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8 정보를 주고 받으며…. (1) (28/128)



〈 28화 〉#8 정보를 주고 받으며…. (1)



“아…!”

나의 발걸음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그에게 이끌었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나의 행동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음?”

나를 괴물로 부터 구해준 은인은 나의 접근을 눈치채었는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차갑고 냉소한 눈빛은 여전했다.

“아, 저기…!”

나는 아직 그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애써 눈을 마주치려고 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는 곧 나를 기억해냈는지, 인상이 구겨졌다.
성가신 사람을 만났다는 듯한  표정은 내 발걸음을 주춤거리도록 하는데 충분했다.
나는 그저 나를 괴물로 부터 구해준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와 말을 섞어보고 싶었다.

“칫.”

돌아오는 것은 귀찮음이 섞인 혀를 차는 소리와 등을 돌려버리는 냉랭한 반응 뿐이었다.

“아아…!”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괴물을 한순간에 쓰러트릴 정도로 강한 힘을 어떻게 얻었는가?
 괴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가 사용한 칼은 어째서 빛나고 있었는가?
…와 같은 하고 싶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손을 뻗어 그를 불러세워 보지만, 그의 움직임은 조이드 못지 않게 빨랐기 때문에 그를 그대로 보내줄  밖에 없었다.
결국 내 궁금증은 해결되지 못한채 그대로 내 마음속에 남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힘없이 왕궁으로 발걸음을 옳겼고, 미래에 새로이 개척할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허탈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 *

해는 이미 모습을 감추었고, 숙소로 가는 복도는 자그마한 랜턴에 의한  밖에 없었다.
복도를 빠져나오자, 천장이 뚫린 넓은 공터가 보였다.
달빛에 반짝이는 대리석은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가야만 했기 때문에, 나는 심호흡을 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넓은 공간은 뭐랄까….
불안하다.
탁 트인 곳에 홀로 거닐자니, 주변에 가득한 창문 너머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쪽을 집중해서 바라보니, 기둥 너머에 위치한 벤치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그쪽 역시 나를 발견하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늦게 오는거 아니야?”

페퍼의 걱정 어린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페퍼를 보았다.
내가 별다른 말 없이 가만히 있자, 그녀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있어?”

적막이 흐르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 페퍼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확실히 오늘따라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육체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부면에서 피로가 쌓인 기분이다.
나의 은인을 마주했음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타격이 되었다.
나는 ‘그’를 알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래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뿐이다.
물론 말한다고 해도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긴… 나는 지금 기운없어요~ 라고 얼굴에 써져있으면서.”

페퍼는 은근히 눈치가 빨랐다.

“아… 음… 그래?”

나는 무언가를 말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꺼려했다.

“속시원 하게 말해도 돼~ …내가 못미더워서 그래?”

페퍼는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런건 아닌데….”
“그럼? 마음 편하게  말해봐~ 내가 다 들어줄게.”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여나 누군가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는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위는 조용했다.
아마 시간이 저녁 때여서 그런지, 다들 식사하러 간 것 같았다.

꼬르륵-

누군가가 배를 굶주려하는 소리가 들렀다.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가보니, 페퍼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니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될까…?”

나는 눈치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배가 고픈 것은 전혀 창피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성은 섬세하기 때문에 배려를 해주면 좋을  같았다.

“응…?”
“…배가 고파서 말이야.”

이쪽에서 먼저 이야기 해주니, 페퍼의 표정은 한결 나아 보였다.

“응! 그래 그러자고.”

페퍼는 방긋 웃더니 앞장서서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나보다….’


* * *


식당에 들어선 우리는 마리와 줄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제 온거야~?”

마리가 입안의 음식물을 오물오물 거리면서 물었다.

“응, 방금 왔어.”

나는 줄리 옆에 앉으면서 대답했다.

“흐응~ 그래~?”

줄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왜 그래? 느끼하게….”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말을 길게 빼는 그녀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아! 이제 왔니?”

메이드 아주머니가 다른 일행의 식기들로 보이는 것들을 치우면서 말했다.

“네! 저희 것도 부탁드릴게요!”
“그래! 조금만 기다리렴?”

그녀는 식기를 정리하던 것을 멈추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뭐하다 이제 온거야?”

마리가 입안의 음식물을 목으로 넘긴 것인지, 포크로 접시에 담긴 음식을 찍으면서 물었다.

“음….”

페퍼는 주저하면서 나에게 시선을 옳겼다.

‘하긴, 페퍼는 아무것도 모르지.’

나는 ‘그’에 대해 말하기 보다 헨델이 납치되었던 것을 돕고 왔다는 것만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그… 지금 말하기는 좀 그런 내용인데….”

헨델의 이야기는 식사를 하면서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걸 그대로 이야기 한다면, 행여나 그녀들이 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정도다.

“음… 그럼 저녁 식사 마치고 이야기 할까?”

페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너도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구나?”

줄리는 선뜻 이야기 하지 못하는 페퍼를 보며 싱겁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잠시 뒤에 식사가 나왔고, 나와 페퍼는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나도 배고팠으니까.

* * *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공터로 나왔다.
이야기할 주제가 주제인 만큼, 구석진 곳에 위치한 벤치로 왔다.
음흉한 미소로 “숙녀들을 데리고 이런 으슥한 곳에서 뭘하려는거야~?” 라고 묻는 줄리의 말을 무시하며, 그녀들을 벤치에 앉혔다.

“아… 그래서?”

페퍼가 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 문을 열었다.

“헨델이 납치 되었었어. 다행이 경비대분들이 찾아냈지. 나는… 그냥 옆에 있었을 뿐이고.”

'굳이 나의 행적에 관해 전부 말할 필요는 없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이미지란 중요하니까.'

“헨델이라면… 그 여자애 동생이지…?”

마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나오는 그녀의 습관인  하다.

“응, 세티 동생이야.”

페퍼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헨델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았다.

“여하튼, 단서를 찾고 쫒아가보니, 범인을 잡을 수도 있었고….”
“너 혼자?”

 말에 페퍼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범인에 대해 말하려다가, 나의 행적을 말해버렸다.
일의 전개 과정을 생각하며 말하다보니, 내 스스로 발설해 버렸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아니 빌 씨랑 같이.”
“빌…?”

줄리는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아… 경비대원… 아니,  5구역 수사관이야.”

기억을 더듬어 한 경비대원이 그를 부르는 칭호를 떠올렸다.
아마 빌은 특별한 직책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페스틴은 의외로 발이 넓구나~”

마리를 바라보니,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비교적 소극적인 그녀에 눈에는 내가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아… 하하 그렇네,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그렇네, 은근히 많구나.’

“아무튼, 그 사람은 조사실로 끌려가서 죄값을 치르고 있을 거야. 아마….”
“응…? 그 뒤에는 자세히 모르는거야?”
“어… 치료받고 바로 왔거든, 해야할 것도 있고.”

여전히  품속에 있는 책을 만져보았다.
투박하면서도 중독성있는 표지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렀다.

“어이, 지각생.”

고개를 돌려보니 포드가 기둥에 기대어 서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와 상종하기 싫었기 때문에 무시했다.
줄리가 허리를 숙이며 작게 소곤거렸다.

“으와…  왔네….”

포드는 줄리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렇게 늦게 왔지? 내가 너의 오점을 말하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라고, 선생들이 알게되면 너는 추방이니까.”

포드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리니 마리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자그마한 두 손은 단단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페스틴은 사람을 도와주고 오느라 늦은거라구~!”

아무래도, 포드의 발언에 화가 나신 모양이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지내오면서 마리가 화내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마리의 모습을 신선하다 느끼며, 기억에 담았다.
조용하지만, 불의를 못 참는 그녀의 성격에 주의를 돌리다가 포드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그런 마리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조금 주춤했다.
하지만 그는 태세를 정비하고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잘못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규칙을 어겨서까지 사람을 도울 이유가 있나…?”

살짝 수그러든 그의 목소리는 주저함이 뭍어나왔다.
나는 포드의 말을 듣고, 세티가 내 옷자락을 세차게 움켜쥐며 외쳐대던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면 안되나…? 절박한 심정으로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할 수도 있잖아.”

나는 포드가 하는 말의 의도와 느낌을 알아챘다.
따라서 나도 조금 부드러운 투로 이야기 했다.

“꼭 네가 도우라는 법은 없지, 안그런가…? 수많은 경비대원들이  존재하겠어.”

그 역시 나의 태도를 이해했는지, 아까보다 확실히 너그러워졌다.
문제점에 대해 차분히 지적해주는 그의 모습은 뭐랄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듣고 보니 내가 아니더라도 도울 사람은 충분히 있었다.
그저 내가 가진 오지랖 때문에 내가 나섰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페스틴이 없었으면 헨델을 구하지 못했을 거야…!”

페퍼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이렇게까지 나를 지지해주니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겠다.

“헨델…?”

포드는  이름을 듣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흠…. 결국 사람을 가려 돕는건가…?”

그리고 그는 대뜸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서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면식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독단적인 행동을 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뭐… 사실이니까. 어디까지나  개인의 목적을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이다.'

“저 저 저 싸가지 없는…!”

줄리가 주먹을  쥐면서 그에게 한방 갈기려는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페퍼가 줄리를 말렸다.

“폭력은 안돼…!”
“으휴! 내가 페퍼를 봐서 참는다!”

줄리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주위에서 오히려 난리법석이었다.

“괜찮아, 이제 됐어.”

나는 줄리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다고 느꼈다.
오히려, 내 행동에 대해 정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애가 꼬이게 된거야…?”

줄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찰진 말을 내뱉으며 심통을 부렸다.

“참아, 언젠가 그 녀석도 잠잠해지겠지.”

나는 차분히 말했다.

“페스틴은 화 안나…?”

마리는 진정이 되었는지, 두 볼은 원래대로 되돌아 와 있었다.

“딱히, 그럼…! 나는 볼 일이 있어서 가볼게.”

체감상 시간이 늦어졌다.
이런 대화를 나눌 시간에 차라리 원래 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게 나아 보였다.

“볼 일? 설마 포드를 때리러 가는건 아니지…?”

페퍼는 지나치게 나를 걱정하며 물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어둠을   있었다.

“…아냐, 이 책을 토니에게 전해줘야 해서.”

나는 품 속에서 책을 꺼내 그녀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손을 흔들면서 토니의 방으로 향했다.
책을 보여줘서 그런가, 세 사람은 잠자코 나를 배웅했다.
시각적인 증거물은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데 특화되어 있는  하다.

* * *

조금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토니의 방에 도착했다.

‘토니가 안에 있으려나….’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토니…? 안에 있어?”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토니가 나올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어… 나야 페스틴, 도서관에서 책을 놓고 갔길래 좀 전해주려고.”

나는 방 안에서 토니가 듣고 있는  같아서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이쪽을 경계하고 있다면, 목적을 말해주는 것이 상대방 입장에서 안심이  것 같았다.
그러자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이 열렸다.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토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렇게 마주 보고 서있으니, 키 차이가 났다.
그래서 나는 토니를 내려다 보았고, 그는 나를 올려다 보게 되었다.

“…책?”
“응, 이거 아까 도서관에서 놓고 가서….”
“아…!”

토니는 황급히 내 손에 들려있었던 책을 가로채갔다.

“…고마워.”

토니는 아주 작게 감사를 표했다.
사람 대하는게 서툰 모양이다.
낯설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려나.

“이제 됐지…?”

토니가 눈을 치켜뜨면서 물었다.
다른 남자애들에 비해 여성스러운 면모가 보이는 얼굴이었다.
솔직히, 조이드가 "토니 군."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여자라고 오해 할  했을 정도다.

‘…? 뭐지,  묘한 감정.’

“어, 어….”

바보처럼 대답하는 나의 말에 토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으려고 했다.

“아!”

나는 황급히 닫혀지는 문을 붙잡았다.

“무, 무슨….”

토니는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적잖아 놀란 듯 했다.

“앗… 미안…. 아까 도서관에서 놀라게 한 거 사과하고 싶어서….”
“…괜찮아, 신경 안 써.”

토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닫으려던 문을 마저 닫으려고 했다.
나는 문에서 손을 놓고 말했다.

“잘자, 토니.”

토니는 잠깐 멈칫 하더니 문을 닫았다.
나는 묘한 고양감에 굳게 닫힌  앞에 잠시 동안 서있었다.

“…잘자.”

조용히 들려오는 토니의 목소리에는 수줍음이 묻어나왔다.
드디어 토니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은 환희에 넘쳤다.

‘됐다아아아아!’

* * *

나는 옷을 벗어 바구니에 담아두고, 커다란 욕조로 향했다.
욕탕에 들어설 때마다 보는 간판의 의미가 무엇 일까 하고 생각했다.
별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가…라고 의문을 표할  하지만, 가끔 내가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쓸데없는 일에 대해 생각했던  보면, 이미 나에게 일상이나 다름이 없다.
[공중목욕탕] 이라고 적혀있는 그 간판.
잠깐 멈추어 서서 간판을 올려다 보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말 그대로 욕탕일 뿐이라 별다른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 청소는 어떻게 하는 걸까?”

나는 문득 든 의문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밖과는 다른 온도 때문에 잠시 동안 내 시야는 수증기로 가득했다.
앞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몇  뒤 였다.

쓱싹! 쓱싹!

나는 솔질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속으로 들어갔다.
신경 쓸 이유도 없고, 특별한 요인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으아~ 따뜻하다….”

나는 지쳤던 몸을  피면서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날아가기를 바랐다.

“아…?”

남자라고 느껴지지 않은 얇고 차분한 목소리의 짧은 탄식이 들렀다.

‘응…?’

나는 무심코 소리가 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메이드가 서있었다.
바로,  방안에 들어와 있었던  메이드였다.

“아?”

'여긴 남탕이다. 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 메이드는 굳어있었고, 손에는 긴 자루가 들려있었다.
아까의 솔질 소리는 그녀가 내었던 소리였던 것이다.
그녀도 심히 당황했는지, 평정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저, 저기… 안내문을  보신 건가요?”

그녀가 정적을 깨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쭈그리고, 주위에 보이는 것들로 내 몸을 가렸다.

“안… 안내문이라뇨?”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안내문의 쪼가리 하나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분명… 문 옆에 붙여 두었을 텐데….”

‘아.’

생각해 보니까 나는 욕탕에 들어올 때, 바닥이 아니라 위를 보고 있어서 안내문을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내 실수였다고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리고는 욕탕을 서둘러 나갔다.
너무 놀라서 뒤늦게 알아챈 것이지만, 그녀는 가벼운 차림이었다.
모든 메이드가 평소에는 단정하고 깔끔하게 되어있는 복장으로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녀는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하얀색 옷만 입고 있었다.
아마도 그 옷은 잠잘 때 입는 가벼운 옷 같았다.

“하… 이를 어쩐담…. 사과를 해야….”

나는 무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 * *

찜찜한 기분에 개운하지 못했던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기 위해 탈의실로 나왔다.
나오면서 문 옆에서의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나는 씻으러 온 다른 사람이겠거니 하고 그대로 내 옷이 담겨져 있는 바구니로 향했다.
하지만 걸어나가면서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메이드였다.

“아앟!”

깜짝 놀랐다.
올해 최고로 심장이 벌렁거리는 순간이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여기 서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 끝내셨습니까?”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ㅇ, 예….”

나는 얼떨떨해 하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알몸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끄럽네 뭔가….’

나는 황급히 바닥에 떨어져있는 천으로 내 몸을 가렸다.

“그런데,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잖습니까!”

그녀는 당황하는 나에게 다그쳤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을 보아하니,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눈을 돌려 그녀 옆을 보니 ‘청소 중’이라는 안내문이 입구 바로 옆에 붙여져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서둘러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고로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숙여졌다.

“하… 평소 행실이 바른 분이시니, 눈감아 드리죠. 다음 부터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욕탕을 마저 청소하기 위해서 욕실로 들어갔다.

“하아….”

메이드에게 혼나고 말았다.
나는 몸을 대충 말리고는 옷을 입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음 부터는 조심해야 겠다고 다짐하는 나였다.

* * *

방에 돌아와 오늘 복습할 분량의 공부를 끝마쳤다.
끝이라 생각하니 눈이 슬슬 감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달을 바라보았다.
찬란하고 찬란하고 찬란했다.
달빛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나는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나는 내일 부터 있을 수업을 떠올리고, 이제 슬슬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램프를 껐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몸을 던지니, 침대가 사정없이 흔들거렸다.
침대는 매우 푹신푹신 했다.
나는 자세를 고쳐잡아 똑바로 누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틈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들기는 커녕 갑자기 문득  메이드가 생각났다.

‘엥?’

나도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 나타난 그녀는 물에 젖어 하얀 속살이 비춰지고 있었다.

‘뭐지…?’

나는 왜 그게 갑자기 떠올랐는지 몰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도 계속 떠올랐다.
처음 겪는 뇌의 오작동에 의해 나는 당황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물이 담겨져 있는 병을 집어들고, 병 채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들이키고 나서야 그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번도 이런 생각이 떠올리지 않았었다.
도대체 그것이 왜 떠올랐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그냥 오늘 하루 종일 피곤했고, 아까 심히 놀랐기 때문에 이상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잠에 빠졌다.

‘과연 내일은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릴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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