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5 트러블 메이커 (3)
‘큰일났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오금이 저리도록 무서운 얼굴을 한 세티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세티…? 무슨 일이야?”
페퍼가 당황해 하면서 물었다.
하지만 세티에게는 대답할 이성이 없어보였다.
세티는 페퍼의 질문에 답하지도 않은채로 우리가 앉아 있었던 소파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소녀의 불타오르는 두 눈은 나의 두 눈에 고정되어 있었고, 처음 보는 소녀의 흉악함에 온몸이 굳어버려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세티가 한걸음 두걸음을 천천히 내뻗자, 점점 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여전히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누군가 나의 얼굴을 보았다면 잔뜩 겁먹은 얼굴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세티는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소리를 질렀다.
“오빠는 정말 최악이야!”
세티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방 밖에서 사서들이 몰려오고, 차를 내오고 있었던 라이브 씨도 깜짝 놀란 상태로 서있었다.
나의 고막은 안녕한지 인사를 건네고 싶은 순간이었다.
세티는 자신의 자그마한 두 손을 꽉 쥐고는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몸에 정확히 내리꽃았다.
어찌나 손이 매웠는지, 어린애의 주먹이 아니었다.
나는 이대로 맞고 있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것 같아 나의 두팔로 세티의 인정사정 없는 매서운 공격으로 부터 내 몸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 * *
페퍼와 다른 사서들이 나에게서 세티를 떼어내고 난 후에야 살벌한 주먹질이 멈추었다.
어린 소녀를 화나게 하는 것은 별로 현명한 생각이 아닌 것이고, 그들의 화를 솟구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은 채로 사건은 끝났다.
내 너덜너덜해진 두 팔과 함께.
뭐…. 세티 한정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고는 생각되기는 하다만.
그래도 사람을 화나게 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임이 분명했다.
앞을 보니 자신 보다 힘이 세고 큰 어른들에게 붙잡히고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는 세티의 눈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딘가의 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나는 무릎을 꿇고 그대로 고개를 땅으로 처박아서 세티에게 사죄했다.
“미안해 세티, 너와의 약속을 또 어기고 말았어….”
이런 것으로 해결 될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제발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옆에 있던 페퍼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고개를 땅에 쳐박은 탓에, 현재 나는 사람들의 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페퍼로 보이는 발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한 것으로 보아서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위에서 페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야 세티, 페스틴은 내가 데려왔어 내 멋대로 끌고온 내 잘못이야.”
갑자기 내 오른쪽에서 쿵! 하고 소리가 났다.
옆을 살며시 봐보니, 페퍼도 나와 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이런 우리 둘을 보고 있을 터인 세티는 아마 진귀한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있는 오빠와 언니가 자존심은 버려둔채로 엎드려 있는 광경은, 그 아무리 화나있는 세티에게도 당황스러웠는지 씩씩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면서 비굴하게 말했다.
“용서해 주세요!”
* * *
한바탕의 소란이 끝나고 우리는 슬슬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서 도서관을 나와 맞은 편에 있었던 식당으로 왔다.
세티는 내 오른쪽에 앉아 여전히 속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지 연거푸 냉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런 세티가 귀여운지 페퍼는 풀어진 얼굴로 폭력적인 소녀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자리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게 무엇인가 먹는 것은 어떤지 의견을 제시했다.
“음~ 글쎄?”
페퍼는 내 말이 안중에 없는 것인지 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세티에게 시선을 고정한채로 대답했다.
시선을 페퍼에게서 세티로 돌리니, 그녀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몰라!”
세티는 벌컥이던 컵을 쾅! 소리나게 내려 놓고는 나를 째려 보았다.
나는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나 고민을 해보았지만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일단, 눈 앞에 놓인 메뉴판을 들여다 보면서 세티가 좋아할 만한 먹을 거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달달한거…? 아니야. 의외로 쌉싸름한 것도 잘 먹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세티는 내 손에서 메뉴판을 뺏어갔다.
“난 이걸 좋아한다고! 기억해두는게 좋을거야.”
세티는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메뉴판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달콤한 소스를 곁들인 부드러운 크로와상이 쓰여있었다.
‘음, 달달한거군.’
“마실거는 안골라?”
나는 메뉴판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에 고개를 내빼면서 물어봤다.
세티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물었다.
“…오빠가 사주는 거야?”
나는 세티의 기분이 풀린 줄 알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뭐든 말해.”
내가 으쓱 거리면서 그런 것은 기본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세티는 덜미를 잡았는지 금새 사악한 얼굴로 변하였다.
‘아.’
“페퍼 언니, 언니는 뭐 먹고 싶어?”
세티는 나의 지갑을 거덜 낼 듯한 사악한 웃음을 띄면서 앞에 앉은 페퍼에게 물었다.
페퍼의 관심 없다는 태도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메뉴판에 빼곡히 적혀있는 메뉴들을 사정없이 가르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잠시 동안 ‘이거랑’을 듣고 있었어야만 했다.
둘이서 나를 옭아 매는게 너무 치사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위험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분위기 전환을 노리면서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 둘이 아는 사이였어?”
도서관에 있을 때, 내가 평화로이 소파에 앉아있었고, 세티가 들어왔다.
그 때 분명히 페퍼가 아는 척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응, 페퍼 언니는 오빠보다 좋은 사람이야.”
완전히 나에게 의도적으로 거리를 벌리고 있는 세티였다.
“그럼!”
페퍼는 ‘우리는 친한 사이.’ 라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세티의 손을 덥썩 잡았다.
나는 내 미간을 만지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마사지 했다.
그렇게 내가 잠시 긴장을 놓은 사이에 두 사람은 손을 들고 점원을 불렀다.
‘하! 젠장!’
* * *
두 사람의 결속력으로 나의 지갑은 매우 가벼워졌다.
나는 허공을 본채로 어디론가 가버린 나의 정신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 나는 도서관에서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먼저 여관에 가있어.”
페퍼는 손을 흔들면서 말하고는 도서관을 향해 걸어갔다.
참으로 얄미운 등이었다.
“오빠, 심부름도 끝냈으니까, 내가 지내고 있는 여관으로 가자.”
세티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나는 세티가 이끄는 방향으로 내 몸을 맡겼다.
내 정신은 아직도 내 머리에서 이탈해 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 스스로 움직이려 한다면 분명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왕궁으로 가야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세티라는 소녀에게 반 강제로 이끌려가게 된 것이다.
* * *
여관으로 가는 길은 솔찬히 걸어야 할 정도로 멀었다.
“오빠, 왜 말 없이 가버린거야.”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으면서 세티가 말을 걸었다.
우리는 계속 말 없이 걸어오는 중이었기에 세티는 심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연상인 내가 배려해 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미안해,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반가운 얼굴을 봐서말이야….”
나는 뒷통수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그런 나를 홱 쳐다보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며 툴툴댔다.
“그거 물어본거 아닌데….”
“응?”
그러면 무엇을 물어본 건지 궁금해져서 세티를 쳐다보니, 세티는 발걸음을 더 빨리 하면서 대답했다.
“아니야!”
고개를 홱 돌리면서 말하는 세티를 보면서, 소브 보다 성가시다고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의 속도를 맞추면서 다시 세티와 나란히 걸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혹여나 세티가 지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될정도의 속도였다.
볼이 빵빵해진 세티의 얼굴을 보았다.
딱히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다행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티는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는 아주 작게 말했다.
“오빠가 또 저번처럼 말없이 가버린 줄 알았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세티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가 갔다.
세티도 나와 만나서 기뻤던 것이다. 나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멈추어 제자리에 섰다.
그러자 세티도 나와 똑같이 멈추었다.
“왜 그래 오빠?”
세티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세티는 영문도 모른채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가 내밀은 손가락에 걸었다.
“세티, 다시는 말없이 떠나지 않을게.”
세티는 나의 진솔한 눈빛을 보고 납득한 것인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난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응! 응! 그러면 됐어. 만약에 약속 어기면 어떻게 할거야?”
나는 여전히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만약 어기게 되면 집을 사줄게.”
이 약속은 언젠가의 내가 후회 될만한 약속이다.
세티는 과장된 나의 말에 웃고는 내 약속의 내용을 고쳐말했다.
“오빠는 그럴 만한 돈 없는 거 알아. 약속 어기면 그냥…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줘.”
'오 예! 미래의 나는 살아난 것이다!'
마음 한켠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괜히 세티의 소원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약속을 어겨서 알아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기에, 그냥 머릿속 어딘가로 그 의문점을 던져버렸다.
세티는 방긋 웃더니 여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세티의 뒤를 쫓아갔고, 길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주위를 살피면서 걸었다.
나는 세티 뒤에서 걸어가면서 세티의 그간 보았던 말과 행동들을 다시 되새김질 해보았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내 별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판단해서 그만두었다.
굳이 내가 생각해서 알 필요도 없이 언젠가는 그 진가를 알게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가끔 혼자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리기 힘들고 판단할 거리가 불충분할 때, 나는 그냥 그렇게 납득하고 지나가려 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세티를 따라가다가 멈춘 세티를 따라 나도 멈추었다.
세티가 앞쪽의 일반 집보다 크고 긴 집을 가르키면서 외쳤다.
“여기야!”
나는 눈 앞에 보이는 건물의 외부 디자인을 감상했다.
세티는 가만히 서있던 내 손을 잡고 이끄면서 말했다.
“제시 아주머니를 소개해 줄게!”
나는 순순히 따라 여관 내부로 들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