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63화. (64/83)



〈 64화 〉63화.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줄 곳 혼자였다.

그래서 집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얼음장처럼 싸늘한, 그저 차갑고 괴로운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대문 밖을 나가면 이웃집에서는 아직 어린 꼬마와 그 부모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혼자 남은 그 시절의 내겐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나는 그 모든 것이 가족을 지키지 못한 자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숙명이자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무거운 저주에서 벗어날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서 처단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경찰이 되었을 때는 성난 맹견처럼 사건을 수사했다.

특히, 동종 범죄에 대한 수사는 혐오와 분노 그리고 증오와 복수를 품고 미친 듯이 매달렸다.

그렇게라도 같은 범죄자들에게 쌓인 화를 풀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없었던 탓이다.

그런 삶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삶이다.

평생 양지에 나가는 일 없이, 음지에서 음침하게 살아가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날카로웠던 복수심은 무뎌졌다.

매서웠던 경계심은 흐려졌고,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던 마음의 벽도 무너져 새로운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노력을 하니 인정을 받고, 인정을 받으니 동료가 생겼다.

주위에 사람이 모이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왔고, 그렇게 가족이생겼다.

그리고 가족이 생긴 후에야 항상 차갑게만 느껴졌던 집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돌아온 집에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내려졌던 무거운 저주가 풀렸다.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을 것 같던 저주가 너무나 쉽게 풀리고 말았다.

마치 이 세상에 신이 있다는 증명 같았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신께서 도와준다는 옛말처럼 정말로 신이라는 존재가 날 굽어살피고,  억울함을 알아 보듬어 주는 것만 같았다.

바르고 착하게 살면 기회가 온다.

지옥에서 살고 있더라도 내가 나를 잃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행복의 때가 되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희망을 찾으니 거짓부렁이라고만 여겼던 종교가 그저 허무맹랑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적이 곁에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 믿음은 지금도 존재한다.

죽음 이후 해골로 다시 부활했을 때.

나는 절망했지만 동시에 희망을 품었다.

죽어 사라졌어야 할 몸뚱이가 되살아났으니, 본래의 모습과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만 찾으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참고 견디면, 바르고 착하게 살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틈만 나면 벌어지는 온갖 지옥도 속에서 내가 제정신을 유지한 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네빌을 만나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희망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것마저 없으면 내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대로 끝이니까.

그렇게 운과 노력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동토에 도착했다.

교룡과 가네샤를 쓰러뜨려 많은 사람을 구하는 등의 선행도 하면서 광명 목탑에 도착했다.

느낌이 좋았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많은 사람을 구제해서 보상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딜  있으리라고 그렇게 기대했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비급이 없다니?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상쾌한 냄새를 맡고 싶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

이런 시답지 않은 욕심은 아무래도 좋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집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가족을 껴안아 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설령 아무 감각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더라도.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인간으로서 가족을 안아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욕심은 그것이 다다.

[그런데  작은 바람조차 나한테 사치란 말이냐?]

먹구름이  하늘과 산에 대고 말했다.

그러나 하늘도, 신도 답이 없었다.

늘 중요한 순간에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렇다면 신이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신을 믿고 추앙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리 침묵할 것이면 대체 그들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대체 얼마나 참고 노력해야 하는 걸까?

언제쯤에서야 이 지랄 맞은 여정을 끝낼 수 있는 걸까?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라는 저주가 내린 것은 아닐까?

짜증 났다.

모든  짜증 나고 귀찮았다.

인내심이 바닥까지 떨어져 분노가 치밀었다.

참았던 울분이 화산처럼 폭발하며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던  다른 본능이 깨어났다.

그것은 언데드가 지니고 있는 증오와 파괴의 본능이었다.

그것에 마음을 허락하자 머릿속으로 온갖 지식이 스쳐 지났다.

효과적으로 싸우는 방법과 위력이 높은 마법에 대한 정보가 뇌리를 스쳤다.

이외에도 세상을 파괴하고 또 멸망시키는 방법 같은 위험한 정보들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데스나이트부터 촉수 괴물, 사각, 네빌, 교룡, 가네샤가 갖고 있던 증오와 파괴의 본능이었다.

그 본능을 허락하자 흥분과 분노로 정신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안 그래도 복잡했던 마음이  어지러워졌지만…, 짜증이 치미는 와중에도 시야는 훨씬 더 넓어졌다.

승려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보였고, 기이한 짐승들의 행동 패턴과 그들의 능력 역시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만들어낸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운용하는 방법과 끝을  수 없는 이블 나이트의 진짜 힘도 예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느껴졌다.

몸을 어떻게움직이면 좋을지, 검기를 어떻게 발휘하면 효율적인지, 무예는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이 완전한 정보로 취합하여 하나의 본능이 되었다.

마치 천재가 된 기분, 네빌의 기억과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네빌 그 자체가 된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 어떤 적을 상대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같은 고양된 기분과 예리해진 감각.

힘을 휘둘러 뭐든 부수는감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것이 진짜 이블 나이트의 힘일 것이다.

희망을 품고, 불살 같은 것에 얽매여 자신을 억누르던 기존의 나는 진정한 이블 나이트가 아닌 반쪽짜리 존재고.

지금처럼 힘에 취한 채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증오와 파괴를 일삼는 것이 진짜 이블 나이트일 것이다.

이블 나이트의 본능이 속삭였다.

더 참지 않아도 된다고.

때론 화내도 된다고.

자신을 억압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완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그 누구도 무시 못할 힘을 얻을  있다고.

힘만 있으면 돈과 명예뿐만 아니라 내가 그토록 바란 비급과 가족까지 찾을 수 있다고.

악마와도 같은 그 속삭임이 말했다.

절박했기에 나는 믿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자신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증오와 분노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검을 들었다.

첫째는 날 속이고, 함정에 빠트린 간악한 저 땡중들이다.

 누구보다 자비 없고 편협한 저들에게 천벌을 내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의를 굳히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강력하고도 방대한 마력이 몸 곳곳에서 용솟음쳤다.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온 검기는 그대로 내 검에 스며들었고,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강한 검기가 일어나 세상이라도 가를 것처럼 번뜩였다.

나는  분노와 증오를 몰아치는 태풍을 향해서 휘둘렀다.

한번 내리치자 태풍만이 아니라 땅과바위가 쪼개지고, 산과 바다가 나뉘었다.

갈라진   너머로 파도에 휩쓸려 가라앉는 적들이 보이자 황금색 빛의 기운이 날아왔다.

사방신 현무가 지니고 있던 힘과 기억이었다.

그것은 내 주위를 멤돌다 이윽고 내 안에 스며들었다.

망자들과 싸우며 산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현무의 기억.

놈의 기억은 지금 날 덮친 저 많은 괴물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망자가 나타났을 때 수미산의 대응 방침은 무엇인지 낱낱이 알려주었다.

수미산의 방침은 단순명료했다.

망자에게 성불을.
마귀에게 엄벌을.
마괴에겐 천벌을.

생명이 없는 불온한 존재는 자비 없이 구제한다.

당연히 나라는 존재도 그 구제 대상에 포함되었다.

수미산의 방침을 알게 되자 화가 치밀었다.

힘 조절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다시 검기를 일으켰다.

저들은  죽이려는 놈들이다.

내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놈들이다.

그렇다면 저들을 적으로 여기고 대응해도 무방할 것이다.

과거 네빌이 조언해준 숙명을 떠올랐다.

어설픈 인정은 독이 되어 돌아오고, 그 독이내 꿈과 바람을 무너뜨리는 초석이 되리라던 조언.

피로 물들어 죄책감의 멍에를 안게 되더라도 숙명으로 받아들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이 생각나자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희는  적이다. 날 막는 놈들은전부 다 내 적이다.]

나는 강명 법사와 아라타 그리고 법주승들을 보고 말했다.

저들은 적이라고, 죽여도 된다고 각오를 다졌다.

산과 바다를 갈라버리는 힘을 직접 목격한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덜덜 떠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처음으로 가슴 깊이 담아두었던 화가 누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풀이라도  것처럼지금까지 겪었던 고통과 괴로운 여정들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진강자의 여유와 절대적인 힘으로 약자를 짓밟을 때의 쾌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바로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렇게 기분이 좋다면….

진짜 이블 나이트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자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활짝 편 손을 하늘로 뻗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쳐라.]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한마디 하자 네빌이 자주 사용하던 마법이 나타났다.

지옥의 불꽃을 머금은 헬파이어였다.

 번 붙으면 그 대상의 모두 불타 없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옥염.

네빌의 것과 차이가 있다면, 그가 쓴 것보다 지금 내가 쓴 것이 훨씬 크고 많다는  정도였다.

[사라져라.]

헬파이어들이 움직였다.

육중한 화염 덩어리가 마치 로켓처럼 아래부터 점화하더니 화염을 내뿜으며 솟구쳐 올랐다.

셀  없이 많은 헬파이어가 솟구치자 비가 그쳤다.

쏟아지던 비바람이 그대로 증발해서 증기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헬파이어의 행보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더 나아가 하늘에서 전투 중인 주작과 청룡을 덮쳤다.

데스나이트들과 싸우던 두 신수는 저항하기 위해 각각 화염과 용트림을 이용한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그들의 방어벽은 헬파이어 앞에선 한여름 아이스크림만도 못했다.

엄청난 고열에 노출되어 그대로 녹아내리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방어막이 사라지자 헬파이어의 화염이 놈들의 몸에 붙었다.

주작과 화조들은 비명을 지르며 작은 유리구슬이 되어 사라졌고, 청룡과 비룡들은 은구슬이 되어 비처럼 쏟아졌다.

“저럴 수가! 사방신인 청룡과 주작이! 저리도 쉽게!”

“괴물…. 저 마괴는 괴물입니다!”

흥분한 법주승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현무에 이어서 주작과 청룡의 기억과 힘을 받아들였다.

두 괴이의 힘까지 지배하면서 바다에 이어 불과 비바람을 다스리는 방법까지 내 것이 되었다.

죽일수록, 뭔가를 해칠수록 더 강해진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지금보다도  강한 존재가 되어 짜증 나게 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런충동은 점점 더 커지자 인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미산의 남방과 동방을 지키는 신수들의 허무한 최후에 충격을 받은 승려들의 모습이었다.

[너희도 벌을 받아야겠지.]

나는 다시 마력을 일으켰다. 그러자 분노한 백호가 호랑이들과 함께 포효했다.

그들의 포효가 땅을 가르자 백호가 땅을 박차며 달려왔다.

놈들은 대지의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와 나와 언데드 군단을 덮쳤다.

땅과 하나가 된 것처럼 몰아치는 백호와 호랑이들.

노도처럼 몰려오는 대지의 파도와 백호의 용맹하고도 매서운 기세에 나는 검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수평으로 검을 들어 힘껏 휘둘렀다.

[사라져라.]

폭풍으로 변한 검기가 그들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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