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2 달콤함 뒤에 숨겨진 것은…. (3)
공장으로 들어서자, 팜 아저씨 부인이 나를 반겼다.
나의 품에서 팜 아저씨가 실수로 나에게 준 연애 편지가 만져진다.
팜 아저씨 부인에게 그대로 건네려다가, 그냥 나중에 내가 불리해 질 때 쓰면 유용할 것 같아 관두었다.
팜 아저씨 부인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고생했죠? 차를 내올 테니 마시고 팜에게 가요."
그녀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서 주방으로 향했다.
다시금 느끼지만, 정말 상냥한 사람이다.
팜 아저씨를 얼른 만나고 소브에게 가야 했지만, 숨을 돌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야….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나도 사람이다.
피로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방의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틀 동안 있었던 일들을 곱씹었다.
이것은 내 버릇, 늘 항상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되새겨서 기억에 남기는게 습관이다.
다소 색다른 경험, 중요한 것, 인상적인 것이라면 무차별 적으로 기억하려 했다.
나는 그토록 기억해 내고 싶은 부모님과의 추억이 별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먼 훗날에 내가 추억할 만한 것을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하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마치자, 갑작스레 몰려온 공허함이 그리고 착잡함이 내 마음에 가득해지려 할 때, 팜 아저씨 부인이 나를 구해주었다.
"여기 있어요,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차에요."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나에게 차를 건네는 부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눈 앞에 놓여진 김이 모락모락 차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마음이 따뜻해지며 차분해졌다.
* * *
문을 열고 팜아저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팜 아저씨는 예의 그 녀석이 잘 고쳐지지 않는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나는 자리에 서서 내가 경험한 것을 어디까지 보고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팜 아저씨는 목에 둘러져 있던 수건으로 이마를 쓱 닦고는, 옆에 있던 물통을 잡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별안간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내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자네 왔는가! 왕궁은 어땠는가?”
나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머리속을 대충 치워가며 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 * *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을 팜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는 재미없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를 구해주고는 그냥 훌쩍 떠나버린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이 풀어가자, 팜 아저씨는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내가 이야기를 끝마치자, 팜 아저씨는 눈동자를 살짝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그를... ....... 만...인가..."
“네…? 잘 못 들었습니다.”
나는 제대로 듣지 못 해서 다시 한번 말해 주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팜 아저씨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차가운 공기에 열기가 식어버린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페스틴, 그 남자를 잊게."
나는 영문을 몰랐지만, 팜 아저씨는 무엇인가 알고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진심이라는 눈빛을 보자니 팜 아저씨 말대로 하는게 좋아보였다.
대개 저런 눈빛을 하고 말하는 것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이거나, 그게 꼭 기억해야할 사실이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팜 아저씨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바로 잊는 것은 못할 것 같아요. 워낙… 충격적이었거든요."
팜 아저씨는 나의 마음을 이해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에게나 이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 것을 당부했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 뒤로 나와 팜 아저씨는 무겁게 변한 분위기를 의식하듯, 산뜻하고 가벼운 왕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 * *
내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아까부터 소브는 굉장히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나의 예상대로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 모습에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기 시작한 나였지만, 소브가 엉덩이를 들썩 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그렇게까지 상황이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나는 소브가 참 성가신 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온게 좋으면 달려들라고….'
팜 아저씨가 왕궁을 다녀온 일로 수고했다며 보너스로 준 돈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나는 소브가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던 달콤한 빵을 사왔건만, 소브는 반기기는 커녕 콧방귀만 뀌며 시선을 맞추려 하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한 숨이 푹푹 나왔다.
이 어리고 어린 나의 동생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한참 동안 생각을 해봐도 시간이 약이라는 것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소브가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내 말에 따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성가신지….’
일단, 소브에게 말을 붙여 어떤 감정이고 생각을 가졌는지 확실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하룻밤을 혼자 어떻게 보냈는지, 나 없이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소브가 걱정되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소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씩씩거리고 있을 뿐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며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소브, 팜 아저씨가 시킨 왕궁을 다녀오는 일 때문에 돌아오는게 늦어지고 말았어."
그럼에도 소브는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뭐 어쩌라는거야…. 나도 이럴 생각은 없었다고?’
나는 소브가 또 밥 투정을 부릴 때를 위해 남겨둔 나의 필살 히든카드 '초코'를 꺼냈다.
한달에 한개 정도 밖에 얻지 못하는 귀한 초코를, 눈물을 머금으며 꺼내는 것이다.
그렇게나 아까운 것을 이리도 쉽게 건넬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그것은 팜 아저씨가 내가 겪은 일들을 듣고는 보상이 초코 하나로는 불충분 하다고 느꼈는지, 두어개 더 얹어주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있었다.
나는 소브에게 초코를 건네면서 말했다.
"자, 여기. 이거 줄테니 마음 풀어줘."
소브는 처음에는 계속 머리를 팍 숙이고 있다가, 점차 숙였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자신의 올라간 입꼬리를 보이기 싫었던 것인지 입을 가리고는 초코를 낚아채고 방의 구석탱이로 달려가 버렸다.
구석으로 가버린 소브는 개미 목소리 만하게 말했다.
"고마워…."
고마워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풀렸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고, 토라져있는 소브에게 밥을 먹이기란 정말로 굉장히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 * *
오늘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날씨 였다.
저번의 그 날씨는 왜 그렇게 추웠는지 전혀 이해가 안갔지만, 오늘 날씨는 따뜻한 편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나는 팜 아저씨 공장으로 가면서 늘 하던대로 주위를 구경하며 걸어갔다.
매일 보아왔고 지겹도록 쳐다본 것들이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나는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위를 보며 걸으니, 거리에 사람들이 한 둘씩 돌아다녔고, 거지들도 거리에 자리를 잡고 제각각 편한 자세로 널부러져 있었다.
몇몇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포즈를 일부러 하고 있었다.
‘아, 내눈….’
오늘은 소브가 투정부리지 않았기에, 나름 빠른 시간에 나올 수가 있었다.
그래서 가끔 가보았던 그 골목길로 가보았다.
늘 나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주던 그 거지도 나와있었다.
나는 대충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그 거지는 내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했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거지의 건들거림이 짜증스러웠다.
그리고 돈을 쥐어주면 귀한 사람 대하듯 굽실굽실 거리는 것 또한 짜증스러웠다.
이 사람은 돈에 의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나는 언제나 처럼 몇푼 쥐어주고는 요새 돌고있는 소문이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 거지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소문거리를 찾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신나게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성벽 밖을 조사하는 경비대들이 그러던데, 빵이 열리는 나무를 찾았더래!”
성벽 밖의 이야기는 희소한 소재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성벽 밖의 이야기는 매우 적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왕궁에서 성벽 밖에 대한 소문이 흐르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왕에게 보고한다던데, 나라면 그 나무로 떼돈 벌어서 부자가 될텐데…. 아! 이 이야기는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거지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땟국물 줄줄흐르는 더러운 거지를 보면서 나는 이 사람도 예전에는 나처럼 젊었고, 한때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딱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거지의 말을 들어주고, 고맙다는 투로 손을 대충 흔들고는 팜 아저씨의 공장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키득거리는 거지의 비웃음을 들으면서.
'…'
* * *
공장에 도착한 뒤로, 팜 아저씨와 함께 성가신 그 녀석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국왕이 명령한대로 이제 부터 공장에서 제작을 시작해야 하지만, 이 녀석 때문에 좀 처럼 진행이 되지를 않고 있다.
내가 손을 멈추고 잠시 쉬고 있자니, 팜 아저씨가 내 등 뒤에서 나타나며 말했다.
"자네가 놀으면 어떻게 하나! 나는 말이야, 국왕의 명령을 받드는 사람이라네."
사람 짜증나게 하는 으스대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것참….’
내가 이제 팜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 팜 아저씨는 가끔씩 대놓고 으스댔다.
나는 그럴때마다 냉랭한 시선을 던질 뿐이다. …확 연애 편지를 뿌려버려?
* * *
점심 식사를 하면서 문득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있었던 색다른 경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일만하고 집에서 쉬다가 가끔씩 책을 읽으러 가는 나의 일상에서 [왕궁]이란 새로운 환경을 경험한 것을 말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7구역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읽을 겪었던 것이 나에게는 좋았다고 생각된다.
내가 그곳으로 다시 한 번 간다면, 무엇인가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별 볼일 없어도 다시 한번 왕궁에 갈 일이 없는지 힐끗힐끗 팜 아저씨의 얼굴을 살펴 보았다.
그런 나의 시선을 무시하는 듯, 묵묵히 앞에 놓인 음식을 자신의 입속으로 옮겨가며 열심히 씹고 있을 뿐이었다.
“…”
나는 내 입으로 말하면 팜 아저씨에게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들 것 같아 자존심을 내세우며 팜 아저씨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래서 눈빛으로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하아….”
그러자 팜 아저씨는 한숨을 팍 쉬고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숟가락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꿀꺽.’
나는 팜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할지 은근히 기대하며, 왕궁에 갔다오라는 일을 또 맡기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팜 아저씨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더니, 그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입이 열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