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82화. (83/83)



〈 83화 〉82화.

서창으로 돌아가니 동이 텄다.

날이 밝고 마차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차 주위로 모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출발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아직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건….

“두영님!”

유령마에서 내리자 아침 일찍 일어난 앤디가 내게 달려왔다.

쪼르르 달려온 앤디는 내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비볐다.

“오실줄 알았어요! 두영님!”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앤디.

그 뒤로 미네트가 쫓아와 덧붙였다.

“죄송해요, 두영님. 일찍 떠나려 했는데 앤디가 자꾸 두영님이 보고 싶다고 떼를 써서….”

미네트의 말에 나는 앤디를 보았다.

눈 밑이 볼록하게 부은 것이 울음까지 터뜨린 모양이다.

[인사를 하고 가려고 기다린 거야?]

“네! 두영님!”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앤디.

실로 오랜만이었다.

누가  이렇게 애타게 기다려 준 건….

“같이 가요, 두영님! 저 두영님이랑 떨어지기 싫어요!”

[…큭, 그러냐. 녀석. 그러면 수도 근경까지만이라도 같이 갈까?]

“정말요?”

[그래, 거기까지라면 안전하겠지.]

나는 앤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본래는 그들을 먼저 보내고 르나르국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같이 하고 싶어 하니 수도 근처까지라면 같이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만전을 기하려면 마력도 조금 더 보충해야 하니까.

앤디는 방실방실 웃으며 내 손을 잡고미네트를 보았다.

“누나! 두영님이 함께 가신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앤디가 떼를 써서 폐 끼치는 건 아닌지….”

[수도 근경까지라면 괜찮아. 그보다 너는 어때? 내가 같이 가도 되겠어?]

“당연히 괜찮죠! 두영님이 같이 가주신다면 정말 든든할 거예요. 분명, 다른 분들도 기뻐할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럼, 거기까지만이라도 다 같이 가기로 하자.]

“감사합니다. 두영님. 그런데 뒤에 있는 저분은 누군가요?”

미네트가 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령마의 등에 널브러져 있는 이국의 공주 마루나였다.

정각의 기억을 읽고 그녀가 가엾게 보여 일단 구해주긴 했는데,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었다.

죽이면 편하겠지만, 군인도 아닌데다 아직 어린 소녀이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죽이고 싶지 않았다.

“등에 날개가 있네. 혹시 수인족인가요?”

마루나의 날개를  앤디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래.]

“아무래도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요? 치료해야 하지 않아요?”

미네트는 마루나의 몸에 상처가 있자 걱정부터 했다.

아라타가 엄선한 사람다웠다.

나는 마루나의 상처를보았다.

붉고 아름다운 깃털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고, 날개와 몸 곳곳에 긁히고 쓸린 상처가 있었다.

해류 속에서 무거운 날개를 억지로 움직이며 헤엄을  탓에 파편에 휩쓸리고 찔려서 다친 것이다.

[해야겠지, 아라타는 어디 있어?]

“아라타 형님이라면 저기 있어요.”

앤디가 마부와 함께 이야기 중인 아라타를 가리켰다.

피로가 가신 것인지 아라타는 멀쩡한 모습으로 마부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앤디와미네트를 데리고 아라타에게 향했다.

[아라타.]

“형님, 오셨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거야?]

“예? 아, 실은 이분들의 목적지에 대해 묻던  알고르 교국의 신이라는 것이 궁금해져서 진정한 신에 대해 잠시 담론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신?]

“아 글쎄, 지혜와 평화는 달의 여신 루나! 힘과 권능은 태양신 헬리오스가 최고라고!”

“그럴 리 없습니다. 지혜도, 평화도, 힘도, 권능도 불가의 부처님을 능가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세속적인 고뇌가 아닌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시며….”

아무래도자신의 종교를 설파하려고 한 모양이다.

종교가 다른 마부는 역시 신은 루나와 헬리오스가 최고라며 자부심을 보이고 있었고, 아라타는 부처가  위대하다며 바득바득 우기고 있었다.

[종교인이란.]

나는 극성인 아라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전도사 노릇 그만하고  기억이나 읽어라.]

“아니,  기억은!”

내가 머리에 손을 올리면서 아라타가 기억을 읽었다.

“머, 머리 아파! 뭡니까? 이 많은 기억은! 대체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무슨 일들을 겪으신겁니까!”

해상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기억과 정각과 희각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읽었는지 아라타는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어쩔 수 없었다. 일찍 정리하지 않았으면 당하는  나였을 테니까. 로나스를 잡으려면 이렇게 싸웠어야 했어.]

“오해입니다. 소승은 책임 여하를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저 형님이 너무 많은 것을 겪으셨기에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특히, 희각의 기억에 대한 건…. 미리 언질이라도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기억 읽는 거   다시하기 싫다면서.]

“확실히 그때는 심신이 그만큼 지쳐있었습니다만….”

[나도 괜한 일로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읽는 게 그저 편리하기만 한 능력이 아닌  나도 잘 아니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일은 소승이 조금 무리해도 괜찮으니 미리미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알겠다.]

“그보다도 비급에 그런 비밀이 있다니…. 강명 법사님이 큰 실수를 하셨군요. 이대로라면 희생자를 헤아리기 힘들 것입니다. 살아갈 날이 구만리인 아이들이 그렇게험한 꼴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이 동생 부처님의 가르침을받지 않았으면 충격으로 졸도했을 것입니다.”

[그래, 그러니 빨리 없애버려야 한다. 가능하면 그 비급이라는 것도 같이 없앨까 한다. 괜찮겠냐?]

“소승도 두영님의 뜻에 동참하겠습니다. 악용될 바에야 없애는 것이 났습니다. 아니, 애초에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 삼아 악을 처단하는 것은 금술입니다. 인명을 중시하는 불가에서도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아무리망자들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무고한 이의 희생은 절대  될 말입니다!”

[그래, 너라면 그렇게 생각해 할 것 같았다. 함께 없애버리자.]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 두영님!”

나와 아라타의 뜻이 일치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그렇게 정했으니, 여기 이 수인부터 치료해 줬으면 한다. 치료하는 김에 기억도 읽어보고.]

“마루나였던가요? 알겠습니다. 중요하신 분이니 치료해 드리도록 하지요.”

아라타가 마루나의 앞으로 향했다.

“아라타 형님, 치료할 수 있으세요?”

“승려도 치료에 관련된 술법을 익힌단다. 기적처럼 낫게 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하지만,  정도 외상이라면 노예 표식을 지우는 요령을 통해 어느 정도 치료할  있다. 적어도 고통에서 해방은 되겠지.”

“대단하네요.”

“훗, 봐라. 형님의 멋짐을 보여줄 테니!”

아라타가 마루나의 날개에 손을 대고 자신의 법력을 펼쳤다.

신성력 못잖은 그의 법력은 마루나의 상처에 스며들어 그녀의 몸을 낫게 했다.

“어떠냐?”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며 말하는 아라타.

일출에 반사된 햇빛이 그의 머리를 강타하면서 그의 멋짐이 폭발했다.

등대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멋짐에 앤디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오! 눈부십니다! 아라타 형님! 두영님도 못하는 치료 마법을! 정말 대단해요!”

앤디는흥분하며 손뼉을 쳤다.

“후후!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지.”

[잘난 척은 됐고, 기억은 어때? 읽었어?]

“아, 그것이…. 기절 중이어서인지 몰라도 기억을 읽을  없었습니다.”

[기절 중이면 기억을 읽을 수 없는 거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손을 대면 기억이 형님의 고향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처럼 파팟! 하고 입력되는데…. 이번엔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뭐라고 할까, 그냥 백지였습니다.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그럼, 기억은 깨어나면 읽어야 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래야   같습니다. 헌데….”

[왜?]

“이 수인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역시 데려가실 겁니까?”

[그래, 아직 어려 보이는데 보호자도 없는 곳에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사절로 온 공주이지 않습니까? 수인이 흔한 것도 아니고 곤란한 상황에 놓일 있습니다. 가령 이국과 르나르국의 외교 문제가 생긴다든지 하는 문제 말이지요.”

[그러니까 더 데려가야지.]

“예?”

[사절로 온 애가 도착하기도 전에 죽으면 엄한 백성이 전란에 휘말릴 것 아니냐. 한쪽이라도 무사히 도착해야 괜찮지 않겠어?]

“그게 그렇게 되나요? 어차피 일어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갈 테니, 저는 그냥 여기 두고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만….”

[기절한 애 두고 갔다가 노예로전락하면 어쩌려고?]

“음…, 그것도 그렇지요. 노예 상인이 사라졌다고 도시 전체가 안전해진 것은 아니니….”

[그런 거다. 그러니 깨어날 때까지는 데리고 가도록 하자.어차피 날개가 있으니 금방 돌아갈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그럼, 소승은 마부석에 타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매듭짓지 못한 담론이나 마저 해야겠습니다.”

[……마부를 너무 괴롭히진 마라, 운전자는 괴롭히면 위험하니까.]

“주의하겠습니다. 형님.”

[앤디, 미네트 너희도 마루나와 함께 마차에 타라.]

“마루나요?”

[이 수인소녀의 이름이다. 앤디, 혹시 이 소녀가 깨어나면 날 불러라. 나는 마차 위에 있을 테니까.]

“마루나, 알겠습니다! 두영님!”

나는 마루나를 마차에 태운  마차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렇게 출발 준비가 끝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떠나나 보군.”

“살았다. 언데드나 부리는 망할 놈들!”

서창 사람들이었다.

“몹쓸 놈들! 얼른 꺼져버려라!”

“다신 오지 마!”

그들은 대놓고 우리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기본적으로 언데드를 향한 두려움이 짙게 깔린 탓도 있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이유는 해방된 노예들과 내가 불편했기때문이다.

서창 사람 중에는 노예 제도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를적극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서창의 어민들이 그랬다.

뱃일은 기본적으로 힘들고 어렵다.

악천후가 많은데다 노동의 강도도 높아서 평범한 사람들은 찾지 않는 일자리다.

며칠, 몇 주씩바다로 나가 있어야 하는데다 항상 만선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서 날 때부터 어업을 해온 사람이 아니면 즐겨 찾지 않는 일자리다.

특히, 이쪽 세상의 바다는 괴이들도 종종출몰하기 때문에 용병 일을 하면 했지, 뱃사람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뱃사람 대부분은 빚을 다 갚은 노예 출신어부와 팔려온 노예들이 많다.

그런데 내가 노예 제도가 싫다는 이유로 서창의 모든 노예 상인들을 살해하고 노예제도를 지워버렸으니 그들로서는 일손이 줄어들고 노예 공급처 또한 사라졌으니 곤란할 수밖에 없다.

실제 해방한 남자 노예들 대부분은 강제로 뱃사람이 돼서 노역하던 이들이었으니까.

일손을 빼앗긴 것으로 모자라, 빼앗긴 일손을 보충할 기반까지 무너뜨렸으니.

이제 서창엔 제대로  일꾼이 없다.

기껏해야 아라타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그대로 악질 범죄자 출신 노예들뿐이다.

노예가 돼도 마땅한 놈들이다.

이렇듯 성실하고 착한 노예들을 해방하고 쓰레기 같은 노예들만 남겨놓았으니 반감을 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제 떠나면 뭐해, 저놈 때문에내 노예가….”

“난 빚까지 내서 노예를 샀다고, 제길! 두고두고 부려 먹으려고 했는데!”

“난 인원이 부족해서 조업을 나갈 수도 없다고! 이제 어떻게 살아!”

“빌어먹을 흑기사 놈! 돈을 주려면 노예 말고 우리에게 줘야지! 노예들 사는 데 쓴 돈은 어쩌라는 거야!”

서창 어민들은 뒤에서  욕을 해댔다.

내가 일반인이었으면 돌팔매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하지만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나는 그들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그들도 노예를 사서 부려 먹은 것은 매한가지니까.

게다가노예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급했다면 금화를 조금 받았다고 해서 해방된 노예들이이곳을 떠나진 않았을 것이다.

설령 떠나고 싶다고하더라도 그만한 인품을 가진 주인이라면 저들처럼 불만을 품는 대신….

[저렇게 마중을 나왔겠지.]

나는 이웃한 마차에 붙은 어민들을 보았다.

“조심해서 가게.”

“마땅한 고향을 찾기 바라네.”

인상이 좋아 보이는 노인과 젊은 남자와 가족 단위 사람들이 아침부터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마차에 오른 노예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언젠가  은혜를 갚으러 다시 오겠습니다. 어르신.”

“그럴 필요 있겠는가. 그저 편지나 종종 써 주게.”

“결혼하면  연락해. 내 맛있는 생선을 선물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마찬가지로 노예들을 구매해 어업을 이어온 어민들이었다.

그들도 그들에게 구매되어 일한 노예도 눈물을 보이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 욕이나 해대는 어민들과는 달랐다.

말과 행동에서부터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했음이 드러났다.

떠난다는데도 챙겨주고, 이렇게 아침 일찍 배웅하러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런 사람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아닌  아닌 거니까.]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마차가 출발했다.

배웅을 위해 나온 어민들은 손을 흔들었고, 불만에  어민들은 침을뱉었다.

나는 데스나이트와 언데드 군대를 소환해 다섯 대의 마차를 호위하며 이동했다.

웨일 산맥을 넘은 마차는 내리막길을 따라 이동했다.

“누나,저기 봐! 평지인데 큰 절벽이 있어!”

마부석으로 나온 앤디가 소리쳤다.

“그러게, 엄청난 절벽이네. 여기에 올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언제 생겼지?”

“후후후! 소승은 알고 있습니다.미네트 낭자, 궁금하십니까?”

“에이, 거짓말 마세요. 아라타님은 동토인이잖아요.”

“어허! 승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정말로알고 있습니다! 기억을 읽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아라타님은 누구의 기억이라도 읽을  있었죠.”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절벽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그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알려 드릴까요?”

“음…, 네. 알려주시겠어요?”

“저도 궁금합니다! 아라타 형님! 알려주세요!”

“후후, 어제 오후였습니다! 사악한 르나르국의 사절단이노예들을 데리고 서창으로쳐들어오려 했지요. 그때 두영님이 짜잔 하고 나타나 검을 휘두르니, 그 검기가 지상을 깎아 저런 절벽을 만들었지 뭡니까.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었습니다.”

“그 말은 두영님이  절벽을 만들었단 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저 초승달처럼 뻗은 검기를 보십시오! 대자연마저 파헤칠 정도로 강력한 검기! 저 능력 모두 두영님의 위대함이 빚은 경이로움인 것입니다!”

“오오! 역시 두영님!”

새끼 쪽팔리게….

마차 위에서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솔직히 부끄러웠다.

“하여소승은 두영님이 세상에서 3번째로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네? 세 번째요?”

“왜 하필 세 번째예요?”

“첫 번째는 위대한 부처님이시고,  번째는 절 길러주신 기예천님이기 때문입니다!”

“……아, 네.”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은 두영님보다도 위대한 부처님에 대해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원하시면 제가 상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됐어요.”

“아쉽군요. 앤디  어떠냐? 이 형님이 재밌게 이야기해주마. 듣지 않으련?”

“한 가지 궁금한  있긴 해요.”

“오오! 관심이 생긴 것이냐? 그래. 뭐든 물어보아라.”

“불교의 스님이라는 사람들은 부처님처럼 되고 싶으신 거죠?”

“그렇지.”

“스님들은 아라타 형님처럼 머리를 다 깎고요?”

“그렇지.”

“그럼, 형님이 말씀하신 부처님도 대머리인가요?”

“응?!”

앤디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아라타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광명 목탑 앞에 있던 불상을 떠올렸다.

승려들은 다 대머리인데 부처님은 대머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구슬처럼 돌돌 말린 머리카락이 있었다.

“아, 아니. 머리카락이 있으셔….”

“근데 왜 형님은 머리카락을 미신 거예요? 부처님처럼 되고 싶으시면 똑같이 머리를 길러도 되는  아니에요?”

“음…, 그건….”

말문이 막히고만 아라타.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짜 그러네.굳이 머리카락을 깎을 필요 없는  같네. 산에서는 대체 왜 머리카락을 다 밀라고 가르친 거지?”

납득해버렸다.

머리카락이 수행에 방해돼서라든지, 거추장스러워서라든지, 머리카락이 번뇌의 상징이라 세속과의 연을 끊는 것이다! 같은 멋들어진 변명은 꺼내지도 못한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열반에 오른 승려가 거기서 납득해 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진짜 스님 맞아?]

마차 지붕앞부분에 앉아 있던 나는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라타는 고개를 뒤로 젖혀 마차 밖에 고개를 내밀 채 말했다.

“아니, 뭐랄까. 일리 있는말 같아서요. 생각해 보니 머리카락이 좀 길었어도 번뇌와는 큰 상관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대머리가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머리스타일이라는  말고는 별다른 메리트도 없잖아요.  그래요?”

[아니, 그거 디메리트거든?!]

“아무튼, 뭔가 납득해 버렸습니다. 이참에 나도 머리나 길러볼까? 형님 세상의 투 블록 컷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형님. 어떤 머리가 인기 있을 것 같나요?”

[일단, 머리부터기르고 말해라.]

내가 아라타에게 한마디 하는 그때였다.

“으으….”

잠들어 있던 마루나가 의식이 들었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두영님! 수인족이 깨어난 것 같아요.”

[그래?]

나는 마부석으로 내려간 후, 마차 안에 들어갔다.

앤디의 말대로 마루나가 일어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어지럼증을 느끼며 일어난 그녀에게 미네트가 말했다.

마루나는 나와 아라타 그리고 앤디와 미네타 등 마차 안의 사람들을 쭉 훑어보더니 홍옥처럼 붉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여, 여긴 어디? 나는 누구?”

!?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국의 공주 마루나.

그녀는 기억상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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