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72화. (73/83)



〈 73화 〉72화.


설명을들으면서  게  중요한 사실은 3가지였다.


첫째는 내일부터 서창에서 대규모 노예시장이 열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르나르국의 칠각보전 정각(井角)이 조만간 서창에 온다는 것이다.

끝으로 셋째는 동토와 아르카디아 대륙의 사이 북쪽 섬 이국(夷國)에서 교역을 위한 사절단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이국?]


생소한 단어에 나는 네빌의 기억을뒤졌다.

다행이 네빌의 기억에도 이국은 존재했다.

이국(夷國)은 과거 몬스터라 불린 짐승형 종족들이 건국한 섬나라의 이름이다.

이성을 가진 몬스터들 특히, 짐승을 닮은 수인(獸人)들이 지배중인 야만의 땅으로 르나르국과 동토의 서쪽 지방에서는 그들을 오랑캐라 불렀다.

오랑캐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문명이 후진적이어서만이 아니라 산과 바다를 건너 노략질을 일삼기 때문이다.

그들이 약탈하는 물건은 다양했다.

괭이, 삽, 넉가래 같은 농기구 외에도 각종 옷과 사치품을 약탈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녀불문하고 손재주가 좋고 아는 것이 많은 인간까지 납치했다.

사람까지 납치해가는 이유는 수인족들이 대대로 손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납치한 인간과 종간교잡을 통해 인족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아이를 낳아 지배하고 기른다고 한다.

수인들이 인간을 가축처럼 사육하고, 번식의 노예로 쓰는 것이다.

인간을 인격을 지닌 동등한 개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가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동토와 아르카디아 대륙 모두 이국 오랑캐들이라고 하면 치를 떤다고 한다.

[그들이 대규모 사절단과 함께 서창에 온다고?]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많은 노예를 데려가는 것도 이번이 르나르국과 이국의 첫 교역 성공을 위해서입니다. 오랑캐 놈들이 인간들을 원하는 것을 알고 노예와 물건을 거래하기로  것이지요. 덕분에 전국의 노예들이 다 서창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물건은 뭐지? 어떤 물건을 거래한다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국땅에서 값비싼 물건이 발견되었다는 정보밖에는….”

[칠각보전의 정각이 온다는 건, 분명한 거겠지?]


“예! 그분이 이번 교역의 1등 공신이라 들었으니 확실합니다!”


바룸의 꼴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칠각보전 넷과 싸우는 것보다 하나씩 끊어 싸우는 것이 훨씬  안전할 것이다.


마력도 회복할 겸, 정각을 사냥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나는 사람들을 보았다.

낡은천 옷만 입고 있던 사람들이 멀쩡한 옷을 입고있었다.


모두 이국과의 교역을 위해 바룸이 구매한 호사품들이었다.

옷뿐만 아니라 갑옷과 보존식량 등 다양한 물건들이 마차에 실려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검은 망토와 검은색  플레이트 갑옷을 챙겨 입었다.

블랙 아머라 불리는 갑옷이었는데 바룸이 이국의 전사장들에게 헌납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갑옷이라고 했다.


가격도 무려 금화 30닢짜리였다.


보통 풀 플레이트 갑옷이 금화 10닢 안팎 정도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3배나 비싼 상등품이었다.

나는 바룸의 갑옷을 모조리 챙겨 네빌의 아공간에 넣었다.

[나중에 스켈레톤과 데스나이트한테 입혀야지. 가면과 모자는 따로 가져올 필요 없겠네.]


블랙 아머에는 투구도 있다.

얼굴을 다 가리는 투구여서 가면이나 모자가 필요 없었다.


나는 눈과 얼굴 주위에 블랙 라이트만 적절히 사용해얼굴을 완전히 숨겼다.

그렇게 이블 나이트의 모습을 숨기고 평범한 기사의 모습을 갖추자 앤디가 여자들과 함께 달려왔다.

“두영님! 식량 확인 끝났어요!”


[그래. 얼마나 있었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먹을 정도는 충분히 됩니다!”


[그럼. 여기서 식사를 하는  좋겠다. 여러분. 알아서 마차에 있는 음식으로 식사를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떠나실 분들은 식사 후에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셔도 좋습니다. 고향이든 다른 나라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떠나십시오. 말리지 않겠습니다. 반대로 떠나실 곳이 없거나, 저와 함께 서창에 가고 싶으신 분들은 이곳에 남아 계시면 됩니다.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니 언데드도 남겨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자넨 어쩔 건가?”


“글쎄,  모르겠네. 언데드를 믿어도 될지….”


“믿어도  것 같은데? 우릴 구해줬잖아.”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흑마법의 실험 재료로 쓴다거나….”


“떠나고 말고는 우리 선택에 맡긴다잖아. 꿍꿍이가 있었으면 강제로 끌고 갔겠지.”

“그래. 마음에  들면 내일 아침 일찍 떠나면 되는 거라고.”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언데드인 날 믿을지 말지 고민하는모양이다.

길어질 것 같은 이야기에 나는 뒷말을 덧붙였다.

[저는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죠.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침까지는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두영님! 전 두영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앤디가 앞으로 나왔다.


아직 어린 만큼 의지할 곳을 찾는 것이 느껴졌다.


하멜 성의 인연도 있고, 데려가고 싶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아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내일 내가 데리러 오마.]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꼭 올 테니.]

“알겠습니다.”

나는 앤디와 약속한 후 아라타의 위치를 확인했다.

밥을 다 먹은 아라타는 현재 침대에 누워 트림하며 만복감에 취해있었다.


녀석의 위치를 확인한  그대로 워프를 이용해 여관으로 이동했다.


딱딱한 나무 침대와 모포, 물이 든 대야와 대야를 받치고 있는 작은 탁상이 전부인 작은 방.

이곳이 아라타가 잡은 여관이었다.

초라한 여관의 침대에 누워 배를 두드리고 있던 아라타는 내 기척을 느꼈는지 얼른 몸을 일으켰다.


“형님, 오셨습니까! 응? 그 갑옷은  것입니까?”


갑옷과 투구로 전신을 가렸는데도, 나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아마 심안을 얻어서 그런 것이리라.

[어쩌다 보니 손에 넣었다. 그보다 잘 놀았냐? 재밌었고?]

“예! 해산물은 충분히 맛봤습니다. 하지만 재미는 별로 없었습니다. 형님도 안 계시고, 혼자 놀아도 쓸쓸할 뿐이니까요.”

[…재미없다는 놈이 실컷 놀다가 밤이 다 돼서야 방을 잡은 거냐?]

“세상 구경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여자 꼬시겠다더니, 그건 어떻게 됐어?]


“하…. 말도 마십시오. 그것이 이곳의 여인들은제가 아무리매력을 발산해도 밥값만 바랄 뿐 깊은 관계는 원치 않았습니요.후…. 이 동생 매력에는 자신 있었는데, 서대륙의 여인들은 보기보다 눈이 높은 것 같습니다.”

[새끼. 자신 있게 말하더니. 꼴 좋다.]

“큭! 분합니다! 동토의 여인들이라면 소승의 눈웃음과 입담으로 반나절안에 그 마음마저 사로잡았을 텐데! 이곳의 여인들은 가드가 너무 탄탄합니다! 제가 눈웃음을 지어도 재미난 이야기를 해도 제 머리만 보고 웃을 뿐! 호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사금여조차도 홀린  잘생긴 얼굴과 정갈함이 통하지 않다니! 서대륙의 여인들의 취향이 이상한 게 분명합니다!”


[내 생각엔 대머리와 승려를 좋아하는 동토인들의 취향이 더 이상하다만.]

“그 말은 이곳 사람들은 대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단 말씀입니까?”

[그렇지. 보통은 머리카락이긴 사람이 훨씬 더 인기가 있으니까.]


“그, 그럴 수가! 그게 정녕 사실입니까?!”

아라타가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했다.

[너무 그렇게 쇼크 받지 마라. 그렇게 말하니까. 내 상식이 이상해질 것 같으니까.]


“걸림 없이 목까지 이어지는 이 반듯함과 매끈함의 미학을 모른다니…. 저항 없는 민머리야말로 모든 아름다움의 극치일진대 어찌 그럴 수가 있나! 아무래도 서대륙인들은 미학에 대한 깨달음이 많이 부족한  같군요! 이 매력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안타깝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새끼 억지는. 그냥 인정해. 빡빡이를 좋아하는 동토인들 취향이 이상한 거라고.]


“아뇨! 그럴 순 없습니다! 오히려 의욕이 생겼습니다! 저는 형님과의 여정 동안 이곳 사람들에게 민머리의 반듯함과 매끈함의 미학을 전파하겠습니다! 저들의 잘못된 미학의 가치관을 바로잡고 말겠습니다!”


쓸데없는 부분에서 열정을 보이는 아라타.

나는 답답한 마음을 감추며 아라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됐고, 너랑 말 섞으면 피곤하니까.  기억이나 읽어라.]

“기억 말입니까? 아까는 안 된다고 하시고선….”


[닥치고 읽어.]

“예.”


아라타가 옅은빛을 내기 시작했다.

기억을 읽는 것인지 눈에서도 작은 광채가 띄었다.

광채가옅어질 때까지 기억을 읽은 아라타가 말했다.

“과연, 칠각보전의 정각이 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가능하면 그놈을 내일 정리할 생각이다. 분명, 로나스 왕을 처치하는데 방해가 될 테니까.]


“불필요한 살생은 소승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만…. 형님께서는 멈추실 마음이 없으신 것이지요?”


[그래. 가네샤처럼 그놈들은 악이다. 사라질 필요가 있어.]

“소승 역시 불살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동토에서는 약육강식이 만연하니까요. 하여 형님께서 놈들을 처단하시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그래. 이해해줘서 고맙다.]


“헌데, 노예제도를 없앤다는 건 조금 의외입니다.”

아라타가 다시 말했다.

노예제도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을 읽은 것이다.


[그래?]


“예, 동토에서도 노비는 존재했으니까요. 그게 없애고 싶다고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그 앤디라는 소년과의 인연이 소중하더라도…. 구태여 어려운 길을 가시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꼭 앤디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한 건 아니다. 내가 현대인이라서 노예제도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우리 세상에서도 완전히 뿌리뽑히진 않았지만…. 역시 그건 있어선 안 될 제도야. 가능하다면 완전히 뿌리 뽑고 싶다.]


“하지만 형님의 세계와 달리 이쪽 세상에서 노예제도는 당연합니다. 다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아닐는지요?”

[반대하는 거냐?]

“불교는 만민의 평등을 바랍니다. 그런 소승이 어찌 그것을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해?]

“…실은 오래전부터수미산의 승려들도 노비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했다고? 왜 실패했지?]


“이미 노비를 지닌 자들 탓이지요. 노비를 재산으로 보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왕과 관료들은 물론, 재산을 가진 평민들조차 제도에 찬동하고 있었으니까요.”

[평민들까지?]

“아실지 모르겠지만, 평민들 사이에서도 노비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사유재산으로 인정하고 있었지요.”

[사유재산이라니, 동토는 힘의 논리가 중요한 땅 아니었나?]


“힘의 논리는 지배자들에게만 적용되는 편입니다. 약육강식을 당연히 여기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약육강식을 일삼진 않습니다. 그랬다간 나라도 경제도 다 무너질 테니까요.”

[흠…. 틀린 말은 아니구나.]

“그렇게 어느 정도의 사유재산을 인정하기 때문에 노예제도를 없애자는 승려들의 의견이 거부당한 것입니다. 무려 승려들의 의견이 말입니다.”

아라타가 조금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승려들의 말이 거부당하는 것이 그만큼 드물다는말이었다.

“가진 자들에게는 이미 가진 것을 빼앗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지만 승려의 말이 거부당할 정도라는 것은 의미하는 것이 큽니다. 그만큼 재산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니까요. 그렇기에 이를 강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형님의 세상처럼 이 세상은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술도 문화도 그 수준이 미흡하지요. 환경 자체가 노예제도가 절대 사라질 수 없는 환경이기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다는  나도 알아.]

“헌데, 어째서 그런 목표를….”

[애들까지 노예로 만드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백 번 양보해서 노예제도를 완전히 없앨 순 없더라도 살날이 구만리인 애들은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낚시꾼조차 치어를 잡으면 놓아주기 마련일진대, 어린아이들까지 노예로 삼고 대대손손 부려 먹는다니. 그건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만약  세상이 그걸당연하게 여기고, 개선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네가 설법을 전파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낚시꾼조차 치어를 잡으면 놓아준다. 소승 그렇게 가르침을 얻고도 또 형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군요. 확실히 형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이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소승이 설법을알려도 한낱 우이독경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형님의 생각대로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 그리고 그걸 위해선 도움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소승도 형님의 뜻에 동참하겠습니다.”

아라타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 가자.]


나는 아라타와 함께 여관을 나섰다.

그리고 바룸에게 들은 노예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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