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6 낯선 환경에 던져졌다. (4)
나는 건방진 도련님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에 찬 검집에 손을 얹고 있었다.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금방이라도 뽑을 것만 같았다.
나는 히터의 손에 들린 은빛을 내는 물건을 모르고 있었기에 히터와 조이드 그리고 건방진 도련님의 반응에 뒤따라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히터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도련님을 향해 내밀었고, 조이드는 지체하지 않고 히터의 앞으로 달려갔다.
탕-!
별안간 큰 소리가 들렸고, 교탁 쪽은 연기로 자욱해 졌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린다.
옆에 있던 페퍼도 깜짝 놀란 듯이 얼굴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단순히 큰 소리가 났을 뿐인데 왜 다들 사람이 죽은 것 마냥 반응을 하는거지…?’
“하, 머저리 같으니.”
여전히 도련님을 향해 들고 있는 팔을 내리지 않은 채로, 다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싸매는 히터였다.
그가 앞으로 내밀은 은빛 물건에서 연기처럼 보이는 기체가 흘러나왔다.
히터의 앞을 향해 달려가던 조이드는 그대로 꼬구라졌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여전히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채로 멀뚱멀뚱 강의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히터가 들고 있었던 은빛의 물건이 빛을 내면서 터진 것이 연관이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사람을 죽였어!”
나는 덜덜 떨리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차가운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 조이드를 보았다.
사람들이 도망친다.
덜커덩- 덜그럭-
사람들이 자리를 이탈하며 강의실을 떠나간다.
순식간에 강의실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탁- 탁- 탁-
다급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떠나지 않은 모양이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고, 몇몇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제자리에 굳어있을 뿐이었다.
미동을 하지 않고있는 조이드를 관찰해보자, 이상하게도 그가 쓰러져 있는 자리에는 소량의 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몇개월 전에 본 그 선혈의 피가 흐르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살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조이드의 뒷통수를 자세히 보고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의 머리는 무언가를 통해 관통되어 구멍이 나 있었다.
“모두 입다물어.”
소란스러운 강의실의 사람들에게 진정 하라는 듯한 히터의 말에, 모두는 입을 다물고, 제자리에 멈추어 서서 히터를 쳐다보았다.
“하아… 귀찮은 녀석이 오겠구만….”
히터는 한숨을 쉬고는 언제 가져왔는지 모르는 의자에 털썩하고 주저 앉았다.
그가 예고한 대로 조금 뒤에 문쪽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문짝이 교탁을 향해 날아갔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히터가 앉아있는 곳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문쪽에서는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방금 전에 이 방을 떠나갔던 베피가 서 있었다.
“너… 너!”
잔뜩 화가나 보이는 그녀가 단걸음에 히터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도 조이드 못지 않게 기이하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히터는 여전히 앉아있는 채로 여유를 부리면서 말했다.
“뭘~ 죽은 것도 아니잖냐.”
나는 다시 조이드를 보았다.
여전히 그는 움직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은채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을 뿐이었다.
베피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히터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 무거워 보이는 주먹을, 조이드를 한번에 때려 눕혔던 그 주먹을 말이다.
쾅—!
그들 사이에서 먼지가 일었고, 의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렀다.
나는 히터가 죽지는 않았을까 하고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나라도 살인 현장을 목격하면 머리가 과부화 되기도 하니까.
먼지가 가라앉고 부서진 의자 파편 사이를 유심히 보았지만 히터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러니 꼬맹이는 싫다니깐….”
위쪽에서 히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를 보니 히터는 그가 들고 있던 은빛 물건을 천장을 향해 들고 있었다.
물건 끝에서 반짝거림이 보였고, 더 자세히 보니 얇은 실 같은 것이 천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장. 내려와.”
베피는 이를 빠득 하고 갈고는 자신의 왼쪽 팔을 당장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그 때 문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긴장감이 멤돌던 공간을 한순간에 잠재워 버린 그녀는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에 올곶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방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등장에 동작을 멈추고,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곳곳에 부서진 흔적을 보면서 한숨을 쉬고 또 쉬었다.
“이게… 이게 대체 뭐람!”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듯한 그녀였다.
그녀는 일을 벌려 놓은 두 사람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히터와 베피는 그녀의 시선에 움찔하더니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둘을 흘겨보던 그녀는 바닥에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조이드를 발로 툭툭 찼다.
“일어나 있으면 진작에 상황을 수습해야지, 지금 뭐하는 겁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조이드에게 타박하는 그녀였다.
나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이드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는것에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제서야 조이드는 옷을 툭툭 털고 얼굴에 기름을 흘리면서 일어났다.
“이야~ 살았습니다~ 언제 오나 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하는 조이드였다.
“…왜 사태를 수습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조이드에게 책임을 묻듯이 말했고, 조이드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야~ 하하하핫! 두분은 여전히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말을 돌리며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조이드에게 짜증이 났는지,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고 여전히 서로를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주의를 돌렸다.
“사령관님이 전원 집합을 명하셨습니다.”
그녀는 이 말을 끝내고는 강의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거 일이 귀찮게 되었구만?”
히터는 가뿐하게 땅에 착지하고는, 은빛 물건을 품안에 집어넣었다.
“돌아가면 관 하나 준비해 두는게 좋을 껄? 널 죽여버릴 거니깐.”
베피는 살벌한 말을 짓이기며, 옷에 먼지를 털어냈다.
그런 두 사람이 익숙한 것인지, 조이드는 어린아이들의 다툼을 방관하는 것처럼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싸움을 멈춘 그녀는 주위를 세심하게 둘러보면서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문짝을 살짝 들어보고는 한숨을 쉬고 그대로 내동댕이 쳤다.
별안간 힘차게 일어나더니, 여전히 대치하면서 서있었던 두 사람을 흘낏보고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그럼, 조이드 마무리 잘하고.”
베피는 그녀가 처음에 보여주었던 특유의 신비스러움으로 가득찬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방을 나간 그 사람의 뒤를 따라서 나갔다.
히터도 허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따라 나갔다.
“자… 여러분? 오늘의 교훈은! 선생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된다! 입니다!”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려는 조이드의 수고가 눈에 선했다.
“그럼… 지금 부터 나눠주는 종이를 보고 여러분이 한동안 지내게 될 방에 가서 각자가 들고 온 짐을 풀고 대기하면 됩니다!”
조이드는 자신이 들고 온 짐들을 뒤적이고는 자리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채로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한장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종이를 나눠주기 위해 나에게 다가온 조이드가 머리에 구멍이 뚫린채로 방긋 웃었다.
그것은 나에게, 그리고 다른 모두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 주었다.
* * *
“이게 뭐야….”
“여기 너무 무서운 것 같아….”
우리 모두는 강의실에서 나와 빈 공터에서 각자 받은 종이들을 살피고, 자신들이 느꼈던 인상을 한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몇몇은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다소 충격적이긴 하다만, 다행이 나는 저번에 겪었던 일이 더 충격적이라 조금은 괜찮았다.
페퍼도 만만치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그녀를 부축해줘야만 했다.
주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몇몇은 왕궁에서의 교육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선생들이 보여준 모습은, 면역이 없는 사람이라면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다들 무슨 의도로 그런 일을 벌이는지는 정말이지 이해가 안간다.
* * *
한사람 당 하나의 방을 쓰게 되었다.
건방진 도련님에 말에 의하면 자기 방에 비하면 매우 작은 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살았던 방보다 컸기에 나는 감지덕지 하면서 만족했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앞으로 어떻게 꾸밀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장식을 달아 놓는다거나 그런 거는 아니고, 그냥 가구의 배치를 바꾸는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나에게는 충분히 두근거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 나는 고작 이런 걸로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라고.”
나는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지 모를사람에게 투덜거렸다.
시선을 창문 밖으로 옮겼다.
넓게 펼쳐지는 배경을 바라보며, 왕궁은 참 넓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방을 준비해둔 것도 모자라 넓은 공터까지 있으니 말이다.
조금 둘러보니 커다란 욕실도 있었고, 각종 방들이 즐비했다.
거기에 내가 지내게 된 방도 결코 작은 크기도 아니었고, 숙소로 지낼 수 있는 건물이 두 개라 남여가 따로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고, 앞으로 실패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 하면서 지내야만 했다.
팜 아저씨 말에 의하면 잘못하면 쫒겨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게 손꼽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휴식처가 될 공간을 쭉 둘러보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좋았어! 해보자고!”
* * *
자신이 지낼 공간을 어느정도 둘러보고, 같이 지내게 될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페퍼에게로 다가갔고, 다른 여성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페퍼를 보게 되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기에 나는 방해를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다른 곳으로 가보려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이야기 하고 있던 페퍼가 나를 본 것인지 내 이름을 불렀다.
“페스틴!”
페퍼는 즐거워 보였고 나보고 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로 주저함 없이 걸어갔다.
“아까 말한 페스틴이야.”
페퍼의 소개에 앉아 있었던 여자애들은 조금의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부려먹어도 상관없어!”
페퍼는 뜬금없이 불필요한 말을 꺼냈다.
“뭐?”
나는 찡그린 표정으로 페퍼를 바라보았고, 페퍼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가뜩이나 노예로 불려서 기분이 언짢고만… 것참.’
그녀들에게서 느껴지던 순진한 눈빛들이 점차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 나는 지금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다.
누군가 나를 이끌고 나 혼자 남자인 이 공간에서 도망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내 마음속에 가득해 졌다.
그때 조이드의 목소리가 들렀다.
언제 온 것인지 내 뒤에 서 있었고, 그의 미소는 정말로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페스틴 군, 잠시 시간 됩니까?”
조이드의 물음에 나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물론이죠!”
조이드는 내 뒤의 여성들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좋을 때 온 것 같군요.”
“…네, 그럼요….”
나는 기쁜 듯이 화답했다.
조이드도 아마 베피의 밑에서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확신하면서 조이드를 뒤따라 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