것과 같은 염주를 들고 염불을 외웠다.

경전을 읊는 것 같은 그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자 무너진 지반의 중심에서 황금색을 띤 두꺼운 빛의 막이 생겨났다.

봉인을 의미하는 아가마 문자가 그들의 앞에 커다랗게 나타나자 둥근 진이 나타났다.

곧 법주승들의 앞에 있던 문자들이 머리 위로 올라가며 빛을 뿜었다.

황금색 장벽이 생겨나며 잔해를 감쌌다.

염불을 외우면 외울수록 무너진 지반의 경계점에서 생겨난 빛의막은 점점  두꺼워지고 거대해졌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 불길함의 정체가무엇인지는모르겠으나 이 불안도 마귀와 함께 봉인하면 그만이다!’

강명이 염주를 들고 소리쳤다.

“부정한 자야!  세상으로 사라지거라!”

그의 외침에 거대해진 장막의 중심에서 빛이 번쩍이고 벼락이 내려쳤다.

쿵!

벼락은 마치 살아 있는 미꾸라지처럼 두터운 막 안에서 이리저리 튕기며 요동치더니 잔해와 갈라진 틈으로 스며들어 그 안에서 신성한 빛을 뿜었다.

쿵! 쿵! 쿵!

신수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벼락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잔해가 쌓인 현장에는 황금색 빛이 가득 찼다.

“이 정도라면 마귀가 설사 빠져나오더라도 멀쩡할 수 없겠지. 어리석은 마귀여, 부디 헛된 미련을 버리고 극락왕생하시게! 아미타불.”

“아미타불.”

구덩이를 가득 메운 빛의 세례에 강명이 먼저 염주를 거두며 말했다.

강명의 말에 법주승들 역시 그를 따라 염주를 거두었다.

그렇게 봉인이 마무리되었다 생각할 때였다.

쿵!

신수들이 포위한 대지가 십(十)자 모양으로 갈라지더니 바닥이 요동쳤다.

땅이 흔들리며 잔해와 흙이 들썩였다.

강명을 비롯해 법주승들의 시선이 울림이 시작된 자리를 보았다.

진앙은 탑의 잔해가 잔뜩 깔린 광명 목탑이 있던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쿵! 쿵! 쿵!

땅이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들썩였다.

무언가의 태동을 알리듯이, 심장처럼 잔해가 들썩였다.

들썩임은 더욱 강해졌고, 땅에 발을 디디고 있던 법주승 중 한 명이 심상치 않은 기운에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발바닥을 누가 밑에서 차올리는 것 같은 충격은 구덩이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퍼졌다.

구덩이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힘은 더 강해져 진을  법주승들이 계속해서 넘어졌다.

“물러나라! 어서 물러나!”

범상치 않은 조짐을 느낀 강명이 법주승들을 뒤로 물렸다.

그렇게 경고를 받은 법주승들이 완전히 물러나자.

쾅!

폭발음과 함께 잔해와 지반 전체가 들썩이며 튀어 오르더니 구덩이를 감싸고 있던 봉인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벼락들은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마구 펄떡이다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이럴 수가!”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강명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잔해들이모두 치솟으며 생긴 구덩이를 보았다.

거대한 구덩이 안에는 찢어진 분소의를 입고 곳곳이 뜯긴 삿갓을 쓴 두영이 서 있었다.

그는 푸른색과 빨간색이 오가는 보랏빛 안광을 하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명과 법주승 그리고 아라타에 이어서 주작, 청룡, 백호를 비롯한 신수들을 확인한 그는 산 저편에서 솟아오른 현무의 용오름도 확인했다.

확인을 마친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하회탈을 보았다.

그의 발치에 떨어져 있던 하회탈은 잔해들 속에서도 깨지지 않고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하회탈을 들었다.

이것은 동토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쓰고 있던 것이다.

같은 인간인 그들의 틈에 녹아들고, 자신의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망자인 그에겐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이건 필요 없다.]

두영은 가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나무로 만든 하회탈이 갈라지며 처참히 부서지더니 그의 눈이 피처럼 시뻘건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증오와 분노에 몸을 맡기기로  것이다.

“형님….”

아라타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타락에 빠진 두영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검은 오라를 일으켰다.

강력한 살기가 암흑 오라와 함께 퍼졌다.

늪지처럼 땅을 잠식하는 암흑 오라에 강명은 물론, 법주승들도 흠칫 놀라 물러났다.

“뭐하느냐!”

강명은 아라타를 챙기고 암흑 오라의 범위 밖으로 피했다.

모두 피하자 두영의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암흑 오라로 된 망토를 펄럭이며 완전한 이블 나이트의 모습으로 솟구친 그는 손을 높이 들었다.

[나와라.]

작고 조용한한마디와 동시에 검은 마력이 충격파를 일으키더니 검은 그림자의 영역에서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이 검은 연기를 일으키며 올라왔다.

데스나이트들은 단단한 금속과 뼈로 만들어진 검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리치들은 반짝거리는 수정 구슬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로브를 입고 있었다.

숫자는 각각 천을 넘겼다.

네빌이 거느리던 데스나이트들과 리치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덜그럭, 덜그럭.

신수들과 법주승들의 앞에서 소환된  언데드들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들의 앞으로 새로운 언데드 군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뼈로 된 검과 활 등을 든 스켈레톤 나이트와 메이지의 군대였다.

데스나이트와 리치가 일으킨 스켈레톤의 숫자는 100기.

수미산에 나타난 언데드의 숫자는 순식간에 이십만에 육박했다.

“이런 미친! 마귀가 아니라 마괴였단 말인가!”

언데드 대군의 수를 확인한 강명 법사가 체통조차 잊고서 경거망동했다.

십만이나 되는 언데드가 수미산에 침범한 것은 오래전 망자가 동토를 점령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마귀라니!”

“보통 마괴가 아닙니다!”

법주승들도 충격에 빠졌다.

겁먹은 그들을 본 두영은 높이 든 검을 앞으로 뻗으며 명령했다.

[가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여라.]

증오와 분노에 얼룩진 잔혹한 명령.

명령을 받은 데스나이트들과 리치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는 망자로 돌변했다.

태초의 망자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들은 붉은 안광을 번쩍이더니 직접 언데드들을 이끌고 법주승과 신수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이십만의 망령 군대가 수미산을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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