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3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오리니 (2) (9/128)



〈 9화 〉#3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오리니 (2)

팜 아저씨 부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행여나 팜 아저씨 부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팜 아저씨를  면목이 없어진다.
황급히 들고 있던 공구들을 아무렇게나 내팽겨 치고는 공장 입구 쪽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 * *

커다란 문을 힘차게 열어 재낀 뒤,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의 원흉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소란의 원흉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눈에 띄는 거구의 남성이, 아주아주 낯익은 모습의 남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소란의 원인은 팜 아저씨였다.
중심을 못잡고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팜 아저씨는 상당히 얼굴이 붉어보였다.
옆에는 팜 아저씨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부축해 주고 있었다.
 아저씨는 뭐라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혀가 꼬인채로 말했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귀담아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아저씨는 여전히 비틀거리며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혀가 꼬인 채로 말했다.

“퐤수튄이 마랴? 대겨놘 녀석이라고~ 쳐음 봐쓸 때 마랴? 코찔찌리 여석이 언줴 이리 커서, 제 압가림을 하게될 줄 뉴가아 알아겠숴! 아주 그양 보기마안 해도! 배부르다니까안?”
“…저, 저 양반이…!”

흥분에 가득찬 팜 아저씨 부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렀다.
나는 알아듣기 힘든  아저씨의 말을 계속 그 자리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옆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팜 아저씨를 다그치며 말했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래? 말려도 벌컥벌컥 들이킬 때 부터 내가 알았지…! 동네 창피하게 계속 그럴꺼야?”

그 아저씨의 표정이 매우 심각했고, 감사하게도 여기까지 바래다 주었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소리쳤다.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아들! 코딱지 만한게 듬직해 졌다고! 자네, 내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아나?”

 아저씨는 마음속 깊이 늘 그렇게 생각해왔는지, 발음을 토씨하나 안틀리고 말했다.
팜 아저씨는 신나게 휘청거리다가, 공장 문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큰 손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얼굴은 세상 밝아 보였고, 매우 기뻐보였다.

“페스틴 아닌가! 이보게, 내가 말한 친구가 저 친굴세!”

팜 아저씨는 갑자기 옆에서 부축하던 아저씨의 어깨를 신나게 두들기 시작했다.
두들겨 맞고 있던 아저씨는 울상이 되었다.
그리고는 맞고 있었던 아저씨가 제발 좀  친구를 데려가라는 눈빛을 나에게 강렬하게 내 뿜었다.
그 친구로 보이는 아저씨의 어깨에서 나의 어깨로 옮겨 가면서도 팜 아저씨의  자랑은 멈추지 않았다.

팜 아저씨의 진심어린 칭찬에,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따기 처럼 이뤄질  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듯 하다.


* * *


다음 날 나는 공장 문을 열고 바짝 여민 옷맵시를 풀기 시작했다.

“아, 어…. 안녕하세요?”
“…으음… 어, 어서오게나.”

분명 팜 아저씨가 어제 누군가와 싸웠던 것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얼굴이 부어 있었고, 찜질을 하고 있었다.
팜 아저씨 부인이 지나갈 때마다 살벌한 눈빛을 쏘고가는 것을 보아, 아마 크게 혼나신  같았다.
팜 아저씨에게 나중에 넌지시 물어보니 나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눈길도 주지 않았다.

팜 아저씨의 눈치를 보아하니 어제의 일은 기억하고 있지않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은 내가, 팜 아저씨의 마음속을 보게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됐다.
이 기억은 머릿속 아주 깊숙히 있는 소중한 저장공간에 집어넣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결과, 이건 헛되지 않은 듯하다.

* * *

 아저씨는 내가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놓은 기계들을 한참을 떠들어 보더니, 나를 쳐다보고 어디론가 나갔다.
나는 내가 뭔가 잘못 했나 싶어서 내가 조립해 놓은 기계들을 이곳저곳 자세히 살폈다.
딱히 잘못된 점을 찾지 못한채로 나는 털썩하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 뒤에  아저씨는 보랏빛이 도는 커다란 구체를 낑낑거리면서 들고 왔다.
처음 보는 기계여서 어디에 쓰는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한참 동안이나 유심히 바라 보았다.
 아저씨는  수수께끼의 구체를 꿍! 하고 내려놓고는 이마의 땀방울을 팔뚝으로  훔쳤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고는 수수께끼의 구체를 탕탕 두드리면서 말했다.

“자네, 이게 무엇인지 알겠나?”

나는 여전히 정체를 알지 못한채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로서는  구체의 정체가 어디에 쓰는 것인지  방법이 없었다.
팜 아저씨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 * *

팜 아저씨께서 설명하길, 이 구체는 웬만한 모든 기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일명 [코어].
이 코어 라는 것은 크기는 다양하고 쓰임새도 다양한 것이라고 말했다.
매우 초소형으로 만들면 [통신기]의 동력원으로 쓰일 수 있고, 크게 만들면 공장. 심지어 [배]의 동력원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했다.

참고로 나는 [배]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거대하고 길쭉한 집처럼 생겼으며, 성벽 밖의 미지의 구역을 탐험하기 위해 왕궁에서 사람들을 모집해 밖으로 나가기 위한 이동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코어]는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으며,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발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앞으로 왕궁에서 일하게 되면 내가 손대게  핵심적인 것이었고, [코어]에 대해 이해하고 간다면 큰 도움이 될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아저씨는 [코어]의 구조를 설명해 주고는, 다음에는  많은 것을 가르칠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나는 힘차게 대답했고, 팜 아저씨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 *


그렇게 몇달이 흘렀다.
나는 쉬는 시간이라, 한가로이 뒹굴거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방금까지 코어 외부를 감싸고 있는 외피에 대해 배우고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복잡한 구조였고, 좀처럼 나아가지 않은 진도에 팜 아저씨와 나는 서로 지쳐만 갔다.
그래서 지금  쉬는 시간이 매우 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과연 옳았을까?

분명,  아저씨는 나에게 왕궁에 물건을 전달하는 일을 맡길 것이라 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나질 않았다.
나의 기대는 계속 커져왔고, 기다리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나는 지쳐만 갔다.
팜 아저씨도 그런 나의 상태를 알았는지, 시간이 날  나를 준비시키려고 노력하셨다.
팜 아저씨의 노력으로 나는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팜 아저씨 없이도 척척 공장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내가 이정도까지 성장할 줄은 몰랐지만,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 보니 나 자신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느꼈다.
‘틀리지 않았다.’ 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단지, 목표를 정하고 노력을 했을 뿐인데도, 나는 꽤나 많은 것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괜찮을 것이다.
아마….

“어이! 페스틴! 잠깐 와보게!”

어디선가 들리는 팜 아저씨의 부름에 나는 바지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페스틴, 좋은 소식이네!”

싱글벙글 웃고있던 팜 아저씨가 손에 들고있었던 종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왕궁에서의… 편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친애하는 나의 동료 페더 팜에게.” 라고 시작된 문장은 팜 아저씨와 나를 흥분시켰다.
내가 전언을 다 읽었을 때는 서로 부둥켜 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소란스럽게 한 것인지, 팜 아저씨 부인이 당황하면서 달려왔다.
우리는 우리가 기뻐한 이유를 설명했고, 팜 아저씨 부인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편지의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국왕이 새로운 인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길은 열렸고, 자주 왕궁에 가면서 눈도장을 찍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간 갈고 닦은 나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이리도 간단하게 생긴 것이다.

* * *


팜 아저씨가 집으로 가려는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내가 망각하고 있었던 어떠한 사실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왕궁에 가있는 동안 동생 소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렇다.
동생이 있었다.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
나는 내가 가려하는 길을 걸으려는 순간 무엇인가가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고, 붙잡힌 채로 질질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해 집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나.”

 아저씨는  어깨를 토닥이고는 얼른 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 * *

자리에 누웠다.
램프의 불을 끈지 오래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옆에서는 소브가 얌전하게 새근새근 자고 있다.
가끔씩 얄미워…. 아니, 매일 얄미운 내 동생이지만 마지막 남은 나의 유일한 혈연이다.
나는 그런 소브를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소브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소브를 홀로 남겨두고 왕궁으로 가자니, 마음이 불편해 졌다.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책임감 때문에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겠다.
개인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할 정도로 결단력이 높았던 내가, 그 책임감 때문에 주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기 위해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밤은 더 깊어만 갔고, 여전히 나의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 * *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니, 눈이 퀭 했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휘저었고,  뺨을 연신 때렸다.

짝! 짝! 짝!

겨우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너무 깊은 생각에 빠져도 좋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소브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팜 아저씨에게 내 생각을 말할 준비도 시작했다.


* * *

나는 공장으로 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너무 그것에 정신을 쏟고 있었는지, 앞에서 오는 사람과 부딛힐  했다.

"죄, 죄송합니다…."
"앞  똑바로 보고 다녀!"

소브 홀로 지금 살고 있는 집에 혼자 살게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소브는 아직도 어리고, 부족하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수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결론을 지을  조차 없이 공장에 도착하고 말았다.


* * *


“여전히 모르겠나?”

팜 아저씨는 차분하게 나의 의견을  들어주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고,  아저씨가 결론을 지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팜 아저씨는 차분히 말하면서 내가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아직 시간은 많네, 차근차근 생각해 보게나.”

옆에서 같이 듣고 계시던 팜 아저씨 부인이 답답했는지 입을 열었다.
팜 아저씨 부인이 꺼낸 이야기는 나와 팜 아저씨를 깜짝 놀라게 했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라 나와 팜 아저씨는 감탄을 했다.
팜 아저씨 부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게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