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1 초코를 위해서라면 (2)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지켜보고 있던 팜 아저씨는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묘해졌다.
아니, 그냥 내 기분탓 일지도 모르겠지만 팜 아저씨의 표정을 본 그 때는 정말 기분이 이상해졌다.
'직감적으로 이질감을 느꼈다.'라고 하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팜 아저씨가 입을 열고 말한 내용을 보면 내 직감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페스틴…, 지금 초코가 먹고 싶다고 했나?”
내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팜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한채로 고개를 연신 끄덕여댔다.
일단, 소브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의 체면따위야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으니까.
팜 아저씨는 피식 웃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나 맛있었나 보군.”
그리고는 수납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쉽게 초코를 얻을 수 있게 되나 싶어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초코가 아닌 종이를 뭉텅이로 꺼내고는 나에게 건네 주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로 그 종이들을 받아들었다.
아니, 지금 생각하니 받지 말았어야 했었다.
팜 아저씨는 가끔씩 보여주던 음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네, 초코를 얻고 싶다면 내 대신 일을 하나 해줘야 겠어.”
나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정체 모를 종이들을 고쳐잡으며 겨우 대답했다.
“무, 무슨 일인가요…?”
‘저번 주 부터 말썽이었던 오토라인 하나를 나보고 고치라고 하는 건가?’
내 예상과는 달리, 팜 아저씨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진짜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왕궁에 좀 다녀와줘야 겠어.”
‘왕궁…? 아― 그 왕궁? 나라의 귀하신 분들이 살고 있는 곳 말인가?’
나는 얼떨떨 해져서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한채로 물었다.
“왕궁이라뇨…? 왜요?”
애초에 나와 팜 아저씨 같은 하층민들은 왕궁과는 연이 없었기 때문에, 팜 아저씨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왕성해진 어린아이처럼, 팜 아저씨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해댔다.
“아니,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깐만요! 왕궁에 연이 없는 제가 거기를 왜 가요? 설마 무슨 해코지 당하는거 아니예요? 아니, 애초에 팜 아저씨 대신 이라니… 그럼 팜 아저씨는 왜 왕궁에 가요? 팜 아저씨도 뭘 잘못한 건가요?”
팜 아저씨는 당황하면서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진정하게나, 내가… 너무 서둘렀군.”
내가 이런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는, 대개 대역죄인은 경비대에게 붙잡혀 왕궁으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왕 앞에서 친히 자신의 죄를 고하고 처벌을 받게 된다고 옆집 아주머니가 했던 말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내가 믿고 있던 팜 아저씨가 실은 나라의 반역을 도모하는 사람이었다니!’
나의 멍청하게 보이던 멍한 얼굴이 점차 잔뜩 겁먹은 꼴로 변해가니 팜 아저씨는 그런 내가 안쓰러워 졌나보다.
그 딱하다는 표정과 함께, 팜 아저씨는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자네가 나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눈친가 보군. 나는 말이야, 하층민이어도 왕께 기술력을 인정받아 나라가 비상이 걸렸을 땐 일손을 돕기 위해서 가끔 도우러 가는 신분이라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저번 주 부터 말썽인 그 녀석을 손봐줘야 해서 갈 수가 없어졌거든. 이번에 자네에게 맡기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자네에게 맞기면 딱 제격일거라 생각했을 뿐이네. 자네도 새로운 경험을 해 보면 좋기도 하고 말이네.”
‘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아마, 이 말을 들은 나는 굉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팜 아저씨가 내 앞에서 웃음을 참으려고 하지 않았겠지.
나는 일단 정신을 차리고 나의 앞에 있는 털 덥수룩 하고 배불뚝이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이 사람이 왕궁에 연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리감이 남아있기는 했다.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못해하는 태도로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렇군요… 아주, 잘 알겠습니다….”
팜 아저씨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전혀 안어울리나 보군.”
그리고 팜 아저씨 표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내 등짝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너무 아팠다.
굉장히.
일단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집에서 뒹굴거리며 동화책을 읽고 있는 나의 아주 미운…. 아니, 사랑스러운 동생을 위해 초코를 얻으려면일단 납득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원래 팜 아저씨의 일이지만 그의 조수인 내가, 대신 가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래서 나는 팜 아저씨의 진의를 알기 위해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팜 아저씨를 대신해서 제가 할 일이 뭔가요?”
팜 아저씨는 아마 초코를 내 동생이 아닌, '내'가 먹고 싶어하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 듯 했다.
나에게 이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나의 의사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초코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은 명백한 실수인게 분명하다…!’
팜 아저씨는 종이 두장을 더 건네주며 말했다.
“자, 이걸 가져가게. 내가 들어가도록 허용된 통로로 가는 지도와 내 인장이 찍힌 확인서이네. 경비대에게 보여준다면 들여보내 줄 걸세.”
나는 그 종이들까지 거의 떠넘겨지다 싶이 받아버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내가 할 일은 말하지 않았다.
‘대충 보고 판단하라는 것인가?’
“음… 이 종이 뭉텅이를 왕궁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되나요…?”
나는 잠시 생각해 본뒤에 내가 내린 결론이 맞는지 팜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자 팜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내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역시, 자네는 믿을만하군!”
언젠가 내 등이 빨갛게 되어있었다면, 원인은 팜 아저씨 일 것이다.
아무튼, 테스트 같은 건 끝난 모양이다….
나는 빨갛게 되었을 거라 추측되는 얼얼해진 내 등을 어루만지며, 가본적도 없는 왕궁은 어떨지 상상해보려했다.
그런데 갑자기, 팜 아저씨가 진지한 얼굴이 되더니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 말했다.
“페스틴, 그 설계도는 나라의 판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것이네. 행여나 누가 훔쳐가기라도 한다면 왕궁의 안보가 위험해질 정도라네. 내 말 알아듣겠나?”
내 양 어께를 붙잡은 두툼하고 큼지막한 두 손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팜 아저씨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새로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팜 아저씨가 나를 믿어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 * *
내가 이제부터 왕궁에 가게 될 것이니, 조금은 씻고 가는게 좋을 것 같다고 팜 아저씨 부인이 말했다.
나도 내 외모가 깔끔 하고, 단정 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씻는데에 동의했다.
* * *
물이 차서 겨우겨우 씻었지만, 어떻게든 깔끔하게 되었다.
‘이래서 나는 추울 때 안씻으려 하는 것이다…!’
나는 옷을 입고 팜 아저씨에게 가려고 했지만, 팜 아저씨 부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페스틴, 내 아들이 입던 것이지만 이걸 입고 가요.”
팜 아저씨 부인은 나에게 옷을 건넸다. 나는 그 옷을 받아들고, 나의 몸은 깔끔해 졌지만 내 옷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부인.”
나는 나를 신경 써준 팜 아저씨 부인에게 감사 인사를 안할 수가 없었다. 유품을 받아들은 내 깊은 곳의 자아는 약간의 거부감을 표했지만.
* * *
“페스틴, 부디 몸조심 하게나.”
큰 손을 좌우로 붕붕 휘두루며 팜 아저씨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이제 부터, 난생 처음 새로운 곳에 가보게 된다.
낯설고 내가 맡은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지만, 팜 아저씨가 나를 믿어주니,
‘내’가 해낼 수 밖에 없다.
* * *
가죽 가방에 담은 종이들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무겁긴 무거웠다.
"어디로 가면 되지…?"
사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만 기웃거리기 때문에 이곳 지리를 잘 모르고 있다.
다행이게도, 예전에 가끔 골목 동료들과 함께 도둑질을 하려고 다녀본 곳이 은근히 있어서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갈 때마다 따라만 갔지 앞장서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다…고는 못한다.
나는 내가 길치가 아님을 굳게 바라며 왕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왕궁은 컸고 도시 중심에 있기에 멀리서 봐도 보였다. 그 때문에 목적지가 왕궁이라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 수는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하층민의 골목길 부터 시작하려니 여간 쉬운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골목길을 빠져나가야 겠다고 생각한 때는 너무 오랫 동안 헤매서 해가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다.
왕궁을 바라보니, 아까보다 살짝 커졌다. …나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느껴졌다.
팜 아저씨 부인이 나에게 도시락을 싸준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오후 중에 금방 다녀올 줄 알았던 왕궁으로 가는 길이 이리 멀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걸어오다 보니 이쪽 동네도 만만치 않게 가난한 것 같다. 바닥은 기름이 흐르고 역한 냄새가 났다.
여기 사람들을 냄새가 역하다는 것을 못느끼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역한 냄새라고 느끼나 보다.
나도 역한 냄새라고 뒤늦게 알아챈 것은 어렸을 때, 골목 동료들과 함께 도둑질을 하기 위해 나라 중심가로 갔을 때다.
거기서 한 예쁜 여자아이를 보게 되었는데, 리본으로 치장된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옷이 아름다워 보였기에 다가갔지만, 역한 냄새가 난다고 쫓겨났다.
‘그건 세간에서 말하는 [차였다] 라는게 아니라고 본다… 아마, 그럴것이다….’
* * *
한참 길을 가고 있는데, 저 멀리 웅크리고 있는 남매가 보였다. 그 남매는 집도 없는 것 같았다.
이 추운 날씨에 살기위해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내 어릴 적 모습과 매우 흡사했던 탓이려나….
나는 추위에 떨고 있는 둘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굉장히 추운 날씨군요.”
팜 아저씨에게 배운 예절을 이제서야 써먹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왜 그렇게 팜 아저씨가 예절에 대해 자세히 알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왕궁의 출입이 잦아 어쩔 수 없이 익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둘 중 누나로 보이는 소녀가 오들오들 떨며 겨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아차 싶었다. 추위에 떨고있는 소녀에게, 나는 태연하게 인사나 하고 있었다.
그 소녀의 눈에 비춰진 나는, 굉장히 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본래의 용건이었던 팜 아저씨 부인이 준 아직 따뜻한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동생이랑 같이 따뜻할 때 드세요.”
소녀는 굶주려 있어 보였고, 그 도와달라는 눈빛은 예전의 소브와 닮았었다.
하지만 그 때, 두 남매 너머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게 보였다.
그의 눈은 소녀보다 더 굶주려 보였다. 사람이 무언가에 목말라하고 있는 상황만큼 위험한 상황은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