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5 트러블 메이커 (1) (12/128)



〈 12화 〉#5 트러블 메이커 (1)

"페스틴…. 그 녀석, 내일이면 가는구만…."

팜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고는 컵으로 손을 가져가고 컵에 담긴 것을 자신의 목 안으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나는 팜 아저씨가 혼자서 쓸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후우…. 어리버리 하던 때가 엊그저께  같았는데 이제는  커버렸구나…."

 아저씨는 천장을 올려다 봤다.

“착실한 그 녀석이 괜찮을까…? 비뚤어지지는 않겠지…?”

‘비뚤어진다…라….’

평소에 듬직해 보였던 어깨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힘 없이 축 쳐진 어깨만 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내일이면 그토록 가깝게 지냈던  아저씨와도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된다.
나는 소리없이 뒤돌아 문가에 등을 기대고 스르르 앉았다.
팜 아저씨의 얼굴에서 보석이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팜 아저씨의 얼굴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것이다.
조금 떨어지는 곳에서 아이 같이 흐느끼는 어른의 울음소리가 들렀다.

나는 알고 있다.
 아저씨는 '나'를 각별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매우 나를 아낀다는 것을.
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고, 움찔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는 소브가 곤히 자고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 * *


막상 자려고 누웠지만 여전히 눈은 말똥말똥 뜨고 있었고, 정신은 아직 잠들 마음이 없던 모양이다.

방금  아저씨의 그런 모습을 보아서인가, 아니면 뒤늦게 알아버린 나의 마음 때문인가.
착잡해진 나의 마음속은 소용돌이 쳤고, 좀처럼 잠잠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밤은  깊어져 갔고, 나는 내일이 오는게 두려워져만 갔다.

그 때,  때를 생각해 보았다.
가족이라고,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골목 동료들….
경비대에게 끌려가 죄를 고하게 될 것만 같은 두려운 마음.
그 마음이 가득했던 나를, 그들이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나는 그들에게 전력을 다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 이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쏟았던 그들은, 조금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채로 나를 버리고 갔다.
참을  없는 분노와 배신감만 자리 잡던 순간에, 이제는 끝이라고 그 때의 어린 나는 생각했다.
소브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몇년간 그들에게 해왔던 노력들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았던 거짓말을 일삼았고, 나보다 훨씬 커다란 사람들에게서 귀중한 것들을 훔쳐냈다.
그들의 질 나쁜 농담도 웃는 표정으로 맞받아쳤고,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익숙해 지려고 수없이 내  속을 몇번이고 게워냈다.

나는 몇년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노력해온 결과물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큰 상실감에 빠졌었다.
나는 몸에 힘이 빠졌고  이상 나를 붙잡은 손을 뿌리친채로 도망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절망감에 나는 말문이 막혔고, 세상을 저주 하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팜 아저씨는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다시 일어나고, 힘내고,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직장 상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 아니, 다르다.
아버지 보다도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찢어지고 너덜너덜 해진 내 마음을 붙잡고 따스하게 안아준 사람이다.
그런 것에 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아저씨가 바라보는 나는… 자신의 아들, 어린 나이에 모든 가능성을 잃어버린 그의 아들을 대신하는 '대용품'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내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 준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동정심에 우러나와  행동이라 해도 나는 매우 감동했다.
나의 은인이고, 평생 갚지 못하는 커다란 빚을 진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부탁은 무엇이든지 들어줄  있을 자신이 있다.
설령, 나보고 죽으라 하여도 말이다.
나는 그런 팜 아저씨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
늘…늘 말이다.

여기까지  마음을 정리한 나는, 더 이상 내 정신을 바로 잡지 못할  같았다.
그래서 옆에서 누워있는 소브가 깨지 않도록 소리 죽여 울었다.
이제와서 느낀 것이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에는 잃게 되는 것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한 길로 나아 가려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돌들에게 채여 좌절당한다.
그럴 때면, 쓰러진 내 몸을 일으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저 한발자국만 내밀었을 뿐이지만, 나는 몇십년 동안 방황한 느낌이 든다.
그런 나에게 힘을  팜 아저씨와 더 이상 늘 함께 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내 입을 틀어막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페스틴, 부디 몸조심 하세요."

걱정스런 눈빛으로 팜 아저씨 부인이 말했다.
여느 때 처럼 내 손에 따뜻한 도시락을 건네 주면서 말이다.
옆에서는 소브가 주먹을 꽉 쥔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소브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니 소브의 눈물이 땅바닥으로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하나 밖에 없는 가족에게서 떨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늘 함께였던 가족과는 이제 같은 시간을 보낼 수가 없어진다.
이것은 나의 ‘선택’, 나의 ‘책임’이다.
이 길은 내가 선택했고, 그 후에 따라오는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소브, 다녀올게. 그리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니잖아? 자주 얼굴보러 올게."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우성치는 내 마음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팜 아저씨는 그런 내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페스틴, 건강이 최고라네. 사고치지말고 잘 하고 오게나."

밤을 지샜는지 눈가에 피로가 가득해 보였다.
팜 아저씨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고, 눈에서 슬픔 마음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런 팜 아저씨를 보고 기분이 이상해졌다.
지나치게 무뚝뚝한 나로서, 그런 감정적인 모습에 신선함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네…!”

나는 그들을 걱정하게 만들지 않도록 힘차게 대답했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아요.”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한 팜 아저씨의 부인의 표정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포근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브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쳤다.
소브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소브…? 약속, 잊지 않았지? 걱정 말고 잘 지내라고.”

 바라보다가는  자신이 제어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시선을 피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팜 아저씨 부인는 앞치마로 눈가에 맺혔던 눈물을 닦고 있었고,  아저씨는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두분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내가 바라던, 내가 원하던, 내가 가야만 하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뒤돌거나, 눈물을 흘려버리거나, 멈추거나 하게 된다면 결심을 굳히고 굳혔던게 한꺼번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형! 건강해야해! 꼭 자주 돌아와야해! 알겠지!"

소브였다. 잔뜩 울먹이고 있었다.
소브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컸던가.
부족한 나의 손에 자라면서, 잘 자라준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 동생, 사랑하는 나의 소브가 안심할 수 있도록 주먹을 꽉 쥔채로 소브가 똑똑히  수 있도록 높게 치켜들었다.
보란듯이  힘차고 더 높게 쳐들었다.
그리고 묵묵히 뒤돌아 보지않고 힘차게 걸어갔다.
축쳐진 양 어깨에 힘을 잔뜩 쥐고 힘차게 걸어 나갔다.
나는 중얼거렸다.

"다녀오겠습니다…!"

* *

별탈 없이 도착했다.
다행이도 나는 길치가 아니었나보다.
몇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길을 걸어가면서  때의 기억을 더듬어 갔다.
평소와 다른 경험들로 가득찼었던 기억들을 헤집고 다녔더니, 왠지 모를 고양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빠!"

‘응…? 나를 오빠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던가?’

나는 명백하게 나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문을 가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큰 소리가 들렸기에 한 번 쳐다보았다!' 라는 느낌으로 돌아본 것 이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몇달 전 내가 도시락을 건네주고, 굶주린 남자에게 살해 당할 뻔했던  소녀였다.
이제는  이상 추워보이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전보다 훨씬 나은 행색으로 서있는 것을 보아하니, 어디 좋은 집에라도 들어가게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다행이도 나를 기억하나보네?"

 소녀는 활기차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이렇게나 활기가 넘치던 아이 였던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 소녀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보다!  그날 그냥 가버린거야!"

 소녀는 눈을 날카롭게 뜨며 나를 원수 보듯이 했다.

생각해보니 이 소녀는 내가 풀려날 수 있도록 증언해주었다.
 때 '감사 인사를 못한 채 헤어진 것이 아쉽다.' 라고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아하하… 그때는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나는 얼버부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술수는 통하지 않다는 것인지 더욱더 큰 소리로 화내기 시작했다.

"감사 인사도 못했는데 그냥 가버리다니!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우리가 서있던 거리는 사람 왕래가 잦던 곳 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끌리자, 나는 황급히 그 소녀의 팔을 잡고 자리를 뜨려고했다.
그러나 얌전히 따라올 줄 알았던 그 소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와줘요! 이상한 사람이 저를 잡아 가려해요!"

도대체 뭘 먹었길래 이렇게 힘이 넘치는지,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내 검지를 내 입에 가져가대면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소리를 지를 기색이라 나는 상당히 난처해졌다.
주위를 걸어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졌고,  앞의 소녀와는 통성명도 하지 못한채로 이상한 관계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술렁이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경멸의 시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 당신! 지금  하는 건가!”

그리고 누가 언제 불렀는지 모를 경비대가 멀리서 소리치며 달려왔다.
나는 도망가려고 몸을 틀었지만, 내 앞의 소녀는 사악한 웃음을 띄며 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결국 나는 옴짝달싹 못한채로 경비대들에게 붙잡혔다.
경비대원이 어찌나 나를 쌔게 붙잡았는지 꺾인 관절이 너무 아팠다.
나는 경비대들에게 제압되고 있었지만, 그 소녀는 고소하다는 듯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젠자아아아앙! 은혜를 이따위로 갚아아아…!’




* *




그렇다.
여기는 그 안좋은 추억을 겪었던 차가운 조사실이다.
그 몹쓸 꼬맹이 때문에 이리로 잡혀 들어온 것이다.
나는 내 수사 담당이 빌이기를 빌고 빌었다.

‘제발 텅스턴은 아니기를 바라요…! 제발…!’

나는 손을 싹싹 빌며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신에게 빌기 시작했다.
곧 이어 문이 열렸고, 나는 누가 들어오는지 감았던 눈을 살짝 실눈 뜨며 집중해서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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