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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7 의구심과 착각의 접근 (5) (24/128)



〈 24화 〉#7 의구심과 착각의 접근 (5)

“뭐?”

나는 잘못들은 것 같아 그에게 다시 물었다.

“용케 버티고 있다고 했다. 천민은 여러번 말해야 알아듣나?”

고개를 돌려보니, 포드는 기둥에 등을 기댄채 나를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순간 어이가 없어져서  말을 잃게 되었다.
그는 팔짱을 풀고 천천히 건방지게 걸어왔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해 봐. 설마… 어제 일로 겁 먹은 건가?"
"딱히, 왜 같은 말을 두번씩이나 하는 번거로운 일을 왜하나 싶어서."
“이렇게 여러번 설명을 해야 알아 듣는 거 아닌가? 그래서 선생들도 그리 가르친  알았더니만.”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면서 말하는 그였다.
나는 그가 주는 불쾌함에 나도 모르게 침착함을 잃었다.

“생각이 짧네. 오히려 그런 네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게 신기한데…? 그런 짧은 판단으로 말이야.”

나도 지지않고 비아냥거렸다.
신분, 능력에 차이에 신경쓰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나고, 그는 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런 것에 평가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납득이 되니까.
그렇지만, 이 눈앞의 건방진 녀석을 존중할 필요성을  느끼겠다.

“그 어줍잖은 머리로 뭘 하려고 온거야? 집으로 돌아가. 여기는 노는 곳이 아니니까.”
“역시, 천민. 입 또한 더럽구나.”

그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자신 또한 별 다를게 없다는 것도 못느끼는 주제에, 남을 폄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그의 무지함에 지쳤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구나, 내가 남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 한 일, 귀족이 천민들을 교육하고 이끄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려나?”

나는 그의 생각이 오만함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이상 그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와 그는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마, 그도 나와 비슷한 것을 느꼈지 않았나 싶다.

“…나는, 썩어빠진 이 나라를 고치는 자가 되겠다. 그런 내가 고작 너 하나 고치지 못한다면 나에게 고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겠지.”

그는 돌연 결의에 찬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고쳐…?’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뜻을 이어 말했다.

“나는 여기서 내 기술을 향상시키면서, 예의를 모르는 너를 고쳐보이겠다.”

그의 눈은 진심인  같았다.

“…나를 고쳐보인다고?”

나는 그에게서 무슨 꿍꿍이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래.”

대개 저런 눈빛을  사람은 과거로 부터의 족쇄를 기억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짧고 명료한 그의 대답에서 그가  결심을 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이름은 포드, 너를 고치고 이 나라 제일의 [의사]가 되겠다. 이것은 맹세이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 주먹을 꽉쥔채로 자신의 가슴 언저리로 가져갔다.

“그래…? 맹세라…. 그럼, 열심히 해봐. 나는 어울려주지 않을테니….”
"그러지는 못할 거다. 이제 부터 너를 온전히 바라볼 것이니."
"그러는 나는, 아무것도 안할  알고? 잊지마. 나는 네 앞에서 거울이 되어주겠어. 너의 오점을 그대로 보여줄게."

나는 그가 어딘가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솔직하게 나의 생각을 내비쳤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잘못 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인지 살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럼.”

그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로 떠나갔다.
전날 밤, 결의를 다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것참…, 일이 귀찮게 흘러가네…."

* *

몇일간 조이드와 히터의 반복적이고 지루한 수업은 계속 되었다.
심지어 가르친 내용을 또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강의를 듣던 사람들은 지쳐만 갔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명씩 이탈해 갔지만, 나중에는 이탈하는 사람 수가 점점 늘어났다.
40명 즈음 되어 보이던 사람들은 이제 열 명 남짓 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수업’ 첫 날에 보았던 조이드의 미소는 과연 무엇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 * *

왕궁에 들어온지 13일  되는 날, 조이드는 웬일로 수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잠깐 틈이 생겨서 오늘은 강의실에 몇명이 남아있는지 세보았다.
 수는 자그마치 8명. 고작 8명 뿐이었다.
이 무의미한 수업이 계속 진행되어감에 따라 마음에 자리잡은 의구심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성실했던 페퍼도 8일 째가 넘어가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뭐… 겨우 버티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우리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몰랐다.
우리의 신체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정신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아니,  힘들었다.
그날 밤 맹세를 선언한 다음 날 아침부터, 방금 아침 식사 시간까지 포드가 사사건건 참견을 해왔다.
말투, 품행, 옷차림 할  없이 나를 ‘교정’하려고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온갖 그의 말을 무시하느라 고생을 했다.
그래도 그때마다 마리가 격려를 해주어서 힘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마리는 좋은 친구였다.
좀 더 빨리 만났더라면 즐거운 추억거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다고 페퍼와 줄리가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농담도 해주고, 장난도 쳐주어서 항상 즐거웠기 때문에 나는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을 때, 페퍼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있잖아, 조이드가 무슨  말이 있는걸까?”
“할 말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아?”

줄리가 대뜸 조이드를 비꼬며 물었다.
그 물음에 마리가 축 쳐지면서 대답했다.
아마 그녀는 조이드를 가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이드는 슬플 것 같아~ 다들 가버렸잖아.”

나는  말에 동감하지 않는다.
원인이 조이드 자신이니까.
그렇지만 절반이 넘는 자신의 학생들이 사라지는 것은 마음에 공허함을 주기에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럴 것이라고 조이드의 감정을 이해할 뿐이다.

“그러겠네, 외롭겠네.”

나는 마리의 말에 동조하면서 말했다.
우리를 보면서 웃고 있었던 조이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야~ 드디어! 여러분 밖에 안남았네요!”

우리들의 생각보다 그는 지나치게 기뻐하는 듯 했다.

“안 슬퍼 보이는데?”

줄리가 한 소리 했다.

“그러게.”

나도 의외였다.

“여러분! 이 자리에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여러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

“축하~? 우리가 축하받을 일이 있나?”

마리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물었다.

“글쎄? 우리는 단지 수업만 듣고 있었을 뿐인데?”

페퍼가 의외였다는 투로 대답했다.

“나는 수업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받을  있다고 생각해.”

줄리는 자신을 대견스러워 하면서 말했다.
살짝 들려진 턱과 자신의 가슴쪽에 손끝을 살짝 얹은 것을 보아하니, 진심인 듯 하다.
조이드의 말을 듣고 그 의미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조이드가 바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첫번째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조이드는 그 말을 마치고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시험…?’

“엥?”

줄리는 한껏 당황하며 나를 쳐다봤다.
만약 시험이라는 것이 이 지루한 수업을 버티는 것 뿐이라면, 수업중에 자기만 했던 마리가 현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라니, 금시초문인데?”

포드의 물음이 들려왔다.

“당연하죠! 여러분이 알아버리면 시험이라는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조이드가 신나하면서 대답했다.
이어서 조이드가 종이 뭉치를 들더니, 무언가 적혀있는 듯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합격자 명단을 알려드리죠! 선생들의 평가도 들어있으니까,  들어보기를 추천합니다?”

‘평가도 있었나…!’

방금 발언은 철회한다.
마리… 건투를 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알아볼줄은 전혀 몰랐다.
예상하지 못한 내가 어리석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홀로 예상해 보고는 한다.
정작, 잘 맞아 떨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소브가 밥을 안먹을 것 같다는 예상…일 뿐이다.

“먼저, 페퍼 양! 태도 극! 최상!!!”

조이드는 들고 있던 종이를 던져 버릴 정도로 환의에 넘쳐보였다.
옆을 보니 페퍼가 의외의 결과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페퍼 양.’

조이드가 페퍼를 칭찬하면서 말했다.

“이야~ 페퍼 양은 진짜 개인적으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을 정도로 태도가 좋았습니다!”

‘동감한다.’

“다음! 포드 군! 태도 최상! 흠 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조이드는 자신의 손에 붙들린 종이를 보면서 말했다.
포드 쪽을 바라보니 그가 어떠냐는 듯이 웃는게 보였다.
참으로 어이없고 어이없고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그 다음은~ 줄리 양! 태도 상! 나름 좋았습니다?”
“엥, 나도 나름 잘 했는데?”

줄리는 자신이 기대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살짝 실망한 기색이 보였다.

“그리고 페스틴 군! 상! 좋았습니다! 하지만 가끔 딴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자리에서는 모든게 다 보여지는 듯 하다.
것보다,  조이드의 능글맞은 표정과 놀리려는 듯한 말투는 어째….

‘것참, 상큼하게 하려는 모습이 왠지 거북하네.’

“그리고 토니 군! 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한 타입이군요! 잘해주었습니다!”

조이드는 격려하듯이 말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몸집이 작고 생기 없어보이는 눈을 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이름이 토니였구나….'

“그 다음에는~ 안토리오 군! 중입니다~ 더 열심히 해주세요!”

그는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매만졌다.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자 관찰을 하던 와중, 나와 눈이 마주쳤다.
산뜻하면서도 차분한 인상의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안나 양입니다! 안토리오 군과 같은 중입니다! 둘은 사이가 좋았는지 자주 떠드는게 보였습니다!”

수줍은 느낌의 여자애는 안토리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보였다.
착 달라붙어서 떨어질 것 같이 보이지도 않는다.
안토리오의 표정이 온화한 것을 보아하니, 저건 일상인 듯 하다.

“대망의 마지막! 마리 양입니다….”

조이드는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마리 양은… 하 입니다. 잠은 숙소에서 주무시기 바랍니다….”

조이드는 따끔한 말을 했다.
마리를 보니 얼굴이 빨개져있었다.

'그럴 수 있지. 마리야,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렴.'

“2주일 동안 수고한 여러분에게! 오늘 하루 자유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오기 바랍니다? 더욱 힘들어질테니까요!”

'더…? 제발 몸은 편하길 바란다.'

말을 마친 조이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의실을 나갔다.

“자유시간이래! 어디갈래?”

줄리는 신나보였다.

“전의 찻집에 갈래?”

나는 쿠키가 먹고 싶어졌다.

“파하하!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보네!”

페퍼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페스틴, 거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어.”

마리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오…!”

나는 잔뜩 기대를 품었다.
마리가 추천해주는 곳은 전부 다 맛있었기 때문이다.

“가자!”

줄리는 앞장서면서 말했다.
나는 잠시 눈길을 돌려 처음 이름을 듣게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동안 어울릴 틈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새인가 이렇게 끼리끼리 지내게 된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토니와는 자주 마주치기는 했다.
워낙 몸집이 작고 조용하다보니, 있다는 걸 눈치 못챌 때가 많았다.
나는 만날 때마다 이름을 묻고 싶어 말을 건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인가 서둘러 달려갈 뿐이었다.
여하튼, 나는 그들과는 추후에도 친해질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 그녀들을 따라갔다.


* * *


“맛있지?”

마리가 나에게 물었다.

“응 맛있네.”

나는 미처 씹지 못한 과자가 입 안에 있는채로 대답했다.

“다 먹고나서 말하렴.”

페퍼가 어리숙한 동생을 타이르는 것 같이 말했다.

“예이, 예이 알아모시죠.”

나는 입안에 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삼키고 말했다.
나의 말에 페퍼는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터트렸다.

“여기 차도 맛있어.”

줄리가 나에게 말했다.

“그래? 뭐가 맛있는데?”

나는 그녀들에 비해  종류를 모르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의지해야 했다.

“음~ 뭐가 좋을까?”

마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페퍼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 그거 어때? 그거!”

마리는 페퍼가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안온 것인지 페퍼에게 다시 되물었다.

“그거?”
“아~”

줄리는 기억이 난 듯 했다.
그리고 이윽고 고개를 연신 끄덕여대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좋아!”

줄리는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가게 사람들의 이목이 잠깐 쏠렸다.
아직도 이야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마리를 위해 페퍼가 귓속말로 속삭이자, 그제서야 마리도 좋다고 박수를 쳤다.

‘뭐지?’

그녀들이 서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 귓속말로 뭐라뭐라 또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사람은 나를 흘낏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의 눈빛이 불쌍한 사람보는 것처럼 보여서 몇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해졌다.

“대체 뭐길래 그래?”

나는 너무 궁금해서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녀들의 음흉한 미소일 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자라나고 있음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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