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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7 의구심과 착각의 접근 (4) (23/128)



〈 23화 〉#7 의구심과 착각의 접근 (4)

“너는 여태까지 메이드가 이름인 줄 알고있던거야?”

그녀들 중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애가 나에게 말했다.

“아냐?”

나는 여전히 그녀들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페퍼가 웃음을 참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메이드는 직업 이름이야.”
“이름…?”

나는 ‘메이드’라는 직업을 처음 들어보았기에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구나….’

“페스틴은 순수하구나~”

푹신푹신한 머리를 가진 여자애는 눈가를 부드럽게 휘며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말을 들은 페퍼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바보인거지.”

나를 신랄하게 비꼬는 페퍼의 말에 그녀들은 또 한바탕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 * *

우리는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강의실에 모여야 하는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아서, 가까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그녀들끼리 이야기하고, 나는 그냥 페퍼 옆에 앉아서 멀뚱멀뚱 있었다.
푹신푹신한 머리를 가진 여자애가 잊고있었다는 듯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우리 소개가 아직이었네.”

'참, 일찍도 알아채신다.'

단발머리를 가진 여자애는 깜빡 잊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러네, 그럼! 내 이름은 줄리, 잊지마?”

자신을 줄리라고 소개한 사람은 차분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키도 큰 편이었고, 머리는 짧게 단발을 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마리야~ 반가워.”

포근해 보이는 인상을 풍기고 있는 그녀였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귀한 집안의 자제인 것 같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몽글몽글한 분위기의 옷을 보니,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점은,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그녀의 말버릇인 것 같았다.

“어…. 알고 있겠지만 페스틴이야.”

예의상 나도 그녀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이미 알고 있는데 소개해주다니, 착하네~”

마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나가 칭찬해줘야 겠는걸?”

페퍼가 옆에서 거들먹거리며 팔꿈치로 툭툭 쳤다.

“아까부터 누나라니, 언제 내가 네 동생이 됐냐.”

나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 뒤에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도 했고, 나와 그녀들의 사이도 상당히 친해졌음을 느꼈다.
분명 페퍼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없었겠지.


* * *

“자! 하룻밤 지내 보니 어떠셨나요?”

교탁에 손을 얹고 활기차게 말하는 조이드였다.
나는 상당히 만족했다.
방도 넓었지, 심지어 커다란 욕조에서 몸을 다 담그고 씻을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식사도 영양가 있고, 구성에 균형이 잡혀있었다.
참고로 팜 아저씨 부인에 필적할 정도로 음식이 맛있었다.

“별로.”

나지막히 말하는 거만한 도련님이었다.
조이드는 그런 그의 태도가 난감해졌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계속 지내다보면 차차 익숙해질 겁니다.”

어제의 일을 겪고나서인지 그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해볼까요?”

조이드의 외침에 우리는 미리 제공받은 책을 꺼냈다.

* * *


나로서는 굉장히 지루했다.
이미  아저씨에게 들은 내용이 대다수이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몰라도 조이드는 했던 말을 계속했다.
심지어 짧게 말해도 되는 것을 길게 풀어서 설명하니, 설명이 지루해지고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비효율적이야….’

아마 이 강의실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옆의 페퍼만 빼고.
페퍼는 뭐가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무엇인가 적어가면서 조이드의 말을 듣고 있었다.


* * *

우리에게 쉬는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채로 계속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 중에는 누군가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별안간 거만한 그는 어떤지… 하고 그가 앉아있는 쪽으로 시선을 옳겼다.
그는 턱을 괸채로 조이드가 손짓발짓을 다쓰면서 설명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양옆의 일행은 이미 골아떨어진지 오래인  같았다.

‘의외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소곤소곤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재 조이드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사람은 손을 꼽을 정도로 적었다.
페퍼 옆에 앉은 줄리와 마리도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는 듯 했다.
마리는 눈이 반즈음 감겨 거의 잘 것 같은 상태이지만 말이다.
나는 조이드를 향해 시선을 다시 돌렸고, 조이드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며 방긋 웃고는, 계속해서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을 진행했다.

* *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강의실로 모였다.

“조이드가 하는 말 다 이해했나?”

히터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말했다.
방금 전까지 길고 길었던 조이드의 수업이 끝나고 히터의 차례가 되었다.

‘히터는… 다르겠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히터도 조이드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금세 강의실은 자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옆을 보니 결국 마리는 수면욕에 굴복해 버리고 만  같다.
거만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여전히  듣고 있었다.
그가 팔짱을 낀채로 같은 표정을 유지하면서 히터를 보는 모습은 마치, 평가를 내리고 있는 사람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어제 심리학을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했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는 히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무조건 성급히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 * *


히터가 주도하는 수업이 체감상 제 5시가 지난 뒤에야 끝이 났다.
히터는 수업을 마치고 자고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깨우던지 말던지 해라.”

그리고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로 강의실을 떠나갔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깨울 것인가 말것인가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전에 일단 장시간 동안 앉아만 있었던 내 몸을 기지개로 풀어보았다.

“끄흐읍, 하…!”

너무나도 개운했다.
옆에 있던 페퍼도 같이 자신의 몸을 풀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나와 달리, 그녀는 계속 선생들이 하는 말을 적고 있었으니 분명 나보다도 더 지쳐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참 길었네….”
“그래? 그래도 나름 재밌었는데?”

페퍼는 자신의 뻐근해진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넌 참 대단하다, 어떻게 필기까지 하는거니?”

페퍼를 바라보는 줄리의 시선은 존경심이 뭍어나왔다.

“우아~ 잘 잤다.”

책상에 늘어져 있었던 마리가 잠에서 깨어났다.

“마리, 침.”

줄리의 지적에 마리의 얼굴은 빨개지고,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황급히 닦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건방진 그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히터가 가고 난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골돌히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 * *

우리는 강의실을 나와 탁트인 곳으로 왔다.
신선한 공기가 시급했던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셔서 신선하고 시원한 공기를 나의 몸으로 공급해줬다.
이런 나를 본 마리가 따라했다.

“흐읍! 하~”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한숨을 푹 쉬면서 지루하다고 연거푸 하소연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포기하고 갈까?”
“그러는게 나을지도, 배우는 것도 별로 없고.”
“그러게 말이야, 이미  알고있는 것들 뿐이잖아.”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히터와 조이드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우리가 다 알고있을 법한 기초의 것이다.
그걸 또 상세히 설명하니 우리의 입장에서는 매우 지루해질  밖에 없겠지.
물론, 원리에 대해 기초부터 다져가니, 내가 알고있는 정보에 대한 확신이 자라나기는 했지만….
뭐랄까.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할 뿐이다.
조금 가까운 곳에 건방진 그와 그의 일행이 보였다.

“포드, 저택으로 돌아가자.”

조금 포동포동한 몸을 가진 그가 건방진 도련님에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포드… 라고 하는군.’

“됐어, 너희끼리 가.”

포드는 통통한 그의 권유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보였다.

“그럼… 우리끼리 간다?”

그의 대답을 들은 일행은 왕궁을 나가는 통로를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불쌍하네. 혼자 남다니.’

그들이 멀리 떨어지고 나서 나는 그가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게 되었다.

“버러지같은 것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지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옳겼다.
나는 도대체 그가 왜 그렇게 입이 험악하고 삐딱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를 부르는 페퍼의 목소리에 신경을 끄게 되었다.

* * *


왕궁과 가까운 곳이라면 어느 정도의 외출이 허가 된다고 해서, 나와 그녀들은 잠시 왕궁 밖으로 나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가게로 왔다.
나는 이런 가게는 처음 와보았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것들 뿐이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 내가 모자라 보였는지, 페퍼가 말했다.

“처음 와봐? 촌사람이네~”

‘촌사람…?’

나는 의미불명한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다양한 색으로 장식되어있는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처음 오지, 내가 이런 곳에 올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긴, 너는 처음이겠네.”

줄리는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확실히 나와는 평생 연이 없을 정도의 장식들이다.'

“그럼~ 뭐가 맛있는지도 모르겠네?”

마리가 나를 보면서 방긋 웃었다.

“그…렇지…?”

나는 갑자기 상냥해진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대답했다.
그러다가, 시야에 언짢아 보이는 페퍼의 표정이 보였다.
갑자기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은 걸까.

“그럼, 내가 추천해주지. 이 누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페퍼는 선듯 도와주겠다는 듯이 말했다.
왠지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나는 그녀들에게 무슨 속셈이 있는 것만 같았다.
왠지 뒤가 켕기는 구석이 보이면 나는 굳이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이미 크게 데여본 경험을 여러번 해본지라,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에는 이미 숙련자라 할 수 있겠다.

“아냐 됐어, 내가 고를게.”

나는 신기한 이름들의 과자가 많아서 내가 끌리는 것을 고르고 싶었다.
단번에 자신의 선의가 거절되니, 페퍼는 당황한  해보였다.

“그런데… 돈은 있어?”

약간 걱정스러워 하면서 줄리가 물었다.

“여기 과자들은 비싸니까 말이야~”

줄리의 말에 살을 붙이면서 마리가 말했다.
왜인지 으스대는 것은 덤이다.
나는 과자들이 비싸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있던 메뉴판에는 가격이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 값이 나가는 것은 가격표가 적혀있지 않았다.
[귀족]들에게는 그런 표시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게 진열장을 몇번 훑어보고는 그녀들의 도움 없이는 과자를 고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왕궁에서 우리들의 편의를 위해 몇푼 지원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값이 나가는 금액이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값이 나가는 금액이었고, 나는 선뜻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만은 없었다.

이 한 달 분량의 지원금은 나에게 4개월  생활비였다.
무엇보다, 이 돈을 언제 또 지원해 주는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신중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덤 이라는 듯이 말하게 되어버렸지만, 소브를 부양할 돈도 미리 따로 떼어두어야 한다.
홀로 돈 관리를 해왔던 나로서는 걸핏하면 모든게 다 낭비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구두쇠가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음… 아무래도 페퍼 네 말대로 도움을 좀 받아야 겠는 걸…?”

나는 깊은 고민 끝에 페퍼를 보면서 말했다.
잘 모르는 일을 시작할 때, 무턱대고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편이다.
나의 말에 조금 표정이 어두웠던 페퍼의 얼굴이 펴졌다.

“그래? 그럼 어떤게 먹고 싶은지 먼저 말해봐.”

나는 조금 고민하고 말했다.

“쿠키?”

* *

상당히 맛있었다.
왕궁으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욕탕에 가서 몸을 노곤하게 묵히고, 방으로 돌아간 나는 오늘 배운 내용을 대충 훑어보았다.
1시간이 좀 지났을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로 날아들었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좀 걸을까."


* * *

달빛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차분히 걷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용캐 졸지 않던데, 수업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으려나?”

돌아보니 건방진 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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