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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1 초코를 위해서라면 (1) (2/128)



〈 2화 〉#1 초코를 위해서라면 (1)

동생 소브의 그릇은 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답답한 마음에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 * *

해가 중천에 떠 있던 그때, 나는 한가로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창문 너머에 있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저 들판의  언저리를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위에는 아무런 소음도 없이, 시원한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이런 적적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좋았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내 숨소리와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바람소리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따금씩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내 뺨을 어루만지고는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나는 그렇게 감상에 젖어들어갔고, 이미 자고 일어났음에도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페스틴…?”

그녀의 목소리가 윗층에서 들려왔다.

‘일어났나 보다….’

잠시 쥐죽은 듯이 조용해 지더니, 집안이 무너질 것 같이 그녀가 내려왔다.
나는 그녀가 행여나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내려온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녀는 방금 잠에서 깨어나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다.

"페스틴, 오늘 산책가기 좋은 날씨네―?"

그녀도 눈을 뜨자마자 밖의 풍경을 보았는지, 잠이 덜깬 채로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네….”

나는 여전히 감상에 젖어있는채로 대답했다.

“음? 가기 싫은거야?"

그녀가 뾰로통해지면서 말했다.
아마, 내가 힘없이 대답해서 그럴 것이다.

“아냐, 그런건….”

나는 그녀가 실망할까봐 서둘러 대답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그녀가 재차 묻기 시작했다.

“진짜로―?”

나는 말로는 안될 것 같아서 자리에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오전 중에 그녀가 꿈나라로 가있던 사이에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소쿠리에 넣어 두었었다.
나는 그 소쿠리를 집어들며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나갈까?”

그녀는 내가 집어들은 소쿠리를 쳐다보고는 얼굴에 만족하는 웃음을 띄었다.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려―?”

욕실로 향한 그녀는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리 준비를 끝낸 상태였고,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어서 다시 소파에 앉았다.

* *

우리는 집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언덕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는 햇살이 따스해서 잠이   같았다.
그래서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는 상태로 그녀에게 물었다.

“조금… 자다 갈까?”

그녀는  소쿠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렇게나 먹었으니― 잠이  수 밖에.”

그녀는 빙그래 웃고는 무릎을 톡톡치며 내가 무릎을 베고 누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기꺼이 몸을 뉘였다.
그녀의 무릎 베게는 편안하고 편안하고 편안했다.
이보다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시간이 조금 흘렀고,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무겁디 무거운 내 머리를 지탱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그녀를 무게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 일어났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모습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고고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 여인은 잠자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마른침을 꼴깍꼴깍 마시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의 형태는 없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연애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조차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의 읽은 소설.
그러니까…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 집어들었던 소설에 나온 여인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실존하는 것처럼 작중에서 했던 말과 묘사를 조각조각 모아서 말이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정도의 상황이라면, 그녀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떠올리지 않으면서 내가 상상해낸 여성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완벽에 가까운 그녀의 만들어진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안다
나도 내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나는….

땅! 땅! 땅! 땅!

어딘가 결여 되어있다.

땅! 땅! 땅! 땅!

완벽에 가까운 여성을 보았음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평온했다
허상이라서 그런가.
어찌 되었든, 나는 이상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땅! 땅! 땅!

* *

신경을 건드리는 불쾌한 소음과 함께 유일한 나의 안식처였던 망상이 끝나버렸다.
단순히 내가 무의미한 망상을 하면서 시간이나 축내는 사람은 아니었음을 나도 알고 있었다.
단지, 나는 너무 지루한 나머지 망상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내 눈 앞에 앉아있는 나의 동생 소브가, 내가 차려준 맛있어 보이지 않는 아침을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가야, 출근할 때 마음이 편하기도 했으니까.

땅! 땅! 땅! 땅!

나의 아주 골칫, 아니…. 사랑스러운 동생은 내가 아침으로 차려준 스프를 먹기는커녕, 숟가락으로 탁자를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나의 동생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앉아있는 공간을 얼려버릴 정도로 차가운 시선을 나의 동생 소브에게 보냈다.
내 차가운 시선을 이제서야 눈치챈 소브는 탁자를 숟가락으로 때리면서 내었던.
그러니까…, 나를 짜증나게 하는 소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차갑게 쳐다보는 이유를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왜 그래 형?”

나는 사실, 이미 참을성의 한계점을 넘은 상태라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었다.
그렇지만, 성급히 화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를 꽉 깨물며 소브를 다그쳤다.

“소브, 얼른 스프나 먹는게 어떠냐…? 그래야 내가 일하러… 갈 수 있을  같은데…?”

소브는 그제서야 깨작깨작 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먹는 것도 잠시, 소브는 자신앞에 놓인 영양가 없어 보이는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며 툴툴대기 시작했다.

‘또 시작인가….’

“맛 없어…. 나는 달달한 게 먹고 싶다고! 초, 초키…? 그, 그거 또 주면 안돼…?”

소브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면서 투덜대었다.
나는 깨작깨작 먹다 소브의 턱에 묻어버린 스프를 닦아주며 항상 둘러대던 대로 대답해줬다.

“소브, 내가 버는 돈으로는 이게 한계야. 나라고 매일 그것만 주고 싶은거는 아니라고.”

소브는 늘 같은 대답에 지친 건지 나이에 맞지 않게 한숨을 푹 쉬며  말을 맞받아 쳤다.

“팜 아저씨가 가끔씩 보너스도 준다면서! 그걸로 사주면 되잖아!”

소브는 최근 들어 새로운 돌파구가 생겼는지 하지도 않던 말도 하기 시작했다.

“소브…? 돈을  곳은 먹을 것을 사는 것만이 아니라… 집세도 내야하고, 곧 겨울 준비도 해야 한다고.”

나는 소브를 설득시켜보기로 했다.

‘나에게도 돌파구가 없을거라 생각했나 8살 꼬맹아.’

내 뛰어난 언변 실력으로 인해, 소브는 토라지기라도 한듯 고개를 팍 숙이면서 중얼거렸다.

“초키 먹고싶은데….”

‘참고로 소브야, 초키가 아니라 초코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어린 동생을 내가 키우다시피 하다보니,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물론, 지금 상황도 그렇지만…?
나는 동생을 먹이기 위해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날마다 투정을 부리는 동생을 보니 꽤심하긴 하다.
그래도 소브가 믿을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라도 잘 해줘야 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소브를 타이르기 위해 안심하라는 투로 말했다.

“팜 아저씨께 말해볼게, 안된다면 매달 받는 봉급으로 사오던지 할테니깐, 내가 차려준 식사는 꼬박꼬박 먹으라고?”

나의 허울뿐인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소브는 앞에 놓인 수프를 그릇까지 핥아가며 맛없고 영양가 없는 수프를 해치웠다.


* * *

휘이잉―

가을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친다.
춥다.
물론 얇게 입고 나온 내 잘못이긴 하다만, 나는 추워지기에는 아직 멀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입고 왔을 뿐이다.
‘추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라며 기세를 펴보지만 내 몸은 바로 굴복하고 말았다.
고작 나의 젊음은 이게 최선인가?
 아저씨 말에 따르면 내 나이대는 철근을 씹어먹을 나이라나 뭐라나….

춥긴 추웠는지 거리의 거지들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의 어둠속에서 거적데기를 두르고 몸을 웅크리고 있을게 뻔했다.
팜 아저씨는 거지들은 위험한 놈들이니까  조차도 마주치지 말라고 하지만, 가끔 돈을 쥐어줄 때 쓸만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보면 그렇게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부터 팜 아저씨,  아저씨 하니까 그때가 생각난다.
2년 전 즈음의 나는, 어린 동생을 위해 먹을 것을 조달하려고 도둑질이나 거짓말은 서슴지 않았었다.
물론, 그 행동들이 나쁜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나에게는 생존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었던 어느 날, 철근이 값이 나간다길래, 골목 동료들과 함께 공장에 몰래 들어가서 대량으로 훔쳐 때부자가 되겠다고 하다가, 공장 주인에게 잡혀 경비대에게 끌려갈 뻔했다.
내가 간 곳이 바로 팜 아저씨 공장이었다.
 아저씨는 나보다 두배나 크고 덩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붙잡혀 버렸고, 참으로 슬프게도… 같이 왔던 동료들은 다들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의 팜 아저씨는 붙잡은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시더니, 내 팔다리를 주물럭 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매우 당황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내 팔다리 근육을 보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나를 가까운 의자에 앉히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자네, 내 공장에서 일하지 않겠는가?”

나는 동료들의 배신 때문에 좀도둑질은 실증이 난 상태였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여차하면 철근을 들고 튀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통수  생각은 확 달아났다.
 아저씨 너머에 나랑 닮은, 아들처럼 보이는 사람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눈 앞에 보이는 실물의 팜 아저씨는 어딘가 지친 얼굴이었고, 무언가… 사정이 있어보였다.

나중에 팜 아저씨 부인이 말해줘서 알았던 사실이지만, 몇년 전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칼을 든 강도 때문에 잃었고,  아저씨는 아들이 겪은 불의의 사고에 대해 마음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설렁설렁 도왔던 일을 열심히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곤란해 하는 사람을 무시할 정도로 성격이 뒤틀어지진 않았으니까…?


* * *

“좋은 아침이군 페스틴… 조금 늦은 걸 보니 또 꼬맹이가 말썽을 피웠나보군.”

팜 아저씨는 삐딱해진 모자를 고쳐쓰면서 나를 반겼다.
팜 아저씨가 조금 늦어도 호통을 치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일 뿐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팜 아저씨. 동생을 달래주고 오느라 진땀을 뺐네요….”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짝을 사정없이 때리는  사람, 그래 이 사람이 바로 팜 아저씨다.

‘아픕니다. 아프다구요…!’

가끔 아버지 같이 신경써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니… 아버지 없이 자라온 나한테는 그가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
 아저씨는 학교를 다니지 못한 나를 위해, 아들이 썼었던 책으로 나를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나는 아들의 유품이라고 생각 되니까 마음이 불편해 졌었지만, 팜 아저씨가 나를 가르치며 즐거워 하기에 그런 마음은 수그러 들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팜 아저씨 덕분에 나는 세상 물정도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팜 아저씨의 공장은 기계를 다루는 공장이다 보니, 나에게 여러 기술도 가르쳐 주고는 한다.
그 영향으로 무언가를 응용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나는 그에게 이래저래 신세를 지고 있고, 아까 소브가 말한 초키…가 아니라 초코, 그것도 팜 아저씨가 준 것이다.
그러니까…,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들이 그 사람을 통해 정상적인 것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수 있었다.

* *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팜 아저씨에게 갔다.
다름아닌, 소브의 투정을 잠재울 ‘초코’를 얻기 위해서다.

“저기… 팜 아저씨.”

나는 되게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공손하게  있었다.
팜 아저씨 부인이 ‘초코’는 매우 귀중한 것이고 얻기가 힘들어서 귀족들이나 먹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리하고 난감한 부탁을 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지 페스틴…?”

 아저씨는 나를 돌아보면서 대답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팜 아저씨, 초코가 먹고 싶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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