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67화.
두영은 무릎을 꿇었다.
바다를 가르고, 태산마저 무너트린 무시무시한 마괴 두영이 아라타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 무릎을 꿇고서 망가진 바닥을 바라보았다.
새빨갛게 물들었던 안광이 푸른빛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에 드리웠던 광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아라타가 깊이 들이쉰 숨을 뱉으며 말했다.
“열매가 썩어도, 그 안에 씨앗은 살아남아 대지의 온정을 찾으니…, 자비의 마음으로 씨앗을 품으면 썩은 열매에서 내려왔어도 씨앗은 씨앗이구나.”
두영의 삶을 읽은 아라타가 마치 한세월을 다 산 고승처럼 탄식하며 말했다.
복잡한 그 심경의 소리를 들은 강명과 법주승들은 아라타가 한 말의 진의를 파헤치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열반에 오른 최연소 승려의 말이니 그 말에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아라타의 말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한 법주승들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대표 강명을 보았다.
수미산에서 가장 높은 법력을 가진 고승이자, 산 최고 법사 중 한 명인 그라면 열반에 오른 아라타의 말을 해독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강명 법사님. 아라타가 하는 말이 대체 무엇입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느냐?”
“…….”
그는 부끄럼 없이 모른다고 답했다.
수미산에서 나름뛰어난 현자라고 칭송받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오히려 자신이 법주승들에게 아라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연배와 배움이 한참 어린 아라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는지 그는 애써 입을 다물었다.
그는 몰랐다.
아라타의 이야기 속 주제가 편견이라는 사실을.
동토의 뿌리 깊이 자리매김한, 망자를 향한 편견과 그 편견이 깨졌을 때 비로소 동토에 만연한 증오 또한 사라질 수 있다는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
강명도 이 사실을 깨달을수 있을 정도로 식견을 쌓았지만, 망자는 세상의 이치에 어긋난 존재이며, 부정하고 더러운 존재라는 뿌리 깊은 편견이 그의 깨달음을 막고 있었다.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로구나. 겉에 속아 속을 볼 수 없게 만드니….’
강명의 속을 예견한 아라타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영을 보았다.
두영은 차분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여전히 꿈에 나올까 무서운 흉측한 해골바가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아라타는 알았다.
이 무서운 해골 속에 숨겨진 인간 이두영이 얼마나 애정에 목말라 있는 존재인지.
얼마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지를….
그렇기에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았다.
지금 두영에게 필요한 것은 육체를 되찾는 방법이나 비급이 아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였다.
그의 딸과 그의 아내가 매일 아침 그에게해주었던 심심한 아침 인사처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위로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아라타는 그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존재를 불러와 재회를 안겨주었다.
비록 오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필요한 심상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니 그의 화가 가라앉고 평정을 찾는 것이 당연했다.
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있던 두영의 몸이 들썩였다.
이제 마음을 다 추스른 것이다.
이를 확인한 아라타는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두영의 어깨를 잡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자 강명의 기억이 두영에게도 전달되었다.
첫 장면은 르나르국의 희각이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서 이곳 광명 목탑을 찾은 것부터 시작되었다.
가슴골과 허벅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망사 차림을 한 희각은 매력적인 몸매를 그대로 내비치며 강명에게 접근해 비급을 부탁했다.
기억 속의 강명은 속이 탔다.
‘색즉시공. 색즉시공. 한낱 성욕에 져서는 안 된다. 나는 수미산의 최고법사! 체면을 유지해야 한다!’
여자를 멀리해온 탓에 희각의 용모를 보고 마음을 빼앗길 뻔한 것이다.
그는 희각이 뽀얀 허벅지와 각선미를 애써 외면하며 자꾸만 일어나는 색욕의 번뇌를 물리쳤다.
그리고 지켜보는 승려들이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서 법의를 뚫고 나오려는 제 분신을 숨겼다.
그리고 평정심을 일으켜 흥분한 똘똘이를 가라앉혔다.
수미산의 최고 법사답게 강명은 똘똘이를 숨기는 것에도 능통했다.
간신히 진정한 그는 이후 희각에게 비급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희각은망자가 되어버린 네빌을 처단하기 위해서 비급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르나르국의 군대가 성녀를 구하기 위해 갔다가 전멸했다는 둥, 나라의 큰 인재중 한 사람인 파이로 대신과 수백 년간 르나르국을 지킨 칠각보전 셋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꺼내 눈물을 팔며 감성팔이를 시전했다.
가엽고도 애처로운 그녀의 모습에 강명은 가슴 아파하며 네빌을 욕했다.
그리곤 법사들을 모아 회의를 거친 후 희각에게 비급을 빌려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희각에게 비급을 전달하는 과정에는 그녀를 향한 강명의 온갖 사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래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구나.’
기억을 보던 두영과 아라타는 동시에 강명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유를 알아챘다.
그렇게 강명의 기억이 끝나자 아라타와 두영은 조금 안타까운 눈으로 법사 강명을 보았다.
‘평생을 숫총각으로 살아야 하다니….’
체면치레를 위해서 본능조차도 억지로 감춰야 하는 딱한 승려의 삶에 회한을 느낀 것이다.
‘위대한 법사라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구나. 어쩌면 이것도 형님이 말한 높은 곳에 선 자의 고충일지 모르겠다.’
아라타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뭐지? 저 눈빛은?”
“법사님을 향한 것 같은데요?”
“음, 뭔가 기분 나쁜 눈빛이로군.”
아라타의 애처로운 눈빛을 본 강명과 법주승들이 의아해했다.
기억을 다 읽은 두영도 한마디 했다.
[그깟 체면이 뭐라고….]
“형님?! 정신이 드셨습니까?”
두영이 몸을 일으키자 아라타가 그를 부축했다.
두영은 부축하려는 아라타를 밀어내더니 법주승들과 강명법사를 보았다.
[딱한 녀석….]
강명은 두영의 시선에 두려움과 함께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겪는 느낌, 그것은 총각 딱지도 못 뗀 강명을 향한 동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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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라타의 기억을 읽고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비급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비급을 가져간 놈은 르나르국의 칠각보전 희각이다.
네빌과 사각의 기억대로라면 희각은 아리따운 얼굴에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요물이다.
빛과 신성력을 다루는 힘을 지닌 변신의 귀재였다.
카멜레온처럼 몸을 숨기는 것뿐만 아니라 젊고 아름다운 미녀부터, 국밥집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이런 변신 능력 덕분에 은폐, 위장에 능할 뿐만 아니라 간첩 활동을 통한 정보 수집 능력도 뛰어났다.
단순히 예쁘게 변하는 것만 아니라 미인계에도 매우 능해서 어떤 남자든 희각의 미모에 홀리면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남자를 홀리는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숫총각인 강명이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비급을 내준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리라.
[바보 같은 놈, 희각의 진짜 목적도 모르고.]
나는 속으로 강명을 욕했다.
강명이 희각에게 속지만 않았어도 오늘 여기서 비급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소득은 없진 않네.]
소득은 두 가지다.
첫째는 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변신 능력을 지닌 괴이, 희각의 힘을 흡수하면 나도 희각처럼 멀쩡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도모른다는 사실이다.
다만, 희각이 가진 능력을 내가 쓸 수 있을지는 불분명했다.
사각의 기억에 의하면 그녀의 변신 능력은 빛과 신성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을 흡수해도 언데드인 내가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너무 슬퍼 마십시오. 비급을 찾으면 될 일 아닙니까. 비급을 찾아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아라타. 너 혹시 지금 내 생각을 읽은 것이냐?]
“예. 이렇게 두영님의 몸에 손을 대고 있으면 생각과 기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기억까지? 그게 사실이냐?]
기억까지 읽을 수 있다니, 네빌을 보는 것 같았다.
네빌도 대머리였고, 비슷한 구석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믿지 못하시는군요. 방금 기억을 보여 드리지 않았습니까?”
[내 기억까지 읽을 줄은 몰라서 좀 놀랐을 뿐이야.]
“음…. 그렇다면 형님의 기억을 더 읽어서 증명해보겠습니다.”
[뭐?]
“과연, 희각이 비급을 가져간 진짜 목적은 네빌을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로나스 왕을 불사의 존재로만들기 위함이었군요. 그리고 네빌이라는 망자는 본래 성녀를 수호하던 자였고요. 과연, 믿었던 성주에게 배신당하고, 백성에게까지 매도를 당했다면 마(魔)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봅니다. 처음부터 사악한 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유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라타가 술술 말했다.
정말로 내 기억을 다 읽은 것이다.
단순히 내 기억만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흡수한괴이와 네빌의 기억까지 모두 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지만 숨기고싶은 비밀까지 탄로 날 것 같아 꺼림칙했다.
“너무 그렇게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밀스러운 기억은 엿보지 않으니까요. 어디까지나 필요한 기억만 읽을 뿐입니다.”
[그래도 기분 나쁜 건 마찬가지야. 지금 당장 내 몸에서 손 떼고 3미터 정도 떨어져.]
“알겠습니다. 형님.”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
“제가 형님이라고 했을 때 속으론 기분 좋으셨지 않습니까! 전처럼 계속 형님이라 부르고 또 모시겠습니다! 형님께서 다시 인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끝까지 옆에서 보필하겠습니다!”
아라타의 억지에 나는 녀석의 눈을보았다.
피하지도 않고 당당히 응시하는 것이 말로 타이른다고 거부할 것 같지 않았다.
[마음대로 해라.]
“예! 형님! 뭐든 맡겨주십시오!”
[아무튼, 비급을 찾으려면 이번엔 르나르국에 가서 희각을 찾아야겠다. 겸사겸사 네빌의 한도 풀어줄 수 있겠어.]
계획을 정리하고 강명과 법주승들을 보았다.
아라타의활약에 겉절이가 되어버린 그들은공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저쪽도 나서지 않을 것 같다.
불필요한 싸움은 내게도 좋지 않으니, 이대로 놔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그저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기껏 광명 목탑까지 찾아왔는데 직접적인 소득이 없다는 것 정도다.
“소득이라면 소승이 있지 않습니까. 형님께서는 이 시련을 통해 17살에 열반에 오른 동생을 얻은 것입니다!”
[…생각 읽지 말고 떨어지라니까.]
“히히! 죄송합니다. 몰래 붙는다는 게 그만 들켰군요.”
아라타가 실실 쪼갰다.
한 대 때려주고 싶어졌다.
[쪼개지 마라. 계속 쪼개면 머리통을 쪼개버린다.]
“과연, 그게 형님 세상의 아재 개그라는 것이군요. 소승 또 하나 배웠습니다.”
[이 새끼가? 갑자기 텐션 너무 높은 거 아니냐?]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습니까? 소승은 유여열반에 올랐고, 형님께서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셨는데요. 게다가 비급의 위치까지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경사가 세 번이나 겹쳤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경사는 몸뚱이까지 돌아와야 경사지.]
“하하! 너무 조바심 내지 마십시오! 형님! 분명, 다 잘될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
“제가 있지 않습니까? 분명, 다 잘 될 것입니다. 절 믿으십시오. 형님!”
자신만만해하는 아라타.
미덥지 못한 녀석이라 신뢰는 가지 않지만, 그래도 말이라도 저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흠흠! 망자와 형님 동생을 하다니. 말세로군.”
상황을 관망하던 강명이 끼어들었다.
싸가지 없는 말투였지만, 그가 희각을 만났을 때의 기억을 읽은 탓에 화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저 나이에 아직이라는 사실이 불쌍해 연민이 생길 정도였다.
[어휴, 딱한 새끼….]
가엾은 마음에 고개를 저으며 하늘을 볼 때였다.
콰쾅!
노란 섬광이 번쩍이며 별안간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바닥으로 떨어진 번개의 중심부.
그곳에서 환한 빛과 함께 누군가 나타났다.
거대한 몸집에 붉은 피부, 온몸에 갑옷을 덧댄 것 같은 남자 아니, 웬 거인이 서 있었다.
왼손에는 거대한 창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만 모으고, 나머지 손가락은 쭉 편 채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있다.
엄지와 검지의 중심에는 동그란 형태에 밝은 빛을 뿜고 있는 보주가 들려 있었으며 몸 전체에서 아라타에게서 느껴지던 것과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번쩍번쩍 빛을 내는 거인의 등장에 강명과 법주승들이 무릎을 꿇더니 절을 올렸다.
“지국천왕님을 뵙습니다!”
강명의 말에 지국천왕이 보주를 들었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조그만 은구슬들이 그의 보주로 빨려 들어갔다.
보주로 들어간 은구슬들은 다시 뿜어져 나왔고, 구슬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다시 비룡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죽은 줄알았던 비룡들이 그가 오른손의 보주를 살짝 드는 것만으로 부활한 것이다.
비룡만 부활하고 청룡은 부활하지 않는 것을 보면, 놈의 힘은 내가 흡수해서 부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쿵! 쿵! 쿵!
다시 벼락이 치더니 새로운 놈들이 나타났다.
지국천왕과 같은 사천왕들이었다.
“광목천왕님에 증장천왕님 그리고 다문천왕님까지…. 산의 사천왕을 뵙습니다.”
아라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좌우 그리고 뒤쪽까지 천왕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내려왔다.
나머지 사천왕들도 지국천왕처럼 보주를 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보주에서 빛이 나오자 화조와 호랑이는 물론, 저 멀리 있는 해룡들까지 모두 부활했다.
[단숨에 다 부활시키다니. 엄청나네.]
“사천왕이니까요.”
아라타의 대답에 사천왕들이 동시에 보주를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러자 보주에서 나온 빛이 수미산 일대를 밝게 비췄다.
빛을 비추자 갈라진 산과 연결된 바다들이 본래대로 돌아갔다.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광명 목탑까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모든 것이 원상복구 하자 사천왕이 보주를 내렸고, 되살아난 신수의 군대가 다시 나와 아라타를 에워쌌다.
곧 사천왕이 다가왔다.
긴 창을 든 지국천왕과 금강저를 든 광목천왕, 칼을 든 증장천왕과 비파를 든 다문천왕이 각자의 무기를 내게 겨누고 신성력을 일으켰다.
아라타와 비슷한 힘이 느껴졌다.
예사롭지 않은 그 힘에 반사적으로 검을 소환하자 사천왕이 감정이느껴지지 않는 눈을 하고서 각자의 무기를 내리쳤다.
다가오는 네 천왕의 공격에 나는 검에 마력을 불어넣고 방어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사천왕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려는 순간.
빛이 번쩍이더니 사천왕이 내리치려던 공격을 멈췄다.
웬 여인이 빛과 함께 나타났다.
선녀처럼 아름다우며 하늘거리는 날개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아라타가 입을 열었다.
“기, 기예천님!”
[오랜만이구나. 아라타.]
“기예천님!”
아라타가 기예천의 앞으로 다가가 두 무릎을 꿇었다.
그가 예의를 갖추자 기예천이 기뻐하며 아라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사천왕이 휘두른 무기를 다시 거둬들이며 몇 걸음 물러났다.
기예천은 무릎 꿇은 아라타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열반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아라타. 이제나와 함께 가자꾸나.]
“예? 가자니 어디를요?”
[산의 정상에 오를 때가 되었다.]
기예천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 아라타는 얼빠진 얼굴을 하고서 수미산과 기예천 그리고 나를 번갈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