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4 미련을 떨쳐버리고 (2)
"왕궁으로 떠나기 전에, 소브와 같이 좀 돌아다니고 싶네요."
나는 입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그러면, 자네의 생각대로 하려면 그 날 할 일을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네."
내 생각이 좋은생각이라고 여긴 것인지, 팜 아저씨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며 추가로 덧붙여서 말했다.
시야에 들어온 소브는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내 말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시선은 여전히 아래로 떨군채로….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좋은 장소를 알고 계신가요?"
나는 일부러 소브가 앞에 있음에도 나의 생각을 스스럼 없이 말했다.
이것은 자신이 소브를 아끼고 있음을 알아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의도적인 언행을 통해 상대방에게 인식을 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늘 다녔던 동선이 집, 공장 뿐이었기 때문에 내가 살고있는 구역의 아름다움을 안타깝게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음…. 좋은 곳이라…."
팜 아저씨는 기억을 더듬 듯이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런 팜 아저씨를 팜 아저씨 부인이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 왜 있었잖아요…. 우리 같이 노을 같이 봤던 곳이요. 그때 얼마나 로맨틱 했는지~"
그리고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팜 아저씨는 기억이 났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팜 아저씨가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처음봤기 때문에 매우 신선했다.
팜 아저씨는 민망한지 콧수염을 쓱 닦았다.
"어…. 어, 어 그래 그래…. 거기 참 좋았다네."
팜 아저씨의 표정은 꽤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나는 신선함을 느끼며 그 표정을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했다.
"그러면 나중에 윤활유를 사러 갈 때 내가 길을 알려주겠네."
들떠버린 마음이 진정 되었는지 팜 아저씨는 다시 차분한 말투로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시간이 늦었으니 다들 잠자리로 돌아갔다.
* * *
어딘가 들뜬 마음 때문에 잠이 통 오질 않았다.
내일 시간을 내어서 소브와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 것이다.
소브는 며칠 지나고 나서 진정이 되었다.
분명, 팜 아저씨 부인의 도움 덕분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브와는 늘 사이가 좋았다고 느끼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해맑게 웃는 소브의 얼굴만 보일 뿐, 우리 사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조차 뚜렷한 기억도 없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 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요인이 있었다던가.
어찌 되었든, 현재에 충실하면 상황이 좋아지겠지.
우리들은 무난하게 살아왔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소브는 소브대로, 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 누구도 우리가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은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우리가 살아온 순간들은 헛된 것이 아니고, 가치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할 뿐이다.
소브.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나의 동생.
곧 있으면 나 없이 홀로 살아가야하는 나의 동생.
가끔 말썽피우지만 늘 부족한 나를 믿어주는 한없이 착한 나의 동생.
이제는, 더는 돌봐줄 수 없는 어린아이.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 따름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너를 두고 떠나가는 형을 용서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자고 있는 동생 소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속삭이 듯이 말했다.
"너를 떠나가서 미안해."
나는 몸을 돌려 눈을 감았고, 소브의 숨소리가 조용해졌다.
* * *
"와하하! 형! 이거봐봐!"
소브가 한껏 들떠있는 채로 뛰어다니며 즐거워 하고 있다.
‘다행이다.’
팜 아저씨가 알려준 루트대로 걸어가며 나와 소브는 경치를 즐겼다.
상점가에서 맛있는 노점상에도 들려보고, 조촐하고 찬바람만 부는 공원에도 들려보고, 볼품없는 책방에 가서 소브가 마음에 들어하는 책들도 사줬다
그리고 지금 언덕 그루터기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와 있다.
시간은 어느새 해가 지려고 하는 시간이었고,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멋진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들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소브는 난간에 매달리며, 자신 앞에 펼쳐진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 풍경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거기다가, 오늘은 웬일로 내 말을 잘 따라줬고, 기분도 좋아보였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내일이면 나를 보기 힘들어 질텐데….’ 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소브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웃는 얼굴이지만 그런 소브의 얼굴이 우는 얼굴이 될 거라 생각되니 마음이 착잡해 질 뿐이다.
‘기껏 좋은 추억 만드려고 놀러 나왔는데 기분이 우울해 지면 쓰나…!’
나는 내 뺨을 몇 번 치고는 소브의 곁으로 걸어갔다.
"소브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나는 떨어질 까봐 걱정되어서 소브에게 말했다.
"괜찮아 형! 나는 절대 안떨어져!"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씨익 웃는 소브였다.
"그래라…. 떨어지면 나는 모른다?"
나는 그런 소브가 고집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소브가 기분이 좋아 보여서 소브에게 물어보았다.
"소브, 여기 마음에 들어?"
소브는 아까보다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여기 멋져! 형이랑 오기를 잘한 것 같아!"
소브는 신났는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래, 고맙다. 너랑 여기 오기를 잘했구만?"
나는 난간에 턱을 괴며 말했다.
그런데 문득, 소브가 조용해졌다.
나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소브 쪽을 쳐다 보았다.
언제 난간에서 내려왔는지 내 옆에 가까이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옷자락을 꼬옥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형…. 안가면 안돼…?"
몇마디 안되는 말에 나의 마음이 동요되고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브.”
하지만 좀처럼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 소브의 머리를 쓰담으면서 말했다.
"미안해 소브, 형은 왕궁에 가야만해. 그렇다고 해서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잠깐씩 집으로 돌아올거야."
소브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는 형이랑 있는게 좋은걸…."
소브는 땅바닥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나는 소브에게 그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켜주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 즈음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형 마저 가버리면 나는 어떡해…?"
소브의 물음에 나는 여전히 대답할 수 없었다.
부모의 부재, 그리고 친형의 부재라는 상황은 소브에게 허허벌판에서 혼자 남겨지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소브의 눈에 더는 내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았다.
"내가 싫어진거야…? 그런거야…? 내가 자꾸만 형 말 안들어서 그런거야…?"
나는 소브의 말에 얼굴을 들었고, 잔뜩 울상이 된채로 자꾸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흐르고 있는 소브를 보게 되었다.
‘아니다. 네가 미워서가 아니다. 내가 미워서 그렇다.’
나는 현재의 ‘나’를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 잘 들을게 가지마…. 나는 형이랑 살고 싶단 말이야!"
절규하는 소브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내가 괜한 선택을 한 것인가?
나는 소브를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것 같았다.
소브는 그동안 불안해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나의 동생을 포기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소브를 두고가는 왕궁에서 얻게될 희망을 버려야 하나.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소브가 여전히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소브는 자신이 흘리고 흘렸던 눈물들을 닦아냈다.
그리고 화난 것인지, 슬퍼하는 것인지 모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외쳤다.
"나는 알아. 형이 나를 위해 어릴 때 부터 열심히 해왔다는거. 나를 위해 배를 굶주린 것도 알아. 거의 항상 형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나는 것도 알고 있어. 형이 나를 사랑해 주는 것도 알고 있고, 아끼고 있다는 것도 알아. 형이 가끔 밤에 안자고 중얼거린 것들도 다 들었어. 형이… 나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못한 거 알아…."
‘다 알고 있었나…?’
나는 개인의 욕심 때문에 혈연까지 떨쳐버리려고 하고 있다.
옳다고 생각하고,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을 쫓아 움직이다보니, 인간적인 것들을 망각하고 말았다.
진심으로 묻건데, 이것은 올바른 선택인가…?
소브가 한 말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한순간에 잠잠하게 해주는 말들 이었다.
소브의 어깨가 축 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 있잖아… 나도 이제 밥도 스스로 챙겨 먹을 줄 알게 되었어. 이제 11살이고 다 컸어…. 그런데 형…? 나는 여전히 형하고 같이 살고 싶어…. 형이랑 더이상 같이 같은 침대에서 자지 못하는 것도 싫어…."
소브가 중얼거리 듯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형이….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은 더 보기 싫어…. 그러니까, 내 걱정은 말고 다녀와 형."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마음은 치졸하게도 다행이라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나를 잘 따르던 그 조그마한 어린아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쑥쑥 커버린 내 동생을 보니 듬직했다.
나보다 키가 작았지만, 그 어떤 어른 보다 커 보였다.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해준 어리고 작은 나의 사랑스러운 동생의 말에 말문이 막혔고, 목구멍은 무엇인가에 턱 막힌듯이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고…맙다…. 소브…."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소브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동생을 안아주었고, 그런 우리를 뜨거운 태양이 감싸 안아주었다.
사선으로 내리쬐는 노을빛을 배경으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삼켰다.
* * *
나는 소브가 그렇게 까지 생각을 깊게 할 줄은 몰랐다.
언제 이렇게 어른스러워 졌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지금 소브는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소브와는 여러 약속을 했다.
왕궁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는 것과 항상 건강하기 등… 얼마나 하나하나 따지면서 약속했는지, 평생 할 약속을 하룻밤에 다 한 느낌이었다.
소브는 내 생각보다 많이 컸다.
그런 소브를 보니 내일 떠날 길이 조금은 가벼워 질거라 생각된다.
내 마음속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순점에 기분이 묘했고, 아직 마음이 뒤숭숭해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팜 아저씨 부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냉수 한 잔 마시고 잠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 * *
주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응…?’
팜 아저씨 부인인가 하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리고 문 틈새로 누구인가 하고 살펴 보았다.
처음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집중해서 보니 식탁 앞에 누군가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더 앞으로 빼고 조용히 문을 조금 살짝 열었다.
열려진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랜턴의 불꽃이 살랑살랑 흔들렀다.
그 랜턴 옆에는 큰 컵이 있었고, 옆에는 주스로 보이는 커다란 유리병이 있었다.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알코올 냄새가 났다.
‘음?’
식탁의 물건들 너머에는 커다란 그림자.
즉, 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나는 안심하고 팜 아저씨가 앉아있는 주방으로 몸을 들여보내려 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팜 아저씨가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중얼중얼 거리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을 멈추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고, 팜 아저씨의 말을 희미하게 나마 들을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