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6 낯선 환경에 던져졌다. (1)
나와 페퍼는 그 방에서 기다리면서 서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했다.
"공장에서 기술을 배웠어. 그… 팜 아저씨 밑에서 말이야."
"그렇구나…. 어쩐지… 저번보다 몸이 좋아진 것 같기도… 크흠, 그, 그보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
"나? 아… 내가 가진 기술로 나라를 위해서 일해 보려고. 어렵고 핍박 받는 사람들이 많잖아."
나의 발언에 페퍼의 안색이 조금 안좋아졌다.
괜한 소리를 한 것 일까.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어… 라이브 사서장 밑에서 그냥저냥 책 관리하면서 지냈지. 공부도 틈틈이 했고."
"그렇구만… 너도 목표 같은게 있어?"
"나는… 너랑 비슷해."
페퍼는 자신의 목표가 쑥쓰러운 것인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사람들을 돕고 싶구나?"
"그, 그렇지…."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째 개운해 보이지 않는다.
괜한 추측이라며 자신을 다독여 본다.
그나저나, 우리가 다행이 국왕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기회를 얻어서 그렇지, 그게 아니였으면 왕궁에서 일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퍼의 생각도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어찌보면 지루했을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페퍼와 나는 그간 얻지 못했던 같은 나이의 또래 친구를 얻어서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 인연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얻은 제대로 된 친구이기 때문이려나…?
어렸을 적에 따라다녔던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배신을 당한 이후로 같이 다니지 않는다.
그 때 이후로 만나던 사람들은 전부 웃어른, 나와는 전혀 코드가 맞지 않은 사람들 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쿵짝이 맞는 사람이 있어야 관심있는 일을 할 때 즐거워지는 법이 아닌가.
어른들 사이에서 무슨 재미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때의 나는 어리고 어렸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오시죠. 이쪽으로….”
문이 열리고 경비대원의 호출에 나와 페퍼는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 * *
경비대원이 안내해준 곳으로 오게된 나와 페퍼는 우리가 도착한 장소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저번에 와본 장소와는 사뭇 다른 장소였다.
이 방은 밝고 넓었던 알현실에 비해 어두운 편이었다.
실내는 차분한 분위기였고, 앞이 막힌 긴 탁자와 의자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들어온 문의 반대쪽에는 앞에 놓인 탁자보다는 폭이 좁고, 조금 높은 탁자였다.
그 뒤로는 네모난 하얀색 벽이 보였고 그것은 커다란 액자처럼 보였다.
방 내부는 나무로 되어있는 벽을 하고 있었고 나의 정면에 있는 그 네모나고 하얀 벽은 나에게 의문점을 가져다 주기 충분한 장식이었다.
한참 동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찰나에 누군가 걸어오면서 말을 걸었다.
“너희들이 지각생인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왠지 때려주고 싶게 생긴 남자애가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고급 정장을 입고 있었고,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어딘가 고풍스러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살짝 삐딱하게 서 있었던 그는 딱 봐도 부잣집 도련님 처럼 보였다.
그는 표정부터 까칠했고, 우리를 아니꼽게 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우리를 보고 한 말인지 재차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서야 눈치챈 것이지만, 그와 우리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모두 이쪽을 보고 있었고, 내 앞에 있는 까칠한 도련님의 일행으로 보이는 세 사람은 이쪽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우리를 깔보는 듯한 느낌이 가득했고, 나는 기분이 불쾌해 졌다.
아마, 이들이 세간에서 말하는 [귀족]인 듯 싶었다.
하지만 페퍼는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인지, 가만히 서 있었던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면서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와…. 나 이런 곳은 처음이야. 라이브 씨께서 말씀하신대로 정말 좋은 곳인걸?”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방 내부를 이 잡듯이 이곳저곳 살피고 있었고, 점점 험악해지는 까칠한 도련님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네,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나는 내 앞의 까칠한 도련님을 무시한 채로 페퍼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푸핫,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온거야?”
까칠한 도련님은 우리가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 분했는지 대놓고 우리를 비아냥 거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강의실이라는 곳인데, 라이브 씨도 여기서 공부를 하셨대.”
페퍼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내 말에 대답을 했다.
“공부…? 우리도 무슨 공부를 하는거야?”
나는 팜 아저씨에게 많은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페퍼에 비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나마 페퍼가 라이브 씨에게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아까부터 페퍼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중이었다.
“음... 너는 잘 모르겠는데, 나 같은 학자 계열에 지망한 사람들은 이론에 대해 강습을 받아야 한대, 물론 도서관 같은 곳에서 여러 이론들을 알아볼 수는 있지만, 도서관의 책들에 적혀있는 내용이 나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우려되어서 일부만 기록했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아볼 수는 없대. 그래서 이 곳 [강의실] 에서 보충을 받고, 경우에 따라서 특별한 것도 알 수 있다는 것 같아.”
'강의실…. 강의실 이라고 하는 구나.'
페퍼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정된 지식으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특별한 것은 뭘 말하는 거야?”
내 앞에서 누군가 쫑알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페퍼의 말이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무시했다.
“나도 궁금해서 라이브 씨에게 물어 보았는데 비밀이래.”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차차 알아갈 거라고 했으니까, 굳이 지금 알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체념하는 듯이 말하는 페퍼였다.
나도 가늠이 안가 포기한 것처럼 동의했다.
“그래, 나중에 알게 되겠지 뭐.”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용기가 가상하구나…! 내 말을 무시하다니.”
언성이 높아진 까칠한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불필요한 소모는 계획에 지장을 주며, 계획에 지장이 생기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이런 건 칼같이 끊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앉을까?”
나는 페퍼를 보면서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은 어떤지 의견을 내었다.
“그래!”
페퍼도 오랜시간 동안 걸어다니고 해서 지쳐있었는지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는 비어있는 자리로 향했고, 등 뒤에서 분에 찬 거친 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또 뭐라뭐라 소리쳤지만 딱히 귀담아 듣거나 기억할 필요까지는 없는 내용인 것 같아 신경을 꺼두었다.
그도 지쳤는지 자신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옳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렀다.
* * *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정확히 말하면 강의실 내부의 몇몇 사람들이 골아떨어지고 지루해져서 서로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던 때였다.
별안간 뒤쪽에서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안경 쓴 남자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강의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문쪽을 바라보았고, 나와 페퍼도 대화를 멈추고 모두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의 모자는 비뚤어져 있었고 그는 거친 숨을 내밷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고, 두 눈은 밤을 지샜는지 눈 밑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반대쪽에 있는 높은 탁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호리호리한 외모에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구석이 있어보였다.
“사람이 맹해보여.”
페퍼도 그렇게 느꼈는지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을 했다.
'빈약함이 느껴진다…. 투박하게 그런 느낌이 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그는 가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그가 들고 있던 책들과 종이들은 흩어져 나와 페퍼가 앉아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다른 사람들 중에 몇몇은 넘어진 그를 비웃고 있었고, 몇몇은 어쩔 줄을 몰라 난감하다는 듯이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차근차근 그에게로 걸어갔다.
페퍼 역시 뒤따라 일어나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널부러진 책과 종이뭉치를 모았다.
그리고 모아진 것을 들고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시간은 유한하다.
내 자신을 희생해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뿐이다.
그 남자는 허둥지둥 자기 주위에 흩어진 종이들을 모으고 있었고 상당히 당황한 것 처럼 보였다.
우리는 우리가 주워온 책과 종이들을 건네 주었고, 그 남자는 연신 고맙다면서 고개를 꾸벅이고는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는 높은 탁자 옆에 자신이 들고 온 것들을 내려 놓고는 목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페퍼는 그런 그를 보면서 답답하다는 말투로 혼잣말을 조용히 했다.
“교탁에 올려놓지, 불편하게….”
‘저걸 교탁이라고 하는구나?’
그는 교탁에 두 손을 얹고서는 큰 소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여전히 몇몇 사람은 그를 비웃고 있었고, 강의실 내부의 분위기는 좋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크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여러분을 가르칠! 조이드! 입니다!”
호리호리한 체구와 달리 목소리가 커다랬던 그는 삐딱한 모자를 고치지도 않은채로 어딘가 엉성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이곳은 여러분의 스승께서 재량을 길렀던 장소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스승처럼! 이 자리에서 자신을 성장시키게 될 것입니다!”
얼굴은 그래보이지 않았지만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여러분은! 부족한 나라의 인재를 채우기 위해서! 국왕의 지휘 아래 추진 되어 왔었던! 젊은이들을 가치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인재 양성 프로젝트의 해당자들 입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듣고 왕궁에서 왜 평민들까지 데려다가 쓰려고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팜 아저씨, 설명이 부족하다구요?’
조이드는 이어서 말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스승을 통해! 자신들의 기량을 증진 시키고! 왕궁에서 일하기 위해 훈련해 왔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여러분은 한 단계 진화를 할 것이고! [장인]과 [학자]로 나뉘어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 주려는 것인지 조이드는 우리에게 소리쳤다.
“저는 여러분을 이끌어갈 선생 중 한명입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자신의 설명을 마무리했다.
자신이 준비해온 말은 여기까지 였는지, 높이 쳐들은 양팔은 허공에 멈추어 있었고, 자세히 보니 조이드의 눈은 감겨 있었다.
자신의 말에 감탄을 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조이드는 자신이 기대한 반응이 나오지 않아 시무룩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선뜻 말하지 않았고, 분위기는 점점 깊은 곳으로 침식되어 가는 것 같았다.
‘팜 아저씨…? 설명이 부족하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옆에 앉은 페퍼를 보니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듯 하였고, 주위에 앉은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
아까와 달리, 이런 상황은 내가 나서보았자, 시간이 단축되지도, 이익이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자신을 숨겨, 내가 여느 또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한다.
"아하하… 크흠, 그, 그럼…."
조이드는 무반응에 가까운 사람들의 태도에 난감해졌는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의 말을 가로 막았고, 이야기의 흐름이 끊겼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틀어보니, 아까의 까칠한 도련님이 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