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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7 의구심과 착각의 접근 (3) (22/128)



〈 22화 〉#7 의구심과 착각의 접근 (3)

나와 페퍼는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해가 진 상태라 우리의 주위는 어두웠다.
그와 그의 뒤에 서있었던 세 명은 우리에게 충분히 긴장감을 가지게 했다.
우리의 무대를 비추고 있는 것은 저 빛나는 구체가 달려있는 기둥일 뿐이다.
그의 손에는 긴 칼 한자루가 들려있었다.
장식이 화려했고, 장난감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 앉아있는 페퍼가 긴장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나를 매섭게 노려보던 그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어 말했다.

“천민, 용서를 빈다면 내가 친히 용서해주지.”

'아까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구나.'

보기와 다르게, 도련님께서는 생각보다 속이 좁으신 모양이다.

“용서? 내가 너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일이 있었던가?”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스럽지 못한 그를 보고 조금 화가 났을 뿐이다.
내 말을 들은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마도 그는 내 태도를 보고 어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억조차 안난다는 것인가….”

그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위협을 하려는 듯,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미리 대비를 해두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게 있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네가 지껄였던 무례한 언동을 생각나게 해주지.”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움직여 칼집에 고이 잠들어있는 칼을 꺼내들었다.
그가 뽑아든 날이 시퍼런 칼은 어두운 밤이었어도, 하늘이 흐려 달이 구름에 가려졌음에도 빛나고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진검이다.’

나는 평화로웠던 페퍼와의 대화를 끊기게 만들었던, 자신이 최고라는 듯한 말을 해대는 콧대 높은 이 건방진 도련님을 향해 짜증이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기세에 주눅들지 않는 나를 보고는 조금 당황한듯 했다.

“무례한 언동이라고…? 너는 자신이 입밖에 낸 말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나보군.”

나에게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내 입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을 들은 그는 비위가 상했는지 미간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홀로 나에게 덤벼온다면 어떻게든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팜 아저씨에게 검술을 배워  적이 있다.
그때 대련하며 마주한 팜 아저씨에 비하면 그의 폼은 무척이나 어설펐다.
그래서 그는 숙련자가 아닌 초심자라고 생각이 되었다.
나는 그의 뒤에 멀뚱멀뚱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세 사람을 눈여겨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들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음…?’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 뒤의 세 사람은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모습 같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겠지.

‘아…, 겁쟁이 자식들.’

내 생각대로라면 그들은 귀한 집안에서 살면서 오냐오냐 키워진 것 같았다.
자존심이 높아 보였고, 우둔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채로 나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도 긴장을 놓치않고 눈을 부릅뜨면서 나를 쏘아보았다.
등 뒤에서 페퍼가 소리쳤다.

“페스틴…!”

나는 그녀가 말릴 틈도 없이 그에게 더욱더 다가갔다.
이윽고 나와 그의 사이는 매우 가까워졌다.
그가 겨눈 칼날이 내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나와 그는 서로 조금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건방지구나, 자기 잘못을 모를 뿐더러 오히려 대들다니.”

그가 여전히 시선을 내  눈에 겨눈채로 말했다.

“너야 말로 건방지군,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있나?”

나도 지지 않고 맞섰다.
우리의 상황은 한마디로 일촉즉발이었다.
그때 건물 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이놈들아! 지금 뭣하는거냐!”

그의 등 뒤에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던 세 사람이 소리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페스틴…! 그만해…!”

페퍼가 나를 말리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뿐, 조금 조차 미동이 없었다.
우리에게 소리친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앞의 그는 칼을 도로 칼집에 집어 넣었다. 여전히 나를 노려본채로.


* * *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안경을 고쳐 쓰면서 묻는 조이드였다.
옆에는 아까 우리를 말리려고 달려온 그 사람이 서있었다.
분명 그녀는 아까 ‘회의’를 했던 방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방금 전까지 공장에 있었는지 기름때 투성인 겉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공구를 넣어두는 가죽 가방이 있었고, 왠지 까진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나도, 거만한 그도 조이드의 물음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조이드는 한숨을 쉬었고, 옆에 있던 그녀는 답답하다는 것처럼 자신의 가슴을 팡팡치기 시작했다.

“뭐라도 말을 해야 알거아냐!”

그녀는 우리를 다그치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우리는 잔뜩 인상을 구긴채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확실히 그들 입장에는 우리가 답답할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그의 입이 열렸다.

“그가 잘못 되었기에 고치려고 했을 뿐입니다.”

‘잘못되었다고…? 내가…?’

“시비를 걸길래, 대응했을 뿐입니다.”

나도 그를 따라 대답했다.

“참내.”

우리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웃기다는 것처럼 코웃음을 쳤다.

“하….”

조이드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각자 방으로 돌아가세요. 시간도 늦었고, 이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이드는 골치 아프다는 듯 해보였고,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벌컥열고 나갔다.

쾅!

그리고 문을 쌔게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질하고는….’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선생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방을 나왔다.

* * *


나는 시간도 늦었고해서 책을 읽으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책을 책장에 도로 꽂고서 침대로 걸어갔고, 왠지 지쳤기 때문에 털썩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것참, 지치는구만….’

나는 기지개를 폈다.
뻐근했던 몸이 조금이나마 풀린  같았고,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허공에 팔을 뻗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앞으로의 일들이 고작 성질더러운 도련님 때문에 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그에게 휘둘러지는게 싫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또 나한테 시비를 건다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거다.’

나는 내일을 위해 잠을 자려고 했지만, 조금은 분한 마음이 있었기에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들었다.

* *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방을 나왔다.
생각 외로 복도는 조용했다.
나는 옆구리를 긁적거리면서 걸어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몸을 긁적거리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내 습관 중에 하나이다.
나는 복도 한쪽에 세워져 있는 괘종시계를 바라보면서 지금 시간이 몇시인지 확인했다.

‘제 6시 반도 안됐네….’

나는 언제나처럼 일어났는데 어째 사람이 없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나지 않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건물 한켠에 마련되어 있다던 목욕탕으로 향했다.

* *

“후아… 개운하구만?!”

살면서 이렇게  목욕탕에서 씻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개미 한마리 조차 없어서 이 넓은 곳을 혼자서 썼다.
이만큼의 사치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따뜻한 물이 잔뜩 있다니, 왕궁은 정말 굉장한 곳이다.
나는 머리를 대충 말리고는 다음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내 방으로 향했다.

* * *

“누구…세요?”

방문을 열자, 모르는 사람이 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
차분해 보이는 인상에 수수한 머리스타일을  그녀는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었다.
하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배정된 메이드입니다.”

자신을 ‘메이드’라고 소개한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2, 3살은  있음직해도,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마치, 내가 자신의 윗사람이라는 듯이 말이다.

“아… 아, 안녕하세요.”

나는 우물쭈물 하면서 인사했다.

“이미 일어나 있었군요, 그럼 아침 식사를 위해 장소를 옮겨주기 바랍니다. 장소는 알고 있죠?”

그녀는 나에게 귀뜸해주고 나서 방을 나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마친 그녀가 나간 방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밥… 이나 먹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 * *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휑한 식당에 홀로 앉아있었다.
방금 아까 ‘메이드’와 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사람이 곧 식사를 내오겠다고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매우 심심해졌다.
말할 상대도 없고, 기다리면서 할 만한 것이 딱히 없어서 그저 멍때리고 있을 뿐이었다.
멍을 때린다.
참 특이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공상, 망상, 상상과 같은 것은 사람이 아무런 제한없이, 요구되는 것 없이 마음대로 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의 폭이 얼마나 넓고, 깊고, 높게 되느냐는 개인의 재량에 달려있는 것 같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치수를 재지는 못하는 것이라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보일 수도 있다.
생산적인 일들 보다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몰두하다 보면, 괜히 혼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딱히 혼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기도, 발전해가기도 하니 말이다.

 같은 경우에는 매우 사실적으로,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현실에 대한 지식을 가지면 가질 수록 그 퀄리티는 높아져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의 취지, 요지, 원인을 떠나서 그저 자유롭게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님 말고.

조금 시간이 흐른 그때 문이 열렸고, 정적이 흐르던 식당 안은 소란스러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제 페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여자애들 이었다.
그들 뒤로 페퍼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뭐가 즐거운지 웃고 있었고, 그들은 매우 친해보였다.

‘아…. 나는 혼자네.’

“어…? 페스틴 아냐?”

페퍼가 내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는 아는 척을 했다.

“어, 어… 안녕.”

나는 그들과 대화하느라, 페퍼가 나를 신경쓰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푸하핫! 혼자있는거야?”

그녀들 중에서  사람이 나를 놀렸다.
그녀들은 나 혼자 있는게 뭐가 우스운지 깔깔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것참….’

웃음을 그친 페퍼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는 내 어깨에 손을 얹어 위로하듯이 말했다.

“불쌍한 페스틴~ 누나들이 같이 있어줄게~”
“됐네요.”

나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거절했다.
나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그녀들은 또 웃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고  사람이고 다 얄밉다.’

* * *

우리들은 우리 앞에 차려진 아침 식사를 입에 가져갔다.

‘소브는 아침 잘 먹고 있겠지…?’

그녀들 중에 머리카락이 푹신푹신해 보이는 여자애가 아침을 먹다 말고 이야기를 꺼냈다.

“저 메이드 아주머니, 인상이 진짜 포근하신 것 같아~”

‘응…?’

“맞아, 은근히 귀여우시지 않아?”

머리가 단발인  다른 여자애가 맞장구를 쳤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그  이름이 메이드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메이드라고 소개하던데… 왕궁은 동명이인이 많네.”

배고팠는지 음식을 연거푸 입으로 옳기던 페퍼가 빵터졌다.

“파하하하! 뭐라는거야.”

‘아닌가…?’

나는 너무 궁금해서 웃느라 대답을 못하고 있는 그녀들의 웃음이 멈추길 기다렸다.
얌전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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