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1 초코를 위해서라면 (3)
나는 불특정하게 일어나는 문제들을 대비하는데 있어서 이미 능숙한 사람이 된지 오래다.
지금 당장 일어날 것처럼 보이지는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문제를 예견하는 것이 가능해 진 것 같다.
아무튼, 달려오는 그 사람의 눈빛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품속에서 반짝이는 저 물건이 더 위험해 보인다는 점이다.
‘뭐지…? 뭐야…? 무슨 일이지?’
나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 보았지만, 내 눈에는 특별히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역시, 저 사람의 목적은 내 앞에있는 이 남매인게 분명했다.
그는 남매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품속에 감추고 있었던 반짝이는 날카로운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지체함 없이 섬뜩할 정도로 시퍼런 칼날을 내가 건네준 도시락을 들고있는 소녀에게로 겨눠진다.
‘위험해, 위험해…! 장난 아니게 위험하잖아!’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움직여 여자애에게 휘둘러지는 팔을 붙잡았다.
그도 필사적이었는지, 굶주린 사람의 힘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여차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양팔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아야….’
그 번뜩이는 칼날에 내 목을 긁힌 것 같다. 내 피로 추정되는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내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행이도 깊게는 베이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비켜! 썩을놈아!”
이성을 잃은 듯이 외쳐대는 그 사람의 표정을 보니,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 같았다.
“오빠…!”
자신을 막아선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인지, 감사를 표한 것인지, 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인지, 그 여자애의 짧고 큰 외침이 들렀다. 나는 그 애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나도 소리쳤다.
“걱정말고, 동생이랑 도망쳐!”
내가 버티고 있는 동안 그 소녀는 내 뒤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론가 뛰어가는 두 아이의 발걸음이 들리자 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은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이런저런 걱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팜 아저씨를 대신해서 중요한 종이들을 옮기고 있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죽어버린 는 것은 가장 최악의 결말이라는 것을 파악했고, 그 파악은 그 다음의 행동을 하기 위해서 망설이지 않고 결단을 내릴 때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성을 잃은 그 사내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봐 형씨! 배고프다고 어린애들을 찔러서야 쓰나!”
이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더 흥분했고, 나에게 허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여기까지는 됐어…!’
왜인지는 모르지만, 내 눈 앞의 이성을 잃고, 몸이 기울어진 이 사람이라면 팜 아저씨가 자주 나에게 하는 장난이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난이라는 것은 매우 단순했다.
사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
이 남자는 지나치게 나에게 기울어져 있다. 무게를 이용한 고도의 테크닉이 실린 이 장난은 틀림없이 잘 먹힐 거라 생각했다.
“이 자식…!”
다행이게도, 그 사람은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앞으로 꼬구라졌다.
와장창―!
박스 더미로 머리부터 쓰러진 그 사람은 코를 매만지며 힘겹게 일어났다.
물론, 나도 그 사람이 일어날 동안 멍청하게 보고만 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무기로 쓸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애석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맨손으로 상대할 수 밖에…!’
소란스러웠는지, 창문을 열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간다.
‘보고 있으면 도와달라고…! 너무 무정한거 아니냐!’
그가 칼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왼쪽 골목길에서 큰 소리가 났다.
“어이! 거기! 당장 싸움을 멈춰!”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감사하게도 경비대가 와준 듯하다.
‘그 여자애가 불러준건가…?’
“어이, 형씨! 당신은 이제 큰일 났나봐―?”
승리감에 나는 그 사람을 비아냥 거려봤다.
그 사람은 경비대의 등장에 이성이 돌아왔는지, 코피가 흘렀던 인중을 쓱 닦고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음에 마주치면…, 널 죽일거다…!”
그러고는 자신이 달려왔던 그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나는 긴장이 풀렸기에 팔다리가 후들거려 도망치는 그 사람이 멀어져가는 것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 * *
나는 경비대 건물 한켠에 있는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확실히 왕궁에서 지원해주는 기관이다 보니, 이런게 잘 되어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높은 수납장에는 생전 처음보는 기구들과 약들이 보였다.
호기심에 들여 보다가 고개를 너무 뺐는지 상처난 목이 따끔거렸다.
의무실 한 쪽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안경 쓴 여성은 나를 노려보더니 손가락질 하면서 다그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세요! 상처가 벌어져서 다시 해야 되잖습니까!”
그녀는 내 목의 봉합을 사정없이 풀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상냥치 못한 그 사람의 손길을 거부할 힘이 없기에 얌전히 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 * *
치료를 마치고, 처음 보는 경비대원이 나를 구석진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 문 위로 [조사실]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조사실은 어두컴컴 했다.
한참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즈음,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팜 아저씨 보다는 아니지만 나름 덩치가 커다란 피부의 붉은 남자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경비대 5구역 수사관 텅스턴이라 한다.”
그가 퉁명스럽게 자신을 소개하고는 나의 맞은 편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 텅스턴이라는 사내에게 위압감을 느끼면서 나의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페스틴입니다.”
텅스턴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잠깐 벙쪄 있더니, 대뜸 호통쳤다.
“너는 내말에만 대답하면 된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분위기에 잔뜩 겁을 먹게 되었다.
‘여기가 이정도라면, 왕 앞에서는 얼마나 더….’
움츠러든 내가 딴 생각에 빠지려는 것을 알아챘는지, 아니면 잔뜩 겁먹은 내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인지, 텅스턴은 조사를 속행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 구역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로 이 구역에 왔고, 소란을 피운거지?”
그 험상 궂은 얼굴을 들이밀며 말하니 나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변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아… 그…. 어떤 남자가 칼을 들고 어린 남매를 공격하려길래… 도와…”
갑자기 텅스턴은 말을 끊고는 대뜸 호통을 쳤다.
“이 구역에 왜 왔는지 먼저 말해!”
내 바로 앞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호통치니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이 상황에서 나를 구제해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사실장님! 실례합니다. 여기 이 꼬마가 증인이 되어준다고 계속 떼를 쓰는 바람에….”
아까 현장에서 제일 먼저 달려와준 그 경비대다.
그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니, 말끔한 외모에 올곧은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
텅스턴은 자신의 탐문에 끼어든 그 경비대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또 호통을 쳤다.
“뭐야! 고작 꼬맹이도 못돌봐! 그래가지고 경비대를 하겠어!”
텅스턴의 얼굴은 여전히 나를 향해있었다.
따라서…, 텅스턴의 호통은 내 귀로 막힘없이 찔러들어왔다.
슬슬 내 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문 쪽을 보니, 아까 봤던 그 소녀가 아까의 경비대의 옷자락을 붙잡은채로 서 있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고 몰골이 장난 아니었다.
나는 그 소녀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까의 호통치는 텅스턴은 뒤돌아 그 애를 내려다 봤다.
그러고는 귀찮아 졌는지,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 소녀를 데려온 경비대원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나가버렸다.
“빌, 니가 이 탐문 맡아라. 끝나고 보고 잊지말고.”
빌이라 불린 경비대원은 조사실 문을 닫고 그 소녀를 의자에 앉히고는, 차분한 말투로 물어보았다.
“그… 선생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나는 아까와는 딴판인 분위기에 당황하다가 내 이름을 말해줬다.
* * *
나는 조사가 끝나고 복도에 앉아 빌이 준 쿠키를 깨작깨작 먹고있었다.
아까의 그 소녀가 나에 대해 열심히 변호해 주었기에, 빌도 납득하고 별 문제 없다고 판단해 나를 풀어준 것이다.
지금 그 소녀는 다친 곳은 없는지 검진을 받고 있을 것이다.
나는 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경비대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에, 기다리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팜 아저씨가 주었던 종이들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들을 꺼냈다.
나는 그 종이들 사이에 보이는 팜 아저씨가 준 지도(?)를 다시 봐보았다.
…아무리 봐도 지도라기 보다는 연애 편지 같았다.
처음 길을 나서면서 대충 봤을 때, 내가 가야 할 길을 친절히 글로 적어 놓은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것이었다.
자세히 살피지 못한 내 잘못이긴 하다만, 온전히 내 잘못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여하튼, 덕분에 팜 아저씨가 팜 아저씨 부인에게 얼마나 애정을 품고 있는지 알았다.
나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는 정보라고 생각 되긴 하다만, 내 앞에서 체면을 세우는 팜 아저씨에게 쓸 약점이라 생각하면 그리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 휘말리고 왕궁에 빨리 도착하지 못했기에 금세 기분은 수그러들었다.
…밖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오늘 내로 가능할까.
"하아… 오늘도 야간 근무야."
"야… 그래도 성문 보초가 그나마 쉬운거야…."
"무슨 소리야?"
"난 오늘 텅스턴… 그 자식 수발든다…."
"아…."
…왕궁은 밤에도 출입이 가능한 듯 하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내가 현재 있는 5구역 경비대 본부도 왕궁에 얼추 가까운 곳이라서, 다행이 오늘 밤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왕궁으로 가기 위해 서둘렀고, 소녀에게 인사하는 것을 까먹은채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채로 말이다.
* * *
“페스틴 씨, 제가 더 도와드릴 것은 없을까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니, 상냥한 빌의 물음이 들려왔다.
‘나를 왕궁까지 에스코트 부탁드립니다….’
나는 편하게 왕궁까지 가고 싶었지만, 더 이상 빌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 더 필요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빌은 길을 나서려는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럼, 몸 조심 하고 맡은 심부름 잘 하시길 바랍니다.”
상황상, 내 일을 떠벌리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 5구역의 공장에 쓸 도면을 운반 중이라고만 했다.
빌이 더 깊게 묻지 않아서 거짓말이 들통날 일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빌 씨도 수고하세요.”
나는 경비대 본부에서 나왔고 어두컴컴해진 골목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나는 정말로 일이 잘 안풀린다고 생각한다.
경비대 본부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어 또 사건에 휘말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러했다.
내가 골목길을 걷는 도중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상황을 보려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어둠 사이로 깡패 패거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엉겨붙고 난리가 났었다.
나는 여러곳을 헤맨 결과, 이쪽이 올바른 길이라 생각해 도달했었다.
하지만 맘편히 지나가기에는 상황이 영 좋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눈 앞의 상황이 일단락 되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나는 들키지 않도록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나게 싸우던 깡패들이 일순간 움직임을 멈췄고 정적이 찾아왔다.
호기심에 못 이겨 무슨 일인가 하고 그들 너머의 어둠속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른 도망쳐야 했었다.
스산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고, 팔에 난 털이 쭈뼛주뼛 곤두서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