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2 달콤함 뒤에 숨겨진 것은…. (1)
나는 깡패들 사이에 일렁이는 검은 물체를 좀 더 유심히 보기 위해 눈을 더 가늘게 뜨며, 집중해서 보려고 노력했다.
쿵…. 쿵….
그 물체는 건물 그림자에서 부터 벗어나 점차 형태가 드러났다.
정체 모를 거구의 괴물이 달빛에 의해 내 두눈에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뭣….'
그 괴물로 추정되는 것은 기분이 불쾌해지는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공간에 있었고 지금도 늦지 않았기에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어야 했다.
하지만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마음으로 자신 앞에 보이는 기괴한 모습을 한 괴물을 계속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더 머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괴물의 팔과 다리, 얼굴, 몸을 구석구석 보려했지만, 다음에 일어난 상황에 의해 관찰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열댓명이 넘어 보이는 그 우락부락한 깡패들이 차례차례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정육점의 도마 위에 놓인 고기처럼 말이다.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명, 잔뜩 겁에 질린 도와달라는… 아니, 살려달라는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가 서 있었던 거리는 피 비린내로 진동하게 되었고, 나는 속이 메스꺼워져 토가 나오려고 했다.
바닥에는 기름 대신 선혈의 피들이 흘렀고, 나의 두 팔은 심히 떨게 되었다.
‘…도망쳐야 해!’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나는 자리를 이탈하려 노력했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두 다리는 내 말을 듣질 않았다.
쿵…! 쿵…! 쿵…! 쿵…!
점점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나는 속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려 하는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쭈구린채 눈을 감았다.
처음 격는 충격적인 일의 영향으로, 내 사지는 부들부들 떨렸고 사고는 멈추었다.
이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자 나는 슬며시 눈을 떴고, 내 앞에 드리누워져 있는 그림자의 주인을 보기 위해 머리를 들었다.
내 앞에는 붉은 눈에, 은색 피부를 가진 거구의 무언가.
[생명체]라 생각되지 않는 괴물이 서있었다.
‘도…와줘…. 아무나 제발 나를 도와줘!’
나의 목소리는 목에만 머무를 뿐 입밖으로 새어나오지도 않았다.
눈 앞에 있는 괴물에게서는 기름 냄새와 공장에서 늘 맡아왔던 쇳덩이들의 냄새가 났다.
치이익―
이윽고, 그 괴물이 목소리를 내었다.
“에너지 탐지. 괴물을 제거합니다.”
그 괴물이 보여주는 인상과 어울리게 매우 딱딱한 말투와 감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렀다.
‘에너지…? 괴물…?’
그 괴물은 팔에서 번뜩이는 날붙이를 꺼냈고, 나에게 내려치기 위해 팔을 공중으로 들었다.
‘아…. 드디어 죽는구나…. 소브…. 팜 아저씨….’
그 때 갑자기 어떤 칼이 괴물의 심장 부위를 꿰뚫었다.
칼은 이상한 빛을 내뿜고 있었고, 이상하게 귀가 웅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꿰뚫린 명치 부분은 곧 미끌거리고 거무튀튀한 액체를 뿜어냈다.
향을 맡아보니, 기계의 원동력이 되는 휘발유 냄새가 났다.
“강한 에너지 탐지. 위험 괴물을 최우선으로 제거합니다.”
심장 부분이 심하게 으스러졌음에도 그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괴물은 곧바로 나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고 반격을 가하려고 했다.
나는 죽을 뻔한 위기를 벗어났고, 내 생명의 은인을 보기 위해서 애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굳어있을 뿐이었다.
괴물은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원인을 향해 날카로운 것을 휘둘렀다.
“끈질기네.”
괴물의 움직임을 가뿐하게 피한 그는 미간을 좁혔다.
차갑디 차가운 느낌의 목소리라고 느껴졌다.
곧 그는 이상한 빛이 나는 칼을 크게 휘둘러 괴물을 베었다.
괴물은 깔끔하게 두동강이 났고, 사방으로 기름이 튀었다.
괴물이 쓰러지고 고요해진 어두운 골목길에 서있던 나의 은인은, 훤칠한 키와 다소 차가운 느낌을 내뿜는 은발의 남자였다.
달빛을 등진 그의 분위기는 묘하게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 남자는 나를 내려다 보고는 혀를 차더니,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외쳤다.
“가…감사합니다!”
내 외침이 그 사람의 귀에 닿았는지, 그 남자는 우뚝 서고 나를 흘낏 보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나는 기력이 다했고, 지쳤다.
정신이 몽롱해 지고, 시야는 흐릿해진다.
* * *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각종 약품이 진열된 선반, 좌우로 살피니 그 상냥치 못한 사람의 의무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가죽 가방이 제대로 있는지 서둘러 확인했고, 팜 아저씨의 약점과 확인서가 있다는 것 까지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여전히 정신은 몽롱했다.
아마 난생 처음 본 자극적인 상황이 나에게 부담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침착한 내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뭐라도 반응하는게 좋을 것 같아, 나의 뒷통수를 긁적거리기 시작했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어제 본 안경 쓴 여성이 들어왔다.
“정신이 들었습니까?”
차분하면서도 사무적인 말투로 걱정하니, 뭔가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네….”
나는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대답했다.
“대답은 하실 줄 아시니, 정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트러블에 쉽게 얽히는 사람이라도 됩니까?”
그 사람이 나를 딱하다는 것처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지금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하는 중 이었기에, 대충 대답했다.
“아하하…. 네…그런가 보네요.”
큰 일에 휘말려 놓고는 바보처럼 웃자, 그녀는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아침에 빌이 순찰하다가 기름을 뒤집어 쓰고 기절해 있는 당신을 들쳐 업고 왔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차분했던 사람이 흥분한 듯 해보였다.
나는 사실대로 털어놓으려고 어제 있던 사실을 기억해 보다가, 그 기괴한 괴물이 사람들을 한순간에 죽이던 모습이 떠올라 속이 메스꺼워졌다.
속이 울렁거리고, 게워내고 싶어져서 나는 둘러대었다.
“별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가 얼굴빛이 안좋았는지 그녀는 인상을 쓰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별일이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세요!”
그녀의 밀어붙임에 곤란해 하던 그 때,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빌이 들어왔다.
“페스틴 씨, 몸은 좀 괜찮아 졌습니까?”
걱정이 한가득이라는 얼굴로 빌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잔뜩 흥분해 있는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테레사, 환자이잖습니까. 조금은 조심히 대해주세요.”
테레사라 불린 그 사람은 얼굴이 붉어졌고, 헛기침을 하더니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해버렸습니다.”
나는 딱히 불쾌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아닙니다. 걱정을 끼친 제가 더 죄송한걸요.”
“테레사, 어떻게 된 일인지는 제가 물어 볼테니, 페스틴 씨를 부탁드립니다.”
빌은 테레사에게 당부하고 서둘러 나갔다. 무슨 바쁜 일 도중에 내 안부를 확인하러 온 것 같았다.
테레사는 한참동안 문을 바라보더니, 무언가 기억해 냈는지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소개가 아직 이었습니다. 저는 여기 의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테레사입니다.”
내가 여기 온 첫날에도 내 상처를 치료하느라 통성명도 하지 못한 것을 이제서야 할 수 있게 되어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 저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페스틴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제라도 해서 다행인 듯이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차분하게 돌아온 사무적인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저는 다른 환자도 돌봐야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필요한게 있으면, 저를 불러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갔다.
나도 조금 진정되었기에 알 수 없는 피로감에 휩싸여 잠을 좀 자둬야 겠다고 생각해 자리에 누웠다.
* * *
“그런 일이 있었군요.”
빌은 끄덕이고는 종이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이기에,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위험한 사람… 인가요?”
빌은 잠시 망설이더니 나에게 대답해주었다.
“아…. 몇몇사람이 한 밤중에 비슷한 목격을 했다는 보고가 있어서… 현재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실마리가 잡히지를 않아서 골머리를 썩고 있습니다.”
‘나도 참 대단하다. 이런 일을 겪다니.’
“그래서 야간 순찰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사내의 목적도 모른채였는데, 페스틴 씨가 봤다던 괴물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시 전날 밤의 괴물을 떠올려 보고는 몸서리를 쳤다.
“사람을 여럿 죽일 수 있는 괴물이라면, 저희 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왕궁에 지원요청을 할 생각입니다만, 페스틴 씨가 같이 전해 주겠습니까?”
빌의 부탁에 나는 어차피 가는 길이기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하하, 물론이죠.”
‘어…? 잠깐, 이 사람이 내가 왕궁에 가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왕궁에 간다는 사실을 빌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그 순간 내 표정은 일그러졌고, 내 앞의 빌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빌은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 손사래치며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마음대로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조사에 필요한 과정이라…. 왕궁에 간다는 것은 저만 알고 있고, 이것을 떠벌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경계의 끈을 놓지 않으며 그 말이 진실인지 표정을 주시했다.
빌의 표정은 난처해졌고, 자신이 괜히 이야기를 꺼냈나 후회하는 듯 했다.
잠시 내 눈치를 보던 빌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혹시…. 국가 기밀이라던가…그렇습니까?”
나는 여기에서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위험성이 커질 것 같아 둘러대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사실을 섞어가면서 말이다.
“네…? 국가 기밀이라뇨? 저는 단지 공장장이 의뢰한대로 이 가방을 왕궁에 건네주라고만 들었을 뿐입니다.”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과 함께라면 이 상황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빌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표정으로 부터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더 이상 캐뭍지 않는 것을 보니 어찌저찌 잘 넘어간 듯 했다.
* * *
5구역 경비대 본부를 나서고 나니 말을 더 잘 하지 못한게 마음에 걸렸다.
빌이 내가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이 사실을 떠벌린다면, 이 일을 완벽하게 끝마쳤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저 빌이 조용히 해주기를 바랄뿐이다.
왕궁으로 가는 길을 향하다가 문득, 내가 제대로 걸어가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확실히 낮이고 골목길도 밝았기에 왕궁을 쉽사리 찾아갈 수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한 길로만 쭉가면 되는 것을 나는 헤메고 있었던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나의 멍청함에 한숨을 쉬며, 왕궁으로 들어가는 쪽문에 서있는 왕궁 경비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누구지? 통행증을 보여라.”
다소 딱딱하고 박정한 말투가 나의 귓가를 때렸다.
왕궁을 상시 근무중인 경비대들은 성격이 좋지 않아보였다.
아니면 피로에 쩔어있다던가.
“아…. 잠시만요.”
나는 그런 그들에게 부드럽게 말하기 위해서 침착함을 유지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