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3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오리니 (1)
“그렇게나 왕궁에 다시가고 싶은가?”
팜 아저씨가 직설적으로 나에게 물었다.
팜 아저씨가 돌려서 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 외의 흐름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팜 아저씨는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자, 그런 내가 싱겁다는 듯 식사를 속행했다.
물론 내가 원했던 답이긴 하다.
그렇지만 돌려말하지 않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니,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물론 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바로 대답을 하면 지는 듯한 느낌이 들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내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여전히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자, 팜 아저씨는 아쉬운게 없다는 투로 나의 자존심을 툭툭 긁어내기 시작했다.
“딱히 가고 싶어하지 않아 보이는군….”
“네…?”
“그럼, 이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겠네.”
그리고 더 이상 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기회를 놓쳐버릴 것 같은 생각에 나는 순간 조급해 졌다.
물론 팜 아저씨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월급도 제때에 주고 가끔 보너스도 주니 말이다.
점심 식사까지 꼬박꼬박 챙겨주고 팜 아저씨 부인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만약 이대로 쭉 공장 일을 도운다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동생의 뒷바라지도 가능하게 되고, 더 이상 과거의 힘들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팜 아저씨는 국왕에게 신임 받고 있기 때문에, 잘만 한다면 팜 아저씨의 공장이 폐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분명, 이대로만 한다면 나중에 팜 아저씨에게 공장을 물려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대로면 아쉽다.
나는 이대로 남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가능하다면 연애도 해보고, 더더욱 가능하다면 결혼도 해보고, 아이도 낳아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그런 것인가?
나는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뽑아내기 시작했다.
왜 나는 아쉬움을 느끼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왜 나는 왕궁으로 가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나의 마음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들을 납득하기 위해서 머릿속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왜?
왜 나는 ‘평범함’을 추구하지 않는걸까?
나는 열심히 음식을 입으로 옮겨가는 팜 아저씨를 바라 보았다.
…결심했다.
내가 왕궁에 갔다가 오면서 겪은 경험들은 미래의 나에게 값진 것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 의하면, 모든 것의 경험과 실패는 미래의 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바로 눈 앞에 가질 수 있는 값진 것이 있다.
내가 크게 성장하게 되는 ‘특별한 일’들이 가득한 새로운 환경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결코 닿지 못하거나, 얻었어도 아쉬운 것이 아닌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쳐버리고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젊음은 유한하고, 시간도 유한하다.
그 거지들처럼 나는 별 것 아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했더라면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그 때 마지막인 것을 알았더라면, 멀어져가려 하는 부모님의 품속에 안겨 꼭 껴안았을 것이다.
내가 삐져 있지만 않었어도, 부모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늘 원하던 그 품속을 나는 결코 다시 얻지 못한다.
늘 갈망하고 원해왔었지만, 닿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눈길을 돌려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과거의 나는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받을 거라는 일말의 헛된 희망을 바라고 있었다.
그 때 골목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나의 갈망은 채워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은 늘 내가 아니라 돈을 원했고, 내가 원했고 바라왔던 것은 그들에게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나를 두고 도망가는 그들의 등을 보며, 나는 ‘나의 노력이 덧없었다.’ 라고 느꼈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아쉬움만 주었을 뿐이다.
그렇다.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내가 하려는 것은 겨우 얻은 안정감을 버리는 [도전]이다.
내가 지금 얻으려고 하는 것은 손이 닿지 않아서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나아가려 하는 방향은 나에게 실망감만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생각을 정리했고, 입을 열었다.
* * *
“…왕궁, 가고싶습니다.”
“…왕궁은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가는 곳은 아니네만….”
나는 그 말을 곱씹고는, 팜 아저씨가 은연중에 무언가를 흘린 것 같다고 느꼈다.
“왜 가고 싶은가?”
그의 걱정스러운 감정은 당연하다.
자신의 ‘아들’이 품을 떠나려고 하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아…. 폭넓은 생각을 가지고 싶어서요.”
나는 본심을 숨겼다.
내 진정한 목표는 경험과 실패를 교훈삼아,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
한도가 끝이 없는 나의 탐욕적인 마음 덕분에,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심한 갈증을 느끼면, 수분을 섭취하려고 발악을 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지 그것 뿐인가?”
팜 아저씨의 눈동자를 보니, 나의 속마음을 간파 해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의 물음이 내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한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뇨, 저도 팜 아저씨 처럼 왕 밑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나’처럼 말인가…?”
그러니, 나는 동경하는 사람을 따라가려는 흔한 성질을 드러냈다.
그러자, 팜 아저씨는 별안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망설이시는 듯한 기분이 든다.
“…? 팜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남자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팜 아저씨는 나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네.”
갑자기 웬 목숨?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내가 정말로 가치있다고 느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집요하다.
“상관없습니다.”
팜 아저씨는 나를 위해 여러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셨다.
"자네가 그러고자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그런 아들의 등을 밀어주는게, 아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아들.
좋은 울림이다.
고요한 내 심장은 그 단어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죄여오기 시작했다.
"우선, 자네에게 간단한 일을 맡길 걸세. 서류를 전달했던 것과 같이 주로 운반하는 일을 말이네."
"…아하 그렇군요."
팜 아저씨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진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은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일까.'
단순히, 신분의 차이나, 일의 난이도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뭔가… 그보다 훨씬 더 끈적하고 어두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크흠, 아무튼 그렇게 면식을 쌓다보면, 왕의 눈에 호의를 얻게 될 걸세. 그렇게 된다면 틀림없이 자네를 사용하실게 분명하네."
나는 직감적으로, 팜 아저씨 처럼 기계를 다루게 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팜 아저씨에 비해 나는 아직 실력이 한참 모자란 애송이라는 사실도 인지 했다.
"흠, 지금은 이렇다 할 기술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걱정말게, 그건 내가 도와주겠네."
"하하… 감사합니다."
"…자네는 재능이 있다네. 그 틀에 박히지 않는 눈빛.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해결책을 떠올리는 자네라면, 그곳에 가서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걸세."
'문제…?'
팜 아저씨는 나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스리슬쩍 경고의 메세지가 담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왕궁에는 내 옛 동료들이 있네. 내 이야기를 한다면 자네를 도와줄걸세. 이건… 구두로 전하는 것보다, 이름과 특징을 상세히 적어주는게 나을 듯 싶네. 나중에 자네에게 줄테니 참고하길 바라네."
'흠, 옛 동료라….'
여기까지 말하고 팜 아저씨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팜 아저씨의 표정을 보니, 자랑스러운 마음과 한편으로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팜 아저씨는 역시 좋으신 분이다.
이런 나를 위해 여러가지 도와주고, 내 선택을 존중해주고, 심지어는 걱정해주기까지 한다.
그의 눈동자로 부터, 나는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덕에, 내 심장은 고요하게 진동했다.
* * *
시간은 흘러, 약 한달 뒤.
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의 나는 그의 밑에서 기술을 갈고 닦았다.
거기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체 단련 과정도 있었다.
남자란, 자고로 사람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을 가져야 한다면서, 억지로 나에게 목검을 들게 했다.
하지만….
"…자네는 검술에 영 소질이 없군."
"허억… 허억… 좀… 봐주십쇼…."
팜 아저씨의 말 대로, 나는 검을 잘 다루지 못한다.
심각할 정도로.
그래서 나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온 몸이 쑤시고 힘들어서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들었다.
나는 당분간은 심부름 일을 하면서 나의 기술을 갈고 닦으면서 앞으로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갈 것인지, 앞으로 무슨 일들을 겪게 될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그 기대감 덕분에 어려움을 느껴도 감내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팜 아저씨는 본격적으로 우리가 만들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가르쳐 주시기 시작했다.
나는 늘 우리가 무엇을 만드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팔인건 확실하다만, 용도를 알 수 없으니 내가 혼자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팜 아저씨에게 물어보아도 늘 “의수라네.” 라고만 답할 뿐, 자세히 가르쳐주지를 않았었다.
사실, 이 수많은 팔 다리 같은 기계들을 몰래 해부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찌나 복잡한지 시도 조차 하지 못한 채로 공구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일을 끝나고 팜 아저씨가 샤워를 하는 틈을 타서 서랍을 뒤져보았지만, 털끝 같은 단서 조차 찾지를 못했다.
"그거 말인가? 왕궁의 요청으로 만들고 있었다네. 이전의 자네는 알 필요가 없으니 말을 안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안다.
'치사하군.'
제한적인 정보는 제공자만 이득을 취하는 것만 같다.
* * *
“그게 무슨 소리야?”
소브는 놀라서 눈이 주먹만해졌다.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구는 건 덤이다.
물론, 나라고 소브에게 모든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극히 일부분인 “가끔씩 팜 아저씨를 대신해서 왕궁에 가게 될 거야.” 라고 말했을 뿐이다.
소브는 여전히 내가 왕궁에 간다는 사실이 놀라웠는지, 같은 자세로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실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어서 소브의 질문공세가 퍼부어졌지만, 나는 웃느라 답해주지 못했다.
* * *
나는 내가 특별한 일을 하게 되어서 기세등등 해졌다.
어디에선가 자신감이 샘솓았고, 어깨는 자동으로 펴졌다.
늘 걷는 팜 아저씨 공장으로 가는 길이 반짝반짝 해졌고, 나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는 문뜩 길가는 사람들에게 힘차게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부드럽게 걸어가는 사람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사람들은 헤실헤실 웃고있는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보고는 가던 길을 재촉하며 가버렸다.
어떤 사람은 얼떨떨해 하며 인사를 받아주긴 했다만,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이 영 좋지 않아서 곧 인사를 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조금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어졌다.
* * *
나는 라인을 따라 척척 조립되는 팔다리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팜 아저씨가 실력 테스트라면서 처음 보는 공구에 괴상하게 조립되어 있는 기계 덩어리를 던져주고는 휙 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싱글벙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른들의 가게’에 간듯 했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팜 아저씨는 얼굴이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왔고, 팜 아저씨 부인의 전투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거기에 가시면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나야 뭐…. 이렇게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가게에서 무엇을 마시는지 궁금해져서 팜 아저씨 부인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물어보려는 순간마다 어디에서 나타나났는지 팜 아저씨는 나를 가로막고 기름 냄새 펄펄나는 작업장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기필코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한다.
호기심이 왕성하니까.
이제 정신을 차리고, 내 눈 앞의 현실을 바라 보았다.
이 기계 덩어리를 어떻게든 해 보아야 팜 아저씨에게 인정 받아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가게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몇번이나 새로 쓰게 된 공구를 집어 던졌다.
한참 동안 헤맨 뒤에야 겨우 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고는 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나는 복잡하디 복잡한 골칫덩어리에게 발길질을 하고는 팜 아저씨 부인에게 치료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너무 아팠다.
* * *
한참을 낑낑대다가 겨우 분해했다.
분해 된 부품들을 제 모양에 맞게 다시 조립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순서는 라인을 따라 움직이며 조립되는 기계들을 보면 알 수 있었고, 조금 복잡해 보이는 것은 팜 아저씨 사무실에서 도면을 훔쳐본 것으로 되었다.
조립하면서 알아낸 것은 놀랍게도, 서로 얽히고 섥혀있던 부품들이 자그마치 스무개가 넘는 기계들이라는 점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팔을 조립하는 것을 끝냈고, 팔에는 얇은 빈 공간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빈 공간은 길었고, 얇은 무엇인가가 들어가는 듯 해보였다.
“뭐지…?”
나는 자재실을 뒤적거리고는 그 빈 공간에 마땅히 들어갈 만한 것을 찾지 못한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분해하고 조립해놓은 것들을 바라보았다.
더 없이 뿌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공장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